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진규 '지원의 얼굴' 실제 모델 제자 장지원씨

  • 입력 2000년 5월 3일 19시 36분


국내 조각계에 뚜렷한 발자취를 남긴 권진규(1922∼1973). 그는 두상(頭像)과 동물조각을 통해 리얼리즘 기법속에 고도의 긴장감을 표현한 것으로 현재 높은 평가를 받고 있지만 생존 당시에는 자신의 작품세계를 몰라 주던 현실에 절망해 목을 매 자살했다.

대표작으로는 ‘자각상(自刻像)’과 ‘지원의 얼굴’ 등이 꼽힌다. 이들은 무거운 침묵을 통해 내면의 빛을 조용히 드러내는 경건한 분위기를 띠고 있다는 평을 받고 있다.

‘자각상’은 자신의 모습을 표현했지만 ‘지원의 얼굴’은 누구를 모델로 했을까. 당시 홍익대 2학년에 재학중이던 그의 제자 장지원이었다. 3일부터 16일까지 서울 종로구 인사동 선화랑에서 개인전을 갖는 그가 최근 기자들과 만나 당시의 상황을 담담하게 털어놨다.

“1966년 서울 성북구 돈암동 언덕에 있던 권선생님의 작업실에서 1주일에 2회, 모두 2개월여 동안 모델을 했습니다. 작업실이 딸린 집 마당에 깊은 우물이 있었고 매우 적막한 분위기였죠….”

그는 당시 홍익대 강사였던 권진규가 스승으로서 자신에게 큰 관심을 갖고 지도해주었다고 회상했다.

“모델을 하던 당시 석양 빛이 스며들던 그 고요한 분위기가 지금도 생각납니다. 권선생님은 고귀한 정신의 세계를 표현하려 했던 것 같아요. 그러나 너무나 고독했지요.”

리얼리즘으로 대상의 핵심을 표현하며 고고한 정신세계를 추구한 스승에 비해 장지원은 이번 전시에서 리얼리즘기법에서 벗어나 표현 대상을 심상에 따라 변화시키며 밝고 따뜻한 분위기의 작품을 보여주고 있다.

그는 “꽃과 새 나무 등 편안한 소재를 택해 마음의 평안을 느끼게 하는 작품을 만들고 싶다”고 말했다. 물감을 두텁게 칠해 깊은 곳에서 배어 나오는 색감속에 밝은 분위기를 표현한 작품들이다. 그는 “마음이 괴로울 때는 그림을 그리지 않는다”고 했다.

그는 홍익대 졸업후 캐나다 온타리오 미술대학 서양화과와 성신여자대학교 대학원 서양화과를 졸업했다. 6번의 개인전을 열었고 100여회의 단체전에 참가했다. 남편인 서양화가 구자승과 5차례의 부부전을 가졌다. 02-734-0458

<이원홍기자>bluesk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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