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약원료 질산암모늄 쌓인 창고 ‘펑’… 사고 추정되지만 테러설도

  • 동아일보
  • 입력 2020년 8월 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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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바논 대형 폭발… 100명이상 사망

핵폭탄 터진듯… 베이루트 항구 초토화 4일(현지 시간) 중동 레바논 수도 베이루트의 항구에서 섬광이 
번쩍이면서 거센 불길과 함께 버섯구름이 피어오르고 있다(왼쪽 사진). 두 차례 폭발 직후 항구는 초토화됐고 반경 10km 내 
건물들은 무너져 내리거나 유리창이 깨지는 피해를 입었다. 하산 디압 레바논 총리는 4일을 ‘애도의 날’로 선포했다. 사진 출처 
Santosh 트위터·베이루트=AP 뉴시스
핵폭탄 터진듯… 베이루트 항구 초토화 4일(현지 시간) 중동 레바논 수도 베이루트의 항구에서 섬광이 번쩍이면서 거센 불길과 함께 버섯구름이 피어오르고 있다(왼쪽 사진). 두 차례 폭발 직후 항구는 초토화됐고 반경 10km 내 건물들은 무너져 내리거나 유리창이 깨지는 피해를 입었다. 하산 디압 레바논 총리는 4일을 ‘애도의 날’로 선포했다. 사진 출처 Santosh 트위터·베이루트=AP 뉴시스
“(원자폭탄이 떨어졌던) 히로시마와 비슷한 모습이다.”

자말 이타니 베이루트 시장은 4일(현지 시간) 발생한 참혹한 폭발 현장의 상황을 원자폭탄 피해에 비유했다. 폭발에 따른 열과 진동으로 반경 10km에 이르는 넓은 범위에 걸쳐 피해가 퍼졌다. 마완 아부드 베이루트 주지사는 “이번 참사로 25만∼30만 명이 집을 잃은 것으로 생각된다”면서 “피해액은 최대 50억 달러(약 6조 원)에 이를 것”이라고 말했다.

CNN 등 외신은 사고 발생 후 앰뷸런스 사이렌 소리와 비명, 울음소리가 끊이지 않았다고 전했다. 소셜미디어에는 “아포칼립스(세상의 종말) 같았다” “사방이 피투성이” 등의 글이 올라왔다. 폭발 당시 순간적으로 통신이 끊어지면서 가족들의 안부를 확인하지 못한 시민들이 혼란을 겪기도 했다.


하산 디압 레바논 총리는 “대재앙이 레바논을 강타했다”며 베이루트에 2주간의 비상사태를 선포했다. 레바논 정부와 적신월사(적십자) 등은 이번 폭발로 5일 오전까지 100명 이상이 숨진 것으로 추산했다. 그러나 피해 범위가 넓고 부상자가 4000여 명에 달해 사망자 규모가 더 늘어날 가능성이 있다. 베이루트의 대형 병원인 세인트조지병원도 심하게 파손돼 부상자 치료가 늦어지고 있다.

세계 각국은 애도의 뜻과 함께 복구 지원 의사를 밝혔다. 문재인 대통령도 “많은 사상자가 발생했다는 소식에 안타까움을 금할 수 없다”고 밝혔다.

폭발의 원인이 규명되지 않은 가운데 레바논 당국은 폭발 지점에 질산암모늄이 대량으로 보관돼 있었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레바논 최대 일간지인 알 줌후리야는 폭발이 일어난 해당 창고 벽에 틈이 있었고, 출입문도 고장 나는 등 전반적으로 관리가 소홀했다는 내용의 정부 보고서를 입수했다고 보도했다.

질산암모늄은 주로 비료의 재료로 쓰이지만 불이 붙으면 쉽게 폭발해 폭약의 원료로 쓰이는 물질이다. 1995년 미국 오클라호마 연방정부 건물 폭파 사건에서 폭발물로 쓰였고, 2004년 북한 용천역 폭발 사고 등을 일으킨 물질로 잘 알려져 있다. 이날 해당 창고에 있었던 2750t의 질산암모늄이 모두 터졌다면 TNT 1155t의 폭발력을 갖는다.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이 이날 백악관 브리핑에서 “이것(폭발 사건)은 끔찍한 공격으로 보인다”고 말하면서 테러 가능성이 제기됐다. 그는 판단 근거를 묻는 질문에 “내가 만난 훌륭한 장군들이 그렇게 느끼고 있는 것 같았다”고 답변했다.

일각에서는 질산암모늄이 각종 폭발형 무기의 재료로 쓰인다는 점을 감안할 때 해당 창고가 레바논의 친이란 시아파 무장정파 헤즈볼라와 관련이 있고, 이에 이스라엘이 개입했을 수 있다고 의심한다. 한 전직 미 중앙정보국(CIA) 요원은 CNN에 “(폭발 영상에서) 오렌지색 화염은 분명히 군사용 폭발물이 폭발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헤즈볼라와 이스라엘은 대표적인 중동 앙숙이다. 헤즈볼라와 이스라엘은 2006년 34일간 전쟁을 벌인 전력이 있다. 현지 중동 전문가는 “이스라엘이 배후라면 (헤즈볼라의 보복 등) 후폭풍이 거셀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헤즈볼라가 이번 폭발 사건의 배후가 아니냐는 시각도 있다. 2005년 라피크 하리리 전 레바논 총리 암살 사건에 개입된 헤즈볼라 구성원에 대한 유엔 특별재판소의 판결을 사흘 앞둔 시점에 이번 사건이 발생했다는 점 등을 근거로 든다.

하지만 이스라엘과 헤즈볼라 모두 이번 사건과의 연관성을 부인했다. CNN방송은 미 국방부 당국자들을 인용해 “폭발을 공격으로 볼 근거가 없다”고 보도했다.

카이로=임현석 특파원 lhs@donga.com / 신아형·박효목 기자
#레바논#베이루트 대형폭발 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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