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그냥 있었을 뿐인데, 지구가 한 바퀴 돌았다

  • 동아일보
  • 입력 2026년 1월 8일 04시 30분


[한시를 영화로 읊다] 〈122〉 선라이즈

올해도 많은 이들이 첫 해돋이를 보며 묵은 한 해를 정리하고 새로운 소망을 기원했다. 한시에서 일출은 개인적 바람과 연관되기보다, 자연의 순환을 통해 삶의 유한성을 성찰하는 과정에서 자주 등장한다. 당나라 이백은 일찍이 이렇게 노래했다.

이 시는 한나라 악부(樂府) ‘일출입(日出入)’을 계승해 쓴 것이다. 원시(原詩)가 영원히 뜨고 지는 해에 비해 보잘것없는 인간의 목숨을 대조시킨 반면, 시인은 자연의 순리에 순응하면서도 호탕하고 활달한 삶의 태도를 잃지 않으려 했다.

일출 장면이 인상적인 영화로 F W 무르나우 감독의 ‘선라이즈’(1927년)가 있다. 영화는 해가 뜨고 지는 곳이라면 어디에서나 있을 법한 ‘남자’와 ‘여자’의 이야기라는 자막으로 시작된다. 등장인물은 이름도 없이 그저 ‘남자’와 ‘여자’로만 지칭된다.

영화 ‘선라이즈’에서 일출은 잘못을 참회하고 다시 시작하는 삶을 나타낸다. 사진 출처 씨네코리아
영화 ‘선라이즈’에서 일출은 잘못을 참회하고 다시 시작하는 삶을 나타낸다. 사진 출처 씨네코리아
영화의 줄거리는 이렇다. 호숫가 농촌에 사는 남자가 휴가차 이곳을 찾은 도시 여자의 유혹에 넘어가 아내를 배신하려 한다. 남자는 도시 여자의 사주로 아내를 물에 빠뜨리려 하다가 참회하고 마음을 바꾼다. 사랑을 다시 확인한 두 사람은 함께 배를 타고 돌아오다 아내가 폭풍우에 휩쓸리게 된다. 밤새 아내를 찾지 못한 남자는 자책하며 괴로워하는데, 동틀 무렵 아내가 살아 있다는 소식이 들려온다. 그리고 마을 위로 해가 떠오르며 영화는 끝난다.

영화 내용은 헤르만 주더만의 단편소설 ‘틸지트로의 여행’에 기반했지만, 원작의 비극적인 결말을 해피엔딩으로 바꿨다고 한다. 이백의 시 역시 원시에 보이는 짧은 인생에 대한 회한과 달리 자연 질서에 순응하면서도 삶에 대한 긍정과 희망을 놓지 않았다.

조선시대 홍여하(洪汝河·1620∼1674)는 같은 제목의 시에서 “나는 일출 보기를 좋아하지만(我喜觀日出), 차마 일몰은 보지 못하겠다네(不忍觀日入). 해 저물면 어찌나 외롭고 근심스러운지(日入何獨愁), 내 머리 온통 하얗게 세게 만드니(使我白盡頭).”(‘日出入行’)라고 읊은 적이 있다. 상실과 소멸을 떠올리게 하는 일몰보다 새로운 시작을 상징하는 일출이 좋은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새해에는 저 떠오르는 해처럼, 삶을 긍정하고 희망을 노래하는 하루하루가 됐으면 좋겠다.

#한시#이백#일출#영화#선라이즈#무르나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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