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이진/세계유산委 무대에서 ‘문화 국적’ 다지길

  • 입력 2005년 10월 13일 03시 02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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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이 10일 유엔교육과학문화기구(UNESCO·유네스코) 세계유산위원회 위원국으로 선출됐다. 1997∼2003년에 이어 두 번째이고, 위원국이 무슨 ‘권세’를 부리는 자리는 아닌 만큼 흥분할 일은 아니지만 기대가 없지는 않다.

지난해 중국이 고구려와 발해 역사를 자국 역사로 편입하려고 했던 동북공정(東北工程) 파동을 겪은 뒤끝이라 더욱 그렇다. 중국의 동북공정은 우리가 잊고 있던 문화유산의 ‘역사적 정체성’에 대한 관심을 새삼 일깨웠다.

세계유산위는 1972년 마련된 ‘세계 문화 및 자연 유산의 보호를 위한 협약’을 집행하는 유네스코 산하 기구다. 문화 및 자연유산을 선정해 감시, 보존, 지원하는 역할을 수행하는 것이 주된 임무다. 지금까지 세계유산으로 등록된 137개국, 812건(8월 말 현재·한국은 7건)의 문화 및 자연유산 역시 내셔널리즘(민족주의)의 관점이 아니라 인류가 보편적으로 인정할 수 있는 역사적 가치와 심미안에 따라 선정된 것이다.

하지만 지난해 고구려 유적을 놓고 북한과 중국이 나란히 문화유산 등록을 신청했던 때를 떠올리면 여러 가지 아쉬움이 남는다. 중국은 고구려 유적이 북한 것만은 아니라는 논리를 펼쳤고 결국 동시 등록에 성공했다. 이때 ‘유적의 국적’ 즉, 역사 문제가 논란이 됐다. 지난해 중국은 세계유산위 위원국이었지만 한국과 북한은 참관국(옵서버)에 불과해 발언권이 상대적으로 약했다.

중국 영토 안에는 광개토대왕비와 국내성 등 고구려와 발해 유적이 산재한다. 중국은 2007년까지 이 유적들을 중국의 이름으로 세계문화유산 명부에 올리기 위해 힘을 쏟고 있다.

세계유산위는 문화유산의 역사적 맥락에 해당하는 ‘원산지’는 고려하지 않는다. 그런 한계 때문에 일부 전문가들은 고구려 및 발해 유적의 보존과 복원을 위해 민간 차원에서의 중국 지원을 주장하기도 한다. 이를 통해 중국 내 고구려 및 발해 유적의 역사적 원산지가 한반도임을 알리자는 것이다. 그러나 이는 차선책이다.

정부도 ‘문화 분야에서 각국의 갈등과 대립을 완화한다’는 유네스코의 설립 목적에 충실하면서도 세계유산위라는 ‘문화 외교 무대’를 적극 활용해 우리의 ‘문화 국적’을 확고히 할 수 있는 방안을 진지하게 고민해 줬으면 한다.

이 진 국제부 기자 leej@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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