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어서 바다의 신이 된 장군과 여성들[김창일의 갯마을 탐구]〈142〉

  • 동아일보


김창일 국립민속박물관 학예연구사
김창일 국립민속박물관 학예연구사
신화는 일상적인 언어와는 다르다. 상징적인 언어에 둘러싸여 있어 허황되고 불합리한 이야기처럼 보이지만, 신화를 공유한 집단의 사상과 세계관을 담고 있다. 인류 기원 신화에는 타계관, 건국 신화는 지배 논리, 무속 신화는 현세 기복적 성격이 강하게 나타나 있다. 마을 공동체를 중심으로 전해지는 당(堂)신화에는 자연과 인간의 상관성이 드러난다. 신화의 본질은 신성성과 신화적 진실성에 있다. 신화는 신앙을 바탕으로 전승되는 이야기이다. 신화의 신성성은 보편적인 신성성이 아니라 이를 믿고 향유하는 집단에 한정된다. 그래서 마을 단위에서 믿어지는 당신화는 해당 마을에서는 신성하고 진실된 이야기이지만, 옆 마을에서는 그저 전설류의 재밌는 이야기일 뿐이다.

우리 어촌에는 풍어와 해상 안전을 기원하는 제당이 곳곳에 남아있다. 인천 옹진군 연평도의 충민사에는 임경업 장군을 조기잡이 신으로 모시게 된 내력이 담긴 신화가 전승되고 있다. 제주도의 부속 섬 추자도 사당에는 최영 장군이 그물로 물고기 잡는 법을 알려줬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둘 다 실존한 인물을 신격화했고, 당신화를 토대로 장군의 은덕을 기리며 풍어를 기원한다. 물론 조기를 잡는 법과 그물로 물고기 잡는 법을 알려줬다는 두 이야기는 역사적인 사실이 아니다.

강원 삼척시 신남마을과 제주도의 마라도에는 죽어서 신이 된 여성에 관한 당신화가 전해진다. 신남마을 해신당에 얽힌 이야기는 다음과 같다. 애랑과 덕배는 사랑하는 사이였다. 어느 날 덕배는 미역이 많은 바위섬에 애랑을 내려주고 마을로 돌아왔는데, 돌풍이 불어 애랑이 파도에 휩쓸려 죽었다. 이후로 고기가 잡히지 않았고, 바다로 나간 청년들이 줄줄이 사고를 당했다. 어느 날 한 어부가 바다를 향해 욕을 하면서 소변을 봤다. 다음 날 다른 배들은 빈 배로 돌아왔으나 소변을 본 어부는 만선이었다. 그 후로 남자들은 바다를 향해 오줌을 누고 조업을 나갔고, 모두 만선으로 돌아왔다. 애랑의 원한이 불러온 재앙임을 확신한 주민들은 애랑을 모신 당을 짓고, 남근을 깎아 바치며 제를 지냈다. 바다(물)는 생명을 탄생시키는 모태이기에 여성을 상징한다. 남근목을 바치는 행위는 여성신으로 상징되는 바다에 씨앗을 뿌리는 일종의 주술 행위라 할 수 있다. 풍어에 대한 간절함이 담긴 당신화라 하겠다.

마라도의 당에는 애기업개 이야기가 전해진다. 제주도 모슬포에 사는 이씨 여인이 버려진 여자아이를 발견해 딸처럼 키웠다. 여인에게 친자식이 생기자, 양딸은 친자의 아이를 업어서 키우는 애기업개가 되었다. 이씨 부부는 테우(뗏목)에 해녀들을 태우고 사람이 살지 않아서 해산물이 풍부한 마라도로 물질을 갔다. 해산물을 채취한 후 마라도를 떠나려 하자 바람이 거세졌다. 몇 날 며칠 섬을 벗어날 수 없게 됐고, 식량과 물이 바닥났다. 섬을 떠나기로 한 날 한 해녀가 꿈 이야기를 했다. 애기업개를 두고 가지 않으면 모두 물에 빠져 죽는다고 했다. 일행은 애기업개를 남겨두고 섬을 빠져나왔다. 3년 후 사람들이 마라도에 들어갔더니 애기업개는 백골이 되어 있었다. 훗날 마라도에 사람이 살기 시작했을 때 한 노인의 꿈에 애기업개가 나타났다. 섬사람들은 애기업개가 죽은 자리에 당을 만들고 제사를 지냈다. 억울하게 죽은 아이는 섬의 수호신이 됐다. 신화의 세계는 역설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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