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립-예술영화 품는 온라인동영상서비스 ‘OTT’

  • 동아일보
  • 입력 2021년 1월 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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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양성 강화 위해 콘텐츠 확보”
극장 ‘개봉한파’로 꽁꽁 언 작품들, 왓챠-넷플릭스 통해 온라인 공개
시장 잠식 비판 잠재우기 해석도

넷플릭스 영화 ‘마 레이니, 그녀가 블루스’는 개봉 직후 미국 시카고 비평가협회상과 로스앤젤레스 비평가협회상을 수상하며 작품성을 인정받았다. 넷플릭스 제공
넷플릭스 영화 ‘마 레이니, 그녀가 블루스’는 개봉 직후 미국 시카고 비평가협회상과 로스앤젤레스 비평가협회상을 수상하며 작품성을 인정받았다. 넷플릭스 제공
새해 첫날 두 배우가 관객 앞에 섰다. 야구 천재 여고생이 프로구단에 입단하기 위해 노력하는 이야기를 다룬 영화 ‘야구소녀’에 출연한 이주영과 이준혁. 둘은 이 영화에 출연하게 된 계기를 말하고, 가장 마음에 드는 장면을 꼽았다. “많이 기대해주시면 좋겠다”며 관람을 독려하는 모습은 전형적인 영화 시사회와 다를 바 없었다.

그러나 두 배우는 화면 안에 있었다.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 왓챠가 지난해 12월 31일 야구소녀를 비롯한 독립·예술영화 39편을 모은 기획전 ‘왓챠 X KAFA 필름즈’를 연 것을 기념해 온라인으로나마 홍보 영상을 올린 것이다. 왓챠 관계자는 “코로나19로 극장 개봉이 어려워진 독립·예술영화를 살리기 위한 방법”이라며 “올해도 한국의 독립·예술영화로 다양한 온라인 영화제를 열 계획”이라고 했다.

OTT가 독립·예술영화를 품고 있다. 블록버스터 영화에 비해 인력과 예산이 적은 독립·예술영화는 촬영 후 곧바로 개봉해 제작비를 회수하는 것이 중요하다. 하지만 코로나19로 인해 극장 개봉이 미뤄지거나, 극장 개봉을 한다 해도 관객을 모으지 못하고 있다. 작은 예술영화관도 경영난을 버티지 못하고 폐업하고 있다. 활로를 찾지 못한 독립·예술영화가 OTT를 통해 관객에게 다가가려 하는 것이다. 한 영화계 관계자는 “위기에 처한 독립·예술영화가 그나마 향할 곳은 OTT”라며 “빠른 제작비 환수를 위해 극장 개봉을 뛰어넘고 OTT로 직행하기도 한다”고 했다.

넷플릭스는 예술성이 높은 오리지널 콘텐츠에 투자하고 있다. 1968년 미국에서 벌어진 반전 시위가 배경인 영화 ‘트라이얼 오브 더 시카고 7’은 원래 극장 개봉될 계획이었으나 코로나19가 악화되자 지난해 10월 넷플릭스를 통해 공개됐다. 1세대 블루스 여가수 마 레이니를 중심으로 흑인들의 삶을 다룬 영화 ‘마 레이니, 그녀가 블루스’는 지난해 12월 넷플릭스 공개 직후 호평을 받았다. 두 영화 모두 높은 작품성으로 평론가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영화 ‘야구소녀’에 출연한 배우 이준혁(왼쪽)과 이주영은 1일 왓챠가 공개한 영상에서 “시나리오를 읽고 확 끌렸다”고 밝혔다. 왓챠 제공
영화 ‘야구소녀’에 출연한 배우 이준혁(왼쪽)과 이주영은 1일 왓챠가 공개한 영상에서 “시나리오를 읽고 확 끌렸다”고 밝혔다. 왓챠 제공
이처럼 OTT가 독립·예술영화를 강화하는 건 다양성을 강조하기 위한 것이다. OTT는 알고리즘 시스템을 바탕으로 각 시청자가 선호하는 콘텐츠를 개별적으로 추천한다. 다양한 시청자들을 끌어모으기 위해선 거대 자본이 투자된 대작뿐 아니라 여러 콘텐츠가 필요한 것이다. OTT 관계자는 “블록버스터가 독차지한 영화계의 편향성에 지친 관객들이 OTT로 향한 것도 다양성 때문”이라고 했다.

OTT가 막대한 자본력으로 영화 시장을 잠식한다는 비판에 맞서기 위한 명분 확보용이라는 해석도 있다. 자본으로 극장 시장을 잠식한 멀티플렉스 영화관이 2010년대부터 독립·예술영화 전용 개봉관을 만들며 영화계의 반발을 잠재우려 한 행보를 OTT가 그대로 따라가고 있다는 것이다.

특히 지난해 12월 넷플릭스에 공개된 영화 ‘맹크’는 할리우드 시스템을 냉소적이고 신랄한 시선으로 바라본다. 올해 4월 열릴 예정인 미국 오스카상 유력 후보로 언급될 정도로 좋은 평가를 받고 있다. 이 작품을 연출한 유명 영화감독 데이비드 핀처도 넷플릭스와 4년간 활동 독점 계약을 맺으며 할리우드를 떠났다. 영화계 관계자는 “할리우드를 비판한 영화인 맹크가 오스카상을 수상하면 넷플릭스의 위상은 단번에 올라갈 것”이라며 “‘창작의 자유를 보장한다’는 넷플릭스의 주장에 힘을 실어주는 대표작이 될 것”이라 했다.

이호재 기자 hoh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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