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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 함께]소설가 이순원씨 「아들과 함께 걷는 길」

입력 1996-10-23 20:53업데이트 2009-09-27 14: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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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鄭恩玲기자」 해발 8백35m의 대관령정상. 지난 5월 소설가 이순원씨(38)는 초등학 교 6학년인 맏아들 상우와 함께 대관령꼭대기에서 산자락의 고향마을(강릉시 성산면 이촌리)까지 굽이굽이 내리막길 60리를 걸었다. 6시간넘게 걸린 이 「특별한 여행」중 아들과 나눈 얘기를 이씨는 내주초 「아들 과 함께 걷는 길」(해냄 간)이라는 책으로 엮어낸다. 장르는 장편소설로 명명됐지만 책 내용은 이씨부자가 실제로 나눈 대화를 재구성한 것이다. 『책을 만들 생각은 없었어요. 그저 아들이 자라면 함께 대관령을 걸어보리라 오 래전부터 계획했지요. 걸으며 우리 집안얘기, 대관령에 관한 얘기, 무엇보다도 너를 사랑한다는 얘기를 하고 싶었습니다』 이씨에게 대관령은 특별한 의미를 지닌 봉우리다. 어린 시절 고향의 어른들이 대 관령을 넘어가는 모습을 볼 때마다 「언젠가는 나도 산 너머에 가서 파랑새를 찾으 리라」는 꿈을 꾸었던 것. 이제는 서울사람이 된 이씨는 아들에게 대관령길에 얽힌 조상들의 삶을 이야기한다. 『상우야, 대관령길은 중장비가 닦고 넓힌 게 아니야. 바로 네 고조 증조할아버지 그리고 할아버지가 일제시대에 강제로 동원돼 삽과 곡괭이로 돌 하나하나를 들어내 며 산허리를 파내 만든 거란다. 나라에도 역사가 있고 집안에도 역사가 있듯이 오래 된 길에도 역사가 있는 거야』 모처럼 아버지와 솔직한 이야기를 나누게 된 아들에게도 궁금한 게 많다. 아버지 와 풀이나 나무이름 맞추기를 하던 아들이 문득 『아빠는 왜 물푸레나무로 만든 책 상을 자랑하면서 물푸레나무가 세상에서 제일 무섭다고 하느냐』고 묻는다. 아버지는 답한다. 『회초리였기 때문』이라고. 『옛날 회초리로 쓰던 나무들이 아빠 허벅지만큼 굵어지자 할아버지께서 하나하나 베어서 물에 잘 불려 말린 다음 책상을 짜 쓰라고 서울로 보내주셨단다. 할아버지 께서 아빠한테 특별히 그 나무를 보내주신 건 글을 쓸 때 그 물푸레나무 회초리로 종아리를 맞으며 공부하던 어린 시절을 생각하라는 뜻일 거야』 24시간을 마음대로 쓸 수 있는 전업소설가임에도 이씨는 문단내에서 「별종」으로 통할만큼 아버지 노릇에 충실한 사람이다. 초등학교 6, 1학년의 두 아들을 재우고 씻기는 것은 여전히 그의 몫이며 아침 등교때면 대문밖에까지 나가 아이들을 배웅한 다. 「아침 저녁식사는 온가족이 함께」는 이씨 집안의 오랜 불문율이다. 이씨에게 아버지노릇을 가르친 사람은 다름 아닌 그의 아버지(68)였다. 고교 1학년때 이씨가 『농사짓겠다』며 학교를 그만두자 내쫓기보다는 밭 5천평을 마련해주었던 아버지. 이씨는 어린 아들에게 『집나간지 1년만에 농사일에 두손들고 돌아왔을 때도 말없이 받아준 할아버지의 사랑을 아버지는 흉내도 못낼 것 같다』고 고백한다. 그래서 이씨는 이책의 마지막을 아버지에게 바치는 헌사로 끝맺는다. 「이제까지 내가 걸어온 삶의 가장 큰 길이 되어주신, 아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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