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스쿠니合祀 조병근씨 유족 “한맺힌 이름을 神社서 지우라”

  • 입력 2005년 10월 20일 03시 08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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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스쿠니신사 측이 주일 한국대사관에 알려온 합사 취소 공문.
야스쿠니신사 측이 주일 한국대사관에 알려온 합사 취소 공문.
일본 야스쿠니(靖國)신사에 합사(合祀)된 한국인 군인 군속 2만여 명 가운데 외교 경로를 통해 처음으로 한 명의 이름이 삭제됐다. 합사된 지 46년 만이다.

19일 주일 한국대사관 등에 따르면 신사 측은 지난달 13일 대사관에 공문을 보내 태평양전쟁 때 징용돼 전사한 것으로 처리된 뒤 합사해 온 조병근(趙炳根·2003년 83세로 별세) 씨의 유족에게 사과의 뜻과 함께 합사자 명부에서 삭제했다는 통고를 전했다.

고인이 된 조 씨는 1943년 7월 해군 군속으로 남태평양 파푸아뉴기니 섬에 동원됐다가 1944년 1월 연합군 상륙 당시 전사 처리됐다. 그러나 실제로는 호주 포로수용소에 갇혀 있다가 1946년 귀국했다.

신사 측은 공문에서 “그동안 합사해 온 ‘西山炳根(일본식 이름)’이 2003년 12월까지 생존한 것으로 확인돼 제신부(祭神簿·제사자 명단)를 정정했다”면서 “그동안 유족에게 마음의 고통을 준 데 대해 깊은 사과를 드린다”고 밝혔다.

조병근 씨의 장남인 영주(永注·47·구로초등학교 교사) 씨는 “동생이 2002년 1월 한국 정부기록보존소에서 우연히 찾아낸 ‘구 해군 군속 신상조사표’를 통해 합사 사실을 알았다”면서 “정부기록보존소에 야스쿠니신사에 합사된 남북한 출신 한국인 2만여 명의 명단 대부분이 보관돼 있으므로 정부가 지금이라도 유족들을 찾아내 이를 알려줘야 한다”고 말했다.

1959년 10월 야스쿠니신사의 가을철 대제 때 다른 한국인 군인 군속 희생자와 함께 합사된 조병근 씨는 2003년 작고할 때까지 44년간 해마다 엉터리 ‘제사상’을 받아 온 셈이다.

주일 한국대사관 관계자는 “북관대첩비 반환 등 최근 야스쿠니신사 측 태도에 약간의 긍정적 변화가 감지된다”며 “주일 대사관은 이번 경우처럼 생존자가 잘못 합사된 경우는 물론이고 한국인 전원의 합사가 취소되도록 최대한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야스쿠니신사 측은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생존자를 잘못 합사해 놓은 경우에도 “전몰자의 혼을 모시는 신사이니 혹 실수로 제사자 명부에 들어 있어도 혼이 오지 않으므로 고칠 필요가 없다”는 억지를 부리며 명단 삭제 요청을 거부해 왔다.

도쿄=조헌주 특파원 hansch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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