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닭볶음면 이어 ‘우지 라면’ 도전… ‘삼양이 돌아왔다’ 평가 기뻤다”[데스크가 만난 사람]

  • 동아일보

‘회사 살린 며느리’ 김정수 삼양식품 부회장
우지 라면 출시는 삼양식품 정신 복원… 신제품 1개월 만에 누적 700만 개 판매
‘삼양이 돌아왔다’는 시장의 긍정 반응… 불닭볶음면은 해외서 80억 개 이상 팔려
‘글로벌 스파이시 아이콘’으로 자리매김… “맥도날드 햄버거나 코카콜라처럼 될 것”

9일 서울 성북구 삼양식품 본사에서 김정수 부회장이 최근 출시한 ‘삼양1963’에 대해 소개하고 있다. 삼양1963은 동물성 기름인 우지(소고기 기름) 유탕 처리 방식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제품으로, 출시 한 달 만에 700만 개 이상 팔리며 인기를 끌고 있다. 홍진환 기자 jean@donga.com
9일 서울 성북구 삼양식품 본사에서 김정수 부회장이 최근 출시한 ‘삼양1963’에 대해 소개하고 있다. 삼양1963은 동물성 기름인 우지(소고기 기름) 유탕 처리 방식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제품으로, 출시 한 달 만에 700만 개 이상 팔리며 인기를 끌고 있다. 홍진환 기자 jean@donga.com
《1989년 11월 3일, 모든 신문의 다음 날 1면을 장식한 초대형 사건이 터졌다. 유명 식품회사들이 비누를 만들 때 쓰는 공업용 소기름(우지·牛脂)으로 라면이나 마가린 등의 식품을 제조했다는 것이다. 이른바 ‘우지 파동’이다. 당시 검찰은 5개 회사를 수사했다. 세간의 관심은 삼양라면에 쏠렸다. 당시는 라면이 한국인의 ‘솔푸드(soul food)’로 급부상하던 시기였고, 삼양라면의 인기가 높았기 때문이다. 여론은 들끓었고, 검찰은 회사 대표 및 관계자를 구속시켰다. 삼양식품은 나락으로 떨어졌다. 7년이라는 지난한 소송 끝에 1997년 대법원에서 무죄를 받았지만 남은 것은 없었다. 회사는 1998년 법원에 채무조정까지 신청하는 처지가 됐다. 삼양식품 창업주 고(故) 전중윤 명예회장의 며느리 김정수 부회장(61)이 경영 전면에 등장한 것이 이 무렵이다. 이후 그의 삶에 대한 평가는 ‘며느리가 망해 가는 회사를 살렸다’는 한 문장으로 정리된다. 지금도 ‘불닭볶음면’으로 글로벌 신화를 써내려 가고 있는 김 부회장을 9일 서울 성북구 삼양식품 본사에서 만났다.》


―지난달 3일 ‘삼양1963’을 출시했다. 어떤 제품인가.


“이 제품은 소고기 기름(우지)으로 면을 튀긴 우지 라면이다. 과거 1위였던 삼양식품을 추락시킨 바로 그 라면인 것이다. 1989년 우지 파동 이후 사라졌던 것을 36년 만에 재해석해 다시 내놓았다. 사실 면을 튀기는 기름이 100% 우지인 것은 아니다. 동물성 기름인 우지와 식물성 기름인 팜유를 황금비율로 섞었고 이를 통해 고소함과 감칠맛을 모두 확보했다. 제품명 1963은 삼양식품이 처음 라면을 출시한 연도다.”

―신제품 출시 행사에서 눈물을 보이기도 했다.

“신제품 출시일인 11월 3일은 매우 특별한 날이다. 정확히 36년 전 이날 우지 파동이 일어났다. 제품 발표 무대에 서는 순간 우지 파동으로 누구보다 큰 상처를 받았던 전중윤 명예회장이 생각났다. 창업주이자 시아버지인 그분이 평생 마음에 품고 있었던 한(恨)을 조금이나마 풀어드린 것 같아 울컥했다. 삼양식품이 오랫동안 지켜온 ‘정직하게 만든 라면’이라는 정신이 복원되는 듯한 느낌이었다. 삼양식품의 역사에서 한 챕터를 덮고 새로운 챕터를 여는 순간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삼양1963 출시는 좋은 제품으로 이윤을 창출하려는 목적도 있지만 사실은 삼양의 역사와 정신을 정면으로 복원하는 프로젝트 성격이 더 크다.”

―36년 전 우지 파동에 대한 소회를 들려 달라.

