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포의 달러]금융시장-제조업체-서민가계『겁나는 매일』

  • 입력 1997년 12월 10일 20시 15분


《고환율 해일(海溢)이 기업 가계 금융시장을 걷잡을 수 없이 덮치고 있다. 재난에 대비, 방파제를 세우지 않은 탓에 피해가 눈덩이처럼 불어나고 있다.》 [마비된 금융시장] 국제통화기금(IMF)의 「긴급구조」에도 달러값은 하늘 높은줄 모르고 치솟아 외환 자금 주식 등 금융시장이 총체적인 마비상태에 빠졌다. 국내 금융기관의 부실화와 이에 따른 금융시스템의 붕괴가 외국인 투자자금의 이탈을 촉발, 환율폭등을 초래했는데 이제는 예측할 수 없는 환율때문에 외국인들이 투자를 미루고 있는 상황이다. 이번주 들어 원―달러환율은 1천3백원, 1천4백원선을 기세좋게 돌파하더니 10일에는 심리적인 저항선인 1천5백원선도 가뿐히 넘어섰다. 신용도가 떨어진 국내 시중은행들은 스스로 달러화를 구하지 못하고 연일 한은의 외환보유고에 기대고 있다. 국내은행으로부터 「금융기관」 대접을 받지 못하는 종금사들은 아예 국내 외환시장에서 달러화를 싹쓸이하고 있다. 정부가 14개 종금사의 업무를 정지하는 극단 처방을 내렸지만 동시에 이들 종금사로 부터 선물환을 받아야 할 금융기관들은 달러를 받지 못해 외화자금난을 더욱 가중시키고 있다. 금융기관과 기업은 당장 필요한 결제자금을 구하기 위해 외환시장으로 몰려들고 있지만 달러는 눈을 씻고 찾아봐도 구할 방법이 없다. 지금처럼 고금리 상황에서는 외국인들이 「달러보따리」를 싸들고 국내 금융시장으로 들어와야 하지만 이들도 환율급등에 놀란 나머지 좀더 지켜보겠다는 태세다. 외국인 주식투자한도가 11일 사실상 전면 개방되지만 현재의 금융환경에서는 약효를 기대하기 어렵다는 지적이다. [손놓고 있는 기업] 기업들은 환율의 고공행진에 넋이 빠진 상태. 연말은 무역업계로서는 새해 나갈 길을 결정하는 중요한 시기. 바이어들은 내년 수입물량을 확보하기 위해 우리나라를 속속 방한하고 있는데 정작 국내 수출업체는 이들과 수출상담을 하기가 겁난다. 한 무역회사 사장은 『바이어들은 환율이 많이 오른 점을 들어 물건값을 깎아달라고 요구하고 있지만 앞으로 환율이 어느 방향으로 튈지 분간이 안돼 가격 오퍼를 내지도 못하고 있다』고 걱정하고 있다. 무역협회 신원식(申元植)이사는 『수출네고 서류가 쌓이더라도 이를 현금화할 수 없어 흑자도산하는 수출업체가 속출하고 있다』면서 『저평가된 환율을 하루빨리 안정시킬 수 있는 특단의 대책이 시급하다』고 주장했다. 기업의 환산손(換算損·외화부채의 원화가격을 환율상승에 맞춰 재평가함에 따라 드러나는 손실)도 엄청나게 불어나고 있다. 지난 연말 기준 금융법인을 제외한 상장 제조업체의 순외화부채는 4백21억달러. 지난 연말 달러가치가 달러당 8백44원에서 10일 1천5백66원까지 폭등했기 때문에 대략 환산손은 30조4천억원(7백22원×4백21억달러)에 이른다. 지난 한해 상장제조법인 전체가 벌어들인 순익이 1조4천억원 규모였던 것을 감안하면 손실이 얼마나 큰지 짐작할 수 있다. 특히 대규모 시설자금을 외국에서 끌어쓴 정유 해운 항공업체 등이 큰 피해를 보고 있다. 올해 연 1조원이 넘는 순익을 올릴 것으로 예상하는 A사. 35억달러에 달하는 외화부채가 달러가 천정부지로 치솟으면서 2조6천억원 규모의 엄청난 환산손을 가져온 것으로 추정된다. [오그라드는 서민가계] 서민들이 환율폭등을 피부로 실감할 수 있는 부문은 물가상승. 환율이 10% 상승하면 소비자물가는 약 3개월의 시차를 두고 0.7%포인트가량 오른다. 원화가치가 작년말 대비 40%이상 폭락한 점을 감안할때 환율폭등으로 인한 소비자물가 상승은 약 2.8%포인트에 달한다. 에너지경제연구원은 환율상승 요인만 감안하더라도 내년초 휘발유 등 석유류 가격이 25.4% 인상돼 현재 9백23원인 휘발유 1ℓ가격이 1천2백원으로 상승할 것으로 내다봤다. 또 석탄은 20.8%, 가스는 15.7%, 전기는 9.7%가량 가격이 상승할 것으로 이 연구원은 추산했다. 이에 따라 한달에 평균 휘발유 2백ℓ와 전기 2백50Kwh를 사용하는 가구의 경우 내년초에는 에너지비용으로 지금보다 6만9천원가량을 추가 부담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지난달말 환율상승으로 석유류가격이 상승한데 이어 이달중으로 수입비중이 높은 식료품 등 공산품 가격이 일제히 상승할 조짐을 보이고 있다. 신동방 등 식용유업체들은 이달초 식용유가격을 9∼15% 올렸으며 유한킴벌리 쌍용제지 대한펄프 등 화장지회사들도 연내 가격인상을 검토하고 있다. 이와 함께 밀가루 설탕 등도 조만간 각각 7∼13%, 9∼11% 오르며 이 원자재를 사용하는 라면 과자 빵 음료수값도 동반상승할 전망이다. <이강운·박래정·이희성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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