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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 넷! 다자녀 엄마 기자입니다. 환경, 보건, 복지 이슈를 취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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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분야

2024-06-27~2024-07-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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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그 아기의 미래가 더는 짓밟히지 않길 바란다[이미지의 포에버 육아]

    ‘포(four)에버 육아’는 네 명의 자녀를 키우며 직장생활을 병행하고 있는 기자가 일상을 통해 접하는 한국의 보육 현실, 문제, 사회 이슈를 담습니다. 단순히 정보만 담는 것을 넘어 저출산 시대에 다자녀를 기르는 맞벌이 엄마로서 겪는 일화와 느끼는 생각도 공유하고자 합니다.엄마가 된 이래로 보기 힘들어진 뉴스가 있는데 바로 어린아이들의 사망사건·사고 관련한 뉴스다. 특히 영아들의 사망 소식은 제목만 봐도 울컥한다. 그것이 부모에 의한 것이라면 더 말할 것도 없다. 아이를 키워보면 안다. 그 작고 가녀린 아기들이 얼마나 크게 부모에게 의존하는지. 그런데 그 세상의 전부 같은 부모에게 버려지고 죽임을 당하는 아이는 어떤 심정이었을까. 글만 쓰는데도 울컥해서 눈물이 날 것 같다. 이런 안타까운 사건을 줄이고자 제정된 출생통보제와 보호출산제가 19일부터 시행됐다. 자신이 낳은 아기들을 살해해 수년간 냉동 보관해 온 여성의 이야기가 세상에 알려진 지 1년여만이다. ● ‘냉동고 아기’ 사건 1년여만에…출생통보·보호출산제 시행출생통보제와 보호출산제는 병원 출생기록은 있지만 정식으로 출생신고되지 않은 일명 ‘그림자 아이’, ‘유령 아이’를 막기 위해 만들어졌다. 끔찍한 사건이 알려진 뒤 보건복지부가 출생아 전수조사를 벌인 결과 이런 음지의 아이들이 상당히 많다는 게 드러났다. 2015~2022년 사이에만 출생 미신고된 아이가 2123명이었고, 그중 약 300명이 이미 사망한 것으로 나타났다(당초 복지부 발표 때는 249명이었는데 경찰 수사로 50여 명 추가됨). 출생통보제가 시행되면서 이런 아이들은 줄어들 것으로 보인다. 출생통보제는 쉽게 말해 병원에서 출산한 아이 정보가 지자체로 자동 통보되도록 한 제도다. 이제 분만 기관이 아동 출생 사실, 생모 성명, 출생 연월일시 등을 전자 의무기록 시스템에 저장하면 이 정보가 건강보험심사평가원(심평원)을 거쳐 지자체로 전달된다. 지자체는 이 정보를 토대로 출산 한 달이 넘도록 출생신고를 하지 않은 부모에게 독촉 통지를 보낸다. 그래도 답이 없으면 지자체 직권으로 출생신고를 진행한다. 과거에는 이 신고를 부모에게만 의존했기 때문에 실수 혹은 고의로 출생신고가 누락되는 아이가 발생했다.출생통보제와 함께 시행된 보호출산제는 위기 임산부들을 위한 제도다. 아이를 키울 수 없거나 키우고 싶지 않아 출생신고를 꺼리는 임산부가 있다면 보호출산을 신청하고 가명과 관리번호(주민등록번호 대체)를 받아 아이를 낳으면 된다. 출산한 아이는 입양기관으로 보내진다.기껏 출생통보제를 만들어놓고 보호출산제로 ‘아이를 합법 유기’할 수 있는 길을 터주었다는 비판도 있지만, 태어날 아이 입장에서 뭐가 더 안전한지 따져 보면 답은 명확하다. 비밀로 아이를 낳을 기회를 터놓지 않으면, 자동 통보를 꺼리는 부모들은 분만 기관을 통하지 않고 사적으로 아이를 출산하려 할 것이다. 아이가 어떤 위험에 처할진 불 보듯 뻔하다. 일단 아이 생명은 살리고 보자는 게 보호출산제의 취지라 하겠다.● 부모의 위기=아동의 위기…부모에 ‘아이 키울 수 있다’ 청사진 보여줘야이번 제도 시행으로 출생아에 대한 국가의 책임은 강화됐고 우리 출생등록제도는 진일보했다. 하지만 아직도 갈 길이 많이 남았다. 등록제도만 진보하고 위기 아동과 부모의 상황은 그대로라면, 부모들은 너도나도 보호출산제를 이용해 아이를 합법적으로 유기하려고만 할 것이다. 아이가 정상적으로 등록될 뿐 아니라 원가정에서 잘 자랄 수 있게 하려면 궁극적으로 부모의 위기가 해결돼야 한다. 아동의 위기는 결국 부모의 위기다. 위기에 처한 부모에게 “힘내세요~” 응원만 보낼 게 아니라 구체적인 정보와 혜택을 제시해야 한다. 위기 부모에 대한 보육, 의료, 취업 지원을 강화하고 이를 통해 ‘당신의 위기를 이렇게 극복할 수 있다’고 청사진을 보여주는 것이다. 그러자면 위기 부모에게 먼저 다가가야 한다. 임신 단계부터 이런 부모들을 파악하고 관리하는 게 중요하다. 상담창구가 생긴다지만 안타깝게도 위기 부모들은 대부분 정보취약계층이라 상담의 존재 자체를 모를 가능성이 높다. 상담창구는 물론 지원책에 대한 효과적인 홍보, 탐색 전략을 구상해야 한다. ● ‘외국인 아동, 미혼부’ 출생등록 여전한 사각지대이번을 계기로 우리 출생등록제도에서 더 개선할 부분이 없는지 살펴볼 필요도 있다. 출생통보제의 시행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사각지대가 남았는데 바로 외국인 아동이다. 한국에선 외국인이 아이를 낳아도 출생신고를 할 수 없다. 현행법에 따라 오직 ‘국민’만 신고할 수 있기 때문이다. 외국인은 자국 대사관 등에 가서 출생신고를 해야 한다. 당연히 미등록 출생아가 발견돼도 출생통보제에 따라 출생신고를 할 수 없다. 애초 외국인 신고제도가 없으니 말이다.초저출산으로 외국 인력 도입을 확대하고 이민청까지 만드는 마당에 외국인들의 출생신고를 언제까지고 막아둘 순 없다. 국내 외국 인구가 늘면 분명 국내 아동과 마찬가지로 사각지대도 생길 것이다. 실제 최근 불법체류 외국인이 유기한 중증장애아의 딱한 사연이 알려지기도 했다. 이 아기는 출생신고를 할 수 없어 그 어떠한 법적 도움도 받을 수 없는 상태다. 21대 국회에서 외국인 아동 출생등록에 관한 법이 발의되긴 했지만 국회 임기가 끝나며 폐기되었다. 다시 논의를 시작해야 한다. 출생신고 대상을 ‘미혼부’로 확대해야 한다는 주장도 꾸준히 제기돼왔다. 현재 출생신고는 생모와 그 생모의 법적 배우자만 할 수 있다. 생부라 해도 생모와 법률혼 상태가 아니면 출생신고가 불가하거나 무척 어렵다. 가족 형태가 다양해지고 있는 만큼 DNA 검사를 통해 생부인 것이 확인되면 출생신고를 할 수 있게 하는 등 방안을 모색해야 한다. ● 제도 개선 필요하다면 ‘아동 입장에서’ 출생통보제와 보호출산제도 시행되면 또 출생신고제 관련 여러 보완할 문제가 드러날 것이다. 예를 들어 ‘7일 이상’으로 규정된 보호출산 숙려기간을 더 늘려서 명시해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수정해야 할 부분이 있다면 논의를 거쳐 수정하면 된다. 다만 언제든 결정의 중심엔 아동이 있어야 한다는 걸 잊지 말았으면 한다. 어떻게 하는 것이 아동 전반의 복지 향상에 기여하는가, 그 아동을 더 행복하게 하는가에 초점을 맞춰 의사결정을 한다면 그것이 곧 더 옳은 방향이다. 모든 아이는 그 어떤 걸로도 대체할 수 없는 소중한 생명이기에 잘 지키고 잘 자라도록 돕는 것이 지금까지 무사히(!) 살아남은 어른들의 역할이라 생각한다. 제도가 순항해 이제 그 어떤 아기의 미래도 짓밟히지 않길 진심으로 기원한다. 이 글을 적는 지금도 눈시울이 붉어지고 있으니 볼썽사나운 꼴을 보기 전에 그만 글을 마무리해야겠다. 이미지 기자 image@donga.com}

    • 2024-07-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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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보육, 교육, 국고, 교부금…유보통합 ‘뭣이 중헌디?!’[이미지의 포에버 육아]

    ‘포(four)에버 육아’는 네 명의 자녀를 키우며 직장생활을 병행하고 있는 기자가 일상을 통해 접하는 한국의 보육 현실, 문제, 사회 이슈를 담습니다. 단순히 정보만 담는 것을 넘어 저출산 시대에 다자녀를 기르는 맞벌이 엄마로서 겪는 일화와 느끼는 생각도 공유하고자 합니다. “왜 아이들 유치원에 안 보내요?” 아이들 어릴 때 종종 받았던 질문이다. 나는 네 명의 아이들을 모두 만 5세(한국 나이 7살)까지 어린이집에 보냈다. 다들 보육 분야 기자로서 특별한 이유나 신조가 있는 게 아닌가 지레짐작했지만 그런 대단한 건 전혀 없었고, 그저 그 어린이집의 교육 내용, 교사진, 우리 집과의 거리 등이 마음에 들었기 때문이었다. 사실 말이 어린이집이지 교사진은 유치원 교사 자격증을 취득한 분들이었고, 특별활동으로 한글, 영어, 수학까지 배웠다. 그게 반드시 좋단 뜻은 아니지만, 어쨌든 교사와 교육 모두 인근 유치원과 다를 게 없었다. 흔히 ‘어린이집은 보육, 유치원은 교육 위주’라고 이분법적으로 생각하는데, 만 3~5세(한국 나이 5~7살) 교육과정은 누리과정으로 표준화된 지 오래다. 어린이집과 유치원 모두 기본교육 내용엔 차이가 없다는 뜻이다. 교사 역시 요새는 어린이집도 유아교육과 졸업자를 채용하는 경우가 많다. 특별활동 종류는 운영자의 재량이다. 지인의 아이가 다니던 기관은 유치원이었는데, 원장님이 돌봄과 놀이 위주 교육을 중시해 관련 특별활동이 많았다. 활동만 비교해 보면 우리 아이들 어린이집보다 더 어린이집 같은 느낌이었다. ● ‘남북통일보다 어려워…’ 재원 두고 국고 vs 교부금 벌써 논쟁 이처럼 현장에선 이미 어린이집 유아반과 유치원의 질적 경계가 모호해졌다. 그런데 여전히 형식적으로는 전혀 다른 기관이라 지원금액, 그 금액의 출처, 관할법, 구성원의 법적 지위 등이 다 다르다. 어느 기관에 들어가느냐에 따라 아이들이 받을 수 있는 혜택도 달라질 수 있는 상황이다. 이런 ‘한 지붕 두 제도’라는 이상한 상황을 타개하고자 유치원과 어린이집의 통합, 즉 유보통합이 여러 차례 시도됐다. 하지만 번번이 구체적인 단계까지 이르지 못하고 무산되길 반복했다. 오죽하면 ‘남북통일보다 어려운 유보통합’이란 말까지 나왔다. 이번 정부도 지난해 추진단을 꾸리고 유아 기관 관리를 교육부로 일원화하는 정부조직법 개정안까진 야심 차게 통과시켰는데, 지난달 법 시행에 맞춰 나온 계획을 보면 기대에 못 미치는 수준이다. 가장 큰 숙제인 재원, 인력 통합의 구체적 청사진이 나오지 않았기 때문이다. 물론 아직 실망하기엔 이르다. 이제부터 만들어나가면 된다. 다만 할 일은 많다. 어린이집과 유치원의 예산은 그 돈주머니가 서로 다를 뿐 아니라 각자 안에서도 국가, 지자체, 교육청 등 출처가 복잡하게 얽혀있다. 앞으로 통합되면 어디가 어떤 예산을 맡을지 교통정리를 해야 한다. 더 골치 아픈 건 유보통합에 따라 향후 3년간 연간 2조~4조 원이 추가로 필요하다는 점이다. 이 돈을 어디서 끌어올지도 함께 정해야 한다. 벌써 국고 지원과 지방교육재정교부금 사용 등을 두고 논쟁이 빚어지고 있다. ● 교원 자격도 입장차 커…합의 어떻게 이끌어내느냐 관건 교원 자격 통일도 잘 알려졌다시피 어려운 문제다. 사실 미래 교원의 자격을 어떤 기준에 맞출지, 기존 교원들의 간격은 어떻게 좁힐지 계획을 짜는 건 어렵지 않다고 생각한다. 이미 전문가들이 많은 분석과 시나리오를 내놨다. 어떻게 합의를 이끌어내느냐가 관건이다. 사안마다 이해 당사자들의 입장이 첨예하게 갈린다. 예를 들어 만 0~2세 영아 교원 자격을 만 3~5세와 통합하는 안은 유치원 교사들의 반발이 크다. 반대로 분리하는 건 만 0~2세 교사를 영아 전담으로 전락시킨다고 하여 보육교사 측에서 반발하고 있다. 이런 큰 틀부터 양측 최저학력기준, 이수 과정, 기존 보육교사의 보수교육까지 세부적으로 조율할 사안이 매우 많다. 인력뿐 아니라 재원도 결국 이해 당사자들을 어떻게 설득하고 합의하게 하는지가 가장 중요한 문제다. 정부의 강한 추진력이 절실히 필요한 지점이다. 이제 유보통합이 온전히 한 부처의 일로 넘어온 만큼 교육부가 전문가, 이해당사자들과 함께 신속하게 팀을 꾸리고, 안을 짜고, 공론화하고, 각 당사자를 만나 설득해야 한다. ● 통합에 매몰되면 안돼…장애아 포함 모든 영유아 ‘동등한’ 돌봄 누려야 그런데 잊지 말아야 할 게 있다. 영유아기관의 통합은 수단이지 목적은 아니라는 점이다. 외형적 합체에 매몰되면 자칫 제일 중요한 걸 놓칠 수 있다. 지난달 27일에 발표된 ‘유보통합 실행계획 시안’에서 별로 주목받지 못했지만 내 눈에는 띈 내용이 있다. 5대 과제 중 마지막 과제의 끄트머리 한 단락으로 들어간 ‘특수교육 대상 영유아 통합지원’ 안이다. 장애 영유아들도 적절한 교육을 받을 수 있도록 앞으로 통합될 유아기관 내 특수학급, 특수교육을 점진적으로 확대해 간다는 내용이다. 한국에 사는 영유아라면 누구든 어디서든 동등한 혜택을 누리게끔 한다는 게 유보통합의 취지다. 장애 영유아도 함께 돌봄의 혜택을 받을 수 있게 하겠다는 이 과제만큼 그 취지에 부합한 게 또 있을까. 장애 아동 부모인 지인이 있어 돌봄 기관을 찾는 데 애먹은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무척 마음이 아팠고, 그런 현실을 잘 몰랐던 기자로서 반성했었다. 특수교육 지원은 그 자체로 매우 의미 있는 정책이다. ● 유보통합 아니라 유보‘개선’ 정서·심리 지원 강화도 환영할 만한 내용이다. 앞으로 심리 전문가나 기관과 협약을 맺어 영유아는 물론 교사까지 정서심리 진료와 검진 혜택을 받을 수 있게 할 것이라 한다. 요새 마음이 아픈 아이, 교사 소식이 적잖이 들리는 만큼 꼭 필요한 일이다. 이주호 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은 유보통합 계획을 발표하는 자리에서 “(유보통합이 시행되면) 저출산에 대한 효과도 분명히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동의한다. 다만 영화 대사처럼 ‘뭣이 중헌디?’를 잊지 말아야겠다. 결국 유치원, 어린이집 통합도 영유아 돌봄을 개선하자고 하는 것이다. 장애 아동, 정서심리 지원, 그리고 돌봄 시간 연장, 교원 인력 확충, 각종 시설 교체 등 이번 대책이 담은 다양한 ‘유보개선’책도 잘 시행되어야 한다. 그래야 저출산 해소에 기여할 것이다. 유보통합 과정에서도 그 정당성을 놓치지 않고 잡고 가야만 구성원들과 국민의 동의를 이끌어낼 수 있다.이미지 기자 image@donga.com}

    • 2024-07-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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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합계출산율 1.0명은 실현 가능할까?[이미지의 포에버 육아]

    ‘포(four)에버 육아’는 네 명의 자녀를 키우며 직장생활을 병행하고 있는 기자가 일상을 통해 접하는 한국의 보육 현실, 문제, 사회 이슈를 담습니다. 단순히 정보만 담는 것을 넘어 저출산 시대에 다자녀를 기르는 맞벌이 엄마로서 겪는 일화와 느끼는 생각도 공유하고자 합니다.‘합계출산율 1.0명.’ 19일 윤석열 대통령이 취임 후 두 번째로 직접 주재한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 본회의에서 2030년까지 달성하겠다고 밝힌 목표다. 이날 육아휴직급여 인상을 포함해 다양한 저출산 추가 대책이 발표됐다.불가능하다곤 안 하겠다. 그러나 목표 달성이 쉽진 않을 것 같다. 합계출산율은 2017년 1.05명을 마지막으로 0명대로 추락했고, 이후 소폭조차 반등한 적이 없다. 그 사이 정부의 노력이 없었냐고 하면 그런 것도 아니다. 올해 출산율은 집계 이래 가장 낮은 0.6명대로 예측됐다. 내년부터 5년 내 출산율을 +0.4명가량 끌어올려야 한다는 이야기다. ● ‘아이에게 미안해서…’ 청년들이 안 낳는 이유출산율을 끌어올리기 어렵다고 보는 이유는 근래 출산율 감소가 사회경제적 조건 때문만이 아니기 때문이다. 출산 관련해 젊은 세대의 생각 자체가 바뀌어도 너무 바뀌었다. 10여 년 전 기자가 아이를 낳을 때만 해도 ‘결혼=출산’이라 생각하는 사람이 많았다. 반면 요새 젊은 기혼자들 가운데 선뜻 애 낳겠다고 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내 주변만 해도 결혼하고 몇 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고민하고 있다”거나 “배우자와 의견을 조율 중”이라는 이들이 대다수다. 주목할 점은 그 이유인데, ‘일이 바쁘다,’ ‘하고픈 게 많다’처럼 본인에 초점을 맞춘 게 아니라 태어나지 않은 ‘미래의 자녀’에 초점을 맞춘 답이 많다는 점이다. ‘잘 키울 수 없을 것 같아서,’ ‘좋은 환경이 아니어서,’ ‘아이에게 미안해서’ 등. 처음에는 그저 하기 싫을 뿐이면서 듣기 좋은 말로 포장하는 거 아닌가 하는 생각도 솔직히 들었다. 하지만 몇 사람이 아니라 거의 모두 이렇게 답변하는 걸 보며 청년들 사이에 만연한 사고임을 알 수 있었다. 허지원 고려대 심리학부 교수는 ‘완벽한 부모 신드롬’이라는 말로 이런 심리를 설명했다. 1982~1996년 밀레니얼 세대는 완벽을 추구하는 경향이 있고, 따라서 준비가 덜 되었거나 뭘 준비해야 할지 모르는 상태에서는 출산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잘 키우려는 마음이 커서 역설적으로 자녀를 키울 수 없게 되는 셈이었다. 실제 기자도 “잘 키우지 못할 바엔 낳지 않겠다”거나 “애 키울 능력이 없는데 애 낳는 건 죄” 식으로 말하는 청년들을 여럿 보았다.● 기후위기·AI위협까지 걱정…육아 혜택으로 마음 돌리기엔 역부족거시적이고 중장기적인 우려로 아이를 낳지 않는다는 이들도 있었다. 두 딩크(DINK·Double Income and No Kids)족을 연달아 인터뷰한 적이 있는데 서로 모르는 두 사람이 “기후변화, AI 확산 등을 언급하며 미래 세대가 처할 불확실성과 불안 때문에 출산을 포기했다”고 복붙(복사해 붙이기)처럼 이야기해 놀랐다. 이 역시 솔직히 처음엔 ‘진심일까?’란 의구심이 먼저 들었다. 하지만 이후 젊은 무자녀 기혼자들을 인터뷰할 때도 종종 같은 답을 들을 수 있었다. 찾아보니 이미 서구에선 몇 년 전 ‘#No future, No children’ 같은 운동이 벌어졌을 정도로 제법 보편적 사고였다.여전히 고개가 갸우뚱 기운다면 이렇게 생각해보자. 자녀를 잘 키우려면 안전한 사회와 깨끗한 환경이 필요하다. 그 범주에 집, 동네뿐 아니라 전 사회와 지구도 들어간다고. 내 아이가 자랄 사회와 지구의 미래가 비관적이라면? 열악한 환경에 처한 여느 생물과 마찬가지로 번식을 멈출 것이다. 이렇게 출산을 포기한 청년들이 육아기 지원이 좀 늘어난다고 출산을 결심할까? 내용 없는 ‘획기적 대책’이란 말을 별로 좋아하지 않지만, 정말 경천동지할 획기적 대책을 내지 않고선 마음을 돌리기 어려울 것이다. 19일 대책이 발표되고 난 뒤 결혼 3년차, 딩크족을 자처하는 지인에게도 물어보았다. 그의 답은 역시나 “육아 지원이 강화되는 건 좋은 일인데요, 저는 여전히 안 낳을 것 같아요”였다. ● 1.0명 돼도 여전히 꼴찌…인구 감소 문제 여전정부도 다 생각한 게 있겠지, 출산율이 반등할 수도 있는 거 아닌가. 그렇다. 하지만 그런다고 대단한 변화가 일어나는 건 아니다. 워낙 0명대라는 수치가 주는 이미지가 강해서 우리는 늘 출산율만 가지고 이야기하는데 실제 출생아 수도 잊지 말아야 한다. 지난해 태어난 아기는 23만 명. 그 아기들의 부모가 태어난 1980~1990년대에는 한 해 출생아 수가 60~80만 명이었고, 또 그들의 부모가 태어났던 1950~1960년대에는 무려 100만 명이었던 걸 생각하면 비교도 안 되게 적은 숫자다. 출생아의 감소는 곧 미래 부모의 감소를 뜻한다. 1980년대 합계출산율 2명대 벽이 무너진 이래로 매년 출생아는 부모보다 적게 태어났다. 즉 저출산은 계속 누적되었고 이제부터 부모 수는 계속 줄어들 것이다. 부모도 줄고 아이고 적게 태어나는, 이른바 저출산의 ‘더블링’이다. 부모가 100만 명일 땐 합계출산율이 0.6명이어도 출생아 수가 30만 명이지만, 부모가 60만 명이면 출산율이 1.0명으로 올라도 출생아 수는 똑같이 30만 명이다. 출산율이 오른다고 능사가 아니라는 이야기다. 2030년 합계출산율 1.0명 목표를 달성하더라도 인구 감소 속도를 조금 늦출 뿐 대세에 큰 변화는 없을 것이다. 세계 꼴찌인 순위도 달라지지 않는다. 2021년 기준 우리에 뒤이은 합계출산율 최저 2, 3위 말타와 중국은 출산율이 각각 1.13명, 1.16명이었다. 1.0명이 되는 것은 말 그대로 압도적 꼴찌에서 그냥 꼴찌가 되는 정도다. ● 극복뿐 아니라 ‘적응’을 논의해야 할 때그렇다고 19일 발표가 의미 없다고 이야기하려는 건 아니다. 1.0명을 크게 괘념치 말란 이야기다. 이미 태어난 아이들 모두 소중한 우리의 국민이기에, 이들을 양질의 환경에서 키울 수 있게 하는 육아 지원책은 여전히 그 자체로 매우 중요하다. 그리고 일부에 한해선 출산유인책이 될 수도 있다. 다자녀 부모들끼리 하는 말이 있는데 “낳아본 사람이 더 낳는다”이다. 다자녀 부모 온라인커뮤니티에 가보면 자녀가 셋, 넷인데도 “하나 더 낳고 싶다”는 사람이 수두룩하다. 출산에 대한 심리적 문턱이 상대적으로 낮은 것이다. 물론 한 명 낳고 더는 못 낳겠다고 하는 사람도 많지만, 그만큼 하나 키워보니 예뻐서 둘째, 셋째를 생각하게 되는 사람도 적지 않다. 이렇듯 의지가 있는 가정엔 출산지원책이 추가 출산의 유인이 될 수 있다. 실제 한 지인은 둘째를 고민하던 중 부부 모두 육아휴직을 사용하면 휴직 기간과 급여를 늘려주는 혜택(6+6 부모육아휴직제도)을 접하고 둘째를 가졌다고 한다. 육아 가정의 상황이 나아지면 청년들의 육아에 대한 인식도 개선될 수 있다. 많은 청년이 “우리 언니가,” “회사 선배가” 아이를 힘들게 키우는 걸 보고 출산을 꺼리게 됐다니 말이다. 그러나 그렇게 조금 출산율이 개선된대도 대세에 큰 변화는 없기에, 이제 저출산 ‘적응’책도 적극 회자하길 바란다. 고령화, 생산성 축소는 피할 수 없는 추세다. 이철희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가 최근 저서를 통해 지적했듯 고령, 여성 인력 활용을 높이고 산업별 재편성을 통해 그 충격을 최소화해야 한다. 앞으로 새로 출범할 부처에서 저출산 극복뿐 아니라 적응 문제 등 인구 문제를 다각적으로 논의할 수 있길 기원한다. 이미지 기자 image@donga.com}

