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이미지]저출산은 그대로인데 ‘계획’이 사라졌다

  • 동아일보

이미지 사회부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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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해를 넘겼다. 올해부터 시행돼야 할 제5차 저출산고령사회 기본계획(2026∼2030)이 해가 바뀌도록 나오지 못했다.

저출산고령사회 기본계획은 저출산고령사회기본법에 따라 2006년부터 5년마다 수립돼 온 국가 종합계획이다. 과거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이 산업화와 경제성장의 방향을 제시했듯이 이 기본계획은 인구 위기에 대응하는 국가 전략의 큰 틀과 방향을 정해 왔다.

한국은 1980년대 초 합계출산율 2.0명 미만의 저출산 단계에 진입했고, 2002년에는 출산율 1.3명 미만의 ‘초저출산 국가’가 됐다. 출산율 하락이 구조적 문제로 굳어지자 정부는 2005년 저출산고령사회기본법을 제정하고 이듬해 첫 기본계획을 시행했다. 1∼4차 계획을 거치며 육아휴직, 출산장려금, 무상보육, 아동수당 등 현재 우리가 아는 저출산 대응의 기본 정책들이 도입·정착됐다. 기본계획이 없었다면 부처별로 흩어졌을 출산·육아 정책이 이처럼 빠르게 체계를 갖추긴 어려웠을 것이다.

그런데 이번 계획은 연말까지 초안조차 마련하지 못한 채 결국 시행 연도를 넘겼다. 최소한 전년도 말에는 큰 틀이 나와야 첫해 예산과 인력을 배분하고 관련 제도를 정비할 수 있다. 법에 근거한 국가 계획이 일정조차 지키지 못한 것은 이례적이다.

사실 이런 사태는 어느 정도 예견됐다. 2024년 말 비상계엄 이후 이어진 정치 혼란 속에 범부처 논의는 공전했고, 정권 교체 이후엔 그 동력이 더 약해졌다. 기본계획을 이끌어야 할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저고위)는 새 인선 없이 사실상 방치됐다. 전 정부가 임명한 부위원장이 위원회를 이끄는 어정쩡한 상태에서 지난해 9월 저고위를 인구전략기획위원회로 개편하겠다는 구상까지 나오면서 상황은 더욱 악화됐다. 저고위 관계자는 “조직이 어떻게 될지 알 수 없으니 관계 부처들과 기본계획을 논의하기 더욱 어려운 입장이 됐다”고 전했다.

대통령도 무관심했다. 명목상 저고위 위원장인 대통령은 취임 이후 단 한 차례도 저고위 회의를 열거나 주재하지 않았다. 청와대 내 인구 정책 조직은 비서관급으로 축소됐고, 그 비서관 자리마저 정부 출범 이후 6개월째 공석이다. 위원회 개편을 포함한 저출산고령사회기본법 개정 논의 역시 진척을 보이지 못하고 있다.

이런 기류에는 출생아 수와 출산율 반등이 적잖이 작용했을 것이다. 2023년 0.72명으로 최저점을 찍은 합계출산율은 엔데믹과 혼인 증가에 힘입어 반등 중이다. 최근 행정안전부는 출생아 수가 2년 연속 늘며 26만 명을 기록했다고 밝혔다.

그러나 아직 안심할 단계는 아니다. 출생아 수는 여전히 10년 전의 절반 수준이고, 출산율은 세계 최저권을 벗어나지 못했다. 인구는 6년째 감소 중이며 고령화 속도는 더 빨라지고 있다. 저출산 위기를 벗어났다고 말할 수 있는 지표는 아직 없다.

무엇보다 지금의 소폭 반등도 지난 1∼4차 기본계획을 거치며 쌓아 온 정책의 결과물임을 잊어서는 안 된다. 물 들어올 때 노를 저어야 한다고, 그동안의 노력으로 출생아 수가 조금이라도 늘고 있는 지금 노를 더욱 힘차게 저어야 한다. 일·가정 양립, 남성 육아 참여 확대, 다양한 가족 인정 등 남은 과제가 아직 산적해 있다. 일부 수치들이 조금 개선됐다고 안심하고 손을 놓는다면, 우리는 역사 속에서 반복돼 온 ‘안심의 패착’을 또 한 번 되풀이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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