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드레스 솔라노 콜롬비아 출신·소설가2025년 아내와 나의 삶을 그야말로 180도 바꿔놓은 아주 단순한 일이 있었다. 우리 부부에게는 역대 가장 큰 사건이지만 많은 사람들에게는 그저 흔한 경험일 수 있는 일이라 꺼내기 조금 부끄러운 이야기이기도 하다. 어떤 독자들은 어처구니없다고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그 사건은 지난해 아내가 드디어 운전면허증을 취득하고 자동차를 산 것이다.
나는 10년 넘게 버스와 지하철, 자전거, 그리고 무엇보다 두 발로 서울을 누비고 다녔다. 걷기는 도시를 가장 내밀하게 알아가는 방법이다. 거리로 나서는 순간 뇌의 어떤 부분이 깨어나고, 발걸음의 속도는 자연스럽게 생각의 속도와 맞물린다. 내가 서울에 오기 전 살았던 콜롬비아 보고타, 미국 뉴욕, 스페인 마드리드도 그렇게 알게 됐다. 하지만 이제 서울을 다시 발견할 때가 됐고, 지난해 나는 서울을 향한 새로운 시선을 갖게 됐다.
한밤중 강변북로를 달리는 차 안에서 보는 한강, 남산순환도로의 나무들, 심지어 광화문의 시위 현장마저도 다르게 보였다. 봄날 양재 꽃시장에 가서 식물을 사거나 백남준아트센터의 기획전을 보러 가고, 몇 주 전 일요일엔 갑자기 인천 차이나타운으로 점심을 먹으러 갔다가 식사 후 월미도의 공원에서 트로트 리듬에 몸을 맡긴 어르신들을 구경했다. 나는 아직도 그들 중 한 분을 생생하게 기억한다. 사고였는지 얼굴 한쪽에 화상 흉터가 있고, 검은 선글라스에 노란 재킷을 입은 키 작은 할아버지였는데, 그는 다른 춤꾼들 사이를 섬세하게 미끄러지듯 오갔고 그 모습은 거의 공중을 떠다니는 것 같았다. 아무도 흉내 낼 수 없는 그만의 독창적인 손놀림마저 보여주었다. 일요일마다 바닷가에서 춤을 추는 그 순간만큼은, 그들 모두가 다시 생생하게 살아 있음을 느꼈다고 확신한다.
물론 우리가 차를 산 가장 큰 이유는 대중교통으로 닿기 어려운 한국의 지방들로 여행을 가고 싶었기 때문이다. 첫 장거리 여행은 늦여름, 내가 늘 가보고 싶었던 지리산 깊은 골짜기의 작은 마을이었다. 장인어른이 태어나신 곳인데, 당시에는 세상과 너무나 단절돼 있어 6·25전쟁 발발 소식조차 한참 뒤에나 도착했던 곳이라고 한다.
우리는 산속에 있던 장인어른의 옛집 터를 정확히 찾아냈다. 좁고 구불구불한 길에 익숙한 아내 덕분에 다행히 그곳까지 갈 수 있었다. 운전대를 잡은 아내의 ‘운전 학교’는 우리가 사는 서울 용산구 후암동과 해방촌의 언덕길이었으니까. 차가 없었다면 장인어른이 어린 시절 오후마다 뛰놀았을 그 집 근처의 웅장한 나무를 보지 못했을 것이다.
차가 우리 삶에 가져다준 것은 풍경의 변화와 이동의 자유뿐만이 아니다. 차가 생기니 예전에는 눈여겨보지 않았던 작은 부분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예를 들면 토요일 오후 6시 용산 아이파크몰에서 주차 공간을 찾는 지옥 같은 상황 말이다. 그런데 나는 그곳에서 최근 몇 년간 굳어진 뚜렷한 경향 하나를 발견했다. 도로마다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이 점점 더 넘쳐나고 있다는 점이다.
우리가 차를 사려고 했을 때 SUV 모델은 단 한 번도 고려하지 않았다. 오히려 정반대로 도심에서 운전하기 쉬운 소형차를 택했다. 우리는 피아트 500을 골랐는데, 디자인도 독특했고 색상도 민트색으로 눈에 띄었다. 첫 차인 만큼 남들과 달라지고 싶었고, 그 목적을 달성했다.
하지만 한국 사람들의 생각은 다른 것 같다. 점점 크기가 큰 SUV를 원한다. 검은색, 회색, 아니면 흰색. 자녀가 둘, 셋 있는 대가족이라면 SUV를 선택하는 것이 이해되지만, 알다시피 한국의 상황은 그렇지 않다. 취미나 업무 때문에 짐을 많이 싣고 다니는 사람들에게는 SUV가 올바른 선택일 것이다. 하지만 한국에서는 필요에 의한 합리적 선택이라기보다는 유행과 같은 다른 이유가 있는 것처럼 보인다.
앞서 아내에게 최고의 운전 학교는 우리 동네였다고 말했는데, 이곳의 좁은 골목길에서는 마치 소형 전차처럼 밀고 들어오는 SUV들을 특히 조심해야 한다. 사실 SUV 뒤에 ‘초보’ 스티커가 붙어 있는 것을 보면 깜짝 놀라곤 한다. 세상에, 얼마나 스트레스를 받을까.
서울에는 주차 공간이 부족한 곳도 무척 많은데, 경찰차처럼 블록을 뱅글뱅글 돌며 자신의 거대한 차가 들어갈 자리를 찾아 헤매는 SUV를 볼 때마다 작은 차를 선택한 것에 감사하게 된다. 만약 우리가 SUV를 샀더라면 지난 한 해가 그렇게 즐겁지는 않았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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