    • 2024-06-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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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대한민국 ‘안’ 망했다…“가족친화 일터 만든다면”[이미지의 포에버 육아]

    ‘포(four)에버 육아’는 네 명의 자녀를 키우며 직장생활을 병행하고 있는 기자가 일상을 통해 접하는 한국의 보육 현실, 문제, 사회 이슈를 담습니다. 단순히 정보만 담는 것을 넘어 저출산 시대에 다자녀를 기르는 맞벌이 엄마로서 겪는 일화와 느끼는 생각도 공유하고자 합니다. “무슨 생각으로 그런 표현을 썼는지 모르겠어요. (웃음) 하지만 그게 제 진짜 반응이었죠.”한 국내 다큐멘터리 프로그램에서 한국의 2022년 합계출산율 값(0.78명)을 듣고 “대한민국 완전히 망했네요, 와!(Korea is so screwed. Wow!)”라며 머리를 부여잡는 모습으로 화제가 된 조앤 윌리엄스 미국 캘리포니아 법대 명예교수(72)는 과거 자신의 인터뷰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그의 ‘찐(眞) 리액션’은 그 어떤 저출산 기사, 논문보다 우리 사회에 더 큰 경종을 울렸다. 합계출산율 0명대란 이렇게 놀라야 하는 일이라고. 인터뷰는 유명한 ‘짤(meme)’이 되어 많은 언론에도 보도됐다. 지구 반대편 나라에서 유명인사가 되었다는 걸 그는 알았을까. 한참 나중에야 알았다고 한다. “정말 깜짝 놀랐어요. 제 인생에서 한 번도 인터넷 밈이 돼본 적이 없는데 말이죠.”● 합계출산율 0.68명, “‘매우 매우’ 이례적”방한한 윌리엄스 교수를 지난달 27일 서울 종로구 동아일보 본사에서 만났다. 다큐멘터리에서 봤던 다소 호들갑스러운 반응과 달리 답변은 진지했고 태도에선 세련된 기품이 넘쳤다. 과거 인터뷰처럼 머리 잡는 동작을 재현해줄 수 있냐는 기자의 부탁에도 난감한 표정으로 손사래를 쳤다. “저는 원래 사진 찍는 것도 별로 안 좋아하는 걸요. 그땐 정말 크게 놀라서 그랬어요.”윌리엄스 교수는 노동법 전문가이자 오랫동안 일터 성차별과 그로 인한 사회적 문제를 연구해온 저명한 사회학자다. 그의 할머니는 존스홉킨스의대 1호 여학생이었지만 결혼과 함께 자퇴해야 했고, 어머니는 지역 신문 기자였지만 세계대전이 끝나고 남자들이 대거 복귀하면서 일자리를 잃었다. 윌리엄스 교수가 여성 노동과 저출산 문제에 관심을 갖게 된 어쩌면 당연한 수순이었다. 저출산 문제를 관심 있게 지켜봐 온 그에게도 한국의 초저출산 상황은 머리를 부여잡을 만큼 놀라운 소식이었다. 통계청에 따르면 올해 한국의 합계출산율은 0.68명으로 예측된다. 윌리엄스 교수가 듣고 놀랐던 0.78명에서 0.1명 더 줄어든다는 이야기다. 윌리엄스 교수는 “그토록 낮은 수치는 들어본 적이 없다”며 “매우 매우 이례적인 것”이라고 부사를 두 번이나 쓰며 강조했다. 그는 “전쟁이나 팬데믹 상황인 나라들에서나 그런 출산율을 볼 수 있을 것”이라며 “이는 (한국) 거시경제에도 과제가 될 것이다. 한국과 미국의 돈독한 관계를 감안할 때 우리는 관심을 갖지 않을 수 없다”고 덧붙였다. ● ‘근로시간 유연성’ 강조한 정부 개편안에 “아이 일주일 얼려놓을 수 있나”노동 전문가인 윌리엄스 교수는 한국 초저출산 문제 원인으로 단연 ‘가족 비친화적 일터’를 꼽았다. 특히 ‘장시간 노동’이 해소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윌리엄스 교수는 “한국인들은 주 50시간 이상 일하는 경우가 OECD 평균 대비 2~2.5배 이상 많다”며 “노동시간이 매우 매우 길다”고 또 부사를 두 번이나 반복하며 지적했다. 우리 정부가 지난해 내놓은 근로시간 개편안에 대한 생각은 어떨까. 지난해 고용노동부는 일주일에 최대 52시간(주 52시간제)으로 규정된 제한을 풀어 근로시간을 월, 연 단위로 ‘유연하게’ 운용할 수 있게 하겠다며 개편안을 내놨다. 여론의 뭇매를 맞고 좌초하긴 했지만, 정부는 제도의 틀 자체엔 문제가 없다고 주장해왔다. 경직된 근로시간을 유연하게 운영하면 ‘몰아서 69시간 일’할 수도 있는 대신 그만큼 ‘몰아서 휴식’을 취할 수도 있어서 결과적으로 근로자에게도 득이라는 설명이었다. 윌리엄스 교수는 제도의 취지를 잘 알고 있었다. 그는 “고용주가 (노동자에게) 한 주는 길게, 다른 한 주는 적게 일하게 요구할 수 있게 된다는 것 아니냐”며 “만약 (길게 일하는) 한 주 동안 애를 ‘얼려놓을 수 있다면’ 괜찮을 것이다. 그렇지만 아이는 그렇게 키울 수 있는 게 아니다”고 반박했다. 이러나저러나 길게 일하면 아이를 돌볼 수 없게 되는데, 이런 육아 부모를 전혀 고려하지 않은 정책이라는 이야기였다. 특히나 세계 최장 근로시간의 한국이 지금 ‘근로시간의 유연성’을 논할 때는 아니라고 그는 지적했다. ● 가사 8배, 육아 6배 한국 여성, “출산? No Thanks!”그는 한국의 여성 노동 문제에 관해서도 잘 알고 있었다. 중소기업이 전체 기업의 90% 이상(종사자는 80%)을 차지하는 한국 기업 생태계의 특징을 언급하며 “대기업에선 (근로시간 단축 등 가족친화적 시스템 마련에) 진전이 있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한국엔 중소기업이 많고 대부분의 여성 역시 중소기업에서 일한다는 게 문제”라며 아직 많은 여성이 아이를 키우기에 열악한 상황에 있음을 지적했다. 그나마 대기업에서 많이 이용하는 육아휴직도 ‘아직 이용 시 눈치를 봐야 하는 점,’ ‘남성 이용률이 여성에 비해 현저히 낮은 점’이 여전히 문제라고 짚었다. 윌리엄스 교수는 “정말 놀라운 건 (한국) 여성들이 동료들에게 미안해 육아휴직을 못 간다는 것”이라며 “고용주가 돈을 아끼려 대체인력을 고용하지 않고 남은 사람들을 혹사하기 때문이다. 결국 복직한 여성은 불만에 찬 동료들을 맞닥뜨릴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그는 또 기본 육아는 물론 자녀 교육, 물질적 성공까지, 한국 엄마들에게 부과되는 과도한 책임이 엄마들로 하여금 출산을 꺼리게 만든다고 했다. “여성들은 자녀뿐 아니라 남편과 그 부모님까지 돌봐야 한다. …한국 여성은 남자보다 가사노동 8배, 육아 6배를 더 한다. …어느 순간 남자와 자신을 비교해본 여성은 이런 말을 할 수밖에 없을 거다. ‘(출산과 육아) 더는 사양하겠어(No thanks)!’라고.”● 가족친화적 일터 없이는 ‘백약이 무효’윌리엄스 교수도 두 아이의 엄마다. 수많은 책과 논문을 쓰면서 아이들을 어떻게 건사했을까? 그는 “나는 아마도 미국에서 (일반 가정이) 유모를 둘 수 있던 유일한 시대에 산 사람일 것”이라며 “지금은 (미국에서도) 인건비가 비싸 꿈도 못 꾸는 일”이라고 말했다. 윌리엄스 교수는 최근 할머니가 됐다. 최근 태어난 손녀는 “생후 4개월 때부터 비싼 돈을 내고” 어린이집(childcare center)에 다닌다고 했다. “미국에 비하면 한국은 좋은 보육시스템을 가졌다. 정부가 보육과 교육에 많은 돈을 투자해왔고 결국엔 결실을 맺었다.” 윌리엄스 교수가 말했다. 하지만 무상보육·교육임에도 긴 근로시간, 치열한 경쟁, 교육 부담 등으로 인해 결국 추가로 돌봄과 교육비용이 들어간다며 안타까움을 표했다. 결국 한국에서 저출산 문제가 해결되려면 일터의 변화가 우선돼야 한다고 윌리엄스 교수는 강조했다. 그간 정부가 수많은 저출산 정책을 내놓았지만 가족친화적인 일터가 구축되지 않으면 정책의 효과가 떨어질 것이라고도 했다. 쉽게 말해 ‘백약이 무효’하다는 말이었다. 그는 미국에서도 37개 대기업의 문화를 바꾸는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한국 연구진과도 협업을 구상하는 중이다. “한국엔 이제 선택권이 없다. 당장 바꿔야 한다”며 “한국을 지금에 이르게 한 방법과 추진력이 지금 상황을 극복하게도 할 것이다.…분명히 출구는 있다.” 이미지 기자 image@donga.com}

    • 2024-06-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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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못 키울 바엔 안 낳아”…육아에서 중요한 건 결과가 아니다 [이미지의 포에버 육아]

    ‘포(four)에버 육아’는 네 명의 자녀를 키우며 직장생활을 병행하고 있는 기자가 일상을 통해 접하는 한국의 보육 현실, 문제, 사회 이슈를 담습니다. 단순히 정보만 담는 것을 넘어 저출산 시대에 다자녀를 기르는 맞벌이 엄마로서 겪는 일화와 느끼는 생각도 공유하고자 합니다.“어머, 애가 넷?! 세상에, 어떻게 키워?”얼마 전 퇴근길, 버스 뒷자리에서 들려오는 여성 두 분의 대화에 귀가 솔깃해졌다. 회사 동료들인 것 같은데, 지인 중 아이 넷인 집이 있는 모양이었다. “첫째가 중학생인데 사춘기고, 막내는 이제 6살이래.” “아니, 나는 하나도 버거운데. 그 엄마는 걔들을 다 어떻게 건사하지?”‘저도 애가 넷인데 잘 건사하고 있습니다.’ 누군지 모를 아이 넷 동지 이야기에 반가워 입이 근질근질하던 찰나 한 여성이 말했다. “근데 엄마도 힘들겠지만, 애들도 안됐다. 하나 건사하기도 어려운 세상인데, 여럿이 얼마나 힘들 거야.” 그러자 다른 여성이 “그러게, 애들도 힘들 것 같다”고 맞장구를 쳤다. ●번듯하게, 남부럽잖게…“잘 키우지 못할 거면 안 낳는다”갑자기 퇴근길 경험이 떠오른 건 최근 저출산 관련해 진행한 인터뷰 때문이다. 취재를 위해 2040세대를 폭넓게 만나 이야기를 나눠보면서 인상적이었던 게 있었다. 아이를 (더) 낳고 싶지 않은 이유를 물었을 때 의외로 ‘아이를 잘 키울 자신이 없어서’라고 답하는 사람이 많았다는 점이다. 젊은 친구들이라 본인의 경력이나 일, 자유시간에 관한 답이 먼저 나올 거라 생각했는데, 생각 외로 자녀 이야기를 먼저 하는 사람들이 많았다.현재 지방 소재 중소기업에 다니고 있는 A 씨(31)는 “자녀를 가질지 모르겠지만 갖는다면 한 명만 갖고 싶다”고 했다. 이유를 묻자 “아이를 키운다면 그래도 남부럽지 않게, 번듯하게 키우고 싶은데 제 벌이로는 한 명이 적당할 것 같다”며 “둘, 셋을 키울 인프라는 꾸릴 자신이 없다”고 했다. B 씨(38)는 결혼 10년차지만 아이가 없다. 그는 “와이프가 아이를 낳으면 잘 키울 수 있을까 이런 걱정을 했었다”며 “잘 키우지 못할 바에야 안 낳는 게 낫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B 씨 부부는 반려묘 두 마리를 오랫동안 키우고 있다. 앞으로도 아기는 갖지 않을 생각이다.이미 아이가 있고 경제적으로 풍족한 부모에게서도 비슷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SNS스타이자 자수성가한 사업가 C 씨(39)는 3살 남아 한 명을 키우고 있다. 둘째는 원치 않는데, 이유가 ‘현재 자녀를 더 잘 키우고 싶어서’다. 그는 “아내가 애한테 많은 시간을 투자하고 싶어 하는 스타일”이라며 “육아에서 만족감을 온전히 느끼기 위해서는 우리 둘 다 하나가 좋다고 판단했다”고 설명했다. 너무 높은 목표치에 애초 출산이 엄두가 안 난다거나 무섭다고 말하는 청년들도 있었다. 인터뷰이 중 한 명인 20대 여성은 “아이 키울 때 보내야 하는 기관, 들여야 하는 사교육비, 시간 이야기를 들으면 감히 아이를 낳을 수 없을 것 같다”고 했다. 또 다른 20대 여성도 “내가 기반을 잘 구축해서 아이에게 나보다 더 나은 삶을 줘야 하는데 그러지 못할까 봐 무섭다”고 했다. ●육아 자체보다 결과가 더 중요자녀를 잘 키우고 싶은 마음은 누구나 같을 것이다. 하지만 청년들의 답변에 한편으로 씁쓸한 생각이 들었던 건 아이와 육아 그 자체보다 아이를 어떻게 키워내는지, 그 양육결과에 무게를 두는 듯한 뉘앙스 때문이다. 앞서 버스의 두 여성이 다자녀 가정을 안쓰럽게 보았던 이유도 그런 맥락이었을 거다. 잘 키운다는 관점에서 보면 자녀 수가 많은 집은 불리할 수밖에 없다. 한 가구의 재화와 자원은 한정적이기에, 자녀가 많으면 더 쪼개어 나눠 가져야 하기 때문이다. 그렇게 생각하면 자녀를 많이 낳는 가구가 대책 없어 보일 수도 있다. 실제 인터뷰한 20대 여성 중엔 다음과 같이 말하는 사람도 있었다. “요즘 젊은 사람들의 공통된 정서가 ‘가난해서 애 낳는 건 죄’라는 거다. 2세를 낳을 거면 더 나은 세상을 물려줘야지, 그런 것도 없이 둘, 셋 여럿 낳는 건 아이 인생을 망치는 거라고도 볼 수 있다.”물론 아이를 전혀 양육할 수 없는 상황에서 아이를 낳은 뒤 방기하거나 학대하는 부모도 있다. 그러나 그런 극단적인 사례가 아니라 정상적인 가정에서 낳은 아이들도 투자와 미래가치라는 프레임으로 우선 본다는 건 어쩐지 씁쓸한 일이 아닐 수 없다. ● 함께 나누는 시간, 고민, 행복, 그 모든 것이 육아미국 현지 대학에서 대학강사로 일하고 있는 D 씨(45, 여)는 원래 학위만 따고 한국으로 돌아올 생각이었지만 고민 끝에 남편, 초등학생 아이 둘과 함께 미국에 남기로 했다. 부부 모두 미국엔 전혀 연고가 없다. 이민은 순전히 자녀들 때문이었다. D 씨는 “한국에선 아이 키우면 ‘이거 해야 하고 저거 해야 하고’ 이런 게 너무 많더라”며 “아이를 행복하게 키우는 게 아니라 다들 아이를 특정 성공의 롤모델대로 만들어야 하는 태스크를 짊어지는 것 같았다. 그래서 이민을 결정했다”고 했다. 아이를 풍족하게 키우거나 잘 키워 성공시켜 나쁠 건 없지만, 육아에서 무엇보다 중심이 되어야 할 건 아이와 부모의 행복한 시간, 그리고 그런 육아의 과정이다. 그리고 아이를 갖느냐 안 갖느냐 선택에 있어서도 그런 것들이 먼저 고려되어야 할 것이다. 비록 네 아이에게 값비싼 교육과 옷, 집을 주진 못했지만, 매일 저녁, 주말 아이들과 함께 웃고 떠드는 시간이 행복했고, 비록 부딪힐지언정 어떤 미래를 그릴지 함께 구상하고 고민하는 과정이 즐거웠다. 아이들 덕분에 울고 웃는 그 모든 시간이 육아였고 내 인생에 가장 중요한 가치였다. 생각해 보면 잘 키운다는 것도, 꼭 번듯한 미래를 갖는 것만을 의미하진 않을 것이다. 이미지 기자 image@donga.com}

    • 2024-05-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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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 아이 키우는 데 ‘온 마을’ 아니고 ‘온통 부모’만 필요”…‘빡센’ 한국식 육아[이미지의 포에버 육아]