“우지 파동은 단 한 장의 익명 투서에서 시작됐다. 사람들은 과학적 사실에 대한 관심은 없었다. 오로지 자극적인 오해와 루머에만 매달렸다. 그 결과 기업과 직원들이 감당해야 했던 상처가 너무 컸다. 이 사건으로 기업의 존망 위기가 얼토당토않은 오해에서 시작될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또 정직하기만 하면 시간이 걸리더라도 결국 제자리로 돌아온다는 것도 배웠다.”

―결국 무죄를 받았다.

“7년 동안 소송하면서 모든 게 무너졌다. 무죄를 받긴 했지만 삼양라면에 대한 소비자 신뢰는 사라졌고, 회사는 부도 위기에 몰렸다. 무죄 판결 이후 국가를 상대로 소송을 걸어 보상을 받으라는 주변의 권고가 많았다. 하지만 명예회장은 그렇게 하지 않았다. 결백하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소송을 진행했던 것이지 국가로부터 보상을 받기 위한 것은 아니었다면서 모든 걸 그대로 받아들였다. 오히려 소송을 부추기는 변호사들을 나무라셨다.”

―신제품 판매 성과는 어떤가.

“삼양1963은 출시 후 한 달 만에 누적 700만 개 판매를 돌파했다. 이는 기존 ‘삼양라면 오리지널’ 월평균 판매량의 80% 수준이다. 특히 소비자 가격 기준으로 1.5배 높은 프리미엄 라면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이례적인 성과다. 신제품에 대한 온라인 콘텐츠 조회 수는 8000만 회를 넘었고, 서울 성동구 성수동 팝업스토어에는 하루 평균 1500명 이상이 방문했다. 이것은 단순한 흥행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삼양라면의 헤리티지와 진정성에 대한 소비자들의 신뢰 회복이다. 불닭볶음면에 이어 우지 라면까지 성공하면서 ‘삼양이 돌아왔다’는 평가가 나와 기뻤다.”

―개발 과정에서 에피소드가 있다면….

“삼양1963은 단기간에 만들어진 제품이 아니다. 언젠가 반드시 우지 라면을 다시 세상에 내놓아야 한다는 마음으로 3년 넘게 준비해 온 프로젝트다. 우선 우지와 팜유의 황금비율을 찾아야 했다. 이를 위해 10t이 넘는 우지로 실험을 했다. 소고기 맛을 제대로 내기 위해 전국의 유명한 사골곰탕집은 다 방문했다. 부회장인 나도 완벽한 제품을 만들기 위해 100번 이상 시식했다.”

―‘불닭볶음면’이 해외에서 큰 인기를 끌고 있다.

“불닭볶음면을 중심으로 한 불닭 브랜드의 누적 판매량이 80억 개를 넘었다. 해외 매출은 2016년 661억 원에서 지난해에는 1조 원을 돌파했다. 단일 식품 브랜드가 이 규모로 글로벌 시장에서 사랑받은 사례는 흔치 않다. 불닭은 더 이상 단순한 라면 브랜드가 아니라 ‘글로벌 스파이시(spicy) 아이콘’으로 자리 잡았다. 특히 삼양식품은 한국 라면 수출의 약 60%를 담당하고 있다. 전체 수출 가운데 미국 28%, 중국 28%, 아시아 20%, 유럽 18% 등 글로벌 포트폴리오가 견고해지고 있다.”

―불닭볶음면이 세계에서 성과를 거둔 이유는….

“불닭볶음면의 성공은 하나의 이유로 설명하기 힘들다. 강렬하면서도 중독적인 맛이 핵심이고 여기에 한 가지 제품에 기대지 않고 다양한 제품을 만들어 낸 것도 주효했다. 일찍부터 글로벌 유통 인프라를 구축했고 이를 통해 해외 경험을 확장한 것도 밑거름이 됐다. 결국 브랜드, 문화, 공급망, 경험이 함께 작동한 복합 생태계의 결과라고 볼 수 있다.”

―해외에서 K라면의 열풍은 어느 정도인가.

“올해만 해도 미국에서 열린 글로벌 음악 축제 ‘코첼라’, 독일에서 열린 국제 식품 전시회 ‘아누가’ 등 글로벌 현장을 다니면서 K라면의 위상을 현장에서 확인했다. 특히 코첼라가 인상적이었다. 세계적 음악 페스티벌에서 라면 카테고리에 삼양식품이 단독으로 참여했다. 현장에서 젊은 세대들이 불닭소스를 페어링한 음식을 먹고, 영상을 찍고, 서로 챌린지를 하며 즐겁게 경험하는 모습을 보며 라면이 아닌 문화적 놀이의 장면을 목격했다.”

