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정책에 절박함이 없다”

  • 동아일보
  • 입력 2010년 2월 20일 03시 00분


이명박 대통령이 그제 청와대에서 국가고용전략회의를 주재하며 “정부가 만드는 자료를 보면 절박함이 느껴지지 않는다”고 질책했다. 이 대통령은 “너무 구태의연하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며 “한 번도 일자리 걱정을 안 해본 엘리트들이 만드는 것이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한다”고 말했다. 고용 사정이 나빠지는데도 약효 없는 보고서나 내놓는 관료들에게 신발 끈 단단히 매고 제대로 일하라고 주문한 것으로 풀이된다.

이 대통령이 공무원들의 분발을 촉구한 것은 한두 번이 아니었다. 취임 직후 기획재정부의 첫 업무보고를 받을 때도 “신분이 보장돼 있어 위기 때나 위기가 아닐 때나 같은 자세”라며 “종업원 월급을 어떻게 줘야 하나 걱정하는 심정으로 일해야 한다”고 독려했다. 대통령이 2년 전 했던 말을 지금도 반복해야 하는 것이 정부의 실상이라면 국민은 답답하다.

노동부는 그제 회의에서 정년이 보장되고 각종 처우도 공무원에 준하는 단시간 상용직업 상담원 90명을 24일까지 채용하겠다고 보고했다. 신영철 노동부 고용정책실장은 “전일제 근로자 2명이 하던 업무를 단시간 근로자 3명이 나눠 하는 방식”이라고 했으나 일자리 나누기 정책은 재작년 글로벌 경제위기 직후 나왔던 것이다. 노동부는 예산으로 일자리 몇 개 더 만들었다고 생색내기보다는 민간에서 고용이 늘어날 수 있도록 촉진하는 노동정책과 액션플랜을 내놓아야 한다.

삼성전자는 어제 수원공장의 연구시설을 더 늘려 1만 명의 연구원을 추가로 뽑겠다고 밝혔다. 이 많은 연구원에게 월급을 주려면 최소한 연간 1조 원 이상의 인건비가 든다. 파주의 LG디스플레이 LCD단지와 아산 탕정의 삼성전자 LCD단지도 시장에서 살아남으려는 기업들의 고뇌 끝에 나온 결과물이다. 지난날 정부가 기업들의 이런 노력을 규제로 발목잡고 계획을 지연 축소시키지 않았더라면 일자리를 비롯한 투자 효과는 더 일찍, 더 크게 나타났을 것이다. 이 정부의 공무원들도 기업을 찾아서 돕기보다 규제권력을 행사하기에 바쁜 ‘군림과 간섭의 체질’에서 벗어났다고 말할 수 있나.

1970년대 개발경제 시절 고도성장을 이끈 김학렬 경제부총리는 물가 담당국장에게 “무 한 개 값이 얼마냐”고 물어보고 대답을 못하면 시장에 가보라고 호통을 쳤다. 공무원들은 요즘 건설 현장 일용근로자들의 하루 일당이 얼마인지 알고 있는가. 과거에 비해 훨씬 복잡해진 경제 현장을 가보지도 않고 예전에 썼던 정책을 다시 꺼내 숫자나 표현 몇 개 바꿔 내놓는 자세로는 고용난국을 풀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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