    ‘포(four)에버 육아’는 네 명의 자녀를 키우며 직장생활을 병행하고 있는 기자가 일상을 통해 접하는 한국의 보육 현실, 문제, 사회 이슈를 담습니다. 단순히 정보만 담는 것을 넘어 저출산 시대에 다자녀를 기르는 맞벌이 엄마로서 겪는 일화와 느끼는 생각도 공유하고자 합니다.얼마 전 아이들과 함께 일본 소도시로 여행을 갔다가 웃지 못할 경험을 했다. 갑자기 비가 내려 어렵게 버스정류장을 찾고 있는데 70대로 보이는 일본인 할아버지께서 “관광객이냐”며 역까지 태워주겠다고 본인 차를 내어오셨다. 그때만 해도 ‘웬 횡재냐’ 싶었는데 다시 없을 ‘악재’가 될 줄이야. 역에 도착해 감사 인사와 함께 할아버지를 보내고 기차표를 사려는 순간 깨달은 것이다. 할아버지 차에 가방을 놓고 내렸다는 걸!● 여행 중 엄마의 실수, 기특했던 아이들의 대응지갑과 열차 패스 모두 가방에 있었다. 심지어 와이파이 기계까지 가방에 든 터라 휴대전화 인터넷도 먹통이 됐다. 그 말인즉 휴대전화 일어 번역기를 쓸 수 없게 됐다는 뜻이었다. 설상가상으로 지방 소도시라 교통편도 많지 않았다. 1시간 반 뒤에 오는 막차를 놓치면 숙소 돌아갈 방법이 요원했다. ‘오, 신이시여’ 소리가 절로 나왔다. 때마침 경찰서처럼 보이는 곳이 있어 무작정 들어가 일본인 경찰관 두 분께 영어와 손짓, 발짓을 섞어가며 겨우 대략적인 상황을 설명했다. 다행히 경관분들이 사정을 이해하시어 경찰차로 맨 처음 할아버지 차를 탄 곳까지 데려다주셨고, 함께 골목을 뒤진 끝에 할아버지 차를 찾을 수 있었다. 가방을 되찾았음은 물론이다.그나저나 내가 그 난리를 치르는 새 함께 간 아이들 네 명은 어디 있었을까? 아이들까지 챙길 정신이 없어 편의점에서 시간을 보내고 있으라 했는데, 아이들은 혹시나 할아버지가 가방을 갖고 돌아오지 않을까 싶어 돌아가며 역 앞에서 당번을 섰다고 한다. 허기질 시간이라 낮에 산 간식을 나눠 먹었고, 심심하면 서로 말 주고 받기 게임을 하면서 무료함을 달랬단다. 미안하면서도 기특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런 대형사고 수준은 아니지만, 여행 내내 작은 실수는 계속 있었다. 예를 들어 어느 날은 조식을 먹으러 숙소 식당에 내려갔는데 조식표 한 장을 안 들고 와서 다시 방에 올라갔다 와야 했다. 아이들이 기다릴 생각에 헐레벌떡 뛰어갔다 왔는데 웬 걸, 어느덧 네 명 모두 식판에 야무지게 음식을 담아와 먹고 있는 게 아닌가. 손에 잘 닿지 않는 음식은 주변 사람에게 ‘도와 달라’ 부탁까지 하고. ● 스스로 할 수 있는 건 스스로…부모도 편해야혼자 아이들 데리고 여행 갔다 왔다고 하면 ‘엄마가 혼자 애들을 다 어떻게 챙겼느냐’고 감탄하는 사람들이 많다. 엄마 혼자 다 챙긴 건 아니다. 아이들끼리도 서로 챙기기도 하고, 때로는 엄마가 챙김을 받기도 했다. 엄마가 모든 걸 다 해줘야 하는 여행이었다고 하면 아마 힘들어서 가지 못했을 것이다. 평상시 육아도 마찬가지란 생각이 든다. 나는 웬만하면 아이들에게 여러 가지 일을 혼자 스스로 해보게끔 독려하는 편이다. 아이가 서툴다고 부모가 일일이 개입하면 누구보다도 부모가 너무 힘들다. 이렇게 힘든 육아는 힘든 여행과 마찬가지로 지속가능하지 않다. 아이들 입장에서도 스스로 완수해내는 경험은 매우 중요하다. 우리 아이들은 예닐곱 살부터는 스스로 머리 감고 이를 닦게 했다(물론 처음에는 부모의 점검이 필요하다). 학교, 학원도 첫 한두 달이 지난 뒤부터 혼자 다니도록 했다. 어쩔 수 없이 근무해야 하는 휴일, 아이들끼리 하루를 보낸 적도 있다. 처음엔 당연히 실수가 있었지만, 아이들은 생각보다 금세 적응하고 잘 해냈다. 지난 여행 때 아이들의 의연한 대처도 평상시 이렇게 스스로 각자 일을 해본 습관 덕 아닐까 짐작해 본다.● 어린아이도 식사 준비하는 몽골, 부모가 등하교 동행 않는 독일최근 외국인과 외국에서 오래 살다 온 분들을 만나 한국의 저출산 관련해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무척 인상적이었다. 한국 남성과 결혼하고 서울에 사는 몽골인 A 씨(32·여)는 한국 엄마들로부터 “시집와서 칼을 처음 만져 봤다”는 말을 듣고 깜짝 놀랐다고 한다. 그는 “몽골에선 초등학교 저학년 나이부터 식사 준비에 참여한다. 감자 같은 건 네다섯 살 때부터 깎았다”고 한다. 매일 오후 학교 정문 앞에서 부모들이 줄지어 서서 아이들 하교를 기다리는 모습도 신기했다고. “한국 초등학교는 대부분 집에서 가깝다. 이상한 사람을 따라갈까 걱정이라면 아이에게 잘 가르쳐주면 될 텐데 (학교 앞에서 기다리는 부모들의) 인내심이 대단하다고 생각했다.” A 씨의 말이다. 독일 여성과 결혼해 10년째 독일에서 사는 B 씨(37)는 반대로 독일 육아 방식을 보고 놀란 경험이 있다. “한국 부모들은 매일 규칙처럼 아이들을 씻기잖아요. 독일에선 부모들이 며칠씩 놔두더라.” B 씨에겐 아이 옷 단추를 채워주지 않거나, 넘어져도 곧장 가서 일으켜 주지 않는 부모 역시 생소했다. 등하교 모습도 독특했다고. 그는 “초등학교 같은 반 아이들이 집마다 들러 마치 기차놀이 하듯이 서로를 챙겨 등하교한다. 부모들은 따로 동행하지 않는다”고 전했다. ● “부모라면 아이 뒤치다꺼리 해야”…‘빡세다’ 한국 육아두 해외 경험자들이 공통으로 이야기하는 것은 한국 육아가 다른 나라와 비교해 “빡세다(힘들다)”는 것이었다. A 씨는 첫째가 서너 살쯤 시어머니에게 들은 말을 잊을 수 없다고 했다. “아이가 물을 흘렸는데, 스스로 닦도록 두었더니 저에게 ‘부모란 이런 일(아이 뒤치다꺼리)이 직업인 사람’인데 왜 치우지 않느냐셨다. 솔직히 충격이었다.” 몽골 부모란 아이에게 꼭 필요한 돌봄과 가르침을 주는 사람이라고 한다. 반면 한국 부모는 “전업주부처럼 육아에 온 정성을 쏟는 사람”이라고 했다. B 씨도 비슷했다. 그는 “독일을 경험해보니 확실히 한국 부모들에겐 요구되는 게 더 많은 느낌이 들었다”고 말했다. 왜일까. 부모와 자녀 간 유대가 각별한 유교 문화의 영향일 수도 있고, 사회적 안전망이 부실한 탓에 부모가 그 역할을 상당 부분 책임져 온 탓일 수도 있다. 갈수록 자녀 수가 줄면서 더 심해진 것일 수도 있다. 아이 둘 엄마인 한국인 C 씨(45·여)는 식당에서 본 한 가족 사례를 전했다. 엄마와 아빠, 할머니, 그리고 유치원생으로 보이는 아이까지 4명이 식사하는데, “엄마는 아이 밥을 떠먹이고, 할머니는 아이 반찬을 자르고, 아빠는 아이 얼굴에 묻은 것을 닦거나 물을 가져다주고 있더라”는 것. 결과적으로 아이는 거의 손 하나 까닥이는 일 없이 식사하고 있는 셈이었다. ● 헌신적인 육아, 조금만 힘 빼보면 어떨까어떤 이유이든 너무 헌신적인 육아로 인해 많은 부모가 육아를 고되고 어렵게 느낀다는 게 문제다. 가족들과 함께 한국으로 귀화한 파키스탄인 D 씨는 “아이 엄마는 나보다 한국말을 못 하는데, 아이 숙제를 도와야 하고 엄마가 할 일이 너무 많아 힘들어한다”고 전했다. 한국어를 잘하는(!) 한국인 지인들도 힘들어하긴 마찬가지다. ‘매 주말 학원 라이드 해야 해서,’ ‘아이가 갖고 싶다는 걸 사줘야 해서,’ ‘아이가 못하면 내가 부족한 탓 같아서’ 힘들다.취재 과정 중 만난 한 외국인은 ‘한 아이를 키우는 데 온 마을이 필요하다’는 아프리카 속담을 들며 “한국에선 한 아이를 키우는 데 ‘온통 부모’만 필요한 듯하다”고 우스개 아닌 우스개소리를 했다. 힘을 들일 땐 들이더라도 빼야 할 땐 없는지 찾아보면 어떨까. 이미지 기자 image@donga.com}

    • 2024-05-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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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숨은 ‘샤이 패밀리스트(Shy Familist)’ 청년을 찾아라[이미지의 포에버 육아]

    ‘포(four)에버 육아’는 네 명의 자녀를 키우며 직장생활을 병행하고 있는 기자가 일상을 통해 접하는 한국의 보육 현실, 문제, 사회 이슈를 담습니다. 단순히 정보만 담는 것을 넘어 저출산 시대에 다자녀를 기르는 맞벌이 엄마로서 겪는 일화와 느끼는 생각도 공유하고자 합니다.‘결혼과 출산을 안 해도 된다고 답한 청년들이 절반 이상이었다….’ ‘절반 이상이 결혼과 출산을 안 할 것이라고 답했다….’자, 퀴즈다. 언뜻 보면 같은 말 같은데 무엇이 다를까. 정답은 ‘안 해도 된다’와 ‘안 할 것이다’의 차이다. 전자는 결혼과 출산을 안 해도 되고, 해도 된다는 청년이 많았다는 뜻이다. 반면 후자는 결혼과 출산을 하지 않기로 결심한 청년들이 많았다는 말이다. ‘안 해도 된다’가 발전하면 결국 ‘안 할 것’이 되겠지만, 결코 두 문장이 같다고 볼 순 없다. ● 결혼·출산, “해도 된다”는 20대 청년들…저출산 시대 “샤이 패밀리스트”종종 청년들의 결혼·출산관 관련한 설문조사 기사를 보면 이 두 뜻을 혼동해 쓴 곳들이 보인다. 안 해도 된다는 것과, 안 할 것이라는 건 엄연히 다른 이야기인데 말이다. 갑자기 이런 국어 문법 강의 같은 이야기를 꺼내는 이유는 최근 20대 청년들을 인터뷰하며 깨달은 점 때문이다. 그동안 청년들의 인식을 설문 조사한 기사들을 보며 기자 역시 은연중에 혼동하고 있었던 모양이다. 결혼은 해도 그만 안 해도 그만이라고 하니, 당연히 젊은 청년들일수록 결혼과 출산을 안 하고 싶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막상 취재해 보니 꼭 그런 건 아니었다. ‘안 해도 된다’는 청년들은 많았지만, ‘안 할 것’이라고 단호하게 말하는 청년은 예상외로 드물었다. A 씨(24·여)는 대학 졸업 후 항공업계 취업 준비 중이다. 그는 “제 친구들 70%는 결혼하겠다고 하고 아이도 갖는다고 한다”고 전했다. 기자가 ‘결혼과 출산을 하지 않겠다는 청년이 더 많은 것 아니냐’고 반문하자, “요즘 초등학교의 전교생이 몇 명이다, 이런 이야기를 들으면 ‘진짜 결혼을 안 하는구나’ 싶긴 한데, 적어도 내 주변에 확고한 독신주의자는 거의 없는 것 같다”고 했다. 정부 산하기관 인턴으로 일하며 건축기사 자격시험을 준비 중인 B 씨(26)는 “주변 지인들이 ‘결혼하고 싶다’ 반, ‘안 하고 싶다’ 반으로 나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도 “결국에는 대부분 결혼하고 아이를 낳는 것 같다”며 “나도 평생 혼자 살고 싶지는 않다”고 덧붙였다. 다른 청년들도 마찬가지였다. 물론 ‘언제 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거나 ‘어려울 것 같다,’ ‘엄두가 안 난다’고 말하는 이들은 있었으나, ‘그래도 언젠가 결혼하지 않을까요’라거나 ‘아이를 낳을 수 있으면 낳을 것’이라며 열린 태도를 보여주었다. 그동안 설문조사나 기사를 보면 온통 부정적인 청년들뿐이었는데 어떻게 된 걸까. 전문대 졸업 후 온라인 스토어에서 자신이 만든 제품을 판매하고 있다는 C 씨(24·여)는 “나도 창업해 성공하고 싶은 한편으로 아이를 낳고 가정을 꾸리고픈 마음이 있다. 하지만 주변에는 ‘결혼하지 않을 수 있다’거나 ‘비혼주의자’라고 말한다”고 했다. 이유를 묻자 “아직 안정적으로 이룬 것도 없는데 ‘결혼하고 싶다’고 떠들고 다니는 건 어쩐지 민망하다. 또 결혼이나 자녀 계획 같은 걸 이야기하면 약간 옛날 사람 같은 느낌도 든다”고 했다. 그는 “나 같은 사람이 꽤 많을 것”이라며 “일종의 ‘샤이 패밀리스트(숨은 가족주의자)’라 부를 수 있지 않을까요?”라고 덧붙였다.● 코로나 끝나자 ‘자녀 계획’↑…출산 원하는 청년들 어딘가에최근 많은 언론에서 기사화된 한 실태조사는 이런 청년들의 상황을 잘 보여주지 않았나 싶다. 여성가족부가 지난해 6∼7월 전국 1만2000가구 만 12세 이상 모든 가구원을 대상으로 실시한 ‘2023년 가족 실태조사’ 결과를 17일 공개했는데, 2030 젊은 층에서 자녀 계획이 있다고 밝힌 사람이 그 전 조사인 2020년보다 크게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자녀 계획이 ‘있다’고 답한 30대가 전체 응답자의 27.6%, 30세 미만 15.7%로 각각 2020년 조사 값에서 9.4%포인트(2020년 18.2%), 6.8%포인트(8.9%) 오른 것. 이를 두고 ‘출산율이 반등하는 신호’라며 팡파르를 울린 분석이 적지 않았다. 하지만 특별히 변한 것도 없는데 갑자기 전에 없던 출산 의지가 솟아났을 리 만무하다. 그보다는 원래 출산을 원했거나 할까 말까 고민하던 사람들이 있었고, 그들이 코로나19가 종식되기를 기다렸다가 자녀 계획을 재개했다고 보는 편이 설득력 있을 것이다. 실제 2020년 자녀 계획이 있다고 답한 사람이 유달리 적긴 했다. 그 전 조사(2015년)와 비교할 때 20% 이상 뚝 떨어졌기 때문이다(2015년 조사에서 자녀 계획이 있다고 답한 30대는 33.2%, 30세 미만은 37.5%였다). 자연적으로 떨어졌다기엔 너무 큰 낙폭이었다. 기존에 출산 의지가 있는 청년들이 코로나19라는 사건으로 인해 뜻을 드러내지 못한 것으로 볼 수 있다. ● 출산 원하는 청년들 심층 조사…저출산 해법에 새로운 착점 줄 수도이렇게 결혼과 출산에 우호적인 청년층이 존재한다는 건 분명 반가운 일이다. 하지만 낙관은 금물이다. 안타깝지만, 30대로 넘어가면 여러 현실적인 어려움과 맞닥뜨리면서 ‘할까 말까’ 고민하던 청년 다수가 비혼, 무자녀 대열에 합류한다. ‘코로나 종식 때처럼 환경이 나아지면 다시 결혼하고 아이를 낳지 않을까’ 기대하고 싶겠지만, 코로나 종식급 국면 전환은 자주 있는 일이 아니다. 더 늦기 전에 결혼과 출산을 원하는 청년들을 찾아 심층 조사해 보기를 권한다. 출산율이 떨어지는 건 결국 결혼하고 아이를 낳으려던 사람들이 안 하고 안 낳기 때문이다. 저출산 원인을 묻는 대규모 객관식 설문조사는 사실 이제 큰 의미가 없다. 조사 했다 하면 판에 박힌 듯 나오는 집값, 일자리 불안정, 일·가정양립 불가…그 답을 모르는 사람이 있을까. 아이를 낳으려거나 혹은 낳으려 했던 사람들을 심층적으로 인터뷰하면 생각지 못한 착점을 발견할지 모른다. 왜 배우자와 자녀를 원하(했)는지, 어떤 가정을 이루고 싶고 그러자면 무엇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는지, 걸림돌은 무엇인지. 그리고 아이를 낳고자 하는 청년들이 어떤 자리에서 어떤 생각을 하는지도 공유하자. 그들이 더는 ‘샤이’로 남아있지 않게. 이미지 기자 image@donga.com}

    • 2024-04-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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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순도발효학교에서 한국전통장보존연구회, 한일교류협회 등 MOU 체결

    기순도발효학교는 11일 전남 담양 창평면 기순도 장고(醬庫)에서 발효학교 한국 측 운영진인 (사)한국전통장보존연구회(이사장 기순도), ㈜다이어리알(대표 이윤화)과 일본 측 (사)한일교류협회(대표 카나이 마수미), 파이브유니티(대표 우선희)가 상호 협력 협약서(MOU)를 체결했다고 16일 밝혔다. 기순도발효학교는 일본인 대상 학교 개교를 앞두고 있다. 학교 측은 이번 협약이 “기순도전통장의 가치를 해외에 알리고 보급하는 첫 발걸음이자 K-발효 문화교류의 교두보가 될 전망”이라고 설명했다. 이미지 기자 image@donga.com}

    • 2024-04-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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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딩크(DINK)가 내게 물었다…“왜 아이를 낳으셨나요?” [이미지의 포에버 육아]

    ‘포(four)에버 육아’는 네 명의 자녀를 키우며 직장생활을 병행하고 있는 기자가 일상을 통해 접하는 한국의 보육 현실, 문제, 사회 이슈를 담습니다. 단순히 정보만 담는 것을 넘어 저출산 시대에 다자녀를 기르는 맞벌이 엄마로서 겪는 일화와 느끼는 생각도 공유하고자 합니다.저출산 관련 취재차 딩크(DINK)족이라 밝힌 30대 기혼여성을 인터뷰했다. 딩크란 Double Income, No Kids의 앞 글자를 딴 말로, 정상적 결혼 생활을 유지하면서 적극적으로 아이를 낳지 않는 맞벌이 부부를 뜻한다. 여성에게 취재를 위한 질문임을 전제로 조심스레 물었다. 기자: “실례가 될 수도 있지만 여쭐게요. 어째서 아이를 낳지 않기로 결심하셨을까요?” 여성: “아, 저도 실례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하지만, 늘 궁금해서요. 기자님께서는 어째서 아이를 낳기로 결심하셨을까요?”상대방의 기습적인 반문에 마땅한 답을 찾지 못하고 잠시 우물쭈물했다. 인터뷰이에게 질문을 받은 것도 당황스러웠거니와, ‘왜 아이를 네 명이나 낳았느냐’는 질문이면 모를까 ‘왜 아이를 낳았느냐’는 질문은 받아 본 적도, 답을 생각해 본 적도 없었다. 짧은 고민 끝에 이렇게 답했다. “제가 낳을 땐 다들 으레 낳았거든요.”● 으레 낳던 사회에서 으레 낳지 않는 사회로…정말이지 그랬다. 13년 전 결혼하고 첫 아이 임신할 때만 해도 출산은 결혼한 부부가 ‘으레 하는 것’이었다. 적어도 기자에겐 이유나 결심이 필요하지 않았다. 출산에 관한 고민이라고 하면 흔히 말하는 ‘자녀 계획’ 정도였다. 몇 명을 낳을까, 몇 살 터울로 낳을까 등. 하지만 요즘은 다르다. 주변 지인들 이야기만 들어봐도 아이는 으레 낳는 것이 아니라 적어도 결혼 후 한동안은 ‘으레 낳지 않는 것’이 되어가고 있다. 출산 고민도 달라졌다. 몇 살 터울로 낳을까가 아니라 언제 낳을까, 몇 명 낳을까가 아니라 낳긴 낳아야 할까.생각해 보면 요새 ‘아이를 낳지 말아야 할 이유’나 ‘출산을 유예해야 하는 이유’는 넘쳐난다. 길 가는 사람을 붙잡고 물어도 아마 어렵지 않게 서너 개는 말할 수 있을 것이다. 반면 ‘아이를 낳아야 할 이유’는? 넷이나 낳은 기자도 머뭇거렸던 것처럼 선뜻 생각나지 않는다. 지난 세월 출산은 지극히 당위적인 일이었기 때문이다. 이유를 고민할 필요가 없었다. 지금은 그렇지 않다. 젊은이들에게 출산은 더 이상 당연한 일이 아니다. ‘설문조사 했더니 아이는 낳아도 되고 안 낳아도 된다고 답한 청년들이 많았다’는 소식은 이제 뉴스거리도 아니다. 한 20대 후배는 “요즘은 ‘아이를 꼭 낳고 싶다’고 말하는 사람이 더 별종 취급을 받는다”며 “그렇게 말하는 친구를 보면서 ‘도대체 이유가 뭘까, 희한하다’고 생각했다”고 한다.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당연했던 것이 급격하게 당연하지 않은 게 된 것. 과거엔 출산하는 절대다수 속에서 ‘출산하지 않는 이유’가 필요했다면, 점점 출산하지 않는 다수 속에서 ‘출산할 이유’ 혹은 ‘출산할 결심’을 찾아야 하는 시대가 되어가고 있달까.어쩌면 앞서 인터뷰한 여성은 기자의 질문이 외려 더 새삼스럽다고 느꼈을 수 있다. ‘아니, 아이를 낳을 수 없는 이유는 너무 잘 알려져 있고 상식인데, 왜 이런 당연한 질문을 하는 거지?’ ● 10명 중 3명만 결혼 2년 내 출산…‘결혼=출산’ 공식 깨지고 있어과거 정부는 ‘그래도 결혼하면 아이는 낳는다’며 신혼부부 혜택에 집중해 왔다. 담당 부처 공무원으로부터 “아이 낳을 것도 아닌데 결혼을 왜 하겠어요?”라는 말을 들은 적도 있다. 하지만 적어도 결혼하고 바로 아이를 갖는 부부는 눈에 띄게 줄고 있다. 지난해 발표된 ‘2022 신혼부부 통계’를 보면 일단 결혼해도 아이는 낳지 않는 부부가 절반에 가까웠다. 2022년 11월 1일 기준 혼인 신고한 지 5년 이내 부부 가운데 자녀가 없는 비중이 46.4%에 달했다. 출생아 상황을 봐도 비슷하다. 통계청에 따르면 2012년 부모가 결혼하고 2년 내 태어난 아이는 전체 출생아의 40.3%였는데, 2022년 31.5%로 떨어졌다. 반면 결혼 후 5년이 지나 태어난 아이 비율은 2012년 23.3%에서 2022년 27.5%로 올랐다. 출산에 대해 갈수록 장고하는 추세란 이야기였다. 이 기간 출생아 수가 반토막이 난 탓에 출생아 수로 따지면 그 차이는 더 크다. 2012년 부부 결혼 후 2년 내 태어난 아이가 19만3613명이었다면, 2022년에는 7만5767명으로 쪼그라들었다. ● 결혼만 하지, 출산 왜 해? 이 질문 답할 수 있나결혼과 출산은 동반 감소하고 있다. 하지만 청년들을 인터뷰해 보면 그들이 느끼는 부담감은 확연히 달랐다. 결혼에 대해선 대부분 “하면 하죠, 뭐”라는 등 큰 거부감이 없었다. 하지만 출산의 경우 “낳을 가능성이 높지만 솔직히 엄두는 안 난다”거나 “지금은 낳고 싶지만 살아보고 결정하겠다” 등 유보적인 태도를 보이는 이가 많았다. 그만큼 부담감이 크기 때문이었다. 한 20대 취업준비생은 “동거가족의 권리를 인정한다고 하는데 그런다고 출생아 수가 늘지 모르겠다. 문제는 가족의 형태가 아니라 부담스러운 출산 그 자체이기 때문”이라고 했다.출산의 부담과 상대적으로 낮은 결혼의 부담, 그로 인해 ‘무자녀 부부’가 늘어난다면, 그는 ‘아이와 가족이 행복’이라는 현 정부의 인구정책 패러다임을 근본적으로 흔들 가능성이 있다. 부부만 해도 가족이고, 부부끼리 재밌게 할 수 있는 일들은 얼마든지 많기 때문이다. ‘굳이 왜 출산을?’ 많은 부부는 이런 질문을 하게 될 것이다. 그 질문에 기자처럼 제대로 된 답을 내지 못한다면 아무리 현실적인 여건이 개선된다 한들 출생아 수는 더 줄어들 것이다. 결국 생각과 가치관을 이기는 것은 없기 때문이다.이미지 기자 image@donga.com}

