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가 깃든 삶’ 10년 연재 나민애 서울대 교수
덜 알려진 좋은 시 매주 발굴해 소개… 시보다 시 같은, 따뜻한 글로 위로
“모두가 달릴 때 멈추게 하는 게 시”… 독서는 꾸준해야 결실 맺는 ‘장기투자’
“보는 사람은 읽는 사람 절대 못 이겨… ‘같이 책 읽자’ 알려주는 사람 되겠다”
나민애 서울대 교수는 “표현의 한계가 결국 마음과 생각의 한계까지 결정짓는다”며 “시나 소설을 읽으며 더 좋은 단어와 문장을 즐기는 이들이 많아지도록 자꾸 ‘책 읽읍시다’ 말하는 역할을 해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신원건 기자 laputa@donga.com
《2015년 8월부터 동아일보에는 매주 한 번 원고지 5장 안팎의 시 칼럼 ‘시가 깃든 삶’이 실렸다. 명시를 톺아보며 일상에 지친 마음을 안아 주는 글이 10년 동안 빠짐없이 독자들의 주말 아침을 찾아갔다. 연재된 편수만 511편. “작은 텃밭의 관리자가 됐다는 생각”으로 긴 시간 이 코너를 가꿔 온 주인공은 나민애 서울대 학부대학 교수(47). 2007년 ‘문학사상’으로 등단한 문학평론가인 그는 ‘풀꽃’이란 시로 잘 알려진 나태주 시인(81)의 딸이기도 하다. 2025년 7월 마지막 칼럼을 쓸 때까지 그는 따뜻한 시로 평범한 독자들의 하루를 위로해 주는 성실하고 부지런한 시 해설가로 살았다. 병원에 실려 가서도 마감을 놓치지 않았다. 때로 시보다 더 시 같은 문장들이 많은 이들을 울리기도 했다. 지난해 여름 연재한 글을 엮어 낸 필사집 ‘단 한 줄만 내 마음에 새긴다고 해도’는 반년 만에 9만 부가 팔렸다. 11일 오후 서울 관악구 서울대 캠퍼스에서 나 교수를 만났다.》
―‘작은 텃밭’을 가꾸는 마음으로 연재했다고 했다. 참 예쁜 텃밭이었던 것 같다. 심고 키운 사람의 마음과 정성이 들여다보이는….
“한 편 한 편 다 울면서 썼다. 퇴근하고 집에 오면 설거지하고 뺄래하고 글 쓸 시간이 오후 10시부터 난다. 그때부터 앉아서 엉엉 울면서 쓰는 거다. 가끔 우리나라 시는 왜 다 이렇게 슬프냐고 묻는 분들이 있다. 생각해 보니 정말 슬프지 않은 시를 찾기 어렵다. 사람의 감정이 슬플 때와 사랑할 때 가장 북받쳐 오르니 유난히 그런가 싶다. 소개됐던 시인들이 감동했단 이야기도 전해 들었고, 강연장에 스크랩을 해 와 보여 주는 독자도 있었다. 내게도 울면서 디톡스가 된 시간이었다. 행복한 10년이었다.”
―한 번도 빠지지 않고 10년간 연재한다는 건 보통 일이 아닌데….
“끝내고 보니까 정말 품이 많이 들었다. 그래도 내 사정으로 건너뛴 적은 한 번도 없다. 지난해 난소 수술을 했다. 의료대란 때문에 수술 날짜를 못 잡아서 타이레놀을 하루 8알씩 먹으며 버텼다. 재킷 뒤에서 피가 묻어나는 것도 모르고 일하다 결국 실려 가 수술하고 입원했는데, 그때도 연재는 빼먹지 않았다.”
―세상에…. 건강은 좀 괜찮아졌나.
“괜찮다. 일하는 사람은 계속 해야 한다. 연재를 하다 보면 억지로라도 공부를 하게 된다. 어떤 시기에 딱 맞는 시를 소개하려면 후보가 100편, 200편은 있어야 한다. 계간지나 시집을 읽다가 좋은 시는 모두 타이핑해서 연도별로 파일을 만들어 둔다. 그게 내 재산이다. 누군가 기다린다는 생각이 더 열심히 하게 만든 것 같다.”
―소개할 시는 어떤 기준으로 골랐나.
“유명한 시인은 가끔만 넣자는 거였다. 기다리고 있는 시인들, 잠들었던 시인이 얼마나 많나. 처음 연재할 때 아버지가 당부하시길 ‘중앙 문단에서 빛을 못 받아서 서울 갔다 설움에 겨워서 울던 나를 기억하지 않냐. 그런 시인들을 찾아서 다정하게 안아 줘라’ 하셨다. 그래서 유명한 시인을 ‘홀대’했다. 윤동주 저 뒤에 있고, 이육사도 저어 뒤에 있다. 또 하나는 내가 공감 못 하는 시는 넣지 않은 거다. 지극히 주관적인 것이 보편적인 것이 될 수도 있구나 싶다.”
