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취女 성폭행한 세 남자…“합의하면 되나” 현장서 AI에 물었다

  • 동아일보
  • 입력 2026년 3월 3일 20시 38분


[더뎁스]
챗GPT 기록에 범행 의도-대책 다 나와
특수강간 혐의 입증 결정적 증거로
“AI 챗봇, 범죄자 사고 반영된 스모킹건”

더뎁스(The Depth)는 사건과 사고 뒤에 숨겨진 입체적인 맥락을 파헤치는 시리즈입니다. 현장의 소음에 가려진 핵심 쟁점을 파고들어 ‘왜’와 ‘어떻게’를 선보이겠습니다.



20세 여성이 의식을 잃은 채 쓰러진 현장. 지난해 6월 25일 경기 가평군의 한 수상레저업체 숙소에서 남성들은 여성을 방치한 채 태연하게 스마트폰을 들고 손가락을 움직였다. 이들이 생성형 인공지능(AI) 챗GPT에 입력한 질문은 ‘집단 강간 초범이면 징역 갈까’, ‘성관련 범죄 후 합의하면 형량이 얼마나 줄어드나’였다.

이들 20, 30대 남성 3명은 전날 오후 10시부터 약 3시간가량 술에 취한 여성 손님을 성폭행한 직후 챗GPT에 처벌 가능성과 형량 등을 검색했다. 피해자에 대한 참회 대신 처벌을 피하기 위한 계산만 한 것이다. 경찰은 휴대전화 포렌식 과정에서 이들의 챗GPT 대화 기록을 확보했고, 이는 특수강간 혐의를 입증하는 결정적 증거가 됐다.

AI 대화 기록은 이들 성폭행범이 재판에 넘겨진 뒤에도 이들의 발목을 잡았다. 가해자 중 한 명이 범행 보름 전 챗GPT에 “이번 시즌에 몇 명 쪼인(합류)할지 알려줘” “빠지(수상레저 사이트)에서 여자 몇 명과 원나잇을 할 수 있나 알려줘” 등을 검색한 기록이 증거로 제출된 것.

의정부지법 남양주지원 재판부는 이를 토대로 “피고인이 고객과 성관계를 갖는 것 자체에 관심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고 판단했다. 챗GPT 기록이 단순히 범행 직후의 인식이나 처벌 우려를 보여주는 데 그치지 않고, 범행 이전 피고인의 성적 관심과 내면의 욕구를 보여주는 정황 자료로도 활용된 셈이다. 1심 법원은 1월 20일 이들 남성 3명에게 각각 징역 8년을 선고했다.

● 단순 검색 넘어 ‘범죄 시뮬레이션’ 도구로

이처럼 AI 대화 기록이 수사와 재판의 핵심 증거로 떠오른 이유는 단편적인 검색어보다 범죄자의 ‘사고 흐름’을 훨씬 선명하게 드러내기 때문이다. 단순 구글링이 정보 조각을 모으는 수준이라면, 생성형 AI와의 대화로는 범행의 동기와 준비 과정, 범행 직후의 심리 상태까지 재구성할 수 있다. 정두원 성균관대 과학수사학과 교수는 “AI 챗봇과의 대화에는 작성자의 의도가 비교적 직접적으로 반영된다”며 “일반 검색 기록보다 수사에 더 유의미한 자료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최근 이른바 ‘모텔 약물 연쇄살인’ 사건으로 구속된 김모 씨(21)가 범행 전후 챗GPT에 남긴 질문도 살인의 고의를 가늠하는 ‘스모킹 건’이 됐다. 경찰은 김 씨가 범행 전후 챗GPT에 남긴 ‘술과 섞으면 죽나’, ‘치사량은 얼마인가’ 등 질문을 휴대전화 포렌식으로 찾아냈고, 이는 김 씨의 혐의를 상해치사에서 살인으로 바꾸는 결정적 근거가 됐다.