    • 2024-04-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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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노약자석 두고 아이·노인 다툼까지…각박한 사회, 저출산 악순환[이미지의 포에버육아]

    ‘포(four)에버 육아’는 네 명의 자녀를 키우며 직장생활을 병행하고 있는 기자가 일상을 통해 접하는 한국의 보육 현실, 문제, 사회 이슈를 담습니다. 단순히 정보만 담는 것을 넘어 저출산 시대에 다자녀를 기르는 맞벌이 엄마로서 겪는 일화와 느끼는 생각도 공유하고자 합니다.남편이 토요일에 일하는 직업을 가진 탓에 매주 토요일 네 명의 아이들을 혼자 돌보는데 귀찮더라도 웬만하면 네 아이들을 데리고 꼭 바깥나들이를 가는 편이다. 그냥 집에 있다가는 자칫 평온한 주말 층간소음 가해자(!)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지난 주말에는 가까운 산에 다녀왔다. 요즘에는 어린아이들도 걸을 수 있게 길을 잘 내어놓은 야트막한 산들이 많다. 보통 산을 오르면 올라가는 곳과 내려오는 곳의 위치가 달라서 대중교통을 이용한다. 그날도 오며 가며 지하철을 탔는데, 날씨가 좋아서였는지 노약자석은 물론 일반좌석까지 공석이 한 곳도 없었다. 그나마 첫째는 머리 위 손잡이에 손이 닿았지만, 둘째부터 넷째까지는 지하철이 출발, 정지할 때마다 휘청거리는 몸을 서로에 의지해 지탱할 수밖에 없었다. 이렇게 30여 분 힘들게 지하철을 타는데 어린아이들에게 “와서 앉으라”며 말을 거는 승객은 한 명도 없었다. 심지어 아이들 앞의 일반좌석엔 이런 문구가 붙어있었다. ‘이곳의 일곱 개 좌석은 몸이 불편하신 분, 어린아이를 안고 계신…을 위한 자리입니다. 양보해주세요.’ 양보가 강제는 아니고 자리에 앉아있던 젊은이들에게도 저마다 사정이 있을 것이라 생각하려 해도, 솔직히 씁쓸한 마음을 감출 수 없었다. ● 배려 없는 배려 좌석, 노키즈존…얼마 전 아이들을 키우는 지인을 만나 이 이야기를 했더니 오히려 그는 기자가 세상 물정을 모른다는 듯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 “자리 양보를 기대했어? 어린애 여럿 데리고 대중교통 탔다고 ‘민폐’ 소리나 안 들으면 다행이야.” 그러면서 본인이 얼마 전 어린아이 세 명을 데리고 나가 외식하려다가 입장을 거부당한 경험을 덧붙였다. ‘어린아이들은 데리고 올 수 없다’고 했다는 것이다. 지인 말을 듣고 생각해 보니 기자도 지난주 비슷한 경험을 했다. 취재원으로부터 산 옆에 자리한 말 그대로 ‘산 좋고 물 좋은’ 카페를 소개받았는데, 누가 봐도 아이들과 가면 좋을 곳이라 날이 따뜻해지면 방문할 생각으로 인터넷 후기를 검색해 보았다. 그런데 이럴 수가. 계곡 옆에 자리했다는, 누가 봐도 아이들이 놀기 좋아 보이는 그 카페는 놀랍게도 실내가 ‘노키즈존(No Kids Zone)’이었다. 2014년쯤부터 언론에 등장하기 시작한 노키즈존은 말 그대로 아이가 들어올 수 없는 구역, 아이 출입을 제한한 상업시설이다. 처음엔 ‘아이가 짐승도 아니고 아예 못 들어오게 하다니 말이 되느냐’고 했지만, 혐오니, 차별이니 하는 논란 속에서도 서서히 늘어 현재 공식적으로 전국 수백 곳에 이르렀다. 2023년 제주연구원 사회복지연구센터 발표에 따르면 전국에 노키즈존 매장은 542곳, 누리꾼들이 직접 구글 지도에 표시한 매장은 459곳이라고 한다. 애초 아이들이 들어갈 수 없는 영업장(술집 등)을 제외하고도 이 정도다. 대놓고 표방하진 않았지만 지인이 방문한 가게처럼 구두로 아이 동반을 자제시키는 곳도 있을 걸 감안하면 실제 노키즈존은 더 많을 것으로 추정된다. 제주도의회는 지난해 전국 최초로 노키즈존 제한을 골자로 하는 조례 통과를 시도했는데, 심의 과정에서 반대가 많아 결국 처벌 조항을 빼고 문구를 ‘확산 방지’로 수정해 가결했다. ● “소아는 작은 어른이 아니다”“어른들도 힘드니까 앉아있고 싶겠지.” “까짓거, 그 가게 안 가면 돼.” 이렇게 대범하게 넘기면 그만일지 모른다. 하지만 작은 무시와 배척일지언정 육아 가정 입장에서는 마음이 위축되는 게 사실이다. 특히 요즘처럼 ‘무개념’과 ‘몰상식’을 싫어하는 분위기에선 더욱 그렇다. 자칫 잘못해 ‘진상’ 혹은 ‘맘충(엄마와 벌레의 합성어로 경우 없는 엄마들을 비난하는 말)’이 될까 봐 노심초사 아이들을 더 단속하게 된다. 외출을 자제하는 사람도 있고, 혹여 외출하더라도 아이들에게 종일 ‘조용히 해’, ‘가만히 있어’를 연발하게 된다. 특히 기자 같이 아이가 많으면 더 신경이 쓰인다. 조용히 타일러도 될 일을 두고 사람들 앞에서 보란 듯이 아이를 혼낸 적도 있다. 그러나 가끔 ‘이렇게까지 아이를 옥죄는 게 맞나’ 하는 생각도 든다. 물론 무개념한 아이와 몰상식한 부모가 있는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아이들은 대부분 고의로 소란을 피우거나 누굴 괴롭힐 목적으로 사고를 치는 게 아니다. 아이들은 원래 자유분방하다. 소아청소년과 의사들의 교과서인 홍창의 서울대 명예교수의 ‘소아과학’은 매우 유명한 문구로 시작한다. ‘소아는 작은 어른이 아니다.’ 소아과학의 특징을 잘 담았다는 이 한 문장은 일반적으로 아이를 설명할 때도 적용할 수 있을 것 같다. 아이들은 그저 ‘몸만 작은 어른’이 아니다. 아직 잘 알지 못해 크게 얘기하고, 배우지 않았거나 신체 기관이 미성숙해서 실수를 저지른다. 한 지인은 “애한테 ‘쿵쿵 걷지 말라’고 소리 지르기 더는 미안해서 1층으로 이사 갔다”고 한다. 애는 멋모르고, 혹은 아직 다리가 온전치 않아 쿵쿵 걷는 건데 부모로서 너무 한단 생각이 들었다는 것. 그런데 이런 아이들에 대한 양해는 갈수록 줄어드는 듯 보인다. 아이들에게 양보해 주고 길을 비켜주는 사람보다, 아이가 왔다고 눈살을 찌푸리고 뭔가 실수하지 않나 신경을 곤두세우는 사람이 더 많아졌음을 느낀다. 눈에 띄는 증가세는 아니지만 서서히, 그렇지만 광범위하게 노키즈존과 진상 부모, 맘충과 같은 콘텐츠 유행은 그런 상황을 대변한다. ● ‘10년 새 반토막’ 사라진 아이들, 사라지는 이해와 배려동네서 오며 가며 알게 된 아이 엄마는 이런 일련의 이야기를 듣더니 “아이가 너무 줄어서 아이에 대한 이해심도 줄어든 것 아니냐”고 했다. 실제 만날 떠드는 합계출산율만 준 게 아니라 출생아 수도 급감하고 있다. 1980년대 초 80만 명에 이르던 아이 수가 30년 만에 반토막이 났고, 다시 불과 10년 새 40만 명대에서 20만 명대로 반감했다. 최근 발표된 통계청 통계에 따르면 올 1월 출생아 수는 2만1442명으로 지난해 같은 달보다 1788명이 줄어 7.7%나 감소했다. 통상 1월은 아기가 가장 많이 태어나는 달이다. 더구나 2023년 코로나19 영향이 끝나면서 결혼이 늘고 따라서 올해 출산도 소폭 반등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됐다. 하지만 뚜껑을 열어보니 올 첫 달 출생아 수는 역대 1월 중 가장 적었고, 전년 대비 감소율도 2022년 –1.0%, 2023년 –5.7%로 과거보다 외려 더 컸다. 앞서 이야기한 동네 아는 엄마는 아이 둘을 키우고 있다. 중학생, 초등학교 고학년이다. 최근 친척 모임에 갔는데 사촌 동생이 데리고 온 24개월 아기가 너무 예뻐 온 가족 모두 눈을 뗄 수 없었다고 한다. “가만히 생각해 보니 그만한 아기를 본 지 몇 달은 된 거야. 요새 내 주변에 그만한 아기가 없거든.” 그러더니 이렇게 덧붙였다. “젊은 친구들은 나보다 더 아이 볼 일이 없으니 아이들을 잘 몰라서 배려해야 하는 것도 모르는 게 아닐까?”그럴지도 모르겠다. 최근 인터뷰한 두 청년은 “아이들이 싫진 않지만 어떻게 대하고 보살펴야 할지 잘 모르겠다”고 했다. 주변에 아이가 있냐고 물으니 “사촌 언니의 아이”, “회사 선배의 딸”과 같이 한 다리 건너 먼 관계를 댔다. 둘 다 자주 보기는 어려운 아이일 터다. 본인은 물론 본인의 형제나 친구 중엔 아이를 가진 사람이 없었다. ● 약자끼리도 싸우는 각박한 사회, ‘이런 세상서 못 키워’ 저출산 악순환아이를 향한 배려뿐 아니라 사회 전반적으로 배려가 줄고 각박해졌다는 이야기도 나온다. 최근 인터뷰한 30대 여성 직장인은 “우리나라처럼 차별에 항의하는 장애인을 대놓고 욕하며 끌어 내려도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곳이 없을 것이다. 약자에 대한 태도가 이럴진대 아이라고 다르겠느냐”고 말했다. 서울 소재 직장에 다니는 50대 아이 아빠는 “집에서도 남매간에 ‘남자는 다 그렇다’, ‘여자는 이래서 문제다’며 젠더 갈등을 빚어지고, 직장에서는 자녀 복지에 대해 싱글 청년들이 ‘자기들이 좋아서 낳았는데 왜 혜택을 주느냐’며 서로 눈을 부라린다. ‘만인이 만인을 향해’ 날을 세우고 있는 것 같다”고 했다.급기야 약자끼리도 날을 세운다. 이 50대 남성은 “아내와 아이가 지하철을 탔다가 웬 어르신과 싸움이 붙었단다”며 이야기를 전했다. 일반좌석에 자리가 없어 아이를 노약자석에 앉혔는데 한 어르신이 ‘노인들 앉을 자리도 없는데 왜 애를 앉히냐’며 화를 냈다는 것. 여기에 아내 분이 대거리를 하면서 말싸움이 났다는데, 누구도 배려하지 않는 가운데 급기야 약자들끼리 배려석을 두고 다툼이 난 셈이었다. 이런 분위기에선 출산과 육아가 더욱 꺼려질 수밖에 없다. 기자가 만난 청년들은 아이를 낳기 싫은 이유 중 하나로 ‘아이가 살아갈 세상이 험해서’를 꼽았다. 해외 언론도 한국의 저출산 문제를 다루며 이런 문제를 지적했다. 합계출산율 1.8명대로 서구 선진국 가운데 가장 안정적인 출산율을 자랑하는 프랑스의 유명 일간지 르몽드는 2024년 2월 한국의 저출산을 기획 기사로 다뤘다. 해당 기사에서 ‘한국 사회가 저출산 문제로 고통을 겪는 것은 우연이 아니다. 아이가 있다는 것만으로도 피곤해지기 때문’이라며 대표적인 예로 노키즈존을 들었다. 르몽드는 제주연구원이 집계한 전국 노키즈존 수도 소개하면서 “인구가 감소하는 국가에서 이런 현상은 우려스럽다”고 했다. 이렇게 줄어든 아이는 다시 또 아이에 대한 몰이해를 부른다. 악순환이다. 이 악순환의 고리를 끊으려면 아이가 자연스레 배려받고 존중받도록 유인하는 제도, 장치를 만들어야 한다. 레이디 퍼스트처럼 ‘키즈 퍼스트’가 상식으로 자리 잡아야 출산의 심리적 문턱도 한층 낮출 수 있다. 이미지 기자 image@donga.com}

    • 2024-03-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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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둘째를 낳은 사람들[이미지의 포에버 육아]

    ‘포(four)에버 육아’는 네 명의 자녀를 키우며 직장생활을 병행하고 있는 기자가 일상을 통해 접하는 한국의 보육 현실, 문제, 사회 이슈를 담습니다. 단순히 정보만 담는 것을 넘어 저출산 시대에 다자녀를 기르는 맞벌이 엄마로서 겪는 일화와 느끼는 생각도 공유하고자 합니다.초저출산 시대라지만 그래도 한국에서는 한 해 수십만 명의 아이가 태어난다. 그중 절반에 가까운 약 40%가 출산 순위 둘째 이상 아이다. 물론 출생아도 줄고 둘째 이상 아이들의 비율도 크게 떨어졌다. 1981년 59.0%였지만, 2001년 52.3%, 2011년 49.1%에서 지난해 2023년 39.8%까지 줄었다. 정부는 결국 지난해 다자녀 지원 혜택의 기준을 두 자녀 이상으로 하향했다. 그 수가 현격히 줄고 있다지만 아직 적잖은 수가 둘째 이상 아이를 낳고 또 낳을까 고민하는 게 사실이다. 지난해에도 7만여 명의 둘째와 1만여 명의 셋째 이상 아이가 태어났다. 둘째 이상의 아이를 낳은 부모들은 어떤 생각으로 둘째를 낳았을까. 또 둘째를 낳고픈 청년들은 어떤 마음일까. ● 두 자녀 육아휴직父, “고통 49%, 행복은 51%…그래도 출산·육휴 잘했다 생각”서울 소재 직장에 다니는 A 씨(45)는 지난해 쉽지 않은 결정을 했다. 외벌이인데도 불구하고 육아휴직을 하기로 한 것. 팀 내 중간관리자라는 중요한 위치였지만, 그는 “(가정을) 이대로 두면 큰일 날 것 같았다”며 “일단 급한 불을 끄고 보자는 생각이었다”고 했다. A 씨는 첫째와 둘째 모두 마흔 살 넘어 낳았다. “늦게 결혼했으니 마냥 여유 있을 수 없어서 1년 정도 저희 시간 보내고 그 뒤로 바로 아기를 낳았어요.” 둘째를 갖게 된 이유를 묻자 “첫째가 외롭지 않게 자연스레 둘째 계획도 가진 것 같아요”라고 했다.A 씨가 육아휴직을 하면서 전업주부였던 아내는 짬짬이 프리랜서 강사 일을 나가기 시작했다. “하나와 둘은 정말 큰 차이입니다. 하나가 돌아가도 다른 하나가 안 돌아갈 때가 많으니까…제가 육아를 계속 해 오던 사람이 아니잖아요. 갑자기 몇 시간이라도 혼자 둘을 책임져야 하는 상황에 놓이면 솔직히 불안해요. 사고 터지면 어떡하나. 근데 와이프가 ‘나간 김에 그럼 언니 좀 만나서 좀 수다 좀 떨고 올게’ 하면 몇 시간이 지나고…그래도 그걸 뭐랄 수는 없는 게 일종의 보상 심리라고 생각하거든요. ‘너 없는 동안 나 고생했는데 이제 네가 대신 해줘’ 이런.” A 씨가 회사에 다니는 동안 아내는 사실상 독박육아를 했다. 유급 휴직기간은 최대 1년이지만 A 씨는 휴직을 몇 개월만 쓰기로 했다. 가장 큰 이유는 경력 단절에 대한 두려움 때문이다. 비용 부담도 있다. “이번에 육아휴직급여 올라서 한 달에 200만 원 받는 줄 알았거든요. 근데 알고 보니 그건 둘이 육아휴직 해야만 받는 거예요. 외벌이인 저희랑 아무 상관도 없는 거였습니다.” 정부는 아빠 육아휴직을 장려하기 위해 남녀 모두 육아휴직을 사용하면 3개월간 육아휴직급여를 올려주는 ‘3+3 육아휴직제’를 시행하고 있다. A 씨는 “외벌이든 맞벌이든 (아빠) 육아휴직 혜택이 공평하게 돌아갔으면 좋겠어요”라고 했다. 아직 아이들이 어려 정신없고 힘들지만 그래도 행복과 후회의 비율을 따진다면 “51대 49”라고 한다. “누가 그러더라고요. 육아는 51% 행복, 49% 고통이라고. 둘째 낳고 육아 휴직한 거 힘들지만 그래도 잘했다는 생각이 들고 보람도 느낍니다.” ● 네 아들 워킹맘, “나만 여자라 특별” 웃음…“인프라 중요, 희망 가질 수 있는 사회 필요”부부가 서울 소재 대기업에 다니는 B 씨(41)는 회사는 물론 지인들 사이에서도 유명한 다자녀 맘이다. 초등학생부터 유치원생까지, 아들만 넷이기 때문이다. 아이 넷은 남편의 오랜 바람이었다. “남편이 외동이에요. 외로운 게 싫었던 거야. 결혼하기 전부터 넷 낳고 싶다고 했어요. 이름까지 다 지어놨다니까요.” 딸이 없는 게 아쉽지 않았다면 거짓말이지만, 이제 B 씨는 가족 중 ‘유일한 여자로서 특혜를 누리기’로 마음을 바꿨다. “집 화장실 2개 중 1개 저 혼자 써요. 하하하.”C 씨는 여러 직장을 거쳐 현재 유연근로가 가능한 대기업에 자리 잡았다. 위기의 순간도 많았을 터다. “(베이비)시터가 안 구해지는 거예요. 아들 넷인 집에 어떤 시터가 와요? 그래서 시터 2명도 써봤거든요. 아침, 저녁으로. 근데 두 분이 자매였는데도 싸우시더라고요.” 돌봄 공백에 ‘일을 그만둘까’ 고민도 많이 했다고 한다. 그는 최근 일명 ‘강남 8학군’으로 불리는 동네 중 한 곳으로 이사했다. 이유가 인상적이다. “‘시터 안 쓰는 환경을 만들어 보자’ 해서 찾아보니까 강남은 다들 영어유치원 보내니까 구립 어린이집이 대기가 없더라고요. 선생님도 너무 좋고. 동네 도서관은 밤 10시까지 해요. 학교 방과후에서 최상위 수학도 배우고.” 아이들이 많이 살다 보니 아이들 공공인프라가 잘돼있어 되레 교육비용이 덜 든다는 것이다. B 씨는 말했다. “공교육도 양질을 잘 찾으면 되는데, 부모들이 안 믿고 이용하지 않는 것도 있는 것 같아요.”아들 넷 워킹맘으로서 애로도, 불만도 많을 듯한데 B 씨는 부정적이기보다는 밝고 씩씩한 모습이었다. “인프라 너무 중요하고…근로 시간이 유연해져야…남녀 가르는 거, 아이 모든 걸 부모 탓으로 돌리는 분위기 안 돼요.…회사 다니며 10년을 꼬박 모았는데 집을 사는 건 꿈도 못 꾸잖아요. 사람이 목표와 희망을 갖고 장기계획을 세울 수 있게 해주면 아이 낳지 않을까요?”● 20대女, “아직은 자녀 낳고픈 마음 70%”…잘 키우는 가족서 해법 찾아보면 어떨까직장인 C 씨(26)는 동료들 사이에서 ‘요즘 청년 같지 않은 청년’으로 유명하다. 결혼도 출산도 하고 싶은 20대 여성이기 때문이다. “현재 일이 제 인생에 (우선순위) 1번이라고 한다면 화목한 가정을 꾸리는 건 0번이에요.” C 씨의 말이다. 그가 기자를 만나기 전 간략히 보내온 질의응답엔 이런 말이 들어가 있었다. ‘왜 결혼하고 싶나?…희망을 가지고 싶은 것일 수도. 더 행복해질 수 있다는 희망.’ 누구나 이상형 연인과 이상적 직업이 있듯이 C 씨에게는 이상적인 가족상이 있었다고 한다. 하지만 최근 주변 사람들에게 물어볼 때마다 부정적 답변이 많아 자신감이 줄어든다. “얼마 전 동종업계 기혼자들을 만났는데 저출산 얘기 나오니까 다들 ‘애 낳는 것 자체가 자살이다’ 이런 말을 하더라고요. 아이를 낳고 그 아이에게 좋은 세상을 주고 싶은데…두려움이 생기는 건 사실이에요.” C 씨가 말했다. 그래도 아직은 “낳고 싶은 마음 70%, 두려운 마음 30%”라고 한다. 일도 잘하고 싶을 텐데 육아휴직 할 수 있겠냐고 하니 이런 답이 돌아왔다. “(미래의) 남편이 할 수도 있죠.” 사회가 초저출산으로 치닫고 있다지만 여전히 누군가는 둘째를 낳고 두 자녀 이상을 꿈꾼다. 둘째 이상 가족과 둘은 낳고픈 청년을 만나 보니 ‘100명에게 100가지 낳지 않는 이유’가 있듯이, 아이를 낳는 사람들에게도 ‘100가지 이유’ 혹은 ‘100가지 육아 노하우’가 있는 것 같았다. 개인병원을 운영하는 두 아이 아빠 D 씨(41), 미대 교수를 꿈꿨지만 지금은 전업주부로 살고 있는 두 아이 엄마 E 씨(45)도 바쁜 삶 혹은 빠듯한 경제 상황 속에서 나름의 해법을 찾아가고 있었다. 그리고 지금의 가족에 “만족한다”, “행복하다”고 했다. “우리 같이 두 자녀 이상 낳아서 키우는 사람들 케이스를 많이 듣고 조사하다 보면 (저출산 해법의) 답도 좀 보이지 않을까요?” E 씨의 말이다. 이미지 기자 image@donga.com}