―개인적 취향으로 어떤 시를 가장 좋아하나.
“김소월과 백석 좋아하는 거 보면 쓸쓸한 시 좋아하는 것 같다. 김종삼 시도 좋아한다. 나태주도 넣어야 하나? (웃음) 연재할 때 아버지가 절대 당신 딸인 거 티 내지 말라며 ‘내 시는 쓰지 말라’ 하셨다. 그래서 안 썼는데 5년쯤 됐을 때 ‘그만두기 전에 내 건 한번 써야지?’ 하시더라. 쓰지 말란다고 진짜 안 쓰냐면서. 그래서 하나 썼다.”
나 교수는 동아일보에 나태주 시인의 ‘시’를 소개하며 “나는 이 시인을 아주 잘 알고 있는데, 내가 알기로 이 시인의 소원은 단 한 가지밖에 없다. ‘세상이 덜 아팠으면 좋겠다’는 것”이라고 썼다.
―충남에서 평생 초등학교 교사로 근무하며 시를 썼던 아버지를 ‘스승이자 선배’라 표현했다. 10년 연재 마무리를 아쉬워하진 않으셨나.
“매주 오전 7시면 ‘어떤 표현이 참 좋다’ ‘시보다 해설이 좋다’ 같은 문자가 와 있었다. 아버지는 명문가(名文家)의 조건으로 ‘글을 빌리지 않는다’는 걸 내세우신 분이었다. ‘쌀이나 돈을 빌리지 않는다’가 낫지 않나. 무엇보다 우리가 명문가가 아닌데 왜 명문가가 되려 하나. 하지만 아버지는 그만큼 글이 중요하신 분이다. 내가 글 쓰는 걸 엄청 자랑스럽게 생각하신다. 연재도 계속하라고 하셨는데, 나는 박수칠 때 간다는 입장이었다.”
―‘지친 마음에는 한 편의 시라도 달다’고 했고, ‘시의 끄트머리를 잡고 일어선다’고 했다. 시가 주는 위로란 건 어떤 건가.
“독일 철학자 발터 베냐민이 자본주의에 살고 있는 우리는 ‘집어등을 쫓아가는 오징어 떼’라고 했다. 시는 집어등을 향해 나아가는 자본주의 속성과 반대되는 것이다. 잠시 멈추게 한다. 다들 죽을 줄 알면서도 달리는 건데, 시가 잠시 브레이크를 건다. 오징어의 정신건강과 생존을 위해 필요한 것, 그런 게 시랄까.”
―시가 읽히지 않는 시대지만, 시가 주는 위안에 대한 갈망은 분명히 존재하는 것 같다.
“맞다. 아버지 시 ‘풀꽃’이 뜬 것도 ‘학교’란 드라마에 나오면서였다. ‘남자친구’, ‘시크릿 가든’에도 감각적 연출과 잘 맞는 시가 소개돼 인기를 끌었다. 시는 사실 굉장히 대중적일 수 있다. 그런데 우리 시에 문단과 경향, 역사가 있으니까 어렵게 느낀다. 아름다운 음악을 듣듯 즐기고 싶은 이들에게 젊은 시는 어렵고, 옛날 시는 고리타분하게 느껴진다.”
―그런 이들을 위해 조언을 해준다면….
“앤솔로지 시선집을 추천한다. 각 시대마다 유명한 문인들이 엮어 둔 동서고금의 시선집이 다양한데, 마음에 드는 시를 찾을 빈도가 높아질 것이다. 나도 앤솔로지 덕을 많이 봤다. 마치 골동품 매장을 돌아다니다 ‘이건 이 가격에 팔릴 물건이 아닌데?’ 싶은 걸 찾아낸 듯한 즐거움이 있다.”
나 교수는 대중의 눈높이에 맞춰 시를 읽어 주는 시 큐레이터이기도 하지만, 다양한 매체에 출연하며 ‘문해력계의 오은영 박사’로도 불린다. 고3, 중1이 되는 두 자녀를 키우는 그가 ‘엄마의 마음’으로 전해 주는 국어공부법에 엄마들이 열광한다. 최근엔 초등학생 대상 ‘나민애의 문해력 게임’을 펴내는 등 아이들의 문해력 향상에도 팔을 걷어붙였다.
―서울대 강의평가 1위를 하는 등 19년간 학생들에게 글쓰기를 가르쳤다. 서울대생들도 과거와 비교해 문해력에 차이가 있나.
