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기예보 괴물서 금두꺼비까지… 民心이 만든 조선의 색다른 풍경

  • 동아일보
  • 입력 2021년 2월 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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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괴물 탐구서 낸 곽재식 작가
왕조실록 열하일기 등 사료 바탕, 스무 괴물 이야기 모아 펴내
가뭄과 홍수 불러오는 괴수 ‘강철’ 임진왜란 직후 사료에 자주 등장
사회적 배경이 괴물 설화 만들어

판타지 로맨스 드라마 ‘푸른 바다의 전설’은 조선 중기에 유몽인이 편찬한 설화집 어우야담에 나오는 인어 이야기를 모티브로 만들었다. 작은 사진은 거대한 개를 닮은 ‘수괴’, 음침한 주술을 부리는 ‘도깨비’, 얼굴이 아름다운 ‘인어’(왼쪽부터) 등으로 조선의 괴물은 현대에도 매력적으로 재해석되고 있다. SBS·위즈덤하우스 제공
판타지 로맨스 드라마 ‘푸른 바다의 전설’은 조선 중기에 유몽인이 편찬한 설화집 어우야담에 나오는 인어 이야기를 모티브로 만들었다. 작은 사진은 거대한 개를 닮은 ‘수괴’, 음침한 주술을 부리는 ‘도깨비’, 얼굴이 아름다운 ‘인어’(왼쪽부터) 등으로 조선의 괴물은 현대에도 매력적으로 재해석되고 있다. SBS·위즈덤하우스 제공

1527년 6월 16일 밤. 조선 한양 경복궁을 지키는 한 군인이 악몽을 꾸다 가위에 눌렸다. 동료 군인들이 일어나 가위에 눌린 군인을 간호하려 했다. 그때, 갑자기 어딘가에서 무엇인가 튀어나오는 듯한 소리가 들렸다. 소리가 난 쪽엔 커다란 개처럼 생긴 짐승이 있었다. 짐승은 곧 달아났지만 궁엔 두려움이 퍼졌다. 중종의 어머니 정현왕후는 공포를 이기지 못하고 창덕궁으로 거처를 옮겼다. 조선왕조실록에 실린 괴물 ‘수괴’ 이야기다.

조선시대 괴물 탐구서 ‘괴물, 조선의 또 다른 풍경’(위즈덤하우스)을 지난달 펴낸 곽재식 작가(39·사진)는 수괴에 대한 백성들의 상상은 당시 혼란스러운 조선의 정세 때문이라고 분석한다. 궁에서 수많은 동물을 키우고 무오사화와 갑자사화로 피바람을 일으킨 연산군에 대한 반발과 두려움으로 민심이 만들어낸 이야기라는 것. 그는 1일 동아일보와의 전화 인터뷰에서 “먼 외국이 아니라 경복궁처럼 우리에게 가까운 곳에서 벌어진 일이라 조선 괴물 이야기는 지금 읽어도 매력적이다”고 했다.

그는 2년 6개월 만에 KAIST 학부과정을 조기 졸업했다. 공학 박사로 현재 화학기업에서 연구원으로 일하며 소설을 쓴다. 소설의 소재를 찾던 중인 2007년 한국 괴물의 매력에 빠져들었다. 개인 블로그에 한국의 옛 기록 속 괴물 이야기를 수집했다. 조선왕조실록, 열하일기 등 사료를 기반으로 괴물 이야기를 모았다. 스무 괴물의 모습을 통해 조선 사람들의 삶을 상상하기 시작했다.

그는 조선 괴물의 등장을 당시 백성의 삶에서 찾는다. 일기예보를 하는 괴물 ‘삼두일두귀’가 나타난 건 농업 국가인 조선의 상황 때문이다. 바다를 붉게 물들여 물고기를 죽이는 ‘천구성’은 어부들의 관심사와 관련이 크다. 정치 사회적 상황도 괴물 이야기의 유행에 영향을 끼쳤다. 가뭄과 홍수를 불러오는 괴물 ‘강철’이 사료에 자주 등장한 건 임진왜란 직후다. 전쟁이라는 파괴적 상황에 부닥친 백성의 허무함 때문에 아무리 공들인 일이라도 큰 재앙이 닥치면 별수 없다는 뜻의 속담 ‘강철이 지나간 곳은 가을도 봄과 같다’가 등장했다. 가을에 거둬들일 곡식이 없어 배를 곯아야 하는 봄처럼 지내야 한다는 의미다.

해외에서 넘어온 괴물도 있다. 사람 1만 명을 잡아먹는다는 괴물 ‘만인사’는 여진족에서 유명했던 이야기였지만 세종 시대 북방 개척과 함께 조선에 흘러 들어왔다. 부의 상징으로 여겨지는 금두꺼비는 고대 중국 설화가 원조다. 그는 “괴물이 등장한 이유는 시대 상황과 별개로 놓고 볼 수 없다”며 “꼭 혼란한 상황뿐만 아니라 삶이 여유 있을 때도 백성들은 괴물 이야기를 만들어 냈다”고 했다.

조선 괴물은 영화 드라마의 소재로 활용되며 현대에도 여전히 매력을 뿜어낸다. 괴물 ‘수괴’의 등장으로 혼란에 빠진 조선의 이야기를 담은 영화 ‘물괴’(2018년), 사람과 물고기 사이에 있는 괴물 ‘인어’의 설화를 담은 드라마 ‘푸른 바다의 전설’(2016년)이 대표적이다. 곽 씨는 용과 사람 사이에서 태어났다는 괴물 ‘용손’을 2019년 펴낸 소설 ‘이상한 용손 이야기’(창비)의 모티프로 삼기도 했다. 그는 “소설을 쓰는 작가로서 과거의 이야기를 현대 문화 콘텐츠에 어떻게 활용할까 궁리를 많이 한다”며 “창작자들이 조선 괴물로 우리에게 친숙하고 흥미로운 작품을 활발하게 만들면 좋겠다”고 했다.

이호재 기자 hoho@donga.com
#곽재식#괴물탐구서#푸른 바다의 전설#두꺼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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