    • 2024-03-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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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0.65명 시대…시간을 돌린대도 아이 넷을 낳을 것이다[이미지의 포에버육아]

    ‘포(four)에버 육아’는 네 명의 자녀를 키우며 직장생활을 병행하고 있는 기자가 일상을 통해 접하는 한국의 보육 현실, 문제, 사회 이슈를 담습니다. 단순히 정보만 담는 것을 넘어 저출산 시대에 다자녀를 기르는 맞벌이 엄마로서 겪는 일화와 느끼는 생각도 공유하고자 합니다.“저 애들이 다 한 집 자식이오?”주말을 맞아 네 아이들과 함께 산을 오르고 내려와 잠시 숨을 고르는데 지나가던 동네 어르신께서 물으셨다. 그렇다고 답하니 “참 다복하고 좋아 보이네” 하시며 한참 시선을 거두지 못하셨다. 80대에 가까워 보이는 그 어르신도 아마 다자녀 부모일 것이다. 1960, 1970년대 우리나라 합계출산율은 4~6명이었다. 어쩌면 우리 아이들 모습에서 과거 본인 자녀들의 어린 시절을 보고 계셨을지 모르겠다. 언젠가 그 어르신처럼 아이들을 ‘추억’해야 하는 날에 이를 것을 생각하면 코끝이 찡해진다. 한 대학 선배는 자녀들이 이미 장성했는데 “퇴근 버스에서 내리면 정류장 앞에서 나를 기다리던 아이들이 ‘아빠’하고 달려와 와락 안기던 그때가 아직도 엊그제 같다”며 “그때로 돌아갈 수 있다면, 억만금이라도 낼 수 있다”고 했다. 처음 들었을 땐 ‘뭘 그렇게까지…’라고 생각했는데, 부모가 되어 아이들이 나날이 커가는 걸 보니 그 마음이 뭔지 알 것 같다. 넷이라 더욱 왁자지껄한 우리 아이들이 하나둘 떠나고 휑뎅그렁해질 집을 생각하면 벌써부터 마음이 헛헛하다. 기쁨이자 행복이었던 아이들이 없는 미래는 감히 상상이 안된다. ● 최초 0.6명대 출산율…청년들 “출산 무섭고 육아 부담”얼마 전 통계청이 2023년 출생·사망통계를 발표했다. 단연 눈길을 끈 건 출생통계였다. 지난해 4분기 합계출산율이 사상 최초 0.6명대로 떨어졌기 때문이다. 연간 합계출산율도 0.72명으로 역대 최저치를 기록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가운데 그냥 꼴찌가 아니라 2위에 큰 차이가 나는 압도적 꼴찌다. 러시아와 전쟁을 치르고 있는 우크라이나의 동기간 출산율이 0.7명 정도로 추정된다고 한다. 한국은 가히 전쟁과 비견될 만한 저출산 위기에 봉착한 셈이다. 사실 결과는 진작에 예견됐다. 코로나19 탓에 2021년과 2022년 혼인 건수가 19만 건 아래로 떨어져 역대 최저치를 기록했기 때문이다. 이어지는 해 출산율 하락은 당연한 수순이었다. 그러나 이런 초저출산이 코로나19로 인한 일시적 현상으로 그치지 않을 거라는 게 문제다. 청년세대의 출산과 육아에 대한 인식이 크게 변했다. 출산과 육아는 이제 필수가 아닌 선택지다. 그것도 별로 매력적이지 않은 선택지다. 근래 만난 2030 세대 청년들은 하나 같이 출산과 육아에 부정적이었다. 한 후배는 “출산하고 나면 내 일상, 지금까지 이뤄온 것들이 송두리째 무너질 것 같아 무섭다”고 했고, 또 다른 후배는 “내 몸 하나도 건사하기 힘든데 아이까지 건사하는 건 무리”라며 고개를 저었다. “남들 육아 이야기 들으면 도저히 키울 엄두가 안 난다”, “아이 키울 여력이 안 되고 언제 여력이 될지 기약도 없다” 등. 청년마다 사정은 달라도 한 가지는 분명했다. 아이는 부담스럽고 육아는 고된 일이라는 인식이었다. 이런 분위기를 반영하듯 요즘 TV를 봐도 아이나 육아 관련 긍정적인 콘텐츠를 찾기 힘들다. 과거 보기만 해도 사랑스럽고 흐뭇한 육아는 비주류로 밀려난 지 오래다. 아이 키우기 힘들어 출산을 포기하는 청년들이 늘어난다는 뉴스나 힘든 양육 과정을 조명하는 상담 프로그램, 부모에게 이것저것 준비하고 공부시켜야 한다고 압박을 주는 프로그램들만 가득하다. ● 잃는 만큼 얻는 게 많은 육아동서고금을 불문하고 육아가 쉬웠던 적이 있을까. 그럼에도 잃는 것보다 얻는 게 많다는 인식이 있었다. 먼저 자녀가 주는 기쁨과 행복, 사랑은 그 무엇과도 대체할 수 없다. 종종 ‘인생의 낙이 아이뿐’이라며 한숨 쉬는 사람이 있는데, 그건 불행한 게 아니라 부러움을 살 일이다. 아이가 줄 수 있는 낙은 친구나 회사가 줄 수 있는 낙과 차원이 다른 큰 기쁨이다. 그런 낙이 있다니, 없는 사람들에겐 부러울 일 아닌가. 아이를 키우면 무한한 사랑도 경험할 수 있다. 누군가 그랬다. “이 세상에 유일하게 조건 없이 ‘무조건적인 사랑’을 주고받을 수 있는 사이가 있다면 그건 부모와 자식 간”이라고. 아이를 낳고 알았다. 누군가를 이렇게 깊고 넓게, 아무런 조건 없이 사랑할 수 있다는 걸. 부모가 주는 헌신적인 사랑은 알겠는데, 자녀가 주는 조건 없는 사랑은 뭘까? 어릴 때 아이들을 생각해 보면 뭐 주는 것 없어도 ‘부모 바라기’다. 혼이 나도, 잔소리를 들어도 언제 그랬냐는 듯 “엄마~”하고 와서 안기는 게 아이들이다. 크면서 부모와 다투기도 하고 남남이 되는 자녀도 있지만, 그런 자녀라도 마음 한구석엔 부모에 대한 조건 없는 애정을 품고 있다. 효자든 불효자든 부모에 대한 모욕을 들으면 발끈하는 이유다. 육아는 부모에게도 많은 걸 가르쳐준다. 옛말에 ‘아이 키워 봐야 어른 된다’고 했는데 아이를 키워 보니 알 것 같았다. 부모가 되면 아이에게 본보기가 되기 위해 좀 더 바른 사람이 되려고 노력한다. 사회·경제적으로도 책임 있는 존재가 되려고 애쓴다. 그 과정에서 단단하고 보다 번듯한 사람으로 거듭난다.물론 이런 장점에도 불구하고 부모가 되지 않기로 했다면 강요는 할 수 없다. 딩크(DINK·Double Income No Kids)족이나 비혼주의자처럼 자녀에 대한 가치관이 다른 사람들도 있다. 하지만 그저 부담과 두려움 때문에 포기하기엔 자녀를 키우며 얻을 수 있는 것들이 너무 많다. ● 누가 성공한 삶을 정의할 수 있을까치열한 경쟁사회에서 출산과 육아가 그 가치를 인정받기란 쉽지 않음을 안다. 특히 한국처럼 정형화된 성공 답안이 있는 사회에선 더욱 그렇다. 작금의 한국에서 성공한 삶이란 수도권에 살고, 대기업에 다니거나 전문직에 종사하며, 번듯한 집과 차가 있는 삶으로 정의된다. 그런데 이런 삶에 오를 기회는 적고 경쟁은 치열하다. 인생에 정답은 없다. ‘아이를 낳아서 회사에서 뒤처지고 돈도 못 벌었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는 반면 ‘너무 바쁘게 사느라 함께 기쁨을 나눌 배우자도, 자식도 없다’고 한탄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동년배 가운데 큰 돈을 벌고 사회적으로 성공을 거둔 사람들을 보면 당연히 부럽다. 하지만 ‘대신 당신한텐 이렇게 당신만 바라봐 주는 예쁜 아이 넷은 없잖아’라고 생각한다면? 무얼 성공한 인생이라고 단정지을 수 있을까. 개개인이 인식을 바꿔서 저출산 문제를 해결하자는 말은 아니다. 통계청 ‘2022년 임금근로일자리 소득’ 발표에 따르면 중소기업 근로자의 소득 평균은 286만 원으로 대기업 근로자 평균 소득 591만 원의 절반에도 못 미쳤다. 그런데 대기업 일자리는 전체 일자리의 14%에 불과하다. 경쟁이 치열할 수밖에 없다. 여성들의 상황은 더욱 열악하다. 어렵게 대기업에 들어가더라도 출산과 육아 후 경력 단절에 내몰린다. 여성들의 경력단절과 일·육아 병행으로 인한 성별 임금 격차는 OECD 국가 가운데 최악 수준이다. 노동시장 이중구조와 성차별, 그밖에 구조적 문제는 정부와 기업이 나서 해소해야 한다. 다만 그와 함께 출산, 육아에 대한 인식을 전환할 수 있는 방안도 고민했으면 한다. 육아하면 부정적인 이미지만 떠올리는 청년들이 너무 많아 안타깝다. 3년 전 생일 기자는 아주 특별한 상을 받았다. 퇴근하고 집에 가니 아이들 넷이 고사리 손으로 접은 쪽지를 전했다. ‘XX방으로 가서 하얀 종이를 찾으세요.’ 쪽지를 따라가자 또 다른 쪽지가, 다시 또 다른 쪽지가 이어졌다. 엄마 생일을 위해 초등학생과 유치원생 아이들 넷이 준비한 깜짝 보물찾기 이벤트였다. 마지막 선물에 이르렀을 때 주책맞게 울고 말았다. 쇼핑백엔 ‘엄마는 건강해야 하니까 무가당 크래커, 화장 안 해도 입술은 꼭 바르니까 빨간 립글로스를 샀다’는 메시지와 함께 당시 초등학교 저학년이던 첫째, 둘째의 2주치 용돈을 털어 고심 끝에 준비한 과자와 화장품 선물이 들어있었다. 그날 기자는 네 아이를 키운 노력에 대한 모든 보상을 받은 것만 같았다. 그것도 내 아이들로부터. 2명이 만나 0.65명을 낳는 시대다. 하지만 나는 시간을 되돌린대도, 4명을 낳을 것이다. 이미지 기자 image@donga.com}

    • 2024-0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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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대기업 가야 출산장려 1억원?’…중소기업은 웁니다[이미지의 포에버 육아]

    ‘포(four)에버 육아’는 네 명의 자녀를 키우며 직장생활을 병행하고 있는 기자가 일상을 통해 접하는 한국의 보육 현실, 문제, 사회 이슈를 담습니다. 단순히 정보만 담는 것을 넘어 저출산 시대에 다자녀를 기르는 맞벌이 엄마로서 겪는 일화와 느끼는 생각도 공유하고자 합니다.요 며칠 한 기업의 출산 혜택 소식이 화제다. 재계 순위 20위권인 이 기업의 회장은 올해 시무식에서 ‘저출산 극복을 위해 앞으로 출산하는 모든 직원에게 출산장려금 1억 원을 지급하겠다’고 밝혔다. 초유의 저출산 위기에도 정부의 대책은 여전히 뜨뜻미지근하다는 비판을 받는 가운데 한 사기업 회장님의 ‘통 큰’ 출산 지원은 높은 관심을 불러일으켰고 곳곳에서 찬사가 쏟아졌다. 지급 과정에서 과도한 세금이 부과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오자 ‘세제 혜택을 줘야 한다’는 제언이 이어졌고, 급기야 대통령이 콕 집어 ‘지원방안을 적극 고려하라’고 주문하기에 이르렀다. 기업의 화끈한 출산 지원과 그에 대한 뜨거운 반응은 환영할 만한 일이다. 정부 정책의 맹점도 개선할 기회를 얻었으니 더욱 그렇다. 하지만 통 큰 지원이라고 마냥 반기기엔 어딘가 씁쓸함이 남는다. ‘부익부 빈익빈’ 때문이다. ● 대기업 ‘육아휴직 2년, 수천만 원 지원’…중소기업엔 그림의 떡 몇 달 전 직원 십여 명의 작은 회사를 운영하는 한 사업가와 함께 식사한 적이 있다. 당시 그의 가장 큰 고민은 “여성 직원들의 잦은 휴가와 퇴사”였다. 직원도 적은데 업종 특성상 여성이 절대다수라, 출산·육아로 인한 인력 공백의 타격이 다른 회사보다 배로 크다고 했다. 특히 그는 최근 아끼던 직원에게 “뒤통수를 맞”은 일을 거론했다. 일 잘하는 친구라 놓치지 않으려는 마음에 어렵게 대체인력을 구해 육아휴직까지 내주었는데, 복직하기 직전 ‘그만두고 싶다’며 연락해 왔다는 것. 휴가, 단축근로 같은 것이 쉽지 않은 작은 회사에서 일과 육아를 병행하긴 어려울 것이라고, 그 친구도 고심 끝에 결정을 내렸을 것임을 알면서도 솔직히 서운하고 배신감이 드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고 한다. “우리 같은 중소기업도 육아휴직, 단축 근로, 지원 혜택 다 주고 싶어요. 근데 그럴 여력이 없잖아요. 다른 회사들은 어떻게 하나 참고하고 싶어도 기사에 나오는 혜택 좋은 기업들은 죄다 대기업이고…. 우리로선 감히 따라 할 수 없는 얘기들뿐이에요.” 지인의 말이다. 그와 헤어지고 난 뒤 곧장 기사를 검색해 봤다. 저출산 해법을 모색한 기획 기사들을 보니, 여느 보육 선진국 부럽지 않은 우수 기업 사례들이 줄을 이었다. ‘직원 자녀 출산 시 500만 원 지급, 자녀가 초등학교에 들어가면 3년간 교육비 총 1800만 원 지원’, ‘출산 시 제휴 호텔, 리조트, 숙박, 식사 제공’, ‘여성 직원 자동육아휴직제, 휴직 기간 2년’, ‘일반 휴직과 별개의 자녀돌봄 휴직 6개월’ 등. 하지만 모두 회사명 들으면 아는 대기업의 사례였다. 지인 말처럼 아무리 봐도 작은 사업체에서 참고할 수 있는 사례는 아니었다. 괜히 보면 볼수록 배만 아프고 상대적 박탈감만 커지는 그림의 떡이었다. 아마 최근 ‘출산장려금 1억 원’ 소식도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국내 사업체 99.9%가 중소기업, 직원 평균 10명 내외문제는 이런 사업체가 비단 지인 업체뿐이 아니라 절대다수를 차지한다는 점이다. 중소벤처기업부가 지난해 8월 발표한 ‘2021년 기준 중소기업 및 소상공인 기본 통계’에 따르면 2021년 말 기준 중소기업 수는 771만4000개였다. 우리나라 전체 기업의 무려 ‘99.9%’다. 종사자 수는 1849만3000명으로 전체 기업 종사자의 80.9%에 달했다. 흔히 직장과 직장인 하면 이름이 잘 알려진 대기업과 공장들을 떠올리지만, 사실상 우리나라 기업과 근로자의 절대다수는 중소기업과 중소기업 근로자라는 의미다. 이들 기업의 규모는 어떨까. 일반적으로 중소기업의 기준이 되는 상시 근로자 수를 300인 미만이라 하는데, 2022년 중기부의 ‘중소기업실태조사’에 따르면 실제 이들 기업 평균 고용인원은 제조업 14.1명, 서비스업 9.0명으로 10명 내외에 불과했다. 지인의 사업체처럼 영세한 곳이 대부분이다. 사람 한 명 들고 나는 것의 체감도가 클 수밖에 없다. 고용노동부가 전국 5인 이상 사업체 5070개를 대상으로 조사한 ‘2021년 일·가정 양립 실태조사’에서 ‘육아휴직 제도를 전혀 사용할 수 없다’고 응답한 사업체에 이유를 물었더니 ‘동료 및 관리자의 업무 가중’(25.2%), ‘추가인력 고용으로 인한 인건비 부담’(23.3%), ‘대체인력을 구하기 어려워서’(19.7%)와 같이 매우 현실적인 답변들이 나왔다. 교육·휴양비 지원이나 출산장려금 1억 원 같은 것도 중소기업에선 당연히 언감생심이다. 한 중소기업체 대표는 “요새 가장 큰 고민이 인력 확보다. 우리도 사내 복지 혜택을 강화해 좋은 직원들을 끌어들이고 싶다”며 “하지만 실질적으로 대기업처럼 할 여력은 없는 걸 알지 않느냐”고 답답함을 털어놨다. ● 휴직 대신 단축근로, 전면재택…일·가정 양립 노력그렇다고 ‘상황이 이러니 어쩔 수 없다’며 직원들에게 마냥 감내하라 할 수는 없는 일이다. 지난해 11월 한국여성정책연구원과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가 공동으로 기획한 정책포럼에 갔다가 흥미로운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기업 규모별 ‘육아기 근로시간 단축제도’ 활용률에 대한 발표였는데, 상시 근로자 10인 미만, 50인 미만 소규모 사업체에서 육아기 단축근로를 활용하는 비율이 각각 29.1%, 22.0%로 300인 이상 대기업 활용률(32.9%) 못지않게 높았다. 50~300인 중규모 사업체의 경우 10%도 안 된 것과 비교해 큰 차이였다. 육아기 근로시간 단축제도란 만 8세(초등학교 2학년, 올 하반기 만 12세로 확대 예정) 이하 자녀가 있는 근로자가 최대 1년간(육아휴직 합치면 2년) 주당 15~35시간으로 근로시간을 줄여 일할 수 있는 제도다. 어째서 중규모 기업보다 소규모 기업에서 제도 활용률이 더 높았을까. 발표자는 ‘소규모 사업체에서 단축근로를 육아휴직의 대체재로 이용하고 있기 때문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육아휴직의 타격이 큰 소규모 사업체의 경우 직원들에게 휴직 대신 단축근로를 적극 권장함으로써 직원 손실을 최소화하고 사내 복지도 강화하는 기제로 이용했다는 이야기였다. 이는 업체 규모가 작다고 해서 일·가정 양립 지원에 방법이 없는 건 아님을 시사한다. 전 세계 100여 개국에 제품을 판매하는 아기띠 제조업체 ‘코니바이에린’은 주로 워킹맘으로 구성된 직원 55명을 채용하고 있다. 이들을 계속 고용하기 위해 회사는 전 직원 재택근무를 실현했다. 현재 코니의 직원들은 4개국 24개 도시에서 흩어져 일한다. 매일 아침이면 일명 ‘홈오피스’라 부르는 자택에서 회사망에 접속해 각자의 업무를 하고, 화상회의를 통해 협업한다. 필요하다면 일과 중 육아 등으로 잠시 자리를 비울 수도 있다(배려시간제). 일반적으로 전면 재택근무라 하면 “말이 안 된다”거나 “일이 제대로 안 돌아갈 것”이라 하는데, 이 회사는 여러 시행착오를 통해 보완책을 만들었고 7년째 별문제 없이 재택 시스템을 운용해 오고 있다.● “중소기업 롤 모델도 제시해줬으면”그러나 이렇게 근무 형태에 맞는 일·가정 양립 방안을 도입한 중소기업은 극소수다. 여전히 절대다수 중소기업의 현실은 열악하다. 한 중소 규모 업체 대표는 “우리도 능력 있는 젊은 직원들을 붙잡기 위해 지원책을 운용하고 싶은데 좋은 사례라고 해서 찾아보면 대기업 사무직에 적용할 법한 것들뿐이고 중소기업의 롤모델이 없다”며 “정부나 언론에서 잘하고 있는 중소기업 사례도 발굴해 업종별로 레퍼런스를 제시해 주면 좋겠다”고 했다. 또 다른 업체 대표는 “중소기업 지원도 더 강화했으면 한다”고 말했다. 고용노동부는 육아휴직을 부여한 중소기업 사업주에게 최대 200만 원을 주고, 인건비 세액공제를 제공한다. ‘대체인력뱅크’를 통해 채용도 지원하고 있다. 하지만 “여전히 사람 하나 나는 것만 못 하다”는 게 그의 말이다. 열악한 중소기업의 현실 탓에 젊은 세대 다수가 대기업 취업 혹은 이직을 꿈꾸며 늦은 나이까지 경쟁에 매진한다. 소수의 대기업이 블랙홀처럼 인재를 빨아들이면서 중소 규모 기업의 인재, 인력난은 더 심해진다. 이로써 노동시장 이중구조가 강화되고 경쟁과 격차가 커지면서 저출산도 심화한다. 악순환이다.출산지원금 1억 원을 주는 큰 회사들이 느는 것도 좋지만, 자칫 1억 원 주는 회사 들어가기 위해 대기업 입사 경쟁만 더 심각해지는 꼴이 날 수도 있음을 잊지 말아야 한다. 노동시장의 부익부 빈익빈이 육아의 부익부 빈익빈으로 이어져서는 안 된다. 이미지 기자 image@donga.com}

