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한국사회 데뷔&아듀

  • 입력 2005년 12월 20일 03시 04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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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성과 소멸.’ 차면 기우는 것이 세상사의 이치라고 했던가. 올 한 해 많은 것이 우리 곁을 떠나갔다. 그리고 동시에 또 많은 새로운 것이 태어나서 다가왔다. 2005년 한 해도 우리 사회에서는 끊임없이 무엇인가가 사라져 가고 새로 태어났다. 이들은 왜 역사 속으로 사라졌고, 어떻게 새롭게 생겨났을까. 그 절절한 ‘생성과 소멸’의 사연을 들어 보면 2005년 한국 사회가 어떻게 흘러왔는지, 시대의 변화를 읽어 낼 수 있지 않을까.》

▼새로 탄생한 것들▼

올해 찾아온 우리 사회의 새 식구 가운데 가장 많은 사람을 기쁘게 한 것은 청계천이 아닐까. 복개돼 콘크리트 밑으로 사라진 지 44년 만에 서울 도심의 물줄기가 되살아난 것이다. 청계천 방문객은 복원된 지 58일 만인 11월 27일 1000만 명을 돌파했다. 이에 앞서 올해 6월엔 35만 평 규모의 서울숲이 서울 성동구 성수동에 조성됐다.

10월 28일 개관한 서울 용산의 새 국립중앙박물관도 개관 44일 만에 관람객 100만 명을 넘어서는 등 사랑을 듬뿍 받는 새 문화명소로 자리 잡았다. 국립중앙박물관은 세계적인 규모로 우리나라 문화유산을 체계적으로 보존 전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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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 축구선수 박지성이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 명문구단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에 입단해 한국인 최초의 프리미어리거 1호가 된 것도 즐거운 소식이었다.

방송 문화 분야에서도 탄생이 잇따랐다. 위성 및 지상파 디지털멀티미디어방송(DMB) 서비스 시작과 지상파 TV의 평일 낮방송 개시가 그것이다. 걸어 다니는 TV로 불리는 DMB의 경우 위성은 5월부터, 지상파는 12월부터 서비스가 시작되면서 TV 시청 형태의 일대 변화를 예고했다. 하지만 낮방송 허용은 집권세력의 ‘친여 매체 봐주기’가 아니냐는 논란 속에서 재방송 편성 등으로 구설수에 오르기도 했다.

한편 사회의 갈등과 편 가르기를 불러올 것이라는 우려 등과 찬성 의견이 양립하는 가운데 친일진상규명위원회와 진실과 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가 각각 연초와 연말에 출범해 활동에 들어갔다.

올해 처음 시행된 종합부동산세도 찬반양론 속에 연말까지 꼬리를 무는 논란을 낳았다.

화폐의 위조 및 변조행위가 날이 갈수록 극성을 부리자 이를 막기 위해 새로운 도안의 5000원권 지폐도 등장했다. 지폐의 도안과 크기를 바꾼 것은 1983년 이후 22년 만의 일. 내년 1월부터 본격적으로 시중에 유통될 새 지폐는 지금의 것보다 크기가 작고 도안이 크게 바뀌었으며 위변조 방지기능이 보강됐다.

‘실용주의’라는 시대의 키워드를 반영하듯 30, 40대용 청바지 매장이 등장한 것도 이색적이다. 또 미용과 외모에 관심을 가지는 남성이 늘어나는 추세를 반영해 남성 네일케어숍과 마사지실이 서울 중구 신세계백화점 본점에 들어섰다.

그러나 한 해를 마감하는 지금, 올해 들어 화려하게 태어난 것 가운데 백척간두의 위기에 처한 것이 있다. 바로 사이언스에 소개됐던 황우석 서울대 석좌교수의 환자맞춤형 배아줄기세포 연구 결과다. 현재 진행되고 있는 검증 결과 황 교수가 내놓은 성과물들이 당초 탄생을 고할 때의 그 감격처럼 ‘2005년의 자랑스러운 생성물’로 기록될 수 있을지, 아니면 졸속으로 태어났다가 사라진 씁쓸한 기억으로 남을지 많은 사람이 초조한 마음으로 지켜보고 있다.

▼사라져 버린 것들▼

암울했던 시대의 사생아로, 혹은 불가피했던 부산물로 생겨났던 여러 현장이 올해 들어 사라졌다.

“탁하고 치니 억하고….” 서울대생 박종철 군 고문 치사의 현장으로 국민의 뇌리에 씻을 수 없는 아픔을 남긴 서울 남영동 대공분실. 그 악명 높은 고문의 현장이 올해 7월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치안본부(현 경찰청) 대공과가 입주한 지 29년 만의 일. 올해 8월 사라진 경북 청송감호소 역시 반인권적인 형벌 정책의 상징적 공간으로 비판받아 왔던 곳이다. 1980년 신군부의 국가보위비상대책위원회에서 사회보호법이 제정된 이후 25년 동안 1만3000여 명이 보호감호를 받았고, 그 과정에서 인권 침해 논란이 끊임없이 제기돼 왔다.

결국 청송감호소는 일반 교도소인 청송 제3교도소로 바뀌었다.

8월 경기 화성시 매향리 미군사격장의 폐쇄도 과거와의 결별을 알려 주는 소식이었다. 1951년 미국 공군 전투기의 폭격 훈련장으로 사용된 이래 54년 동안 비행기 소음과 오폭 위험을 안고 살아온 매향리 주민들은 현재 이곳을 분단의 아픔을 넘어 평화의 공원으로 만들겠다는 희망에 부풀어 있다.

휴전선 일대에 설치돼 있던 대북 선전용 스피커도 모두 철거됐다.

역시 시대의 변화에 따른 것이지만 많은 사람을 안타깝게 하는 사라짐도 적지 않았다. 대표적인 것이 농가 소득을 뒷받침해 주기 위해 정부가 벼를 시가보다 높은 가격에 사 주던 추곡수매제도. 1950년 양곡관리법을 제정해 도입한 지 55년 만에 이 땅에서 사라진 것이다. 이로 인해 농민들은 더욱 힘겨운 한 해를 보내야 했다.

20세기 초에 지어진 유서 깊은 건물들도 잇따라 사라졌다. 9월엔 한국 최초로 증권 거래가 이뤄졌던 서울 명동의 옛 대한증권거래소 건물이 철거되더니 12월엔 70년간 영화만을 상영해 온 명물이었던 서울의 스카라극장 건물이 철거되었다.

방송가에선 불미스러운 사고나 불공정한 운영으로 인해 사라진 프로그램들이 적지 않았다. 특히 ‘신강균 뉴스서비스 사실은’, ‘음악캠프’, ‘가요콘서트’ 등 MBC의 프로그램들이 각종 불미스러운 사태에 휩싸이며 폐지 또는 중단됐다.

또한 1995년 8월 발사됐던 국내 최초의 상용위성 무궁화 1호가 10년 4개월간의 임무를 마치고 우주 공간 속으로 사라져갔다. 발사 당시 보조로켓 하나가 분리되지 않아 어려움을 겪어야 했던 무궁화 1호. 비록 위성은 사라졌지만 이를 통해 확보한 수많은 위성 관련 정보는 한국의 항공우주산업에 커다란 도움이 될 것으로 기대된다.

올해 3월 호주제를 폐지(완전 실시는 2008년부터)하는 민법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한 것도 시대의 변화를 그대로 보여 준 경우였다.

이광표 기자 kple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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