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文·史·哲의 향기]“김치가 매워진 것은 소금이 귀한 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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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년 4월 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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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식은 문화 -역사를 버무린 인문학
◇음식인문학 주영하 지음 560쪽·3만 원·휴머니스트

‘인간은 조리하는 동물이다.’

다른 동물과 달리 인간은 선택적 조리 과정을 통해 자신이 먹을 음식을 만들어낸다. 자연환경과 상호작용하며 특정한 재료를 선택하고, 사람 혹은 그 사람이 속한 문화에 따라 다른 조리법을 적용한다. 그렇기에 인간의 요리(dish)는 인간의 문화를 고스란히 담은 ‘그릇’이다.

동아시아 3국의 음식문화를 비교한 ‘차폰, 잔폰, 짬뽕’을 펴냈던 한국학중앙연구원 주영하 교수가 이번엔 1999년 이후 자신의 논문을 묶은 책을 냈다. 한국음식에 얽힌 역사와 문화를 돌아보는 ‘음식학(food studies)’ 개론서라 할 만하다. ‘오늘의 한국음식을 보다’ ‘한국음식, 그리고 근대’ ‘한국음식, 오래된 것과의 만남’ 세 부분으로 각각 현대의 한국음식, 근대 한국음식의 정립, 한국음식의 전통을 살핀다.

‘음식학에 관심을 가진 사람들이 논문 찾는 수고를 덜어주려고 책을 냈다’는 머리말처럼 이 책이 대중을 겨냥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음식 연구라는 분야의 특성상 일반 독자를 끄는 맛깔스러운 이야기가 가득하다. 왜 일본 기무치는 백김치인데 한국에서는 고추김치가 보편적일까? ‘한국음식의 매운맛은 어떻게 진화했는가’라는 논문에서 저자는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17세기 이후 제수용품인 어물의 수요가 늘고 이앙법(移秧法) 대동법(大同法)의 성공으로 쌀밥이 정착하면서 방부제와 양념으로서의 소금 수요가 급증한다. 한데 바다와 접한 면적이 넓은 일본과 달리 한국의 서민들은 소금을 구하기 쉽지 않았다. 이에 짠맛을 상쇄하면서 동시에 밥맛이 좋아지는 방법 중 하나로 모든 음식에 고추나 고춧가루가 사용되었을 가능성이 많다는 것.

이처럼 음식에 대한 진지한 역사적 성찰이 곳곳에 나타난다. 저자에 따르면 한국인이 알고 있는 ‘전통음식’의 대부분은 ‘만들어진 전통’의 음식이다. 민족과 국가를 중시한 근대에 들어서 정립한 ‘내셔널 푸드(national food)’라는 설명이다. 예를 들어 고등어 꽁치 갈치 등 바다생선이 들어간 요리 대부분은 20세기 이후에나 등장한 근대의 요리다. 기록에 따르면 19세기 이전의 생선요리는 거의 다 민물생선을 재료로 했다. 전주비빔밥도 마찬가지다. 기록을 되짚어보면 전주에 비빔밥 전문 식당이 생긴 것은 1930년대 이후다. 하지만 많은 사람은 고등어조림과 전주비빔밥이 우리의 오랜 전통이고, 영양학적으로도 우수해 세계에 자랑할 우리 음식이라고 생각한다. 자기 민족과 역사만 우수하다고 생각하는 편협한 ‘내셔널 푸드’적 사고를 경계하고 다양한 문화를 존중하는 ‘에스닉 푸드(ethnic food)’적 사고를 해야 한다고 저자는 주장한다.

음식뿐 아니라 상차림, 외식문화, 요리도구 같은 음식 주변부의 역사도 책은 주목한다. 굿상 차림으로 유교식 제사와 마을제가 어떻게 융합해갔는지, 주막을 통해 근대 도시가 어떤 변화를 거쳐 산업과 상업 중심의 도시로 성장했는지 보여준다. 숟가락 하나로 성리학적 전통을 엿보기도 한다. 숟가락이 퇴보한 중국 일본의 밥상과 달리 한국의 밥상은 끝까지 ‘주례(周禮)’의 예법에 따라 숟가락을 내려놓지 않았다는 것이다.

“식사로서의 음식은 일상이지만 문화와 역사로서의 음식은 인문학이다.” 저자의 말처럼 음식은 물질적인 재료뿐 아니라 무형의 문화와 역사가 버무려져 완성되는 ‘사회적 요리’다. 이 책은 그런 의미로서의 요리를 배우기에 훌륭한 입문서다.

이미지 기자 imag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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