    • 2024-02-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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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저출산고령사회委, 문제는 ○○○이야![이미지의 포에버 육아]

    ‘포(four)에버 육아’는 네 명의 자녀를 키우며 직장생활을 병행하고 있는 기자가 일상을 통해 접하는 한국의 보육 현실, 문제, 사회 이슈를 담습니다. 단순히 정보만 담는 것을 넘어 저출산 시대에 다자녀를 기르는 맞벌이 엄마로서 겪는 일화와 느끼는 생각도 공유하고자 합니다.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 부위원장이 바뀐다고 한다.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저고위)는 국가 저출산·고령화 정책을 총괄하고 심의하는 컨트롤 타워로, 대통령이 위원장을 맡고 있는 대통령 직속기구다. 부위원장만 해도 장관급인데, 현재는 김영미 동서대 사회복지학과 교수가 맡고 있다. 지난해 1월 임명돼 임기 2년 중 절반이 남은 상태다. 김 부위원장이 정말 그만두는지, 사유는 무엇인지 대통령실이 명확히 밝힌 건 하나도 없다. 다만 후임으로 구체적인 이름이 거론되고 딱히 반박이 나오지 않는 걸 보면 교체 시점까지 거의 정해진 것으로 보인다. 일부 언론에서는 지난달 저고위 상임위원과 민간위원이 잇따라 사표를 던진 것, 눈에 띄는 정책은 없고 출산율은 계속 떨어진 것을 두고 책임을 물어 경질하는 것이라는 분석을 내놓고 있다. 이에 따라 현역 시절 별칭이 ‘불도저’였을 정도로 강한 조직 장악력과 추진력을 지닌 경제관료가 바통을 이어받게 된다는 것이다. ● 사람 문제인가…타부처 질의해도 ‘읽씹’ 일쑤, 실권 없는 저고위문제가 있다면 교체하는 게 맞다. 하지만 저고위의 문제는 사람이 아니다. 저고위는 태생적으로 한계를 지닌 조직이다. 관련 정책이 여러 부처에 걸쳐있어 한 부처가 관할할 수 없고 여러 부처와 조율이 필요할 때 만드는 게 정부위원회다. 그러나 그만큼 부처의 입지가 모호하고 실권이 없다. 저고위가 그렇다. 사무국에는 30명의 상임 직원들이 있지만, 각 부처 파견 인력으로 1년~1년 반 근무하고 나면 본래 부처로 돌아가야 하는 ‘뜨내기 직원’이라 전문성이 없고 업무 연속성이 떨어진다. 사무국 자체 예산은 0원이다. 저출산 예산이 수십조 원이라지만 모두 각 사업 담당 부처에 있는 것이지, 저고위가 가진 게 아니다. 얼마 전 화제가 된 ‘신생아 특례대출’ 예산은 국토교통부, 육아휴직 예산은 고용노동부(고용보험 기금)에 있는 식이다. 저출산 사업을 발굴하지만, 각 부처에 사업을 지시할 근거가 있는 것도 아니다. 컨트롤 타워란 외양만 그럴듯할 뿐 제대로 된 조직도, 돈도, 실행력도 없는 곳이 현재 저고위다.내부에 자문위원이라는 이름으로 각계 최고 전문가들을 모아 놓았지만 획기적인 안을 내고 합의를 이루는 건 보통 일이 아니다. 대부분 생업이 따로 있는 전문가들은 한 번 모이기도 어렵다. 각자 생각이 달라 의견 모으기도 쉽지 않다. 이런 지적이 하루 이틀 나온 게 아니다. 그렇기에 현 김 부위원장이 지명됐을 때부터 안팎으로 우려가 컸다. 그나마 그동안은 ‘실권 없는 조직’이라도 ‘실권 있는 부위원장’이 있어 영이 섰는데, 이제 일개 대학교수로 부처와 전문가들에게 말발이 서겠느냐는 것이다. 앞서 3명의 부위원장은 모두 여당 유력 정치인이었다. 1대 김상희 부위원장은 여당 4선 국회의원, 2대 서형수 부위원장은 대통령 측근, 3대 나경원 부위원장도 4선에 여권 중진이다. 한 내부 관계자는 “기재부(기획재정부)에 사업 예산 관련 질의를 하면 ‘안 된다’, ‘어렵다’는커녕 답조차 주지 않더라”며 한숨을 쉬었다. 시쳇말로 ‘읽씹(문자를 읽었지만 무시하고 답하지 않는 것) 당했다’는 건데, 이런 일이 부지기수였다는 것이다. ● ‘이슈 메이킹’ 하라지만 논란, 뭇매만 지난해 가을 대통령실에서 저고위 핵심 관계자들을 불렀다. 이 자리에서 호통이라 할 수준의 매서운 질책이 있었다고 한다. 저고위가 제 역할을 못 하고 있다며 ‘하다못해 이슈 메이킹이라도 하라’고 촉구했다는 것이다. 그에 따른 것인지 지난해 말부터 저고위는 비교적 적극적인 대언론 행보를 보였다. 구상 중인 정책을 어필하고, 새로운 사업을 위한 토론회, 자문위도 열고, 취임 후 한동안 몸을 사리던 김 부위원장도 적극적으로 언론 인터뷰에 응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이슈 메이킹을 하자 이번에는 또 ‘상의도 없이 논의 중인 정책을 공개했다’며 부처의 불만이 쏟아졌다. 출산 후 따로 신청하지 않아도 즉각 육아휴직에 들어갈 수 있도록 하는 일명 ‘자동육아휴직제’나 3명 이상 자녀를 둔 가정이라면 고속도로 버스전용차로를 이용할 수 있게 하는 ‘다자녀 전용차로 이용’ 같은 정책이 대표적 사례다.저고위는 온전히 뭇매를 감수해야 했다. 한 내부 관계자는 당시 이야기를 하며 “생각해 보면 전임 위원장이 이슈 메이킹으로 3개월 만에 옷을 벗었는데 (현 부위원장이) 이슈 메이킹이라니, 될 일이 아니었다. 힘 있는 여권 중진도 그렇게 된 판에 무슨 이슈 메이킹이 되겠느냐”고 반문했다. 전임이었던 나경원 부위원장은 2022년 10월 부임했지만 3개월 만인 이듬해 1월 사퇴했다. 기자간담회에서 ‘출산가정에 대해 전세자금 대출 원금까지 탕감해 준다’는 이른바 ‘헝가리식 제도’ 도입을 살펴보고 있다고 언급했다가 논란이 커진 탓이었다. 당시 대통령실은 현 정부의 저출산 정책 방향이 아니라며 공개적으로 선을 그었고, 나 부위원장의 독단 행동에 대해 비난하는 듯한 입장을 취해 사실상 자진사퇴를 종용한 셈이라는 이야기가 돌았다. ● 조사·연구 또 주문…“원인 몰라 해결 못 했나”얼마 전 저고위에서도 나 전 부위원장 사퇴 직전과 비슷한 상황이 벌어졌다. 며칠 전 김 부위원장이 한 언론에 나가 인터뷰를 하며 ‘2월 말이나 3월 초 중 중장기 전략 대책을 발표할 것’이라고 했는데, 바로 다음 날 위원회가 다시 ‘확정된 내용이 아님’이라며 보도설명자료를 낸 것이다. 단순한 말실수도 아니고, 기관에서 수장 인터뷰의 주요 내용을 부정하는 해명자료를 낸 희한한 상황이었다. 보통 기관장급 공식 인터뷰는 질문지를 미리 받아 각 부서와의 조율을 거쳐 답안을 완성한다. 즉 기관장의 답변은 본인 개인 생각이 아니라 기관의 입장이다. 그런데 기관이 기관 스스로 작성한 답변을 부정한 것이다. 정황상 내부 판단이라기보다 외부의 판단이 개입된 듯한 모습이었다.조용할 때는 조용해서, 적극 나설 때는 나서서 문제였다. 한 관계자는 기자와의 통화에서 “이쯤 되면 어느 장단에 맞춰 춤을 춰야 할지 모르겠다”고 답답함을 털어놓기도 했다. “아니, 우리가 춤을 춰도 되는 건 맞아요?” 사실 저고위 부위원장이 아무리 기막힌 장단을 준비해 춤을 춰봐야 ○○○이 없으면 소용없다. 각 부처가 저고위를 조율 기구로 인정하고 경청하는 건 부위원장 때문이 아니다. 이유는 단 하나, 위원장인 대통령이다. 그러나 지난 1년여 저고위 활동에서 대통령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대통령실 차원에서 획기적인 정책을 주문하고 하다못해 이슈 메이킹이라도 하라며 호통까지 쳤다는데, 막상 이슈 될 만한 정책이 다른 부처와 언론의 뭇매를 맞으면 ‘손절(손절매·자신의 피해를 줄이기 위해 발을 빼는 행위)’이었다. 그러더니 지난달 초 돌연 ‘저고위가 제대로 역할 하기 위해 데이터와 수치에 근거해 저출산 원인과 정책 효과를 설명할 전문가를 찾아보라’며 인적 쇄신을 예고했다. 당시 한 관계자는 기자에게 “어이가 없다”며 헛웃음을 지었다. “여기 데이터와 수치가 없고, 전문성이 없어 저출산 원인 모르는 사람 있습니까?”● 결정권자 대통령이 전면에 나서라 위원장인 대통령이 저고위 회의를 한 번밖에 주재하지 않았다거나 심지어 지난 정부에선 임기 내내 한 번도 나타나지 않았다는 건 많이 알려진 사실이다. 물론 이것이 대통령의 관심을 반증하는 것일 수 있지만, 중요한 건 실제 회의 참석 여부가 아니다. 저고위가 하는 일에 대한 실질적 관심과 지원이다. 대통령이 한 번 언급하고 사인만 줬어도, 기재부가 저고위 질의를 읽씹하는 일이 반복되진 않았을 것이다.이런 안팎의 지적에도 변화가 없는 걸 보며 일각에서는 “일부 자문위원들이 주장했듯 정부가 저출산 ‘극복’에서 ‘적응’으로 정책 방향을 선회하려는 것 아니냐”는 추측까지 나온다. 더 이상 획기적인 정책으로 저출산 추세를 바꾸기 어렵다고 판단한 정부가 ‘연착륙’으로 기조를 틀었고, 그래서 내부 관료, 그것도 경제관료 출신을 부위원장으로 앉힌다는 분석이다.그것이 사실이든 아니든 간에 이런 회의적인 전망이 나오는 것 자체가 저고위와 저출산 정책에 좋을 것이 없다. 저출산이 정말 국가적 과제고 1순위로 해결해야 할 문제라 여긴다면 해법은 간단하다. 대통령이 저고위 전면에 서라. 사람 바꾸고 부처로 간판 바꿔서 다는 지난한 방법을 택하기에 앞서 한 번만이라도 대통령이 직접 지휘하고 적극 지원하는 저고위를 만들어 보자. 저고위가 발굴하고 조율한 정책을 직접 보고 받고 결단을 내리는 모습을 보이라. 불도저가 아니라 탱크를 끌고 온다고 해도 혼자 공사하고 혼자 전쟁을 치를 수는 없는 일이다. 지휘관이 나서야 한다. 이미지 기자 image@donga.com}

    • 2024-0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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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與野 ‘저출생 대책’ 격돌…누가 이겼을까?[이미지의 포에버 육아]

    ‘포(four)에버 육아’는 네 명의 자녀를 키우며 직장생활을 병행하고 있는 기자가 일상을 통해 접하는 한국의 보육 현실, 문제, 사회 이슈를 담습니다. 단순히 정보만 담는 것을 넘어 저출산 시대에 다자녀를 기르는 맞벌이 엄마로서 겪는 일화와 느끼는 생각도 공유하고자 합니다.여당인 국민의힘과 제1야당인 더불어민주당이 약속한 듯 한 날에 ‘저출생’ 대책을 내놨다. 18일 국민의 힘 공약개발본부는 ‘1호 공약: 일·가족 모두행복’을, 더불어민주당은 ‘저출생 종합대책’을 발표했다. 총선을 앞두고 양당이 가장 중요하고 제일 먼저 공개해야 한다고 판단한 정책이 인구정책이었다는 건 개인적으로 반가운 일이다. 양당의 발표엔 일부 겹치는 것도 있었지만, 주로 방점을 찍은 곳은 달랐다. 과연 어느 당의 대책이 더 나았을까? 기자인 동시에 네 아이 엄마로서, 지극히 주관적인 평가를 내려 본다. ● 與 “육아기 유연근무 의무화”, 가족친화 일터 위해 긍정적 국민의힘 대책 중 가장 눈에 띈 것은 ‘육아기 유연근무 확대’다. 육아기 유연근무란 어린 아이가 있는 직원에게 시차근무(다른 직원들과 시차를 두고 근무하는 것), 재택근무, 단축 근로와 같은 유연한 근무를 허용하는 것이다. 흔히 일터에서 필요한 육아 관련 제도라고 하면 ‘육아휴직’을 제일 먼저 떠올리지만, 사실 육아휴직보다 더 먼저 권장돼야 하는 것이 육아기 유연근무다. ‘아이를 키우기 위해 휴직’하는 것보다 ‘아이를 키우면서 일’하는 게 우선 고려가 돼야 하고 그게 기업 입장에서도 부담이 적기 때문이다. 육아휴직은 육아하는 부모를 휴직시켜 일터에서 배제시키는 반면, 육아기 유연근무는 육아하는 부모도 일할 수 있게 만들어 일터에 가족 친화적인 근로 문화를 확산시킬 수 있다는 장점도 있다. 현재도 육아기 근로시간 단축제도는 시행되고 있다. 만 8세 이하 부모가 육아를 이유로 단축 근로를 신청하면 사업주는 최대 1년까지 이를 허용해야 한다. 여당은 이런 단축 근로를 유연근무 전체로 확대해, 일정 규모 이상 기업부터 의무화하는 방안을 내놨다. 중소기업 육아휴직 활성화를 위해 근로자뿐 아니라 기업 지원책도 함께 내놓은 점 역시 눈길을 끈다. 중소기업의 경우 육아휴직으로 인한 인력 공백의 타격이 대기업의 몇 배, 몇십 배로 크다. 따라서 중소기업의 경우 육아휴직률을 높이려면 기업에 인센티브를 높게 주어 육아휴직을 꺼리지 않는 분위기를 만드는 게 중요하다. 여당은 중소기업이 직원 육아휴직을 허용하고 대체인력을 채용할 경우 인센티브를 주고 기업에 대체인력지원금도 2배 높이겠다고 밝혔다. 남은 동료들을 위한 동료수당도 신설할 계획이다. 반면 민주당은 육아휴직자를 위한 ‘워라밸 프리미엄 급여(50만 원)’를 제시했지만, 기업에 대한 인센티브는 밝히지 않았다. ● 아동수당·아이돌봄지원…양육부담 커지는 학령기 지원 확대 바람직민주당 대책에서 특기하고 싶은 것은 아동수당 대상과 금액을 대폭 확대하고 아이돌봄서비스 지원책을 개선하는 등 만 8세 이후 학령기 가정이 받을 수 있는 혜택이 나온 점이다. 그동안 정부가 내놓은 저출산 대책은 주로 임신·출산 전후에 집중됐다. 출산을 늘리는 게 가장 시급한 과제이다 보니 아무래도 그 전후로 많은 혜택이 쏠린 것이다. 정작 많은 돈이 들어가는 학령기가 되면 지원이 급감해 양육 부담이 커지는 문제가 있었다. 아동수당의 경우 스웨덴, 프랑스 등 서구 선진국은 대부분 법적 아동 기한인 만 18세까지 준다. 심지어 25세까지 주는 나라도 있다. 최근 일본도 중학생까지 주던 아동수당을 고등학생까지 확대하기로 했다. 한국은? 만 7세까지만 준다. 차이가 나도 너무 난다. 아동수당이 아니라 사실상 ‘영유아수당’에 가까운 수준이다. 민주당은 8세부터 17세까지 아동 1명당 월 20만 원의 아동수당을 카드로 지급하는 ‘우리아이 키움카드’를 도입하겠다고 밝혔다. 이에 더해 8세 이후 매월 10만 원씩 정부가 입금하고 부모도 매월 10만 원 입금할 수 있는 ‘우리아이 자립펀드’도 만들겠다고 했다. 만 12세 이하 아이가 있는 가정에 아이돌보미 인력을 제공하는 아이돌봄서비스도 소득에 상관없이 지원하는 방안을 추진한다고 밝혔다. 현재 소득이 어느 이상이면 정부 지원이 없어 모든 금액을 이용자가 부담해야 한다. 심지어 아이돌봄서비스가 절대적으로 필요한 한부모 가정조차 2인 가구 소득 기준을 넘으면 한 푼도 지원받을 수 없다. 많은 저출산 대책이 이처럼 소득 요건을 두고 있어 실질적으로 저소득층만 혜택을 받는 경우가 많다. 중산층이라 해서 육아 부담이 없는 건 아니기에, 특히 지금 같은 초저출산 상황에서는 정책의 보편성을 확대해 갈 필요가 있다. 그런 점에서 환영할 만한 제안이다. 다만 재원 마련은 숙제다. 여당이 ‘저출생대응특별회계’ 신설을 공약한 데 반해 민주당은 별다른 대책을 내놓지 않았다. 아동수당 예산이 지금의 배 이상 늘어나고 아이돌봄서비스도 이용료가 인하되면 이용자가 크게 늘어날 수 있기에 예산 마련 방안이 꼭 필요하다. 여성가족부도 매년 아이돌봄 지원 확대안을 냈지만, 예산이 없단 이유로 번번이 추진에 실패했다. ● 육아휴직 의무화보다 근로문화 개선 우선돼야양당 모두 육아휴직 이용률을 높이기 위한 종합대책을 내놓았다. 여당은 아빠의 1개월 출산휴가를 의무화하고 임신 중 육아휴직 사용을 배우자에게도 확대하겠다고 밝혔다. 여성들이 결혼·출산을 꺼리는 이유로 ‘독박육아’가 꼽히고 있는 만큼 남성의 육아 참여율을 높이기 위한 이들 대책은 긍정적 평가를 받을 만하다. 육아휴직급여를 인상하고 유명무실한 사후지급금은 없애겠다고 한 것도 눈길을 끈다. 사후지급금은 육아휴직급여 중 25%를 떼어놓았다가 복직 후 6개월 넘게 일하면 돌려주는 돈이다. 복직율을 높이기 위한 장치였지만, 최근 조사에 따르면 복직 효과는 크지 않고 육아휴직 기간 급여액만 줄이는 것으로 나타났다.민주당은 육아휴직 대상 확대를 추진한다고 밝혔다. 육아휴직급여가 고용보험에서 나가는 탓에 현재는 고용보험 가입자만 육아휴직 혜택을 받고 있다. 이에 따른 형평성 문제는 꾸준히 제기돼왔고 방안 마련이 요구된다. 통계청에 따르면 올해 8월 고용보험 가입률은 전체 임금근로자 77%이며, 비정규직의 경우 54.2%에 불과하다. 육아휴직 개선안 대부분 공감할 만한 내용이지만, 양당 모두 제시한 육아휴직 자동 개시 제도는 개인적으로 썩 마음이 가지 않는다. 현재도 출산 직후 육아휴직은 여성에 극히 편중돼 있다. 의무화까지 해버리면 육아휴직자 중 여성 비율이 더 크게 올라갈 가능성이 있다. 복지가 잘 자리 잡은 대기업을 제외하면 여전히 남성의 육아휴직이 쉽지 않은 상황이다. 육아휴직으로 인한 여성의 직장 내 인사 불이익, 도태도 심각하다. 이런 문제가 개선되지 않은 상황에서 섣불리 의무화를 추진했다가 되레 근로 현장에서 여성과 엄마를 더 배제하는 꼴이 되지 않을까 염려된다. 휴직 강제보다는 일을 하며 아이 키우는 일터 문화를 만드는 게 우선 아닐까. ● 다자녀 주거지원은 ‘빛 좋은 개살구’ 아닌지 따져봐야다자녀 가정에 분양전환 공공임대 아파트를 제공한다는 민주당의 공약은 언뜻 큰 혜택처럼 보이지만 ‘빛 좋은 개살구’는 아닌지 따져 볼 일이다. 그동안 정부도 특공, 대출 혜택 등 다양한 주거 혜택을 내놓았는데, 네 자녀인 기자조차 한 번도 그 혜택을 본 일이 없다. 원하는 장소, 넓이가 아니거나 유주택자라 대상에서 제외되는 등 제한이 많다. 실제 이런 주거대책으로 얼마나 수혜를 보았는지, 저출산 해소에 얼마나 효과가 있었는지 조사된 자료도 없다. 민주당 관계자는 “선택지를 넓히는 차원으로 이해해달라”고 했다. 국민의힘은 전반적으로 일·가정 양립에, 민주당은 현금성 지원에 초점을 맞췄다. 개인적으로는 전자가 좀 더 실현 가능한 구체적 대책을 내놨다는 생각이 든다. 여당인 만큼 정부에서 실제 진행 중인 정책을 많이 참고했을 테고,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 상임위원인 홍석철 공약 총괄본부장(서울대 경제학부 교수)의 코칭도 받았을 것이다. 그러나 아동수당, 아이돌봄 지원 확대 같은 민주당의 공약도 양육기 부모들의 부담을 줄이고, 더불어 청년들의 육아에 대한 인식도 개선할 수 있는 중요한 정책이다. 양당이 정책이 ‘누가 더 낫다’ 경쟁하는 데서 그치지 말고 서로의 장점을 흡수하여 더 나은 정책으로 실제 구현될 수 있기를 기원한다. 기자이기에 앞서, 엄마로서. 이미지 기자 image@donga.com}

