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법은 국회의장의 당적 보유를 금지하고 있다. 이 국회법이 공포된 건 2002년 3월이다. 그 전까지만 해도 국회의장은 대통령이 내정할 때가 많았다. 국회의장은 권력의 눈치를 봐야 했다. 국회의장이 날치기 통과에 앞장서기도 했다.
“청와대 소속당 눈치 안 보고 공정하고 싶었다”
작고한 이만섭 전 국회의장이 민주자유당 소속으로 1993년 14대 국회 전반기 의장이 됐을 때도 김영삼 당시 대통령이 지명했다. 새천년민주당으로 당적을 옮긴 그가 2000년 16대 국회 전반기 의장이 됐을 때부터 그는 의장은 당적을 가지면 안 된다고 강조하기 시작했다. 그가 의장이던 2002년 3월 국회의장의 당적 보유를 금지한 국회법이 공포됐다. 그 직후 그는 새천년민주당 당적을 포기했다. 당시 기사들은 그가 1948년 제헌국회 개원 이래 사상 첫 무당적 국회의장이 됐다고 기록했다.
그가 국회의장의 당적 포기를 주장한 이유를 들어보자. 2002년 4월호 신동아 인터뷰다.
“국회의장이 청와대 눈치 안 보고 또 자기가 속해 있는 당의 눈치를 보지 않고 올바르게 국회를 운영할 수 있는 제도적 뒷받침을 마련한 겁니다. 국회를 민주적으로 운영할 수 있도록 진일보한 것이죠.”
그는 ‘친정 눈치를 안 볼 수 있겠느냐’는 질문에도 “당적을 떠나도 내가 돌아갈 당을 생각하면 불공정할 수 있지만 그래도 안 떠나는 것보다 낫다”고 했다.
그는 1963년 6대 국회 때부터 의원을 했다. 한평생 사무친 것이 국회 날치기였다고 회고했다. 그래서 평생 소원이 청와대나 소속 정당 눈치 보지 않고 공정한 사회를 보는 것이라 했다.
실제로 그는 YS가 임명했음에도 14대 국회의장 때인 1993년 12월 법정 기일 내에 정당법 안기부법 통신비밀보호법과 예산을 어떻게 해서라도 처리하라는 YS의 요구를 거절했다. 청와대 오찬에서 YS에게 “옛날엔 날치기를 반대해 놓고 왜 그러냐”고 한 뒤 자리를 떴다. 이 전 의장은 YS가 요구한 기일을 넘겨 여야 합의로 통과시켰다. 의장으로서 가장 보람 있었던 때를 그때로 꼽았다.
이 전 의장의 그 강단을 생각하면 정치는 수십 년 동안 오히려 퇴보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지금 22대 국회의장 경쟁에 뛰어든 더불어민주당의 6선, 5선 중진 의원들은 너도나도 의장의 정치적 중립성을 포기하겠다고, 이재명 대표 정책을 밀어붙이겠다고 대놓고 얘기한다. 자신이 친명(친이재명) 인사라서 의장이 돼야 한다고 말한다. 강성 친명 그룹으로 이제 민주당의 최대 계파가 된 더민주혁신회의의 지지를 받아야 의장이 될 수 있다며 이들의 지지를 호소한다. 국회의장이 이 대표 눈치를 봐도 된다는 노골적 선언이다.
민주당 안에서는 “이 대표의 의중은 누구에게 있다” “마음이 완전히 누구에게 가 있다” “그래서 누구는 출마를 접었다” “이 대표의 의중이 곧 의원들에게 전달될 것”이라는 말이 공공연히 나온다.
‘꼭두각시 의장’ 자처하는 오늘, 정치의 퇴보
국회의장 무당적을 이뤄낸 이만섭의 고집을 돌아보면 지금의 ‘꼭두각시 선언’들이 한심하다. 한 전직 의원은 “지금 한국엔 정당이 실종됐다. 강성 유튜브 매체의 시대가 왔다”고 했다. 강성 팬덤에 기대고 정당은 기능부전 상태라는 것이다.
이 전 의장은 16대 국회 취임사에서 “의사봉을 칠 때마다 한 번은 여당을 보고 한 번은 야당을 보며 마지막으로는 국민을 바라보며 양심의 의사봉을 칠 것”이라고 했다. 그는 의사봉 자체는 가벼워 쉽게 두드릴 수 있다고 했다. 22대 국회의장은 의사봉을 칠 때 어디를 바라볼 것이며 의사봉의 무게를 어떻게 느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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