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정성희]法, 인간 본능에 싸움을 걸다

  • 입력 2005년 9월 24일 03시 06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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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매매방지법이 23일로 시행 1주년을 맞았다.

이 법의 시행과 함께 우리는 지난 1년간 희한한 풍경과 얘깃거리를 많이 접했다. 업주와 성매매 여성들이 단속에 항의해 대낮에 서울 여의도 등지에서 생존권 시위에 나섰는가 하면 생계가 갑자기 곤란해진 성매매 여성들이 자살하는 사건도 있었다.

군 장병의 교육과정에 성매매 예방교육이 포함됐는가 하면 성구매자들이 성매매 재범방지 교육을 받는 일명 ‘존 스쿨’이 도입되기도 했다.

그럼, 성매매방지법은 정말 우리 성문화를 바람직한 방향으로 개선시켰을까?

유감스럽게도 각종 지표는 그렇지 않다고 말하고 있다. 경찰청이 내놓은 단속 결과에 따르면 성매매 집결지가 크게 위축되고 성매매 여성도 많이 줄어들었다. 그러나 눈으로 보이는 형태는 줄었을지 몰라도 성매매 자체는 인터넷을 타고, 주택가로까지 확산되는 양상이다. 이는 예견됐던 일이다. 욕망을 방에 가두고 문을 잠그면 창문으로 빠져나간다고 했던가.

최근에는 단속마저도 용두사미로 흐르고 있는 양상이다. 순찰차가 ‘위력 순찰’을 하긴 하지만 손님을 받지 못하면 당장 어려움을 겪는 이들의 사정을 경찰부터가 너무 잘 알기 때문이란다.

그렇다면 성매매 여성들의 삶은 얼마나 변했을까? 포주의 선불금에 얽매인 감금이나 강제 성매매 등의 인권침해상황은 개선됐으나 자활은 어림없는 소리라고 해당여성들은 입을 모은다. 오랜 기간 성매매를 했던 여성들은 아침에 잘 일어나지도 못하고, 혼자서는 라면도 못 끓여 먹는다. 냉장고에서 음식을 꺼내 먹을 때도 돈을 내고 포주의 허락을 받았던 이들은 가게에서 물건 사는 것도 힘들어 한다고 한다. 하물며 자활이라니?

물론 법의 실효가 의심스럽고 성과가 초라하다고 해서 본래의 취지마저 퇴색하는 것은 아니다. 이 법은 죄의식 없이 관행적으로 이뤄지던 성매매에 대한 여론을 환기하면서 사회적 담론을 이끌어 냈고, 인권의 사각지대에 방치돼 있던 이들에 대한 관심을 불러일으켰다.

가장 통쾌한 것은 성매매는 순결하고 정숙한 여성들을 남성의 욕망으로부터 보호하기 위한 필요악이네, 성매매가 금지되면 성폭행이 늘어날 것이네 하는 등의 성에 대한 ‘이중 잣대’를 보기 좋게 무너뜨린 점이다. 유사 이래로 원해서 몸을 파는 여성은 없었다. 성매매야말로 가난의 다른 이름이며, 가난한 여성이 자신과 가족을 먹여 살리는 방식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성매매는 결코 법이나 단속으로 해결될 수 없다는 점이다. 이 행위가 중단되지 않는 것은 법이 없어서가 아니라 인간의 성행위가 본능이기 때문이다. 성이 존재하는 한 성매매도 존재한다.

경위가 어떻게 되었든 성매매방지법은 인간의 본능에다 싸움을 걸었다. 이길 수는 없는 싸움이지만 꼭 이겨야 맛인가. 많은 이가 죄의식을 갖고 성매매를 바라보기 시작한 것만으로도 성과는 있다. 그럼 아내나 애인 없는 수많은 남자는 어떻게 하라는 것이냐고? 세상은 이제 이렇게 말한다. 그건 네가 알아서 할 문제라고.

정성희 교육생활부장 shchu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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