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中은 반도체 인재 굴기, 한국 대학은 정원 늘리기도 힘들어

  • 동아일보
  • 입력 2019년 6월 28일 00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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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의 반도체 계약학과 신설이 무산됐다. 계약학과는 기업이 학생들의 장학금과 학과 운영비를 지원하고 졸업생을 100% 채용하는 방식으로 운영되는 학과다. 정부가 시스템반도체 육성 전략의 하나로 전문 인력 양성을 추진하면서 고려대와 연세대는 2021년부터 반도체 계약학과를 신설해 정원 외로 80명을 뽑기로 했다. 그러나 서울대는 “대학이 특정 기업의 인력을 양성하는 곳이냐”는 내부 반발로 중단됐다. 공대 교수회의에서는 통과됐으나 인문·사회계열 교수들이 반대해 전체 회의에 상정하지 않기로 했다고 한다.

대학이 고유한 철학과 전통에 따라 교육과정을 선택하는 것은 존중돼야 한다. 인류의 보편적 가치와 기초과학을 가르치는 일, 그리고 창조적이며 비판적인 지성인을 양성하는 일 또한 대학의 중요한 역할이다. 그러나 빠르게 변화하는 지식정보사회에서 대학만 현실과 괴리된 상아탑으로 남아 있을 수는 없다.

최근 산업 현장에서는 “고급 기술 인력이 부족하다”며 발을 구르고 있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같은 대기업들도 전문 인력이 부족하고 중소 팹리스(fabless·반도체 설계 전문회사)들은 전공자를 구하기가 더 힘들다는 것이다. 반면 ‘반도체 굴기(굴起)’를 꿈꾸는 중국은 국가 차원에서 매년 수천 명 이상의 전문가를 양성할 계획을 세웠다. 정부가 베이징대 칭화대 푸단대 샤먼대 등 4개 종합대와 함께 반도체 인재 육성을 위한 산학통합 플랫폼을 만들기로 했다는 것이다.

한국의 청년실업이 심각한 이유 중 하나는 전공과 일자리의 미스매치 때문이다. 인문계열 졸업자의 취업률은 56%로 사회계열(63%) 공학계열(70%) 의약계열(83%)에 크게 못 미친다. 취업 후 대학 전공과 실제 업무가 다른 경우가 50%를 넘는다. 대학 교육과정이 사회와 청년들의 수요에 맞춰진 게 아니라 공급자에 맞춰진 게 아닌지 살펴볼 필요가 있다.

4차 산업혁명 시대를 맞아 세계 대학들은 변신의 몸부림을 하고 있는데 한국 대학들은 각종 규제와 기득권으로 옴짝달싹 못하고 있다. 수도권 대학들은 ‘수도권정비계획법’에 따라 입학 정원이 정해져 새로운 학과를 신설하거나 늘리려면 다른 학과를 줄여야 한다. 기득권을 가진 교수들이 산업현장에 가까운 학문을 도외시하거나 새로운 학과 신설을 가로막는 경우도 있다. 대학들도 사회가 요구하는 인재 양성이라는 대학의 의무를 다해야 한다.
#반도체#한국 대학#청년실업#4차 산업혁명 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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