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80년대는 소모적인 것같이 보였지만, 지금에 와서 보면 단지 상실만은 아니었습니다. 80년대에 관한 한 뒤돌아보아도 우리에게 참괴감은 없습니다. 그러나 한 시대의 포악한 어둠을 걷어내고 떳떳하게 이어준 그 푸르던 청년들은지금 왜 아무 곳에도 없을까요?"
문학동네(대표 강태형)가 제정한 문학동네소설상 제2회 수상자로 신예작가 전경린씨(35)가 선정됐다.
수상작은 80년대를 20대로 살았던 사람들, 특히 한 남자에 대한 사랑의 처절한 종말까지 나아가는 한 여성의 삶을 `생감자처럼 아린 문체'로 그린 장편소설 「아무 곳에도 없는 남자」.
95년 동아일보 신춘문예를 통해 등단한 전씨는 지난해 내놓은 첫 소설집 「염소를 모는 여자」로 문단의 주목을 받았으며 지난 연말에는 단편 <염소를 모는 여자>로 한국일보문학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비틀즈가 부른 에서 제목을 따온 그의 첫 장편소설 「아무 곳에도 없는 남자」는 민주화의 열망에 들떴던 80년대의 소용돌이 속에 투신한 이후 고통스럽게 떠도는 태인, 그를 따르는 여공출신의 활동가 정수, 지방도시의 잡지사 여기자로 태인과의 사이에 어린아이를 가진 이나, 이나를 사랑하는 잡지사의 부장 정서현 등 네 인물을 주축으로 펼쳐진다.
심사위원중 하나는 `후일담 소설'로 이 작품을 보았으나 작가는 이같은 틀을 거부하면서 "80년대적 인식이 소설의 모태였기는 하지만 한 시대보다는 매 시대가 갖는 운명의 보편성과 생의 불가능성 속에서, 사랑하는 사람들의 몇가지 모습에 관해 이야기하고 싶었다"고 밝힌다.
"80년대라는 시대상황속에서, 자기 소리를 내지 못하고 피동적이었던 한 여성이 자기정체성을 찾는 과정"을 그린 이 작품에서 작가가 이야기하고자 했던 것은 여주인공 이나의 방에 걸려 있는 초현실주의 화가 르네 마그리트의 그림속에 담겨 있다.
"얼핏 보면 창밖의 풍경같지만 다시 보면, 창밖 풍경의 일부는 캔버스에 그려진 그림이었다.
캔버스에 그려진 산의 가름선과 나무 한 그루와 황색 숲길이 창밖의현실과 한치의 어긋남도 없이 일치되어 있었다.
너무 투명해서 헛것을 잡는 듯도 하고, 너무 충만되어 전율이 이는 듯도 했다"는 이 그림이 표상하고 있는 현실과 꿈의괴리, 혹은 그 일치에 대한 열망이 소설의 주제.
다섯살짜리 아들을 둔 전업주부로 지방도시에서 평범한 일상의 삶을 꾸려가면서도 "우물의 끝같은 존재의 심연과 우리들이 꿈꾸는 상상력의 끝, 결핍된 자들이 그리워하는 그곳"에 관심을 갖고 있는 이 작가는 "생의 맨 얼굴과 정면으로 마주쳐 생이 품고 있는 지뢰와 거울뒤의 악의와 밤과 낮의 서로 다른 사랑을 알아내고자" 올해에도 또다른 장편과 단편들을 쏟아내놓을 모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