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읽는 대한민국/21세기 新고전 50권]<28>상도-최인호

  • 입력 2005년 9월 9일 03시 39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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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평생을 살면서 한 분야에서 일가를 이룬 인물을 만날 수 있다는 것은 큰 행운이자 기쁨이다. 의주 상인 임상옥의 일대기를 담은 최인호의 장편소설 ‘상도’와의 만남은 기업을 경영하는 나에게는 바로 그런 의미로 다가왔다.

거상 임상옥은 죽기 직전 자신의 재산을 모두 사회에 환원하였고, ‘재물은 평등하기가 물과 같고, 사람은 바르기가 저울과 같다’는 유언을 남겼다. 이는 오늘을 사는 기업인들에게 사심(私心)보다는 공심(公心)을 가지고 경영에 임하라는 중요한 사표(師表)를 던져 줌과 동시에 끊임없는 결단의 순간을 맞게 되는 현대의 기업 경영자에게 리더십에 대한 몇 가지 덕목도 제시해 준다. 임상옥이 석숭 큰스님을 만나서 받은 ‘죽을 사(死)’와 ‘솥 정(鼎)’과 ‘계영배(戒盈杯)’의 세 가지 활구(活句)가 바로 그것이다.

첫 번째, 베이징 인삼 상인들의 불매동맹에 맞서 ‘죽을 사’의 가르침에 따라 인삼을 불태움으로써 어려운 고비를 극복해 낸다. 예고 없이 찾아오는 절체절명(絶體絶命)의 순간에 ‘필사즉생 필생즉사(必死卽生 必生卽死)’, 즉 ‘반드시 죽기를 각오하면 살 것이요, 반드시 살기를 꾀하면 죽을 것이다’라는 교훈을 지킨다. 경영자는 ‘소명의식(召命意識)’을 지녀야 한다는 것을 일깨우는 대목이다.

두 번째, 홍경래가 임상옥의 상가에 점원으로 들어와 혁명에 끌어들이려 할 때, ‘솥 정’자의 의미를 새겨 권세의 꿈을 접음으로써 상인인 자신의 분수를 지킨다. 도가(道家)에서는 지위, 명예, 재물 등을 삼욕(三慾)으로 보고 솥의 세 발과 같은 것이라 했는데, 이것을 다 소유하려 하면 솥이 쓰러지거나 뒤집힌다고 하여 제 분수를 알아야 함을 강조한다. 이는 경영자가 공심을 지녀야 한다는 것을 일깨우는 대목이다.

마지막으로 옛 친구 이희저의 홍경래의 난 가담과 관련해서 멸문지화(滅門之禍)의 위기에 처한 임상옥은 ‘계영배’가 지닌 화두로 위기를 모면한다. ‘계영배’는 춘추오패의 한 사람인 제나라 환공이 생전에 자리 오른쪽에 두고 항상 넘치는 것을 경계했다고 하여 좌우명(座右銘)이라고 일컬은 술잔처럼 잔의 70% 이상 술을 채우면 술잔이 비워지는 것으로 ‘가진 것을 가득 채우려 함은 그만 그치는 것만 못하다’는 교훈을 담고 있다. 이는 경영자는 중용(中庸)을 지켜야 한다는 것을 일깨우는 대목이다.

필자는 얼마 전에 조선 백자와 분청사기 부문의 명장인 항산 임항택(恒山 林恒澤)님을 만날 기회가 있었다. 항산 선생은 필자에게 ‘구름을 경작하는 마음으로 살라’는 뜻으로 운경(雲耕)이라는 호(號)를 지어 주었다. 구름이란 세상, 회사, 그리고 자신일 수도 있으며, 서두르지 않고 좋은 씨를 골라 정성껏 심고 가꾸는 농부의 마음으로 세상을, 회사를, 자신을 경작하라는 의미로 필자는 받아들였다.

거상 임상옥이 보여 주었던 ‘상인의 길’은 곧 오늘날의 경영자에게 소명의식과 공심과 중용을 지키는 것이 참다운 경영의 길이라는 준엄한 교훈을 던져 준다. 200여 년 전 상인으로 일가를 이룬 임상옥이 지녔을 정신으로 여겨지는 3가지 덕목도 결국은 ‘자신을 경작하는 것’부터 시작되는 게 아닐까. 최인호의 ‘상도’가 이 시대 경영자에게 소중하게 읽히는 것도 그런 까닭일 것이다.

조운호 웅진식품 대표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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