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노건평 씨를 사면하면…

  • 동아일보
  • 입력 2010년 8월 7일 03시 00분


이명박 대통령이 오는 광복절에 노무현 전 대통령의 형 노건평 씨를 특별사면 대상에 포함할 것인지 고민하고 있다는 보도다. 이 대통령은 검찰 수사를 받던 직전 대통령이 자살한 데 대해 인간적으로 부담을 느끼고, 노 씨 사면을 통해 전 정권과 화해하고 싶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이 대통령이 노 씨를 사면한다면 분분한 해석을 낳고 큰 부담이 될 것이 분명하다. 노 씨가 ‘(전직) 대통령 가족’으로서 국가와 사회를 위해 공헌한 바는 없고 오히려 권력형 비리를 저지른 장본인이라는 점에서 더욱 그렇다.

노 씨는 세종증권 매각 과정에 개입해 약 30억 원을 받은 혐의로 징역 2년 6개월이 확정됐다. 그는 동생의 대통령 취임 초기에 인사청탁 비리로 집행유예를 선고받은 뒤에도 잘못을 되풀이했다. 지난해 9월 항소심 선고 때 판사는 “평범한 세무공무원으로 생활하다 로열패밀리가 됐지만 노블레스 오블리주(지도층의 도덕적 책무)에는 관심이 없었다. 돈 있는 사람들에게 돈을 거둬 공직선거에 출마한 사람들에게 나눠주는 봉하대군의 역할을 즐겼다”며 노 씨를 질책했다. 노 전 대통령이 자살에 이르게 된 과정에도 그의 비리와 수감이 영향을 미쳤다고 볼 수 있다.

노 전 대통령의 측근들은 “노건평 씨에 대한 수사는 노 전 대통령을 압박하기 위한 정치적 수사 과정에서 나온 것”이라며 그를 사면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노 씨의 비리는 복마전 같은 농협중앙회의 비리를 수사하는 과정에서 드러난 것이다. 정치보복과는 관련이 없다.

이 대통령이 ‘대통령 가족은 특별하다’고 생각하지는 않겠지만 노 씨를 사면하면 국민에겐 ‘역시 대통령 가족이라 달리 대접하는구나’ 하는 인식을 심어줄 수 있다. ‘내 가족도 나중에 차기 정권과 국민이 좀 봐줬으면…’ 하고 기대하는 것으로 읽힐 수도 있다. 이 대통령이 불법으로 몇십억 원을 받은 노 씨를 특별사면한다면 서민정부를 아무리 강조해도 많은 국민은 ‘역시 서민보다는 특권층’이라고 생각할 것이다. 서민은 몇억 원이라는 돈을 구경하기도 어렵지만 훨씬 작은 죄를 지어도 징역을 사는 게 보통이다.

2008년 총선 당시 공천 헌금 32억 원을 받아 징역 1년 6개월이 확정된 서청원 전 친박연대 대표에 대한 특별사면도 신중해야 할 것이다. 여야 의원 254명이 사면을 요청했지만 의원직을 돈으로 팔고 사는 정치부패는 근절해야 한다. 부패 정치인이 쉽게 특사를 받는 관행을 단절하지 않으면 정치 선진화는 아득한 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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