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전경련의 기어들어가는 목소리

  • 입력 2005년 10월 15일 03시 04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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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경제인연합회가 그제 회장단 회의에서 ‘최근 특정기업에 대한 비판적 분위기가 지나치게 확산돼 기업 활동 위축과 기업 브랜드 가치 하락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우려했다. 정치권과 일부 시민단체를 중심으로 수개월째 벌이고 있는 ‘기업 때리기’에 재계 차원의 공식 입장이 처음으로 나온 셈이다. 그러나 ‘행동하는 전경련’의 모습을 보았다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

전경련은 정부 정책의 문제점들을 지적하는 보고서를 여럿 만들고도 감춰 두고 있다고 한다. ‘X파일 사태’ 직후, 삼성에버랜드 사건 재판 전후, 그리고 국회 국정감사에서 삼성 때리기가 고조될 때도 전경련은 침묵했다. 이번에도 ‘우려한다’는 부분을 삭제한 별도의 발표문 초안을 마련해 놓고 외부의 눈치를 살피다가 겨우 말을 꺼낸 것이다.

전경련은 ‘자유시장경제 창달과 건전한 국민경제의 발전을 위해’ 활동하겠다며 설립된 대기업들의 대표단체다. 정치권과 사회, 그리고 교육현장에서까지 갈수록 노골화하는 반(反)시장적 행태에 대해 ‘오랜 외면 끝의 외마디 우려’가 아니라 당당하고 줄기차게 대응해야 할 단체다.

전경련의 침묵은 헌법의 골격이자 국가존립의 기본 틀인 자유시장경제를 부정하고 공격하는 세력에 활동공간을 넓혀 주는 것으로 이어지고 있지 않은가. 반기업 정서를 부추기는 내용이 중고교 교과서에 숱하게 실려, 자라나는 세대를 오도(誤導)하는 것도 우연이라고 볼 수는 없다. 뒷전에서는 시장경제의 중요성을 되뇌면서도 이를 지켜 내려는 구체적인 노력에서는 열외(列外)로 빠졌던 ‘비겁한 시장주의자들’이 책임을 공유할 수밖에 없다. 그 하나의 실체가 전경련이라고 본다.

전경련이 현 정권의 반시장 정책을 비판해 온 손병두 현명관 부회장, 이규황 전무, 좌승희 한국경제연구원장을 내보낸 것은 정권과의 화해 제스처라고 재계는 해석한다. 물론 정부, 정치권, 시민단체 등과 화해 협력할 부분도 있다. 그러나 기업계는 자유시장경제를 부정하는 세력에 대해서는 단합된 힘으로 단호히 맞서야 한다. 전경련이나 대기업에도 ‘공짜 점심’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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