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두로 체포 직후 미 제재 대상 유조선 16척 이상이 베네수엘라 해안을 벗어나며 봉쇄 회피에 나섰다. 스푸핑과 집단 이동으로 추적을 따돌리고 있다. ⓒ뉴시스
미국이 니콜라스 마두로 베네수엘라 대통령을 전격 체포한 직후, 미국 제재 대상에 오른 유조선 수십 척이 베네수엘라 해안을 일제히 이탈하며 해상에서 ‘숨바꼭질’을 벌이고 있다. 글로벌 원유 시장을 둘러싼 제재와 봉쇄가 실물 물류 단계에서 어떻게 무력화되는지를 보여주는 장면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미국 일간 뉴욕타임스(NYT)는 5일(현지시간) 미 해군의 봉쇄를 회피하기 위해 최소 16척 이상의 제재 대상 유조선이 최근 베네수엘라 항구를 떠도는 정황이 포착됐다고 보도했다.
이들 선박은 위치 발신기를 끄거나 허위 좌표를 송신하는 ‘스푸핑(spoofing)’ 기법, 혹은 여러 척이 동시에 이동하는 방식으로 미군의 추적을 따돌리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NYT에 따르면 이 유조선들은 수주간 베네수엘라 항구에 정박해 있었으나, 마두로 대통령이 체포된 직후인 지난 3일부터 항구에서 자취를 감췄다. 이 가운데 4척은 베네수엘라 해안에서 동쪽으로 약 50km 떨어진 해상을 항해 중인 것으로 확인됐으며, 선박명을 바꾸고 실제 위치를 허위로 송신하는 방식으로 이동하고 있다. 이들 선박은 베네수엘라 임시 정부의 승인 없이 출항해, 델시 로드리게스 임시 대통령 정부가 도발 행위로 간주할 가능성도 제기된다.
나머지 12척은 신호 송신을 완전히 중단한 상태로, 위성 영상에서도 위치가 포착되지 않고 있다. 이들이 어디로 향하고 있는지, 실제로 원유를 싣고 있는지는 아직 확인되지 않았다. ● ‘완전 봉쇄’에도 움직이는 유령함대…제재의 실효성 시험대
미국은 지난달 16일 베네수엘라산 원유를 운반하는 유조선에 대해 사실상 ‘완전 봉쇄’를 선언했다. 마코 루비오 미 국무장관은 지난 4일 이 조치를 “현대사에서 가장 큰 규모의 해상 격리(quarantine)”라고 표현하며, 베네수엘라 정권의 수익 창출 능력을 마비시키고 있다고 강조했다. 다만 미국 기업 셰브론이 걸프 연안으로 운송하는 석유는 예외로 뒀다.
그럼에도 미군은 현재까지 베네수엘라 원유 거래에 연루된 유조선 3척만을 직접 추적했다. 유조선 ‘스키퍼’는 지난달 10일 중국으로 향하던 중 미 해안경비대에 나포됐고, ‘센추리스’는 승선 검색을 받았으나 나포되지는 않았다. ‘벨라 1’은 추적을 피해 도주하며 선박명을 ‘마리네라’로 바꾸고 러시아 선적을 주장하고 있다.
이번에 움직임이 포착된 16척 가운데 15척은 과거 이란산·러시아산 원유를 운송한 혐의로 제재 대상에 오른 이른바 ‘유령함대’ 소속 선박들이다. 이들은 제재를 피해 선박명과 위치를 바꾸는 기만 전술을 반복적으로 사용해 왔다. 예컨대 원유를 가득 실은 ‘아퀼라 II’는 발트해에 있는 것처럼 좌표를 조작했고, ‘베르타’와 ‘베로니카 III’ 역시 나이지리아 연안에 있는 것처럼 가장했다.
유조선 이동을 추적하는 탱커트래커스닷컴의 공동 설립자 사미르 마다니는 “해상 봉쇄를 돌파할 수 있는 유일한 현실적 방법은 다수의 선박이 동시에 출항해 봉쇄망을 압도하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실제로 최소 3척의 유조선이 가까운 거리를 유지한 채 같은 방향으로 이동하며 공조 정황을 보였다는 분석도 나온다.
베네수엘라는 봉쇄 속에서도 원유 수출을 멈추기 어려운 상황이다. 저장 시설은 이미 포화 상태에 이르렀고, 생산을 중단할 경우 유전과 인프라가 손상될 위험이 크기 때문이다. 승인 없이 출항한 선박들은 모두 알렉스 사브와 라몬 카레테로가 계약한 것으로 알려졌으며, 이들 중개상은 마두로 일가의 사업 파트너로 미국의 제재 명단에 올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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