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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08년 10월 28일 02시 59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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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삼(YS) 전 대통령과 정일권 전 국회의장, 이회창 전 한나라당 총재 등 거물 정치인의 비서실장을 지낸 신경식 전 한나라당 의원이 자신이 겪은 정계 비사를 엮은 회고록 ‘7부 능선엔 적이 없다(사진)’를 최근 펴냈다.
4선인 신 전 의원은 30여 년 동안 묻어뒀던 정치권의 뒷얘기를 소상하게 밝혔다.
특히 YS 정부 때인 1994년 이회창 총리의 사퇴 전말은 흥미롭다.
신 전 의원은 회고록에서 “청와대에 올라오는 보고에 의하면 이 총리가 김 대통령과 독대한 장관들에게 ‘무슨 이야기를 나눴는지 자신에게 보고하라’고 지시했다”며 “대통령이 단독으로 받는 것이 관례인 안기부장 정세 보고도, 대통령이 외유 중일 때 총리가 안기부장에게 업무 보고를 요구한 것으로 알려졌다”고 말했다.
두 사람의 관계는 청와대가 통일안보정책조정회의를 신설하는 과정에서 이 총리가 “안건은 총리 승인을 받도록 하라”고 지시함으로써 파국을 맞았다. YS는 이 총리를 불러 “지금 당장 사표를 내지 않으면 해임하겠다”고 호통을 쳤고, 그 소리가 비서실에까지 들렸다고 한다. 이 총리는 청와대에서 나온 뒤 바로 사표를 보냈다.
신 전 의원은 “청와대에서 경질을 발표하기 전 이 총리는 ‘사표를 내버렸다’고 언론에 밝혔고, 지금도 해임이었는지 소신이었는지 양쪽의 말이 다르다”고 전했다.
일순간에 총리가 뒤바뀐 사연도 눈길을 끈다.
1988년 12월 초 민정당 원내총무이던 김윤환 전 의원은 국회 운영 사항을 노태우 대통령에게 보고하기 위해 청와대에 갔다.
보고를 하기 직전 노 전 대통령은 인터폰을 통해 비서실에 “아직도 연락이 안 되었나?”라고 물었다. 노 전 대통령은 김 전 의원에게 “국무총리를 바꾸기로 했다. 최경록 장군을 임명하려고 하는데 연락이 안 된다”고 했다.
이에 김 전 의원은 “최 장군도 좋지만 강영훈 장군은 어떻습니까” 하고 자신의 생각을 전했다. 노 전 대통령은 “강 장군? 음, 그분도 좋지”라고 답변하고 잠시 후 인터폰을 통해 “최경록 장군 찾지 마라. 됐어”라고 지시했다. 결국 노태우 정부 2기 총리는 강영훈 씨로 결정됐다고 신 전 의원은 밝혔다.
길진균 기자 leo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