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재미작가 이창래 프랑스서도 떴다

  • 입력 2001년 10월 22일 18시 27분


미국 문단에서 높은 평가를 받고 있는 재미동포 2세 소설가 이창래(36)씨의 작품이 최근 프랑스에서도 집중 조명을 받고 있다.

영어로 쓰여진 이씨의 대표작 ‘제스처 라이프’(1999)가 지난 8월 ‘과거속의 희미한 불꽃’(사진)이란 제목으로 프랑스어로 번역되어 올리비에출판사에서 출간되자마자 프랑스 매스컴의 반응이 뜨겁다. 출간 두 달만에 최대 일간지 르 몽드, 일급 주간지 렉스 프레스와 누벨 옵세르바퇴르 등 10여개 주요 언론 매체가 이씨의 소설을 크게 다뤘다.

지난해 국내에서도 번역 출간된 ‘제스처 라이프’는 미국 중산층 이민자인 주인공 프랭클린 하타를 통해 이방인의 정체성을 탐구한 소설. 일제시대 조선에서 태어난 뒤 일본에 입양된 하타는 2차대전때 일본군 위생병으로 미얀마에 파견됐고, 거기서 인간 이하의 대우를 받는 한국인 군대위안부 ‘끝애’를 돕지못한 죄책감에 평생 시달린다. 한국 혼혈아를 입양해 속죄하려하지만 자신이 평생 키워온 것은 “공손한 매너와 제스처뿐인 인생”임을 깨닫는다는 내용이다.

‘네이티브 스피커’(1995)에 이은 이씨의 두 번째 소설 ‘제스처 라이프’는 미국에서도 발표되자마자 뉴욕타임스 주말판 ‘북리뷰’의 표지로 선정될 만큼 크게 주목받았다. 빼어난 문장 구사, 서정적이면서도 신랄한 묘사, 독특한 이야기 구조와 문체 등이 신선했다는 평.

프랑스 언론매체들은 국외자의 정체성을 다룬 소위 ‘이민문학’이란 관점에서 ‘제스쳐 라이프’를 높게 평가하고 있다. 르 몽드는 8월31일자 기사에서 “이창래는 의무와 예의를 지키며 살아야하는 앵글로섹슨 사회의 이방인이 가진 강박관념을 섬세하면서도 냉철하게 묘사한다”고 보도한 것이 한 예다. 이런 평가는 지난해와 올해 노벨문학상을 받은 가오싱젠과 나이폴, 올해 영국의 대표적 문학상인 부커상을 받은 피터 캐리 등 최근 ‘이민 문학’에 대한 세계 문단의 관심을 반영한 것으로 보인다.

프랑스 평단은 소설의 내용 못지 않게 ‘제스처 라이프’의 문체의 빼어남을 격찬했다. 주간 렉스프레스(9월12일자)는 이 소설을 “고통과 감성의 생생함 속에서 다듬어진 다이아몬드와 같다. 완벽한 각본, 고통스럽지만 리드미컬한 문체가 폐부를 찌른다”고 평가했다.

이씨가 유럽에서도 대성해 세계적인 작가로 발돋움할 가능성을 조심스레 기대해 볼 수 있는 대목이다.

한가지 독특한 것은, 여러 매체가 이씨 작품의 아름다운 문체를 미시마 유키오(三島由紀夫)의 작품에 견준 것이다. 1970년 할복 자살한 극우 소설가인 미시마는 프랑스에서는 가장 아름다운 산문을 구사하는 동양 작가로 평가받는다.

파리에 거주하는 임준서 교수(프랑스 파리7대학 동양학부)는 “이씨 소설이 간접적으로 소개하는 ‘일제 군대위안부 문제’가 프랑스 독자에게 한일 과거사의 비극성을 환기시켜 주었다는 점도 의미있는 성과”라고 말했다.

<윤정훈기자>digan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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