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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1997년 5월 9일 20시 08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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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한국 여자다. 나는 열일곱살이다. 나도 당신들 처럼 가족이 있다」며 그녀는 큰 소리로 울음을 터뜨렸다』
미국에서 처음으로 정신대를 소재로 출판된 「종군위안부」라는 책의 한 귀절이다.
한 할머니의 쓰라린 과거를 기록한 이 책은 팽귄북출판사가 최근 단행본으로 출간했고 샌프란시스코의 한 신문이 이 내용을 특집으로 다루면서 미국인을 울리는 베스트셀러가 됐다.
이 책은 김순효라는 여자가 열두살 어린 나이로 일본군의 정신대에 끌려가는 장면부터 시작된다. 이 여자아이는 일본 군인들에 의해 「아키코」라는 새 이름으로 불리면서 그 작고 여린 몸에 부닥쳐 오는 인생의 험란한 파도에 찢기기 시작한다.
고통을 견디다 못한 그녀는 일본군 부대를 탈출해서 숨어 살다가 2차대전 종료와 함께 백인 선교사를 만나 결혼을 한다. 그리고 남편을 따라 미국으로 건너가 그 곳에서 딸을 낳았다. 남편과 헤어진 뒤 그녀는 딸 베카를 데리고 한국인들이 많이 산다는 하와이로 가 한국인들을 상대로 점괘를 봐주며 연명하는 힘겨운 생활을 계속한다. 이즈음 그녀는 정신대 시절의 악몽때문에 생긴 정신분열증에 시달려야 했고 그 영향으로 다섯살백이 딸 베카는 마음에 깊은 상처를 받는다.
『해변가에 앉아 바다를 들여다 보면서 매일 울었습니다. 내 엄마는 진짜 엄마가 아니에요, 새 엄마를 보내 주세요라고 용궁에 빌기도 했습니다. 나도 다른 아이들 처럼 엄마가 해주는 저녁밥을 먹고 싶어요』
베카의 말에서 정신대의 후유증과 고통의 멍에가 대물림하는 가슴아픈 얘기가 짙게 배어 나온다.
이 책의 작가는 하와이에 사는 노라 옥자 켈러. 그녀는 한국인과 독일인 사이의 혼혈인으로 서울태생.
미국문학을 강의해 온 작가는 지난 93년 어느날 우연히 한 정신대 할머니의 처절했던 인생강연을 듣고 『누군가가 이 문제를 다뤄야 한다고 판단했고 그래서 이 책을 쓰게 됐다』고 말했다.
〈뉴욕〓이규민특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