―해외 출장에서 인상적인 경험이 있다면….

“2007년쯤 베트남 호찌민에 간 적이 있다. 출장을 가면 마트나 슈퍼마켓에 꼭 방문하는데 우리 라면이 매대 구석에 있었지만 먼지가 수북하게 쌓여 있는 걸 봤다. 국내에서는 경쟁이 치열할 때였는데 해외에서는 왜 인기가 없는지 많은 고민을 했다. 요즘 젊은 친구들 말처럼 ‘마상(마음의 상처)’을 입었다. 그런데 지금은 불닭볶음면이 세계 어디를 가도 마트 한가운데 쌓여 있다. 심지어 남미의 칠레 산티아고 오두막집에서도 불닭볶음면을 팔더라.”

―중국에도 공들이고 있는 모습이다.


“중국은 삼양식품 글로벌 성장의 핵심 축이다. 2016∼2020년에는 전체 해외 매출의 절반을 차지하기도 했다. 중국 시장을 겨냥해 중국에 공장을 설립하고 있다. 2027년 완공 목표이며 연간 11억 개를 생산할 수 있다. 중국은 시장, 생산, 물류라는 세 가지 전략적 의미를 동시에 가진 지역이다.”

―불닭볶음면 글로벌 열풍이 얼마나 오래갈까.

“내가 불닭볶음면 만드는 회사의 부회장이라서가 아니라 전문가로서 불닭의 인기는 계속 갈 것으로 확신한다. 멈추지 않을 것이다. 해외에서 팔리는 불닭볶음면 가격은 2달러 수준이다. 이 정도 금액으로 큰 만족을 느낄 수 있는데 이런 열풍이 왜 멈추겠는가. 불닭볶음면은 매운맛 장르라는 하나의 영역을 개척했다. 이것은 ‘맥도날드 햄버거’나 ‘코카콜라’처럼 오래 이어질 것이다.”

―제조 비법이 따로 있나.

“당연히 시크릿 레시피가 있다. 코카콜라 제조법을 아무도 모르듯 불닭볶음면의 소스 제조법은 회사 최고 기밀 사항이다. 다만 삼양식품이 과거 간장을 만들었던 경험이 토대가 됐다는 점은 말할 수 있다. 과거 ‘삼양콩간장’은 꽤 유명한 제품이었다. 이름 있는 간장게장 집에서도 많이 썼다. 간장 원액을 만들던 노하우를 바탕으로 불닭 소스 원액을 만들고 있다. 간장을 만들어본 경험이 없는 다른 회사들은 절대 따라 할 수 없을 것이다.”

―라면 조리에 관한 특별한 레시피가 있는가.

“결혼한 뒤 시부모님을 모시고 살았는데 명예회장이신 시아버지께서 일요일마다 라면을 드셨다. 시아버지께 드리는 라면이니까 특별히 신경 써서 여러 재료를 추가로 넣어서 끓였다. 그런데 그날 많이 혼났다. 회사가 라면 만들 때 모든 영양과 맛을 고려했는데 거기에 왜 다른 재료를 추가하느냐는 것이었다. 그날 이후로 라면 먹을 때 추가로 넣는 재료는 없다. 만들어진 그대로 먹는다.”

―삼양식품은 라면 비중이 높다. 다른 제품 확대 전략이 있나.

“아직 초기 단계이긴 하지만 내부적으로 푸드케어 기업으로 전환 작업을 진행 중이다. 삼양이 추구하는 것은 누구나 일상에서 자연스럽게 선택하는 건강한 식문화이다. 삼양식품만 할 수 있는 종합식품 전략을 펼칠 것이다.”

―앞으로 이루고 싶은 목표가 있나.

“한국에서의 1등도 의미가 있지만 이미 포화된 시장에서 뺏고 뺏기는 싸움은 너무 힘들 뿐이다. 삼양식품은 글로벌에 집중할 것이다. 몇 년 안에 글로벌에서 1등은 어렵더라도 의미 있는 순위를 달성하고 싶다. 해외에 나갔을 때 많은 외국인들이 삼양라면을 먹는 모습을 보면 우리 국민들이 얼마나 뿌듯해하겠나. 한국의 대표 라면으로서 해외에서 끝까지 살아남아 지금보다 더 큰 성과를 내겠다.”

김정수 삼양식품 부회장

△1964년 서울 출생
△1987년 이화여대 사회사업학 졸업
△1998년 삼양식품 입사
△2002년 삼양식품 부사장
△2010년 삼양식품 총괄사장
△2021년 삼양식품 부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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