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文·史·哲의 향기]‘사상 따로 행동 따로’ 모순의 루소 그의 자아찾기는 정신분석의 출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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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년 3월 2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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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소-인간 불평등의 발견자
리오 담로시 지음·이용철 옮김 768쪽·3만5000원·교양인

“자연으로 돌아가라.”

18세기 프랑스 철학자 장자크 루소(1712∼1778)가 저서 ‘인간 불평등 기원론’에서 남긴 선언이다. 하지만 당시 계몽주의 대표적 사상가인 볼테르는 “그 책을 읽으면 동물처럼 네 발로 기어 다니고 싶어진다”며 비꼬았다. 루소는 친자연주의를 강조한 것일까.

미국 하버드대 문학교수인 저자는 10년에 걸친 조사연구를 통해 다른 해석을 내린다. 루소는 결코 ‘자연’으로 돌아가라고 말하지 않았으며, 루소가 제시한 자연 상태란 일종의 사고(思考) 실험이었다는 것.

“우리는 자연 상태라는 관점으로부터 만약 사회의 개입이 없었다면 우리가 어떤 모습이었을지 추정할 수 있다. 그(루소)가 영위하는 삶의 목적은 사회 내에서 역할 연기라는 표층 밑에 존재하는 진정한 자아를 찾는 것, 진정한 자아가 밖으로 드러나도록 도울 수 있는 교육적이고 정치적인 프로그램을 생각해내는 작업이 될 것이다.”

즉, 루소는 자기가 살고 있는 사회 속에서 자아를 찾는 노력을 주창했다는 것이다. 루소는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란 오래된 명제에 대해서도 “인류에게 재앙을 몰고 온 잘못된 방향의 증거”라고 반박했다.

이 책은 ‘에밀’ ‘사회계약론’ 등 루소의 주요 저작은 물론 그가 남긴 편지와 사소한 기록들까지 살펴 루소의 숨겨진 정신세계를 엿볼 수 있도록 했다. 이른바 루소의 심리적 전기(傳記)라 할 만하다. 잘 알려져 있지 않던 루소의 마지막 10년도 상세히 전한다.

루소는 태어난 지 9일 만에 어머니를 여의었으며 스위스 제네바의 시계공이었던 다혈질 아버지 밑에서 학대를 받으며 성장했다. 루소는 친자식 5명을 보육원에 버리기도 한다. 루소는 이 때문에 볼테르 등 동시대인들에게 거센 비판을 받는다. 친자식을 버린 장본인이 아이들의 교육론인 ‘에밀’을 쓰는 모순에 빠졌기 때문이다.

하지만 루소의 삶과 사상에서 보이는 모순과 역설이야말로 사유의 독창성을 가능하게 한 원동력이 됐다는 다른 시각을 엿볼 수 있다. 루소는 ‘고백록’에서 자신의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을 되짚어 보면서 분열된 모습 속에서 자아의 핵심을 찾으려 노력했고, 이 과정에서 현대적 정신 분석의 시초가 싹텄다는 설명이다. 또한 루소는 공동체 구성원의 개별 의지 안에 있는 공통의 의지인 ‘일반의지’에 복종해야 한다는 주장을 펴 전체주의에 기여했다는 비난도 받지만 그가 의도한 것은 전체주의가 아니라 공동체의 선에 의해 자발적으로 헌신하는 것이었다고 책은 설명한다.

‘에밀’ ‘사회계약론’이 출간되면서 루소는 절대왕정과 기독교를 위협하는 인물로 낙인찍히고, 결국 1762년 파리 고등법원에서 구속영장이 발부되자 도피하는 신세가 된다.

심각한 박해 망상에 시달리게 된 것도 이때쯤이다. 그의 말년은 쓸쓸했다. 1770년 파리 플라트리에르 거리의 6층 아파트 맨 위층에 살며 악보를 필사해 돈을 벌었다. 8년여 동안 1만1000장의 악보를 옮겼고, 비발디의 ‘봄’을 플루트 독주곡으로 편곡했으며 100여 개의 멜로디를 작곡한 것도 눈에 띈다. 하지만 망상증이 심해진 그는 대중과 점차 멀어졌고, 건강 악화로 집에서 숨졌다.

저자는 루소에 대해 위선과 가식을 벗고 스스로를 보여줬으며 이를 통해 우리가 스스로를 비춰볼 수 있는 거울을 제시했다고 평가한다. 책이 묘사한 루소는 ‘자기 자신의 성공으로 만들어지는 화려한 쇠사슬을 포함해서 사회의 모든 쇠사슬로부터 벗어나려는 평생에 걸친 투쟁을 한 인물’로 요약된다.

황인찬 기자 hic@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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