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제성호]千법무 지휘권 행사는 ‘월권’

  • 입력 2005년 10월 20일 03시 08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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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정구 교수 불구속에 관한 법무부 장관의 수사지휘권 행사와 관련해 정치적 파문이 계속되고 있다. 김종빈 검찰총장의 지휘권 수용과 사퇴에 이어 이제 수사지휘권 행사에 관한 천정배 법무부 장관의 말 바꾸기가 정치 쟁점으로 비화하는 것이다. 과거 천 장관이 검찰청법 제8조 가운데 ‘구체적 사건에 대한 법무부 장관의 지휘권 발동’ 부분을 삭제하자고 주장한 적이 있는 것으로 밝혀짐에 따라 이번 지휘권 발동으로 자기모순에 빠져버렸다.

천 장관은 야당 초선의원 시절인 1996년 법무부 장관의 지휘권 삭제를 명시한 검찰청법 개정안을 발의했고, 국민의 정부 출범으로 여당 의원이 된 2001년엔 같은 내용이 담긴 참여연대의 입법청원을 소개한 바 있다. 소신을 바꾼 이유에 대해 천 장관은 “9년 세월 동안 민주주의와 인권, 검찰이 환골탈태의 발전을 이뤘기 때문에 검찰 독립이 문제될 수 없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이제 검찰 독립은 더는 문제되지 않을까. 검찰은 준사법기관으로 민주주의와 법치를 위해 살아있는 권력에 칼을 대야 하는 소임을 갖고 있다. 어떤 정치권력도 법규 해석이나 인사권 등을 통해 검찰을 통제하려 한다는 것이 역사적 경험이다. 그러기에 검찰권 독립은 예나 지금이나 부단히 이룩해야 할 당위적 과제다.

천 장관은 또 자신이 행사한 지휘권은 “법치주의 원칙에 따라 국민의 인권을 지키고자 한 것”이라고 변명한다. 그러나 그가 말하는 법치주의는 헌법에 충실한 법치주의가 아니라 ‘형식적 법률주의’에 지나지 않는다.

검찰청법 제8조는 전문수사기관으로서의 검찰의 (준)사법적 결정과 법무부 장관의 정치적 판단이 충돌할 때 전자가 우선한다는 게 기본 정신이다. 따라서 수사지휘권은 검찰이 검찰권을 불법적이고 파쇼적으로 행사할 때 이를 바로잡기 위해 예외적으로 행사돼야 한다. 이런 배경에서 독일의 경우 나치 이전에만 발동됐고, 일본도 1950년대 이후 사용된 적이 없다.

구체적 사건에서 구속수사 결정의 당부(當否)나 수사 내용의 진실성은 법무부 장관이 판단하는 것이 아니라 법원이 심판할 사항이다. 그런 점에서 수사지휘권 행사는 법원이 판단할 몫을 법무부 장관이 가로챈 월권행위이자 지휘권 남용이라고 봐야 한다.

한편 천 장관은 ‘연속범 법리에 의한 현행범 구속의 타당성’을 충분히 고려하지 않았다. 범죄 피의 사실을 계속 생산해 내는 행위는 적절하게 견제해야 마땅하다. 그는 또 인권이 중요한 가치임에는 틀림없지만 국가안보가 없으면 다중의 인권이 위협받는다는 상식을 외면했다.

1996년 천 장관 스스로 우려했듯이 법무부 장관의 검찰에 대한 지휘권은 오용 또는 남용될 경우 ‘대통령 등 정치권력의 간섭을 매개하는 수단’이 될 수 있다. 검찰에 대한 사법적 통제는 법원이, 정치적 통제는 국회가 행한다. 더욱 중요한 것은 정치적 입장에 따라 소신이 바뀌는 사람이 법치주의의 올바른 실현과 자유민주주의 체제 수호를 위한 법무 행정을 제대로 해낼 수 있을지 의문이라는 점이다. 부당한 수사지휘권 행사로 법무부 장관에 대한 신뢰는 이미 상당 부분 훼손됐다.

법무부 장관이 국민의 신뢰를 회복하려면, 초심으로 돌아가 개별 사건에 대한 수사지휘권을 삭제하는 개정안을 재발의하거나 평검사의 경우처럼 검찰총장의 이의제기권을 명문화하는 입법을 추진해야 한다. 더불어 검찰도 전 검찰총장이 자기희생을 통해 지키려 했던 정치적 독립성 확보를 위해 더욱 노력해야 할 것이다. 검찰이 바로서야 법치가 확립될 수 있기 때문이다.

제성호 중앙대 교수·법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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