    • 2024-0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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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저출산 정책인가, 저소득 지원책인가…아직도 조건 따지는 한국 [이미지의 포에버 육아]

    ‘포(four)에버 육아’는 네 명의 자녀를 키우며 직장생활을 병행하고 있는 기자가 일상을 통해 접하는 한국의 보육 현실, 문제, 사회 이슈를 담습니다. 단순히 정보만 담는 것을 넘어 저출산 시대에 다자녀를 기르는 맞벌이 엄마로서 겪는 일화와 느끼는 생각도 공유하고자 합니다.정초에 지인으로부터 ‘축하 문자’가 당도했다. 올해부터 아이돌봄 사업 지원 혜택이 늘어난다며 잘되었다고 관련 기사 링크를 보내온 것이었다. 기자는 각 가정에서 아이를 돌볼 수 있도록 정부가 돌봄 인력(아이돌보미)을 제공하는 아이돌봄 서비스를 10년째 이용하고 있다. 반가운 마음으로 기사를 클릭했지만, 곧 실망을 금할 수 없었다. 자녀 둘 이상이면 아이돌봄 이용료를 추가로 지원한다는 내용이었는데, 소득이 어느 수준 이하여야만 혜택 대상이 됐다. 비슷한 일이 지난해에도 있었다. 셋째 이상만 전액 받을 수 있던 다자녀 대학 등록금 지원을 이제 첫째, 둘째도 받을 수 있게 한다는 대통령실의 발표가 나온 날이었다. 본래 세 자녀 이상인 가구에서 셋째 이상만 등록금 전액을 지원받을 수 있었는데, 앞으로 그 대상이 첫째와 둘째로 확대돼 수혜 가정에서 대상자를 선택할 수 있게 된다는 내용이었다. 당시에도 몇몇 지인들이 ‘좋겠다’며 문자를 보내왔는데, 사실 기자에겐 그림의 떡이었다. 국가장학금을 받을 수 있는 대상에도 소득 제한이 있어 애초 기자는 등록금 지원 대상이 못 되었기 때문이다. ● 맞벌이, 소득 높아 지원 못 받는 아이러니지난해 말 인천시가 파격적인 발표로 눈길을 끌었다. ‘아이 낳으면 무조건 1억 원.’ 인천에서 자라는 아이가 18세가 될 때까지 총 1억 원을 지원한다는 내용의 ‘1억 플러스 아이드림’ 사업을 시작한다는 발표였다. 올해부터 시행에 들어가 그 첫 대상자도 나왔다. 1억 원을 단번에 주는 건 아니고 생애 단계에 걸쳐 나눠 지원하는 것이긴 했지만, 인천에 거주한다면 누구나 ‘천사 지원금’과 ‘아이꿈수당’을 포함해 1억 원을 지원받을 수 있다는 내용은 분명 의미 있는 것이었다. 아이의 상황과 무관하게 그저 해당 지역에서 태어나고 자라면 지원받을 수 있는 것, 즉 출산과 육아라는 행위만으로 온전히 혜택의 대상이 된다는 점에서다. 반면 정부의 저출산 대책 가운데는 조건이 따라붙는 게 많다. 특히 출산과 육아를 지원한다면서, 특정 소득 이하여야 한다는 조건을 붙이는 식이다. 아이돌보미를 예로 들어보자. 어린이집, 유치원 같은 기관이 아닌 가정에서 아이를 돌볼 수 있도록 정부가 돌봄 인력, 아이돌보미를 제공하는 아이돌봄 사업의 경우 소득 수준에 따라 정부가 지원하는 폭이 다르다. 한데 소득이 기준 중위소득 150%를 넘는 가구라면 전혀 지원을 받을 수 없다. 아이돌봄에 들어가는 비용을 온전히 자부담해야 한다는 뜻이다. 맞벌이의 경우 기준을 적용할 때 가구소득의 25%를 공제하긴 하지만, 그래도 일선 중산층 가구 가운데는 기준을 넘는 가구가 적지 않을 것이다. 중위소득 150%를 초과하는 인구는 전체 4분의 1에 달한다. 맞벌이 가구야말로 아이돌봄 인력이 가장 필요한 가구이고 애초 아이돌봄 사업의 중요한 목적 중 하나가 여성의 경력 단절 부담을 줄이는 것인데(아이돌봄 사업 주관부처도 여성가족부다), 정작 맞벌이를 하면 소득이 좀 많단 이유로 지원에 탈락할 가능성이 높아진다니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이런 가운데 아이돌봄 자부담 비용은 가파르게 상승해 2024년 기준 아이돌봄 영아종일제(월 200시간)를 이용한다면 월 230만 원 넘는 돈을 내야 하게 됐다. 중위소득 150%를 초과하는 가구라 해도 결코 가벼운 금액이 아니다. ● 다자녀 가구도 못 받는 저출산 지원다자녀 대학 등록금 지원은 어떨까. 현재 대학 등록금 지원 기준은 소득 구간 10구간 중 8구간 이하다. 이게 어느 정도 수준인지 한 언론사가 분석한 기사가 있다. 2023년 가계금융복지조사를 기반으로 5인 이상 가구 보유 평균 실물자산, 금융자산, 부채, 평균 소득(차량 소유 가정)을 가지고 대학 등록금 지원을 받을 수 있는지 확인해 보았는데, 그 결과 ‘평범한 5인 가구’라면 등록금 지원을 받을 수 있는 소득 수준을 훌쩍 뛰어넘어 등록금 지원을 받지 못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5인 가구를 소득 순서대로 줄을 세웠을 때 그 중간값인 ‘중앙값’으로 분석해도 마찬가지였다. 쉽게 말해 다자녀 대학 등록금 지원은 평균보다 소득 수준이 낮은 집이어야 받을 수 있다는 의미다. 이런 식으로 소득이 어느 수준 이상 되는 가구라면 누릴 수 없는 저출산 지원책이 적지 않다. 그럼 그런 정책을 저출산 지원책이라 해야 할까, 저소득층 지원책이라 해야 할까? 특정 계층을 위한 저출산 지원책인 걸까?출산과 육아에 들어가는 비용은 웬만한 중산층 가구에도 결코 가벼운 금액이 아니다. 아이 돌봄 이용, 대학 등록금은 중산층 가구에서도 1인 월 소득에 해당하는 수준이다. 안 그래도 큰 금액인데 ‘받을 줄 알았다가 못 받으면’ 그 상실감과 상대적 박탈감이 더욱 크다. 비대상자의 출산 의지를 도리어 꺾어 정책 효과를 반감시킬 수 있다. 정부 정책에 대한 불신도 키울 수 있다. 종종 자녀를 셋 이상 가진 맞벌이 부모들을 만날 때가 있는데, 너나 할 것 없이 하는 이야기가 있다. “아이 셋 이상이면 나라에서 지원 많이 받을 거라 부러워하는데, 실상 받지 못하는 혜택이 많아 답답하고 화가 난다”는 말이다. 아이들 모임을 통해 알게 돼 친하게 지냈던 워킹맘이 있다. 그와 남편은 대기업에 다니는 직장인 부부로 세 아이를 키우고 있는데, 그들 역시 각종 소득 제한에 걸려 큰 혜택들을 누리지 못했다고 한다. 그는 “맞벌이하니 본의 아니게 가구소득이 높아져 아이가 셋인데도 받을 수 있는 건 전기, 수도, 공공주차장 같은 요금 할인뿐”이라며 “다자녀 혜택이라고 허울만 좋고 실속은 없다. 역시 우리 정부가 하는 일이 그렇지, 뭐”라고 덧붙였다. ● 출산율 1.3명 日도 조건 없이 지원하는데…지난달 발표된 일본의 저출산 대책이 발표됐다. 한국에서 화제가 된 것은 대학 등록금 관련 지원책이었다. 일본 정부는 소득에 상관 없이 자녀 세 명 이상 가구에 2025학년도부터 대학과 고등전문학교 등록금, 입학금을 지원한다고 밝혔다. 국공립대 연간 약 54만 엔(약 490만 원), 사립대 약 70만 엔(약 630만 원) 등 적지 않은 금액이다. 일본의 합계출산율은 지난해 기준 1.26명이었다. 반면 같은 해 출산율 0.78명을 기록한 우린 어떤가. “올해는 정말 통과될 줄 알았거든요. 대통령실, 정부, 여야 할 것 없이 저출산이 가장 시급한 과제라고 하니까. 그런데 최종에 가선 또 예산 등을 이유로 깎이고 축소되더라고요.” 최근 통화한 모 부처 공무원의 말이다. 해당 부처는 저출산 관련한 어떤 정책의 소득 제한을 완화하고 대상자를 확대하기 위해 몇 년째 개선안을 제출해왔지만 번번이 가로막혔다. 올해만큼은 모두가 취지에 공감하고 저출산이 어느 때보다 큰 이슈라 개선안이 통과될 듯 보였으나, 결국에는 예산 등을 이유로 대상자 확대에 실패했다는 이야기였다. 저출산 정책은 말 그대로 출산을 지원해 출산율을 높이는 게 목적인 정책이다. 복지 정책과 다르다. 만약 소득 등 각종 제한조건을 둘 거라면 정책 효과에 대한 면밀한 분석을 바탕으로 해야 한다. 저소득층의 경우 금액 지원으로 인한 출산율 제고가 확연했는데 중산층 이상은 그렇지 않았다는 식의 분석 말이다. 그저 예산이 부족해 상대적 저소득층부터 지원한다고 하면 복지 정책과 다를 게 무엇인가.4일 발표된 행정안전부 주민등록 인구통계에 따르면 전국적으로 저출산이 심각한 가운데 지난해 충북에서 유일하게 출생신고가 늘었다. 자녀 수에 상관없이 출생아에 1000만 원을 지급하고, 난임시술비 소득 기준 폐지, 임산부라면 누구나 이용할 수 있는 공공시설 이용료 감면 등이 견인차가 됐을 것이라 한다. 눈에 띄는 공통점은 ‘조건 없는’ 지원이다. 1억 원, 1000만 원 등 저출산을 타개할 파격적인 새 대책도 좋다. 하지만 아직 기존 정책의 혜택에서도 소외된 사람이 많다. 그들부터 살펴볼 일이다. 이미지 기자 image@donga.com}

    • 2024-0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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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저출산도 ‘전두광’ 때 시작됐다[이미지의 포에버 육아]

    ‘포(four)에버 육아’는 네 명의 자녀를 키우며 직장생활을 병행하고 있는 기자가 일상을 통해 접하는 한국의 보육 현실, 문제, 사회 이슈를 담습니다. 단순히 정보만 담는 것을 넘어 저출산 시대에 다자녀를 기르는 맞벌이 엄마로서 겪는 일화와 느끼는 생각도 공유하고자 합니다. 영화 ‘서울의 봄’이 1000만 관객 돌파를 눈앞에 두고 있다. 잘 알려져 있다시피 서울의 봄은 1979년 12·12 사태를 그린 영화다. 픽션을 표방했지만, 등장인물의 이름만 조금 다르게 바꿔놨을 뿐 사실상 역사에 충실한 논픽션 작품이다. 영화를 계기로 ‘전두광’의 실제 인물인 전두환과 제5공화국도 다시 조명되고 있다. 전두환은 평생 논란을 몰고 다닌 대통령이었다. 5·18 광주민주화운동을 강경 진압해 수많은 사상자를 냈지만, 그에 대해 일말의 사과나 반성도 없어 전 국민의 공분을 샀다. 퇴임 후 재판을 통해 재임 기간 벌인 각종 비리가 드러나 수천억 원을 추징당했는데, ‘전 재산은 계좌에 든 29만 원뿐’이라는 희대의 망언을 남기며 납부를 거부해 거센 비난을 받았다. 그런 그가 재임 기간 중 한 큰 실책이 하나 더 있었으니, 다름 아닌 인구 정책이다. 사실 한국의 저출산은 그의 5공화국 때부터 시작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1980년 전후로 둔화한 출산율 감소, 조급해진 정부 지난번 1960~1990년 사이 한국의 인구 억제 정책에 대한 역사를 간략히 소개했는데, 주변에 정보가 됐다고 말씀해 주시는 분들이 많아서 영화를 계기로 2탄을 준비해 보았다. 이번에는 1980년대 전두환 정부 시절 인구 정책 이야기다. 지금은 세계 최저 합계출산율을 자랑하는 한국이지만, 6·25 전쟁 직후만 해도 우리나라 여성이 평생 낳은 자녀 수, 합계출산율은 예닐곱 명에 달했고 인구 증가율이 3%에 가깝게 높았다. 1961년 억제 정책 일환으로 ‘가족계획 사업’이 시작됐고 성과는 눈부셨다. 20여 년간 합계출산율은 3분의 1 수준으로 뚝 떨어진다. 비슷한 시기 인도 등 몇몇 나라가 우리와 같은 인구 억제 정책을 시행했는데 우리만큼 괄목할 만한 성과를 거둔 곳은 없었다. 인구 증가율을 0%로 만드는 합계출산율, 즉 인구가 다음 세대에도 현 세대와 똑같게끔 만드는 출산율을 ‘대체 수준 출산율’이라 부르는데, 일반적으로 영아사망률이 낮은 선진국에서 이 대체 수준 출산율은 2.1명 정도다. 1980년을 전후해 한국의 출산율은 이 수치에 근접한다. 1981년 한국의 합계출산율은 2.57명이었다. 하지만 출산율이 떨어지니 자연히 감소 폭이 둔화하고 가족계획 사업 분위기도 다소 시들해질 수밖에 없었다.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었지만, 대체 수준 출산율 달성을 눈앞에 두고 마음이 조급해진 공무원과 전문가들에겐 당연해 보이지 않았다. 이들은 시대가 변함에 따라 가족계획 사업 방식 한계를 드러내고 있음에 주목했다. 그동안의 가족계획 사업이 높은 성과를 보일 수 있었던 건 인구 정책에 무지했던 국민을 대상으로 한 계몽 교육과 피임 지원, 지역별 전담 요원들이 가가호호 방문해 집중관리하는 ‘도어 투 도어’ 사업 방식 덕이었다. 하지만 1980년대에 이르면 이미 많은 국민들이 가족계획의 필요성을 깨달아 더 이상 ‘덮어놓고 낳아봐야 거지꼴을 못 면한다’고 계몽할 사람도 없었고, 도시화가 급격히 진행되면서 과거처럼 도어 투 도어 방식 관리도 어려워졌다.● 2050년 인구 6000만 전망…전두환 “인구문제, 5공 역점사업” 여기에 잘못된 전망까지 기름을 부었다. 1981년 정부가 낸 ‘장기 인구 전망’은 당시 속도대로 출산율이 떨어질 때 2000년에야 겨우 출산율이 2.1명에 이르고 이후 출산율이 계속 정체해 2050년 인구가 6000만 명을 넘는다고 예측했다. 기존 인구 정책에 따른 예기치 않은 부작용까지 감지됐는데, 바로 남녀 성비 불균형이었다. 정부의 지원 혹은 묵인하에 피임과 임신중절이 늘면서 자녀 수는 2~3명으로 줄었지만, 그 안에서 남아선호사상에 따른 성비 불균형이 극심해졌다. 태어나는 여아 100명에 대한 남아 수를 일컫는 출생성비는 자연 상태에서 105명 전후다. 하지만 통계청에 따르면 1975년 출생성비는 112.4명, 1978년 111.3명으로 남아가 비정상적으로 많았다. 이런 기울어진 성비는 장기적으로 사회를 불안하게 만드는 요인이었다. 결국 당시 정부는 억제 정책을 더욱 보완·강화하고 그 방식을 개선하는 대대적인 전환에 들어간다. 사실 집권 초만 해도 인구 정책에 큰 관심이 없었던 전 대통령은 뒤늦게 상황에 대한 설명을 듣고 “문제가 심각하다”며 그 자리에서 책상을 탁 치더니 “인구 문제를 제5공화국의 역점사업으로 하자”고 말했다고 한다. 이후 그는 지방에 초도순시를 다닐 때도 인구 억제를 강조하며 본인이 군대에 있을 때 정관수술을 했다는 사실을 이야기하고(1960, 1970년대 가족계획 사업의 일환으로 군부대 의무시설에서 희망자에 한해 정관수술을 지원했다), 상대방에게 ‘당신도 했느냐’고 묻곤 했다는데, 이 때문에 눈치를 보던 청와대 비서관이 마지못해 정관수술을 했다는 일화도 전해온다. ● “셋 이상 낳으면 보조금, 수당 안줘” 인구억제 강화 대통령이(그것도 전두환 대통령이) 이처럼 관심을 갖는데 정책이 신속히 준비되지 않을 리 없었다. 제5차 경제사회발전5개년계획(1982~1986) 발표와 함께 대거 보강된 ‘인구증가억제정책’이 공개됐다. 목표는 정책의 대국민 접근성을 높이고 인구 증가율을 1%대로 떨어뜨린다는 것. 총 49개 시책으로 이뤄졌는데, 피임 시술 지원 확대, 산아제한 가구에 대한 인센티브 강화, 다자녀 가구에 대한 불이익 확대, 남녀차별 개선 등 전방위적이고 과거보다 한층 고도화된 정책들이었다. 대표적인 몇 가지만 나열해 본다.―의료보험 급여 대상에 피임 시술 포함, 시술 지원비 인상―의료보험 분만급여 지급 대상을 둘째까지로 제한 ―셋째부터 자녀 교육비 보조금 비과세(면세) 혜택 박탈―셋 이상 다자녀 공무원 가구에 자녀 학비 보조수당, 가족수당 미지급―영세민 생계비, 자녀 수따라 차등 지급(한 자녀 30만 원, 세 자녀 3만 원)―생업자금, 복지주택자금 융자 시 두 자녀 불임수용 가구 우선―두 자녀 불임수용 가구에 공공주택 입주 우선권, 0~5세 자녀 1차 무료 진료―호주제, 상속제에 여성 차별 조항 개선―여성 취업 금지 직종 30→6종―육아휴직제 제도화―학교 인구 교육 보완, 강화 정책이 주는 메시지는 명확했다. 도시에 살든 농촌에 살든, 재산이 많든 적든 아이를 많이 낳으면 불이익을 주고 적게 낳으면 혜택을 주겠다는 것, 그리고 그를 위해 필요한 사회적 시스템을 모두 정비하겠다는 것이었다. 캠페인도 더 강화된다. 1960년대까지는 ‘3·3·35 운동(’3‘명의 자녀를 ’3‘년 터울로 낳아 ’35‘세 이전에 단산하자는 캠페인)’에서 보듯 권장 자녀 수가 3명까지였고, 1970년대에는 ‘딸 아들 구별 말고 둘만 낳아 잘 기르자’는 둘 낳기 운동이 등장한다. 1980년대 들어서면 이마저도 한 자녀를 권하는 표어들로 바뀐다. ‘둘도 많다,’ ‘하나씩만 낳아도 삼천리는 초만원,’ ‘잘 키운 딸 하나 열 아들 안 부럽다.’● ‘승자의 저주’…역사의 교훈 이런 정책의 결과 우리나라의 출산율과 출생아 수가 어떻게 되었는지는 모두가 알고 있는 바다. 전 대통령 재임기간은 우리나라 인구정책사를 통틀어 피임 보급 실적이 가장 높았던 시기다. 피임수용 여성의 연령과 현존 자녀 수도 크게 감소했다. 불임시술도 직전 같은 기간 대비 거의 2배가량 늘었다. 2000년이나 돼야 달성한다던 대체 수준 출산율 2.1명은 그 전망이 나온 지 단 2년 만인 1983년 달성되었다. 인구 감소 속도는 다시 빨라져 1984년 합계출산율 2명 선이 붕괴했고, 2018년에는 1명 선마저 무너진다. 1980년대 인구는 멈추는 자동차가 아니라 막 비탈길에 들어선 자동차였던 셈이다. 5공 정부는 어차피 굴러갈 자동차에서 가속기를 밟고 말았다. 80년대 중반, 전망이 현격히 어긋난 걸 알았을 때 슬슬 브레이크를 밟았어야 했다. 사실 이미 우리보다 앞선 길을 갔던 선진국은 저출산 위기를 이야기하고 있었고, 국내서도 향후 고령인구 증가, 노동력 부족을 지적하는 학자들이 있었다. 그러나 인구 정책 목표 달성에 취한 정부는 상황을 제대로 판단하지 못했다. ‘승자의 저주’였다. 당시 브레이크를 밟았더라면 지금의 저출산 상황이 좀 달라졌을까? 역사에 가정법이 의미 없다는 걸 알지만, 당시 ‘골든타임’을 허비하지 않았다면 적어도 세계 최저 출산율이란 불명예 타이틀은 달지 않았을 거라 생각한다. 하지만 ‘억제 정책을 중단해야 한다’는 의견과 ‘상황을 더 지켜봐야 한다’는 의견 사이에서 10년이 더 허비되었고, 최종적으로 정부가 인구 억제 정책을 폐기한 것은 1995년에 이르러서였다. 역사를 되돌릴 순 없어도 역사에서 교훈을 얻을 순 있다. 상황에 대한 정확한 조사와 판단, 필요할 때 과감한 정책 전환. 서울의 봄에서 전두광은 쿠데타가 “실패하면 반역, 성공하면 혁명”이라고 말한다. 12·12는 잠시 혁명이었는지 몰라도 결국엔 반란으로 기록됐다. 당시 성공이라 자축했던 5공의 인구 정책도 이제 보니 재앙의 씨앗이었다. 이미지 기자 image@donga.com}

