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성규 신부, ‘고향 성당’ 기원 44년만에 이루다

  • 입력 2005년 12월 26일 03시 04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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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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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소 꿈꿔 오던 일을 이제야 실천하게 됐습니다.”

22일 고향에 성당을 짓는 데 써 달라며 천주교 광주대교구에 10억 원과 1억5000만 원 상당의 토지를 기탁한 광주 동구 학운동성당 이성규(59·사진) 주임신부는 25일 성탄 미사를 마친 뒤 “그리스도의 사랑을 실천했을 뿐”이라고 말했다.

그는 광주 광산구 수완동이 고향. 1988년 이전까지는 전남 광산군에 속한 오지 마을이었다. 독실한 가톨릭 신자였지만 마을 인근에 성당이 없어 4km 떨어진 비아 공소(현 비아동 성당)를 다녔다.

‘우리 동네에 성당이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지만 어린 소년이 성당을 짓기란 불가능한 일이었다.

마음속으로만 품고 있던 꿈은 40여 년이 흐른 뒤 현실이 됐다. 부모에게서 물려받은 고향 마을 땅이 택지로 개발되면서 거액의 보상금을 받았기 때문.

이 신부는 토지보상금 9억 원에다 1980년 5·18민주화운동 보상금을 합쳐 10억 원을 내놨다. 전남 나주시 영산포에 있는 땅 200평(시가 1억5000만 원)도 함께 기증했다.

영산포 땅은 1990년대 소외된 노인을 위해 양로원을 지으려 매입했는데 계획대로 되지 않아 이번에 함께 내놓게 됐다.

그의 별명은 ‘구두쇠’와 ‘깍쟁이’. 전기와 수도를 아껴 쓰라고 주변 사람에게 매일 잔소리를 하고 본인 스스로도 실천한다.

1975년 사제품을 받은 그는 1980년 당시 육군 제7사단 군종 신부로 있을 때 미사를 보면서 “신군부가 광주를 무력으로 진압했다”고 발언해 합동수사본부에 끌려가 40일간 구금됐다.

이 신부는 “민주화운동 보상금과 토지 보상금을 받았으나 항상 부담을 느꼈다”며 “이번에 수완동에 성당 터가 나왔다는 얘기를 듣고 대교구에 맡겼다”고 말했다.

그는 “1961년 세례를 받으면서 기도했던 일이 이제 곧 이뤄지게 됐다”며 “앞으로 지어질 성당이 많은 사람이 모여 함께 기도하고 사랑을 실천하는 장소가 됐으면 좋겠다”고 웃었다.

광주=정승호 기자 shju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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