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과 내일/신광영]살벌할 일만 남은 417호 내란 법정

  • 동아일보
  • 입력 2026년 1월 7일 23시 15분


신광영 논설위원
신광영 논설위원
윤석열 전 대통령 내란 사건 재판장인 지귀연 부장판사는 예능 재판을 한다는 평가를 받아왔다. 만담을 하는 듯한 말투와 재판 스타일이 사건의 무게와 맞지 않는다는 지적이 적지 않다. “변호사님들 꼭 배고플 때 되면 이러시더라” “또 슬픈 표정 하지 마시고” “마이크 대시고용∼” 같은 엄숙한 형사재판에선 듣기 힘든 말들이 이어졌다. 오죽하면 방청석의 윤 전 대통령 지지자들이 “판사님 귀여우시다”라고 외친 적도 있다. 윤 전 대통령이 피고인석에서 웃음을 애써 참는 모습이 목격되기도 했다.

9일이면 예능 재판도 방청석 응원도 끝

하지만 내란 법정의 웃음기가 사라질 날이 며칠 남지 않았다. 9일 마지막 공판이 열린다. 이날 검찰 구형도 이뤄지는데 내란 우두머리 혐의의 법정형은 사형 아니면 무기징역이다. 검사가 이런 무시무시한 형을 전직 대통령에게 구형하는 살벌한 상황이 예고돼 있다. “가족오락관 MC냐”는 비아냥을 듣는 지 부장판사도 표정이 굳을 수밖에 없을 것이다.

재판이 열리는 서울중앙지법 417호는 30년 전 전두환 전 대통령이 섰던 법정이다. 12·12, 5·18 사건으로 윤 전 대통령과 같은 혐의를 받았던 그에게 검찰은 사형을 구형했다. 이어진 최후진술에서 전 전 대통령은 국민에게 용서를 구할 기회를 날려버렸다. “국가의 위기를 타개하기 위한 최선의 노력이었다. 본의 아니게 국민에게 불편과 피해를 준 점 죄송하다”고 했다. 군사 반란을 일으켰고, 무고한 시민들이 사살됐는데 “위기 해결 노력” “국민 불편”을 운운했다.

윤 전 대통령은 최후진술에서 무슨 말을 할까. 예고편 같은 장면이 2주 전 체포 방해 재판 결심 공판에서 벌어졌다. 그는 검찰 주장이 코미디 같은 얘기라고 했다. 체포영장 집행을 막기 위해 경호원들에게 총기 무장까지 지시했던 그는 이런 걸로 처벌하면 앞으로 대통령의 안전이 위태로워진다고 했다. 59분간의 일장 연설 동안 사과 한마디가 없었다.

계엄 후 1년이 지나도록 그는 자기만의 섬에서 한 발짝도 나오지 않았다. 만나는 사람이라곤 변호인들뿐이고, 법정에 가면 ‘윤 어게인’ 지지자들이 방청석을 메우고 있어 그게 세상의 중심이길 믿고 싶었을 것이다. 며칠 전엔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이 증인으로 나와 “계엄은 위기에 빠진 나라를 구하기 위한, 대통령의 고뇌에 찬 결심이었다”고 말해 박수갈채를 받았다. 토크쇼 같은 분위기에 응원단까지 와 있는 417호 법정이 그에겐 도피처였을 수 있다. 하지만 재판이 예능 같았다고 판결까지 훈훈하리란 보장은 없다.

윤 전 대통령은 대선후보 시절 전 전 대통령 옹호 발언을 한 적이 있다. “군사 쿠데타와 5·18만 빼면 정치는 잘했다고 말하는 분들이 많다”고 했다. 몰상식한 이 말 속에 윤 전 대통령도 내란죄만큼은 잘못이라고 봤다는 게 눈에 띈다. 그는 12·3 비상계엄은 다르다고 주장하지만 국회에 군경을 투입한 것 자체로 국헌 문란이라는 게 헌법재판소의 결론이다. 계엄으로 민주주의에 심각한 상처를 입히고도 반성이라곤 없는 전 전 대통령의 길을 윤 전 대통령은 고스란히 따라가고 있다.

최후진술만이라도 법정 밖 국민 향하길

전직 대통령에겐 유무죄 판결이 끝이 아니다. 사후까지 이어질 역사의 법정이 기다리고 있다. 끝까지 뉘우치지 않고 부하에게 책임을 떠미는 전직 대통령이라면 아무리 중형에 처하더라도 인간적인 안타까움을 느낄 사람이 많지 않을 것이다. 국민의 연민과 용서 없이는 윤 전 대통령이 다시 일상을 되찾을 길도, 최소한의 명예를 회복할 길도 없다. 헛된 기대인 걸 알지만 윤 전 대통령이 최후진술에서라도 한 줌의 지지자들이 아닌, 법정 밖의 보통 사람들을 바라보는 용기를 내길 바란다. 두고두고 미움받는 대통령이 또 생기는 건 국민들에게도 큰 아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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