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의 향기]1970년대 아파트엔 장독대실이 있었네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11월 1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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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철수의 거주 박물지/박철수 지음/384쪽·2만2000원/도서출판 집

1970년대 조성된 서울 강북구 미아임대아파트의 발코니 풍경. 도서출판 집 제공
1970년대 조성된 서울 강북구 미아임대아파트의 발코니 풍경. 도서출판 집 제공
평균 9개. 1970년 당시 대한주택공사가 서울의 대표적 아파트 단지에 입주한 주민들의 장독대 보유 현황을 조사한 결과다. 지금이야 낯선 풍경이지만 당시만 하더라도 간장이나 된장, 고추장 등을 집에서 담가 먹는 게 익숙한 시기였다. 이 같은 문화의 영향으로 1970년대 아파트 분양 광고에선 발코니 대신 ‘장독대’라고 표기하거나 장독대를 위한 별도의 공간을 설계에 반영한 경우도 있었다.

이뿐만 아니다. 지금도 높은 집값을 자랑하는 서울 송파구 잠실 주공 5단지와 서울 서초구 반포 주공아파트에는 ‘식모방’이 있다. 부엌의 보조공간인 복도 측의 발코니와 식당 겸 부엌 혹은 창고로의 출입만을 보장하는 위치에 있다. 이 아파트들이 완공된 1970년대 중반까지만 하더라도 식모살이로 밥벌이를 하는 이들이 상당수였다. 약 2m²(약 0.6평)에 불과한 식모방을 보고 있노라면 오늘날 5m²(약 1.5평)의 작은 고시원에서 묵묵히 하루를 견디는 청년들의 모습이 아른거린다.

이 책은 우리나라 주거 문화의 변화상을 추적한다. 박물지라는 다소 도발적인 이름으로 제목을 달았지만 그에 어울릴 만큼 한국 주택 문화를 광범위하게 짚어낸다.

제주도의 ‘성이시돌 목장’에 남아 있는 독특한 구조의 ‘테쉬폰 주택’이 그리스와 이라크 아일랜드 등을 거쳐 우리나라로 유입된 과정을 추적하고, 오래된 아파트면 으레 하나씩은 설치돼 있는 수영장과 정구장의 설치 배경을 짚어보기도 한다.

사는 곳의 풍경을 묘사한 각종 문학 작품으로 매 책장을 시작하는 구성 역시 몰입을 돕는다. 우리 주변의 풍경에 관심 있는 이들이라면 누구나 흥미롭게 읽을 수 있는 책이다.

유원모 기자 onemore@donga.com
#박철수의 거주 박물지#박철수#아파트#장독대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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