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계기업 「약초」 여비서전성시대…모셔가기 경쟁

입력 1998-11-23 19:14수정 2009-09-24 19: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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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화여대 비서학과의 졸업반 학생들은 행복한 고민에 빠져있다. 다른 직종의 취업전선은 얼어 붙었지만 외국계기업의 국내 진출이 활발해지면서 여비서를 뽑겠다는 회사가 줄섰기 때문. 학과장인 조계숙교수는 “요즘 하루 6,7개 회사에서 취업의뢰가 들어오고 있다”며 “골라갈 수 있으니 취업률이 100%가 아니라 수백%”라고 자랑. 대신 요구조건은 까다로와졌다. 영어 회화와 작문은 기본이고 인터넷홈페이지의 제작 관리 등 웹마스터의 자질까지 요구한다. 1인 다역(多役)의 능력이 필요해진 것. 경력비서는 더욱 인기. 개인능력에 따라 다르지만 헤드헌터업체에선 3년차 비서에게 연봉 2천5백만원 이상을 제시하기도 한다. 50대 비서 중에는 이사대우 비서도 있다.》

▼ 수퍼우먼 ▼

보스톤컨설팅그룹의 서광희씨(28)는 1주일에 3,4일은 야근. 영국인 부지사장의 비서역할 뿐 아니라 프리젠테이션물 제작업무도 함께 해야 하기 때문이다. 중요 컨설팅 결과의 프리젠테이션을 앞두고선 밤을 꼬박 샐 때도 있다. 전통적 비서업무 외에 다른 업무가 늘어난 데는 정보화가 한몫.

그랜드하얏트호텔의 정애경씨(36·대리)는 “직접 E메일을 주고받는 보스가 많아 옮겨 쓰는 타이핑은 사라지고 있다”고 설명. 최근엔 보스와 비서 간의 메모도 근거리통신망(LAN)을 통할 정도.

국내외 업체간의 인수합병이 잦아지면서 관련기업 비서는 덩달아 바빠졌다.한국존슨 비서실의 강임문씨(46·부장)는 지난 9월 ‘에프킬라’로 유명한 삼성제약 살충제부문을 인수할 때까지 반 년 동안 주말도 반납하고 근무.

다른 회사의 한 비서는 “얼마전 일요일 아침 회사로 나오라는 연락을 받고 생후 10개월 된 아이를 시댁에 맡기고 나오려니 가슴이 아팠다”고 털어놓기도.

▼ 비밀 ▼

비서(secretary)는 비밀(secret)을 다루는 사람. 업무상 최고경영자만이 아는 회사기밀도 자주 접촉, 회사 돌아가는 일을 ‘빠삭’하게 알고 있다. 그래서 비서는 회사 일을 빨리 배우기에 좋은 자리. 엘라이드시그널코리아의 윤영미씨(26)는 원래 경영대학원에서 인력관리를 공부해 석사학위를 땄으나 자신을 키우려는 회사측 권유에 따라 비서와 인사업무를 함께 하는 중. 하지만 기밀이 새면 비서는 1순위 용의자. 철저한 보안은 비서의 생명이라 컨설팅회사에서는 비서의 주식투자가 금지돼 있을 정도.

▼ 알라딘의 램프 ▼

말이 통하지 않는 외국인 보스에게 한국인 비서는 ‘램프의 마법사’. 견인당했으니 차 찾아달라, 하수도가 막혔다, 심지어는 지금 집에 불이 났다고 비서에게 전화한 경우도 있다. 이럴 때 119에 신고하는 것도 비서의 몫.

비서는 높은 사람을 모시기도 하지만 경력이 붙으면 높은 사람을 다룰 줄도 알게 된다. 여러 보스를 모셔보면 각자 경영스타일의 장단점에 대해 평가할 수 있기 때문.

보스와 비서가 잘 지내려면 서로 궁합이 잘 맞아야 한다. 부부싸움 하고나서 부인의 기분을 대신 파악해달라는 보스도 있다. 그러나 보스의 부인은 비서를 본능적으로 질투하는 수가 많다고.

로펌이나 컨설팅회사에선 간혹 비서가 변호사나 컨설턴트와 결혼하는 사내커플도 생긴다.

〈김홍중기자〉kimand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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