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文·史·哲의 향기]낭만주의가 현실도피적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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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년 3월 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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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낭만주의의 명령, 세계를 낭만화하라
프레더릭 바이저 지음·김주휘 옮김 360쪽·2만원·그린비

‘낭만주의’라는 말에서 떠오르는 것은 무엇인가. 현실도피 경향이나 개인주의, 자연숭배, 육체적 정열의 고양 등이 먼저 연상되기 마련이다. 철학보다는 감성을 중시한다거나, 중세적 세계관을 벗어나지 못한 보수적 이데올로기라는 이미지도 강하다.

그러나 미국 시러큐스대 철학과 교수인 저자는 1797∼1802년 꽃을 피웠던 독일 초기 낭만주의의 양상을 분석한 뒤 “일반적으로 알려진 것과 달리 초기의 낭만주의는 철학적이고 이론적이었으며 정치적으로 개혁적이었다”고 말한다. 오늘날 일반적으로 알려진 낭만주의 특징은 후기 낭만주의(1815년 이후∼1830년대)의 보수적 목가적 성격을 부당하게 일반화한 결과라는 지적이다.

저자는 먼저 초기 낭만주의를 대표하는 개념인 ‘낭만시(Romantische Poesie)’에 돋보기를 들이댄다. 초기 낭만주의 사상가들은 낭만시 개념을 정립하는 것을 주요 목표로 삼았고, 이 때문에 후대의 낭만주의 연구도 이 개념의 연구에 초점이 맞춰졌다. 그러나 낭만시 개념이 글자 그대로 ‘시(Poetry)’로만 받아들여지면서 낭만주의가 철학과 정치학보다는 문학의 연구 대상이 돼 버렸다는 설명이다.

초기 낭만주의자들의 텍스트를 톺아 본 저자는 그들에게 ‘시(Poesie·포에지)’란 ‘모든 창조적 활동’을 의미했으며 그들은 문학뿐만 아니라 세계 전체를 이해하고 해석하는 데 이 개념을 사용했다고 설명한다. 초기 낭만주의 대표 사상가인 프리드리히 슐레겔은 칸트의 정언 명령에 버금가는 낭만주의 명령으로써 “세계를 낭만화해야 한다”고 선언했고, 또 다른 낭만주의자 노발리스는 자신의 정치적 이상을 ‘시적 국가(poetic state)’라는 말로 표현했다. 슐레겔의 명령은 세계를 문학의 영역으로 축소하라는 유미적 선언이 아니라 ‘낭만화’라는 그들의 정치적 이상을 드러낸 표현이라는 것이 저자의 해석이다.

이들이 바랐던 ‘낭만화된 세상’은 어떤 것인가. 흔히 낭만주의자들은 근대를 비판하고 과거로 돌아갈 것을 주장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저자에 따르면 초기 낭만주의자들이 무조건적 과거 회귀를 주장한 것은 아니다. 이들은 ‘계몽’과 ‘사회계약론’으로 대표되는 근대의 특성에 공감하면서 이성만을 강조한 계몽이 낳은 ‘소외’와 ‘공동체 감각의 상실’ 등을 극복할 새로운 철학을 제시하고자 했다.

이 초기 낭만주의자들은 기계론적 자연 개념, 정신과 육체의 이원론과 같은 데카르트적 유산을 거부했다. 형이상학에서는 계몽의 기계론적 패러다임과 경쟁하는 유기체적 자연개념을 발전시켰다. 윤리학에서는 칸트 윤리학의 형식주의에 대한 반동으로 사랑과 개인성을 중시했다. 이런 관점은 정치적으로도 확장돼 초기 낭만주의자들은 국가와 개인이 유기체적으로 연결돼 있는 공동체 국가를 꿈꿨다.

“근대 시민사회의 근본문제인 아노미, 원자주의, 소외를 처음 발견하고 극복하려 한 이들이 바로 초기 낭만주의자이다”라고 책은 설명한다.

허진석 기자 jameshuh@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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