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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08년 10월 28일 02시 59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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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봄 “국내 퓨전밴드의 출발”
김=1988년 6월에 데뷔 음반 ‘봄여름가을겨울’을 냈는데 12월 31일까지 방송에서 불러주지 않아. 방송을 한 번밖에 안 탔으니 망했구나 싶었죠.
전=그러다가 한영애 씨 콘서트에 게스트로 나갔어요. ‘항상 기뻐하는 사람들’을 부르고 내려오려는데 관객의 박수가 장장 3분이나 이어지는 거야.
김=이런 독특한 반응은 처음이었어요. 산사에서 바람소리가 나는 것처럼 나지막이 따라 부르는데 소름이 쫙.
전=대중의 반응을 모른 채 우리만 꽃샘추위에 떨고 있었던 거죠. 봄은 이렇게 부지불식간에 슬며시 왔어요. 당시 제작자가 음반이 잘나간다고 귀띔만 해줬어도 좀 더 비싸게 계약하는 건데….
○ 여름 “샘솟는 음악”
김=2집부터 4집까지, 한마디로 고삐 풀린 때였죠. 음악도 샘물처럼 솟아나왔어요. 반면에 멤버 간의 견해차도 가장 심했던 시기였어요. 전 최신 음악의 흐름인 일렉트로닉펑크를 원했지만 태관이는 레트로펑크를 주장했거든. 결국 황소고집 태관이를 꺾지 못해 5집부터는 실제 연주로 모아졌어요.
전=우린 작곡가이기도 하지만 연주자잖아. 컴퓨터로 찍어내는 음악은 결과는 좋을지 몰라도 과정이 중요하다고 생각했어요.
○ 가을 “가을바람처럼 떠나는 관객들”
김=1995년에 서울 잠실학생체육관과 부산 사직운동장에서 공연이 예정돼 있었어요. 1만 명을 예상하고 미국에서 연주자까지 불러 모았는데….
전=기획사가 공연을 5일 남기고 도망가 서울엔 2000명, 부산엔 300명이 왔습디다. 공연포스터는 한 장도 안 붙었고 예매처는 한 군데였죠.
김=그때 공연이 정말 비장하지 않았니? 넌 심각하게 그만두자는 얘기까지 했잖아. 아무래도 그때가 우리의 ‘인디언 서머’ 아니었을까 해요. 절망 속에 내려온 한줄기 희망은 아무런 홍보 없이 찾아온 진성 관객이었어요.
○ 겨울 “언제나 겨울, 그리고 다시 봄”
김=1997년 발표한 베스트 음반에 ‘언제나 겨울’이라는 곡을 실었는데 늘 추웠죠. 가수는 곡 이름을 따라 간다는 게 괜한 소리가 아닌가 봐요.
전=그러다가 7집 ‘브라보 마이 라이프’(2001년)가 터진 거지.
김=2003년 한 해 통틀어 제일 많이 방송에 나온 노래였어요. 월드컵이 있던 2002년에도 ‘오! 필승 코리아’보다 횟수가 많았으니 팬들이 히트곡을 만들어준 셈이죠.
전=그러고 보니 정말 가수는 가사 따라가나 봐. “그리 좋지는 않지만 그리 나쁜 것만도 아니었어. 브라보 마이 라이프. 지금껏 달려온 너의 인생을 위해.”
염희진 기자 salthj@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