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태그플레이션 오나…성장률 낮고 물가는 껑충

  • 입력 2001년 4월 30일 19시 01분


가계 살림살이에 한층 주름살이 지고 있다. 움츠러든 경기가 제대로 살아날 조짐이 보이지 않아 ‘지갑’은 가벼워지는데 물가는 하루가 다르게 치솟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서민들 사이엔 “장보기가 무섭다”는 말이 나올 만하다.

국민경제 측면에서 살펴봐도 마음이 무겁기는 마찬가지. 앞으로 원화환율과 공공요금 등이 어떻게 되느냐가 변수이긴 하지만 정부의 올해 소비자물가 상승률 억제목표치(3%대)를 지키기는 사실상 어렵다는 분석이다. 현재 상황에서만 보면 스태그플레이션(경기침체 속의 물가상승) 조짐은 더욱 뚜렷해졌다.

▽심상찮은 물가상승〓4월 물가가 작년 같은 달보다 5.3%나 올라 전년 동기대비 기준으로 29개월 만에 최고치를 나타낸 점이 눈길을 끈다. 올 들어 같은 기준으로 본 월별 물가상승률은 1∼3월에 계속해 4%대를 보이다가 마침내 5%를 넘어서면서 1∼4월중 평균 4.6%나 올랐다. 작년 말과 비교하면 불과 4개월 사이에 2.5%나 오른 점도 심상치 않다.

일상생활과 직결되는 농축수산물 등 ‘생활물가’ 상승률이 소비자물가 상승률보다 높아 피부로 느끼는 물가불안은 더 컸다. 4월 물가를 예상보다 큰 폭으로 끌어올린 ‘주범’은 농축수산물이었지만 할인판매기간이 끝난 남녀 구두 등 공업제품도 비교적 큰 폭으로 올랐다.

▽앞으로 안심할 수 있을까〓전년 동기대비 상승률면에서 보면 일단 다음달까지는 물가의 ‘고공 비행’이 불가피하다. 작년 5월 물가가 낮아 올 5월의 경우 4월보다 물가가 전혀 안 올라도 전년 동기대비로는 5.4%나 상승한다.

정부는 원화환율만 급등하지 않는다면 6월부터는 안정국면에 들어갈 것으로 전망한다. 오갑원(吳甲元) 재정경제부 국민생활국장은 “작년에는 하반기 물가상승률이 높았기 때문에 올해는 상대적으로 낮아지는 데다 올 1∼4월중 물가를 끌어올렸던 농축수산물과 교육비 등도 안정세를 보일 것”으로 내다봤다. 재경부측은 ‘원화환율이 달러당 1300원대보다 낮을 경우’라는 전제를 달면서도 “아직 연간 소비자물가 억제치 3%대를 지킬 가능성은 남아 있다”고 애써 강조한다.

그러나 정부의 이런 ‘실낱같은 기대’가 현실로 나타날 가능성은 거의 없다고 경제전문가들은 분석한다. 원화환율이 달러당 1300원 이하로 떨어질 가능성이 적은 데다 2분기(4∼6월)에는 예산 조기집행방침에 따라 본격적으로 돈이 시중에 풀려나간다.

또 상반기에 물가급등 우려로 미뤄놓았던 택시요금 등 공공요금 인상도 줄줄이 기다리고 있다. 만약 정부가 하반기에 추가 경기부양책을 내놓으면 물가에 주는 부담은 더 커진다. 한국개발연구원(KDI) 등 주요 경제연구소들은 올해 물가상승률이 4%를 넘을 것으로 내다보고 있으며 원화환율이 더 뛰면 5%대까지 갈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저성장―고물가 우려〓국내외 연구기관들이 올해 한국경제 성장률 전망치를 잇따라 낮추는 속에서 물가에도 비상이 걸리면서 스태그플레이션 조짐은 한결 뚜렷해지고 있다. 특히 국제통화기금(IMF)은 우리 경제가 올해 3.5%밖에 성장하지 못한다는 비관적인 전망까지 최근 내놓았다.

우리 경제의 잠재성장률(5∼6%대)을 감안하면 ‘4%대 초반 이하의 성장률’과 ‘4%대의 물가상승률’이 겹치면 스태그플레이션으로 봐도 무리가 없다는 지적. 다만 미국의 1분기(1∼3월) 경제성장률이 당초 예상보다 높은 2.0%(작년 동기대비)로 나타나면서 ‘해외변수’에 대한 불안감이 다소 줄어들고 한국경제의 ‘성장엔진’이 다시 돌아갈 수도 있는 계기가 마련된 것은 일단 ‘청신호’로 꼽힌다.

<권순활기자>shkwo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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