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한국은행이 묵직한 보고서를 내놨다. 무의미한 연명의료를 줄이고 환자의 뜻대로 존엄한 마무리를 할 수 있게 한다면, 미래 세대가 짊어질 건강보험 재정을 13조3000억 원이나 아낄 수 있다는 분석이다. 하지만 의료 현장에 있는 나에게 ‘13조’는 서글픈 역설로 다가왔다. 우리가 인간다운 죽음을 얼마나 기형적으로 대하는지를 드러내는 숫자이기 때문이다.
우리 사회는 “회복 가능성이 없다면 연명의료를 원치 않는다”(84.1%)고 말한다. 그러나 실제로 연명의료를 유보·중단한 비율은 16.7%에 그친다. 호스피스도 마찬가지다. 원하는 응답은 90%를 넘지만, 실제 이용자는 암 사망자의 24.3%에 불과하다.
이 간극은 고통과 비용으로 되돌아온다. 한국은행 분석에 따르면 연명의료를 받은 환자의 임종 전 1년 1인당 의료비는 10년 새 547만 원에서 1088만 원으로 두 배가 됐다. 간병비와 휴직에 따른 소득 감소까지 고려하면, 원치 않는 연명의료는 가족 전체를 흔드는 재난이 된다.
문제의 뿌리는 ‘구조’다. 행위별 수가제에서는 검사를 하고 약을 처방하고 기계를 돌려야만 수가가 나온다. 반대로 무의미한 의료를 멈추고 환자와 가족과 30분 대화를 나누는 시간에는 값이 붙지 않는다. 의사가 눈을 맞추고 “얼마나 힘드신가요, 마지막을 어떻게 준비하고 싶으신가요”라고 묻는 시간은 병원 경영상 ‘손해’로 잡힌다. 호스피스는 낮은 수가와 까다로운 인력 기준 탓에 운영할수록 적자라는 말이 나온다. 대형병원과 국공립병원 모두 기피한다. 전국에 호스피스 병상은 1700개 남짓, 가정형 호스피스는 40개 남짓에 불과하다. 원해도 구조적으로 어렵다.
정부의 호스피스 예산 또한 4년째 50억 원 안팎에 머물러 있다. 암 사망만 해마다 8만 명 수준인데, 한 죽음당 6만 원 정도를 배정해 놓고 “존엄하게 죽으라”고 말하는 셈이다. 13조 원을 아낄 수 있다면서, 정작 그 돈이 향해야 할 돌봄에는 투자하지 않는다.
물론 연명의료 제도를 개선하려는 진짜 목적은 예산 절감에 있지 않다. 한국은행이 언급한 절감액은 목표가 아니라, 환자의 자기결정권을 존중했을 때 따라오는 자연스러운 결과여야 한다. 연명의료 중단 자체가 목적이 아니라, 중단 이후에 고통을 완화하는 돌봄이 이뤄질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중단 이후가 더 중요하다. 핵심은 개인이 자신의 가치관에 부합하는 삶의 마무리 방식을 충분히 숙고할 수 있도록 돕고, 그 결정이 마지막 순간까지 온전히 존중받도록 제도적으로 보장하는 데 있다.
그러려면 임종 직전까지 원하지 않는 불필요한 의료를 밀어붙이는 관성을 끊고, 사람의 손과 시간에 가치를 부여하는 사회로 나아가야 한다. 방법은 있다. 첫째, ‘설명, 돌봄 계획’에 합당한 보상을 붙여 대화가 손해가 되지 않게 해야 한다. 둘째, 호스피스 수가를 과감히 현실화해 병상과 인력이 늘어날 조건을 만들어야 한다. 셋째, 절감되는 재정을 완화 의료로 재배치하는 선순환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
원치 않는 기계적 생명 연장에 쓰는 돈의 일부만 떼어도 따뜻한 임종을 위한 ‘사람의 품’을 마련할 수 있다. 어차피 죽을 사람이라며 돈을 아끼자는 게 아니다. 떠나는 순간까지 인간으로 대접받게 하자는 것이다. 이것이 ‘13조’가 던지는 진짜 경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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