“크게 차이 안 난다. 그래서 더 ‘서울대 들어오려면 읽는 게 기본이구나’ 생각하게 된다. 오히려 상위권 아이들은 예전보다 더 읽는다. 문해력도 양극화돼 가고 있다. 중산층이 없어지는 것처럼, 읽는 아이들은 더 읽고 안 읽는 아이들은 아예 못 읽는다.”
―독서교육과 문해력은 왜 중요한가.
“표현의 한계가 마음의 한계이기 때문이다. 표현의 범위를 넓히는 게 생각의 지평을 넓히는 길이다. 내 단어가 가서 꽂히는 데까지가 내 영역이다. 그 영토가 줄어드는 건 생각의 치매 같은 거다. 소설과 시를 읽으며 더 예쁜 단어, 더 좋은 단어를 많이 가지고 있어야 한다.”
―문해력을 높이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
“읽는 것밖에는 답이 없다. 엔비디아와 SK하이닉스에서 진짜 승자는 장기투자한 사람들 아닌가. 독서도 그렇다. 유치원 때부터 고3 때까지 15년 장기투자다. 텔레그램 주식방에 단타로 돈을 빨리 벌게 해주는 방법이 판치지만 거기서 살아남은 개미는 없다. ‘ETF 사모으는 마음으로 책 읽힌다’고 생각해 봐라. 결국은 우상향한다. 제발 어디 가서 사기당하거나 멘털 흔들리지 마시고, 지수 붙잡고 가셔라.”
―문학평론가, 시 해설가, 독서전문가. 이름은 다르지만 대중과 글을 연결해 준다는 점에서 같은 역할 같다.
“맞다. 나는 시인의 딸이고 대한민국에서 살아갈 아이들의 엄마다. 우리 애가 말귀 잘 알아듣는 보통의 평범한 사람으로 컸으면 좋겠다. 박완서 선생님이 사위를 찾을 때 그냥 평범한, 보통의 사고를 하는 상식적인 사람을 찾으려고 돌아다녔는데 그게 그렇게 어렵더라 했었다. 성과 사회엔 이상한 빌런이 많다. 하지만 문학책 읽으며 울고, 인생의 소설도 있고 한 사람이라면 나쁜 짓은 안 할 것 같다. 시 해설이 우리 아버지 같은 사람이 잊혀지지 않기 위해 한 과거의 프로젝트라면, 문해력은 미래를 위한 프로젝트다. 그래야 그 아이들이 잘 자라서 우리 며느리, 사위가 되겠지. 다 사심으로 하는 거다.”
―앞으로 하고 싶은 역할이 있다면….
“비타민C도 몸에 좋은 거 알지만 사 놓고 안 먹는다. 책도 그렇다. 누가 자꾸 나와서 ‘비타민 드세요’ 해야 먹듯이, 자꾸 ‘같이 읽읍시다’ 말해줘야 읽는다. 보는 사람은 읽는 사람을 절대 못 이긴다. 사실 여기에도 사심이 있다. 초등학생 대상 ‘문해력 게임’을 쓴 건 우리 애가 제발 ‘흔한남매’ 좀 그만봤으면 해서였다. 중고등학생 대상 ‘EBS 나의 두 번째 교과서’로 고전 강의한 것도 ‘엄마가 찍은 거면 보겠지?’ 싶어서였다. 요즘 수능 지문 수준을 보면 우리 애가 풀 수 있을 것 같지가 않아서….”
그에게 마지막으로 요즘 읽기 좋은 시 한 편을 앙코르 느낌으로 추천해 달라고 했다. 그는 묻자마자 “생각나는 시가 있다”고 했다.
‘독락당(獨樂堂) 대월루(對月樓)는/벼랑 꼭대기에 있지만/예부터 그리로 오르는 길이 없다./누굴까, 저 까마득한 벼랑 끝에 은거하며/내려오는 길을 부숴버린 이.’(조정권의 시 ‘독락당’)
“개학 전 이 무렵 애들은 방학이라 집에 있지, 날은 춥지, 부산하고 어수선하잖아요. 단절된 곳에 가서 혼자 좀 조용히 있고 싶어요. 근데 그게 안 되니까 지하 주차장에 주차해 놓고 10분간 안 올라가면서 생각하는 거죠. 여기가 나의 ‘독락당’이다….”
나민애 서울대 교수
△1979년 충남 공주 출생 △2007년 ‘문학사상’ 신인평론상 △2013년 서울대 국어국문학 박사 △2013년∼서울대 학부대학 교수 △2015∼2025년 동아일보 시평 ‘시가 깃든 삶’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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