(서울=뉴스1) 안은나 기자 = 강북구 수유동 모텔에서 약물이 든 음료를 건네 타인을 숨지게 한 혐의를 받는 20대 여성이 12일 오전 서울 도봉구 북부지방법원에서 열린 영장실질심사(구속 전 피의자 심문)에 출석하고 있다.   경찰은 이 여성이 지난달 말 또 다른 남성에게도 동일한 수법으로 범행을 저지른 것으로 보고 숨진 이들의 부검을 진행 중이다. 2026.2.12/뉴스1
(서울=뉴스1) 안은나 기자 = 강북구 수유동 모텔에서 약물이 든 음료를 건네 타인을 숨지게 한 혐의를 받는 20대 여성이 12일 오전 서울 도봉구 북부지방법원에서 열린 영장실질심사(구속 전 피의자 심문)에 출석하고 있다. 경찰은 이 여성이 지난달 말 또 다른 남성에게도 동일한 수법으로 범행을 저지른 것으로 보고 숨진 이들의 부검을 진행 중이다. 2026.2.12/뉴스1
지능 범죄 수사에서도 AI 사용 내역 확인은 사실상 당연한 절차가 됐다. 지난해 6월에는 한 기업 임원이 새 회사를 차리기 전 업무상 비밀을 유출한 사실을 챗GPT 대화 기록으로 밝혀냈다. 이민형 법무법인 율촌 전문위원은 “최근 수사 현장에서는 휴대전화 포렌식 과정에서 AI 사용 내역을 확인하는 것이 사실상 관행이 됐다”며 “겉으로 드러난 행위뿐 아니라 그 이면의 의도를 추정하는 데 중요한 자료가 된다”고 말했다.

챗봇과의 대화는 고인의 심리를 부검하는 데 기여하기도 한다. 지난해 9월 서울에서 변사한 채 발견된 한 망자의 사건에서도 경찰은 AI 사용 기록 등을 분석해 우울증 정황을 확인했다.

해외에서도 유사한 사례가 이어지고 있다. 지난해 미국 노스캐롤라이나주에서는 한 여성이 챗GPT를 이용해 독극물과 약물 조합을 검색한 뒤 남편의 음료에 약물을 넣으려 한 혐의로 기소됐고, 캘리포니아 팰리세이즈 대형 산불 사건에서도 용의자가 범행 전후 챗GPT에 불길과 관련한 이미지를 생성해 달라고 요청하고 법적 책임을 묻는 질문을 남긴 정황이 수사자료에 포함됐다. AI와의 대화 기록이 범행 준비 과정이나 범행 뒤 인식을 보여주는 새로운 디지털 흔적으로 자리 잡고 있다는 뜻이다.

● “삭제해도 소용없다”… 수 년 전 범의(犯意)도 증명

범죄자들은 흔적을 지우기 위해 AI챗봇과의 대화창을 닫거나 앱을 삭제하지만, 디지털 세계에 ‘완전한 삭제’는 없다. 영상, 이미지와 달리 텍스트 데이터는 손상되더라도 복구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지난해 공개된 해외 논문 ‘챗GPT 윈도우 앱에 대한 디지털 포렌식 분석’에 따르면, 챗GPT 앱을 분석한 결과 사용자가 대화 기록이나 앱을 삭제했더라도 컴퓨터 내 메모리, 디스크, 각종 로그 기록 등에서 흔적을 확보할 수 있는 것으로 분석됐다.

지난해 한 국내 연구진도 제미나이와 코파일럿, 클로드 등 주요 AI 챗봇을 비교 분석한 뒤, 각각의 서비스마다 복구 가능한 자료의 종류에는 일부 차이가 있으나 모바일과 데스크톱 앱 모두 전반적으로 포렌식 복구가 가능하다고 결론냈다. 디지털 포렌식 업체인 플레이비트의 이준형 센터장은 “AI 대화 내역 같은 텍스트 데이터는 영상, 이미지에 비해 복구율이 높다. 수년 전 기록도 복구될 가능성이 크다”고 했다.

● 경찰, AI 포렌식 역량 강화 착수
이에 따라 경찰도 최근 AI 포렌식 역량 강화에 나섰다. 경찰청은 최근 ‘로컬환경 AI 모델 대상 포렌식 기술개발 사업’ 신규 과제를 공고하고, 스마트폰 등 포렌식을 통해 법적 증거로 활용할 수 있는 AI 데이터를 확보하는 기술 개발에 착수했다. 단순히 범죄자가 AI와 주고받은 기록을 추출하는 데 그치지 않고, AI를 조작하거나 악용한 새로운 유형의 범죄에 대응할 수사 역량까지 높이겠다는 취지다.

최성진 법무법인 세종 디지털포렌식센터장은 “앞으로는 삭제된 자료 복구를 넘어, 삭제 행위 자체를 입증할 수 있는 정황과 메타데이터 분석 역량이 더 중요해질 것”이라고 말했다.

권양섭 국립군산대 법학과 교수는 “네이버·구글 검색어가 증거로 활용돼 온 것처럼 AI 대화 기록도 유사하게 해석될 여지가 크다”며 “휴대전화 사용 정황 등과 결합될 경우 증거 능력은 더욱 강화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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