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신의진]아이가 뿔났다

  • Array
  • 입력 2010년 2월 13일 03시 00분


코멘트
겨울방학 동안 대한민국 중산층 가정의 자녀는 무엇을 하고 지낼까? 학원에서 저녁 늦게까지 공부하고 숙제하다 조금 틈이 나면 게임하고…. 거리에서 마주치는 아이들의 얼굴에서 순진한 웃음을 발견하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지금과 같이 어려서부터 고난도의 지식을 외우는 경쟁만 시키는 교육 여건에서 과연 어떤 아이가 자라는지 마음속을 살필 필요가 있다.

자녀의 성적에 항상 노심초사하는 부모들은 아이가 어릴 때부터 가만 두지를 못한다. 제대로 걷기도 전에 영어 학습을 비롯하여 운동과 음악 등의 개인지도를 시작한다. 자녀가 한 명인 집에서는 정도가 더 심하다. 아이가 어려서부터 스스로 탐구하지 않은, 이미 만들어진 외부 학습 자극을 강제적으로 접하게 되었을 때 어떤 마음일까?

우선 세상을 알아가는 재미를 잃어버리니 삶의 즐거움이 감소하고, 재미없는데 자꾸 시키는 엄마와 사이가 멀어지고, 나는 왜 이렇게 모르는 것이 많은가 걱정하느라 자신감이 떨어질 것이다. 어려서부터 자신의 흥미를 죽이고 안간힘을 다해 세상에 적응하다 보니 아이 마음에 뾰족한 뿔이 돋아 자신과 세상을 향해 찌를 만반의 준비가 되어 있다. 학교에 만연된 집단따돌림과 학교폭력이 그 방증이다.

어려서부터 자신의 흥미를 꽃피우고 자신을 있는 그대로 수용 받으며 자라지 못한 아이는 타인을 이해하고 배려하는 능력이 결여되기 마련이다. 그래서 집단따돌림을 주도하는 아이를 보면 가장 큰 특징이 나와 다르면 무조건 배척하고 분노를 느낀다는 것이다. 어려서부터 이해받지 못한 서러움이 마음의 뿔을 만들고 그 뿔로 다른 친구를 찌르고 자신도 찔리고 그런 식이다. 이런 아이가 청소년기에 접어들면 부모나 교사에게도 그 뿔을 마구 들이댈 수 있다. 이렇게 일방적인 대인관계와 자신의 눈으로만 세상을 보는 미성숙함을 가진 아이가 증가하는 이유는 그들을 기른 부모와 사회의 잘못된 시각 때문이다. 아이의 호기심과 사랑받고 수용 받고 싶은 본능을 경쟁에서 앞서기 위해 어려서부터 억압한 결과이다.

마음의 뿔로 인해 다른 아이와 자주 다투는 아이를 심리 치료해 보면 분노 이면에 무조건 사랑받고 이해받고 싶어 하는 유아적 욕구가 강하게 드러난다. 치료 초기에는 주로 심한 경쟁이나 공격적인 놀이를 선호하다가 중기에 접어들면 나이에 맞지 않게 아기놀이나 가족이 서로 돌보는 놀이가 주를 이룬다. 이때쯤이면 아이의 공격적 행동이 많이 줄고 부모에게 반항하는 행동이 줄어든다. 대신 엄마에게 무조건 매달리거나 달라붙는 행동 때문에 부모가 놀라게 된다. 아이의 마음속에 이렇게 많은 애정 욕구가 숨어 있었는지를 부모도 미처 알아채지 못했던 것이다.

대부분의 부모는 아이를 위해 많이 노력하고 사랑을 베풀었다고 생각하기에 아이에게 왜 애정결핍 증상이 있는지 초기에는 이해를 하지 못한다. 하지만 치료 과정에서 부모는 아이가 원하는 방법으로 사랑을 표현하는 일이 중요함을 깨닫고, 자신의 방법이 아이를 더 뿔나게 했다는 사실을 후회하게 된다. 다행히 초등학교 때의 치료나 부모의 깨달음으로 아이의 뿔이 다듬어진다면 전화위복이 된다.

대한민국의 부모와 교사, 정부 당국 모두 우리 아이 마음속의 뿔을 이해하고 다듬어 주는 여유와 혜안을 이제라도 적극적으로 찾아야 한다. 뿔난 아이를 치유하는 최선의 길은 각각 다른 개성을 가진 아이를 있는 그대로 수용해주고, 다양성을 바탕으로 공정하게 경쟁하도록 문화와 제도를 만드는 것이다. 이해받지 못한 채로 자란 아이는 절대로 다른 사람을 수용하고 타협하는 성인으로 자랄 수 없다는 진실을 마음에 새겨야 한다.

신의진 연세대 의대교수 정신과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