[사설]건전재정과 성장 흔들지 않는 복지예산이라야

  • 동아일보
  • 입력 2010년 9월 29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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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가 내년 나라살림 규모를 올해보다 5.7% 늘린 309조6000억 원으로 책정한 예산안을 발표했다. 총지출 규모는 본예산 기준으로는 처음 300조 원을 넘어선다. 총수입은 2010년보다 8.2% 증가한 314조6000억 원으로 전망됐다. 친(親)서민 정책에 따른 복지예산 확충과 재정건전성 확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기 위해 고심한 흔적이 엿보인다.

보건복지노동 예산은 올해보다 6.2%(5조1000억 원) 늘어난 86조3000억 원이 배정됐다. 금액으로는 예산안 12개 분야 중 가장 많이 늘었다. 총지출 대비 복지지출 비중도 27.9%로 사상 최고 수준이다. 보육, 아동안전, 교육문화, 주거·의료, 장애인, 노인, 저소득층, 다문화가정 등 ‘서민희망 8대 과제’에 올해보다 3조 원 늘린 32조1000억 원이 책정됐다. 외교·통일, 연구개발(R&D), 교육 예산도 8∼9%의 높은 증가율을 보였다.

복지예산 확대에 대해 일각에서는 경제의 성장잠재력을 갉아먹고 국가 의존 풍조를 확산시킬 것이라고 우려한다. 반면 한국의 복지예산 규모는 여전히 낮아 더 늘려야 한다는 반론도 만만찮다. 사회적 약자에 대한 배려를 통해 ‘따뜻한 시장경제’를 정착시키는 노력을 소홀히 할 수는 없다. 하지만 복지예산이 건전재정과 성장잠재력을 흔들 만큼 팽창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지나친 시혜성 복지정책의 부작용도 잊어서는 안 된다.

내년 통합재정수지는 5조 원 흑자로 돌아서고, 관리대상수지는 25조3000억 원 적자로 올해보다 적자가 약 5조 원 줄어든다. 국가채무는 올해 407조2000억 원에서 내년 436조8000억 원으로 늘어나지만 국내총생산(GDP) 대비 국가채무 비율은 36.1%에서 35.2%로 낮아질 것으로 보인다. 내년 예산안이 긴축예산이라고 보기 어려운데도 재정건전성을 크게 훼손하지 않는 것은 경기회복으로 세수(稅收)가 늘어나기 때문이다. 선진국들이 경기침체와 재정적자 급증에 시달리는 점을 상기하면 건전재정과 ‘약자 돌보기’를 위해서도 경제의 파이를 키우는 일이 중요하다.

국가기반시설(SOC) 예산은 올해보다 3.2% 줄어든 24조3000억 원이 책정됐다. SOC 투자의 축이 도로에서 철도로 점차 옮아가는 추세가 반영됐다. 김무성 한나라당 원내대표는 24일 “4대강 살리기 예산을 제외하고 국회의원들이 자기 지역구를 위해 설정한 선심성 콘크리트 예산은 없애고 깎아야 한다”고 말했다. 여야 마찬가지지만 먼저 여당부터 ‘의원 재선용 선심예산’을 늘리지 않겠다는 약속을 지켜야 할 것이다.

한나라당은 국회 심의 과정에서 친서민과 공정사회 예산을 더 늘리겠다는 뜻을 시사했다. 민주당은 4대강 예산 대폭 삭감과 복지예산 추가 증액을 요구했다. 예산 심의 과정에서 여야가 앞다퉈 포퓰리즘적 발상으로 복지예산 증액 경쟁에 나선다면 예산 최종안에서 재정건전성이 훨씬 악화될 우려가 크다.

정부는 4대강 살리기 예산에 당초 계획대로 3조3000억 원(수자원공사 투자분 포함하면 7조1000억 원)을 배정해 차질 없이 공사를 진행할 계획이다. 4대강 예산도 성역일 수는 없지만 환경과 치수(治水), 지역경제 활성화에 기여하는 사업을 정략적 공세로 흔들 일만은 아니다. 박준영 전남지사는 어제 “민주당 소속 지사이면서 4대강 살리기를 돕는 행위를 한다는 지적은 앞뒤 사정을 모른 채 무조건 비난만 하는 것에 불과하다”고 말했다. 여야가 입으로는 온갖 수사(修辭)를 늘어놓으면서 예산 심사 과정에서는 ‘제 논에 물대기’에만 급급한 구시대적 행태를 탈피할 때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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