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文·史·哲의 향기]“평등론자 후쿠자와는 침략주의자” 日학자 ‘포장된 신화’의 탈을 벗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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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년 4월 9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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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쿠자와 유키치의 아시아침략사상을 묻는다
야스카와 주노스케 지음·이향철 옮김 420쪽·2만3000원·역사비평사

일본이 자국의 교육가이자 사상가인 후쿠자와 유키치(福澤諭吉·1835∼1901)에게 붙인 칭호는 그야말로 뜨르르하다. ‘일본 근대의 스승’ ‘메이지의 스승’ 등으로 부르며 일본 화폐 최고액권인 1만 엔에도 그의 초상화를 넣었다. 일본 사회에서 그는 인간평등을 주장한 천부인권론자이자 메이지 정부의 행보에 비판적인 시민적 자유주의자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나고야(名古屋)대 명예교수이며 사회사상사적 관점에서 후쿠자와를 연구해 온 저자는 그의 본색이 침략주의자라고 서슴없이 말한다. 후쿠자와는 저서 ‘학문의 권유’ 서두에서는 “하늘은 사람 위에 사람을 만들지 않고 사람 아래 사람을 만들지 않는다고 했다”고 썼지만 그의 실체는 시종일관 강경한 국권론자로 아시아를 멸시하며 침략을 해야 하는 대상으로 일본을 선동한 제국주의자였다는 것이다.

저자에 따르면 일본에서 후쿠자와가 천부인권론 등을 주장한 위대한 사상가로 알려진 것은 ‘일본 학계의 천황’으로 불리는 정치학자 마루야마 마사오(丸山眞男)가 만들어 놓은 ‘신화’이다. 또 제2차 세계대전 이후로 후쿠자와를 연구한 일본 학자들이 ‘후쿠자와 유키치 전집’에서 자신들의 주장에 맞는 부분만 뽑아서 원래 문맥과 상관없이 자의적으로 해석함으로써 그런 환상의 강도를 키웠다는 것이다.

저자는 ‘후쿠자와 유키치 전집’의 모든 내용을 꼼꼼히 읽고 후쿠자와가 활동하던 당시 그가 내뱉었던 말로써 그의 사상과 인품을 검증했다.

대표적인 검증 사례는 후쿠자와가 ‘학문의 권유’ 제3편에 쓴 “일신(一身) 독립해야 일국(一國) 독립한다”는 문구다. 마루야마는 이 구절에 대해 후쿠자와가 일본을 국민국가로 만들고 그 뒤 주권국가로 만드는 두 가지 과제를 가지고 있었다고 주장했다. 일신의 독립은 인권을, 일국의 독립은 주권과 연결되는 개념이라는 해석이다.

그러나 저자는 ‘학문의 권유’ 제3편을 꼼꼼히 살펴보면 후쿠자와에게 천부인권으로서의 ‘일신 독립’은 부차적인 것이었고 ‘국가를 위해서라면 재산을 잃는 것뿐만 아니라 하나밖에 없는 목숨을 바치는 것도 아깝지 않다’는 ‘보국의 대의(大義)’를 강조했다는 것이다. 그런데도 다른 연구자들은 마치 합의라도 한 듯 후쿠자와의 이 같은 핵심 주장은 인용하지 않았다. 이 때문에 전후 민주주의 1세대인 저자 자신도 군국 일본에서 국민은 “일단 위급한 상황이 발생하면” “죽음은 새털보다 가볍다는 각오”로 “국가를 위해” 목숨과 재산을 아낌없이 버려야 한다고 강요받았다고 서술하고 있다.

후쿠자와가 인간의 평등을 언급한 학문의 권유 서문도 미국 독립선언서 1절을 빌려온 것으로 그의 저작 전체의 논리와는 전혀 맞지 않는 것이라고 강조한다. 오히려 후쿠자와는 교육가나 사상가라는 이름이 무색할 정도로 욕설에 가까운 말로 아시아인을 멸시하는 발언을 해왔다. “조선은 부패한 유학자의 소굴, 연약무염치”, “조선(…) 인민은 소와 말, 돼지와 개”, “창창 되놈(…)의 몰살은 수고할 것까지도 없다” 등등….

저자는 일본 사회가, 특히 일본 언론이 마루야마가 만들어 낸 ‘후쿠자와 유키치 신화’의 강한 자장 속에 여전히 놓여 있다고 우려한다. NHK가 2009년 시바 료타로의 ‘언덕 위의 구름’을 방영하면서 원작에는 있지도 않은 ‘일신 독립해야 일국 독립한다’는 후쿠자와의 발언을 삽입한 것이 대표적인 사례다. 시바가 군국주의를 고취할 우려가 있다며 절대 영상화하지 말라고 유언한 것까지 어겨가며 국영방송이 영상화를 한 것도 문제라는 것이다.

한국어판 서문에서 저자는 “이 책의 새로운 분석이 아시아와 일본의 역사인식의 심각한 균열과 틈새를 메움으로써 진정한 한일 우호에 기여할 것을 기대한다”고 썼다.

허진석 기자 jameshuh@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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