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文·史·哲의 향기]영원에서 ‘찰나’를 잡아내는 일본 미학의 뿌리를 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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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년 3월 19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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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문화사
폴 발리 지음·박규태 옮김 576쪽·2만8000원·경당

신석기시대부터 현대까지 건축 조각 회화 문학 음악 연극 대중문화 등에 걸쳐 일본 문화를 다룬 책이다. 미국 컬럼비아대 명예교수인 저자가 1973년에 처음 저술한 뒤 2000년까지 개정과 증보를 거듭하며 4판에 이르렀고, 서구 각 대학의 일본문화 강의의 교재로 활용되고 있다.

저자는 다양한 분야에서 일본의 감수성과 상상력을 엿볼 수 있는 부분들을 뽑아내 엮었다. 특히 일본인들의 미적 감각에 집중했다.

“일본인들은 지속적이거나 영원한 것이 아닌, 깨어지기 쉽고 빨리 지나가버리며 사멸하기 쉬운 것 안에서 자연의 아름다움을 추구한다. …사멸하기 쉬운 아름다움을 선호하는 일본인의 감수성에는 시간의 흐름에 대한 예민한 감각이 깔려 있다.”

시간에 대해 예민했기 때문에 일본인들은 시간에 의해 황폐화되고 시들어 소진된 것들에까지 아름다움의 범위를 확장했다. 저자는 일본의 유명 시인 사이교(西行·1118∼1190)의 와카(和歌·31음으로 된 일본 고유의 시)를 인용하며 일본인들의 쓸쓸함의 미학을 말한다. “황량한 들판 옆에 서 있는/나무 위에서 들려오는/비둘기 울음소리여/친구를 부르는가/외롭고 쓸쓸한 저녁에.”

일본의 유명한 교토 료안(龍安)사 정원에서도 춥고 시들고 쓸쓸한 것을 중시한 미학을 찾아낸다. 저자는 “돌과 모래로만 구성된 료안사 정원의 철저하고 엄격한 배치는 쓸쓸한 것을 중시한 중세 미학의 궁극적 표현”이라고 설명한다.

헤이안 귀족들이 가지고 있던 세련된 궁정미, 즉 ‘미야비(雅)’를 일본인들의 근본적인 취향을 반영한 미의식이라고 말한다. 일본인들은 우아하고 절제되고, 그리고 미묘하게 암시된 것을 선호한다는 것이다. 이 미야비와 밀접하게 관련된 일본인의 미의식으로 ‘모노노아와레(物の哀れ)’의 미학이 있다고 주장한다. 이는 ‘사물이나 사건 등에 예민하게 반응하는 감수성’ 혹은 ‘사물이나 사건에 감동할 줄 아는 능력’으로 정의할 수 있다고 소개한다.

일본 교토 료안사 정원.
일본 교토 료안사 정원.
일본 중세가 낳은 세련된 문화적 업적 가운데 하나인 ‘자노유(茶の湯·손님을 초대해 맛차를 대접하는 다회 또는 그 작법)’도 빠뜨리지 않았다. 15세기 자노유의 창안자들은 차를 준비하고 대접하고 마시는 모든 과정을 하나의 방에서 진행함으로써 소우주적이고 자기충족적인 ‘차의 세계’를 확립했다는 것이다.

구로사와 아키라(黑澤明·1910∼1998) 감독의 전쟁영화 ‘7인의 사무라이’를 “자연을 거스르지 않은 채 그 자연 안에서 살아가는 인간의 유한한 속성에 대한 일본인의 영원한 감수성을 잘 보여준 탁월한 예술작품”이라고 평가하며 일본인의 속성을 읽어내려 한다.

전반적으로 일본 문명의 독자성을 옹호하려는 저자의 태도 때문에 지나치게 예찬하는 표현들이 눈에 띈다. 예컨대 지난해 3월 한일 역사학자들로 구성된 역사공동연구위원회가 한반도 남부의 일본 지배는 없었다며 임나일본부설을 공식 폐기했지만 저자는 “한반도 남부에 ‘임나일본부’라는 군사적 식민지 내지 전초기지를 운영하고 있었던 것 같다”고 적고 있다. 또 고대에 한국이 일본문화에 끼친 영향은 거의 다루지 않고 있다. 이 단점을 역자인 박규태 한양대 일본언어·문화학과 교수가 적지 않은 분량의 역주를 덧붙여 보완했다.

허진석 기자 jameshuh@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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