    • 2023-12-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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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흑사병 수준’ 초고속 산아제한…과연 그때만큼 애쓰고 있나[이미지의 포에버 육아]

    ‘포(four)에버 육아’는 네 명의 자녀를 키우며 직장생활을 병행하고 있는 기자가 일상을 통해 접하는 한국의 보육 현실, 문제, 사회 이슈를 담습니다. 단순히 정보만 담는 것을 넘어 저출산 시대에 다자녀를 기르는 맞벌이 엄마로서 겪는 일화와 느끼는 생각도 공유하고자 합니다.용띠 해가 다가온다. 한때 한국은 대만, 싱가포르, 홍콩과 함께 ‘아시아의 네 마리 용’이라 불렸다. 식민지라는 암울한 과거를 딛고 엄청난 발전과 성장을 이루었기 때문이다. ‘한강의 기적’은 많은 개발도상국의 전범이 됐고 세계 학자들의 연구 대상이었다. 한데 이제 한국은 전혀 다른 소재로 새로이 연구 대상이 될 판이다. 얼마 전 뉴욕타임스 칼럼니스트 로스 다우섯은 ‘한국은 소멸하는가?(Is South Korea disappearing?)’라는 제목의 칼럼을 통해 ‘한국은 선진국들이 겪고 있는 인구 감소의 놀라운 사례연구 대상’이라고 썼다. 그는 한국의 인구가 ‘14세기 흑사병으로 인한 유럽의 인구 감소보다 더 많은 감소’를 보여주고 있다고 비유하기도 했다. ● 자녀 6, 7명 불과 한 세대 전…가족계획 시작한국의 합계출산율은 ‘전 세계 꼴찌’다. 그것도 그냥 꼴찌가 아니라 ‘압도적 꼴찌’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집계한 합계출산율(fertility rate) 가장 최신 자료(2021년)에서 한국의 출산율은 0.81명으로 전체 54개 조사국 중 가장 적었고, 2위인 말타(1.13명), 3위 중국(1.16명)과도 큰 차이가 났다. 합계출산율이란 여성 한 명이 평생 낳는 자녀 수의 평균을 의미한다. 지난 60여 년간 가장 눈부시게 발전한 나라에서 사람들은 왜 아이를 안 낳게 됐을까. 불과 30년 전까지만 해도 한국에는 산아제한정책이 있었다. 합계출산율이 예닐곱 명이었던 시절도 멀지 않다. 현재 가임기인 30, 40대의 불과 부모님 세대 일이다. 1950~60년대 합계출산율은 6~7명이었다. 나의 양가 부모님도 형제가 5~6명이고, 시할머니의 경우 무려 9명의 자식을 낳으셨다. 한국의 ‘베이비붐’ 시기인 1955년부터 1963년 태어난 출생아는 줄잡아 710만 명에 이른다. 한 해 거의 100만 명 가까운 아이들이 태어난 셈이다. 본래 의료기술이 발달하지 않은 과거에는 영아사망률과 모성사망률이 높아 ‘자식 농사는 반타작’이었고, 그 때문에 아이를 많이 낳았다. 농경사회에서 자식은 노동력이기도 한 만큼 대체로 자녀 5~10명을 낳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하지만 현대 들어 사망률이 급격히 떨어졌고, 무엇보다 6·25전쟁이 끝난 직후 한국의 상황은 많은 인구를 받아들이기 어려운 실정이었다. 전쟁으로 모든 게 파괴됐고 안 그래도 좁은 땅덩어리에 자원도 없는데, 인구 대다수는 가난했다. 나라 살림이 거덜 난 상황에서 인구, 그것도 가난한 인구의 증가는 부담일 수밖에 없었다. 자연히 인구 억제 필요성이 대두됐다. 1961년 박정희 정부는 ‘가족계획 사업’이라는 타이틀 아래 전 국민 ‘계몽 사업’을 시작한다. ● 캠페인, 피임시술, 인센티브까지…전방위 산아제한정책 국민 대부분 아이를 많이 낳으려고만 해봤지, 피임이란 것은 해본 적이 없었다. 교육과 홍보가 시작됐다. 당시 나온 직관적이고도 입에 착 붙는 공익광고 문구들은 지금도 널리 회자된다. ‘덮어놓고 낳다 보면 거지꼴을 못 면한다,’ ‘딸 아들 구별 말고 둘만 낳아 잘 기르자.’ ‘3-3-35 운동’이라는 것도 있었다. ‘세 자녀(3)를 세 살 터울(3)로 낳아 서른다섯에 단산하자(35)’는 의미의 전국적 캠페인이었다. 지금은 상상도 못 할 일이지만 당시엔 국가가 직접 나서 피임 시술을 지원하기도 했다. 전국 곳곳에 보건소와 가족계획 시범진료소를 설치해 무료 피임 시술을 시행했다. 임신중절은 합법이었고, 월경 조정술도 보급됐다. 1980년대에 들어서면 전두환 정권은 출산 억제에 더욱 박차를 가한다. ‘하나씩만 낳아도 삼천리는 초만원,’ ‘무서운 핵폭발 더 무서운 인구폭발,’ ‘잘 키운 딸 하나 열 아들 안 부럽다’ 등 이제는 셋, 둘도 아니라 하나만 낳으라는 표어들이 등장했다. ‘인센티브 방식’도 널리 활용된다. 불임시술을 받으면 공공주택 우선 입주권을 받을 수 있었고, 예비군 훈련도 면제받을 수 있었다고 한다. 셋째를 출산하면 의료보험 혜택을 주지 않았다. 공무원 사회에서는 아이를 많이 낳으면 인사고과에 불이익을 받는다는 소문이 파다했다. 기존에 가족계획이라는 두루뭉술한 이름으로 불리던 정책이 산아제한정책이라는 보다 명징한, 목표지향적 이름으로 바뀐 것도 이때였다. ● 출산율 2명 아래 떨어졌는데…정부의 오판하지만 정부가 인구 제한에 이렇게 한 번 더 속도를 냈던 1980년대 초 이미 대한민국의 저출산은 시작되고 있었다. 1980년 전후 합계출산율은 2명대로 떨어졌다. 단 20년 만에 한 여성이 낳는 아이 수가 3분의 1 이상 급락한 것이다. 출산율 2명대는 여자와 남자 2명이 만나 평균 두 아이 낳는다는 뜻이니, 인구가 현상 유지 상태에 도달했음을 의미했다. 출산율이 이보다 더 떨어진다면 그것은 인구 감소였다. 그런데 정부는 인구 정책을 선회하지 않았고, 산아제한을 계속했다. 결국 합계출산율은 떨어지던 속도 그대로 더 떨어져 1984년 2명선이 붕괴했다. 정부가 출산율 수치를 모르고 있지는 않았을 텐데 왜 출산율이 2명대에 이른 시점에 인구 억제에 더 속도를 냈을까? 여러 이유가 있다. 먼저 국제적으로는 여전히 산아제한 수요가 높았다는 점, 맬서스 이론(인구는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한다’는 내용)의 영향력이 컸다는 점을 들 수 있다. 정부는 이에 따라 언제든 출산율이 반등할 수 있다고 봤다. 실제 경제 발전으로 중산층이 늘고 여러 보육 여건이 개선되면서, 각 가정이 아이를 더 많이 낳을 수 있을 것으로 보였다. 출산율과 관계없이 출생아 수가 많았던 점도 정부가 상황을 안일하게 보고 오판하게 만든 원인이었다. 출산율이 짧은 기간 3분의 1 수준으로 가파르게 떨어졌는데도 1980, 1981년 한 해 출생아 수는 여전히 80만 명대였다. 이유는 단순하다. 부모 세대의 수가 많았기 때문이다. 1980년대를 전후해서 수백만 명씩 태어났던 베이비붐 세대가 결혼하고 자녀를 낳았다. 이때 출생아들은 베이비붐의 메아리란 의미로 ‘에코 세대라 불렸다. 이들의 ’인해전술‘로 인해 출산율 급감 문제는 잘 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여전히 많은 출생아로 인해 ’정책 효과가 충분치 않은가‘ 고민하는 관료들이 많았다고 한다.● 저출산 타계…산아제한 때만큼 애쓰고 있나생각해보면 그때가 초저출산 위기를 초기 진화할 수 있는 골든타임이었다. 이후 출산율은 계속해서 떨어져서 정부의 눈을 가리고 있던 출생아 수까지 붕괴하기 시작했고, 1990년 출생아 수는 60만 명대로 주저앉았다. 정부는 뒤늦게 피임 사업을 중단하고 산아제한정책도 철회하는 등 정책을 급선회했다. 하지만 급물살을 타기 시작한 흐름을 돌리기엔 역부족이었다. 지금 추세대로라면 미래는 저출산이 지금보다 더 가속화될 가능성이 높다. 오늘 출생한 아이들은 20, 30년 뒤 부모가 된다. 즉 출생아 감소는 ‘미래의 부모’가 줄어든다는 말과 같다. 엄마, 아빠의 수가 줄면 합계출산율이 증가한대도 정작 출생아 수는 늘지 않는 역설적인 상황이 생길 수 있다. 마치 부모 세대 수가 많아서 출산율이 떨어져도 출생아 수가 많았던 과거처럼 말이다. 실제 출산율이 1.18명이던 2002년 출생아 수는 49만6911명이었는데, 출산율이 1.3명으로 더 높아진 2012년 출생아 수는 48만4550명으로 더 줄었다. 그래도 역사를 통해 한 가지 희망적으로 배울 수 있는 점은 정부 정책의 힘이다. 물론 인구 감소는 국제적인 흐름이었지만 우리 정부의 각종 계몽 사업과 적극적인 지원, 인센티브 정책은 다른 나라보다 인구를 훨씬 빠르게 급감시켰다. 반대로 인구 증가에도 그만한 영향을 끼치지 못하리란 법이 없다. ‘백약이 무효하다’는 자조적인 목소리가 나온다. 하지만 이는 자조가 아니라 자만이라 생각한다. 계층, 직업, 학력 등 상황별로 어떤 청년들이 아이를 더 낳고 덜 낳는지, 집과 일자리의 문제라는데 과연 그것이 주어진 전후 출산율에 차이가 있는지, 주요 저출산 정책 수혜자들의 출산에 변화가 있는지 등 기본적인 조사조차 안 되어 있는 것이 너무 많다. 일·가정 양립의 기본인 유연한 근로 시간조차 사회적 합의를 이뤄내지 못해 사실상 민간으로 책임을 떠넘겼고, 학교 시간을 늘리자는 논의 등 이해관계자들이 얽혀있는 사안들은 누구도 골치 아파 꺼내지 않는 분위기다. 과연 정부는 그동안 ‘백 가지 약’을 썼다고 자신할 수 있는가. 이미지 기자 image@donga.com}

    • 2023-12-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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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일·가정 양립, 육아휴직보다 좋은 선택지가 있다[이미지의 포에버 육아]

    ‘포(four)에버 육아’는 네 명의 자녀를 키우며 직장생활을 병행하고 있는 기자가 일상을 통해 접하는 한국의 보육 현실, 문제, 사회 이슈를 담습니다. 단순히 정보만 담는 것을 넘어 저출산 시대에 다자녀를 기르는 맞벌이 엄마로서 겪는 일화와 느끼는 생각도 공유하고자 합니다.올 초 독일에 출장 갔을 때 가장 인상적이었던 것은 독일 직장인들의 일하는 방식이었다. 기자가 방문한 곳은 프랑크푸르트에 있는 여느 일반 사무직 회사였는데, 사원들은 하루 8시간(점심시간 1시간 제외) 내에서 본인의 근무 시간을 자유롭게 선택해 일할 수 있었다. 팀원들 간에 회의하거나 업무를 교류해야 할 수도 있으니 최소한의 교집합인 ‘코어 시간(약 오전 10시부터 오후 3시 사이)’을 어느 정도 걸쳐야 하는 것 말고 다른 제약은 없었다. 누군가는 오전 6시에 출근해 오후 3시에 퇴근하고, 또 다른 누군가는 오전 10시 출근해 오후 7시에 퇴근하는 게 가능하다는 말이었다. “주로 일찍 퇴근하다 보니 자연히 가정적이 될 수밖에 없다”고 한 직원은 말했다. 한국에 돌아와서 더욱 놀랐다. 알고 보니 기자가 독일에서 보고 놀란 그 근로시간제도를 이미 많은 기업들이 운용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IT 기업들이 대표적이다. ‘한두 곳 그런 데가 있는 정도’가 아니라 꽤 보편적이었다. 매일 고정된 시각에 출근하고, 퇴근 시각을 내가 정할 수 없는 직장만 다녀온 기자에게는 그저 신세계였다. ● 일하면서 아이 키울 수 있었다면…‘아이를 키울 돈이 아니라 시간을 달라.’ 요즘 많이 나오는 이야기다. 장시간 근로, 경직된 근로 형태가 일반화된 한국에서 아이 키우며 일하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최근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가 출산휴가 뒤 바로 육아휴직이 시작되는 ‘자동 육아휴직제’를 추진 중이라는 보도가 나왔다. 육아휴직을 쓰기 어렵다는 직장이 많다 보니 아예 육아휴직을 출산휴가처럼 의무화하도록 한 것이다. 고용노동부는 엄마, 아빠 모두 육아휴직을 쓴 부부에 대해 현재 1년인 유급휴직 기간을 1년 6개월로 늘려주는 남녀고용평등법 개정안을 시행 예정이다. 육아휴직 기간을 늘리고, 육아휴직을 내기 쉬워진다니 바람직한 방향 같다. 하지만 과연 좋기만 할까?기자는 네 아이를 낳고 총 네 번의 육아휴직을 했다. 육아휴직 기간만 4년이다. 육아휴직을 내기 어려운 사람들이 여전히 많음을 알기에, 기자는 큰 복을 누렸다고 생각한다. 실제 덕분에 네 아이들을 잘 키웠고, 평생 못 잊을 많은 추억을 쌓았다. 시간을 돌려 다시 돌아가도 휴직을 택할 것이다. 하지만 아무리 육아가 좋았대도 경력 단절에 대한 아쉬움은 남았다. 내가 휴직하는 새 누군가는 좋은 기사를 쓰고 세상을 바꾸는 걸 보면서 울적한 마음이 들었던 것도 사실이다. 그래도 어쩔 수 없는 일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독일과 국내 IT 기업들의 근로 시스템을 본 뒤 생각이 바뀌었다. ‘일을 하면서도 아이를 키울 수 있구나.’● ‘육아기 단축 근로’ 이용, 육아휴직의 15% 수준한국에도 일을 하면서 아이를 키울 수 있도록 돕는 제도가 마련돼 있다. ‘육아기 근로시간 단축’ 제도가 대표적이다. 사업주는 만 8세 혹은 초등학교 2학년 이하 자녀를 양육하는 근로자(곧 12세 이하로 확대 예정)가 근로시간 단축을 신청하는 경우 이를 허용해야 한다. 이때 근로 시간은 주당 15시간 이상, 35시간 이하다. 단축 기간은 1년으로 제한되지만, 만약 육아휴직 중 안 쓰고 남은 기간이 있다면 단축 근로기간에 가산할 수 있다. 하지만 제도의 실적은 저조한 편이다. 고용노동부가 올 초 발표한 2022년 육아기 근로시간 단축 이용자 수는 1만9466명이다. 같은 해 출생아 수가 24만9000명, 육아휴직자 수가 13만1087명임을 감안하면 육아휴직자의 15%에 불과할 정도로 적다. 그나마 이용자의 90%(1만7465명)가 여성이었다. 육아휴직의 경우 그래도 남성 사용자가 30%에 가까운 점(3만7885명)을 감안하면 단축 근로 이용은 여성 편중이 심한 편이다. 왜 이런 수치가 나타날까. 일반 사무직에 종사하는 지인들에게 물었다. 교육 관련 회사에 다니는 한 지인은 “휴직하면 회사 사람들을 안 보지만, 단축 근로를 이용하면 매일 회사 사람들을 만나 일하다 혼자만 일찍 퇴근해야 한다. 눈치 보여서 퇴근할 수 있겠느냐”며 “만약 꼭 써야 한다면 정말 불가피한 엄마들만 사용할 것”이라고 했다. 문화예술기관에서 일하는 또 다른 지인은 “우리나라 직장처럼 장시간 근로와 야근이 일상화된 곳에서 매일 일찍 퇴근하는 게 가능할지 의문”이라며 “제대로 된 단축 근로가 구현되지 않을 듯해 결국 휴직을 택할 것 같다”고 했다. 쉽게 말해 대부분 직장에서 실질적인 단축 근로가 쉽지 않을 거라, 꼭 필요한 여성들만 이용하거나 아니면 그냥 휴직해버리는 길을 택한다는 것이었다.육아기 근로시간 단축제도 말고도 시차출퇴근제, 근무시간 선택제와 같이 유연근무제를 이용하는 방법도 있다. 앞서 독일과 한국 IT 기업들에서 구현하고 있는 제도들이다. 하지만 유연근무제는 회사가 이런 근무제를 운용해야만 근로자들이 이용할 수 있다. 한국에서는 활용률이 낮을 수밖에 없다. 통계청에 따르면 올해 8월 기준 유연근로를 하고 있다는 근로자는 전체 근로자의 15.6%로 예닐곱 명 중 한 명꼴이었다. ● 육아휴직, 독박육아·경력단절 위험도‘육아휴직 이용할 수 있는 것도 축복인데, 그냥 쉬면서 아이 키우면 안 돼?’ 이렇게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분명히 짚고 가야 할 부분이 있다. 누군가 휴직해서 육아를 전담하는 방식은 필연적으로 가정 내 가사와 육아 분담 균형을 깨뜨린다는 점. 누구든 휴직하면 육아는 독박으로 그의 차지가 된다. 복직 후에도 육아 주무자가 될 가능성이 높다. 휴직 후 몇 년 못 가 경력 단절로 빠지는 여성이 많은 이유가 여기에 있다. 첫째가 학교 들어가고 처음으로 반 학부모 모임이라는 걸 한다기에 가본 적이 있는데 두 가지에 깜짝 놀랐던 기억이 있다. 첫째, 모임에 참석한 학부모 중 아빠는 한 명도 없었다는 것과, 둘째 참석한 엄마 중 절반이 전업주부이거나 경력 단절 여성이었다는 점이다. 30, 40대 여성 고용률이 갈수록 오른다는데, 경력 단절 여성이 여전히 이렇게나 많다니 충격적이었다. 이야기를 나눠 보니 아니나 다를까, 자녀가 태어났을 때, 학교에 들어갔을 때 직장을 그만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통계청에 따르면 올 상반기 비취업 기혼여성 2명 중 1명이 경력 단절 여성이었고, 사유는 출산과 육아, 자녀 교육 등 자녀 관련이 70% 이상이었다.육아휴직을 권장하는 건 육아 친화적인 근무 환경에도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 근로 현장에서 어린아이 키우는 사람들을 배제해버리는 꼴이기 때문이다. 육아와 일을 병행하는 사람이 많아야 육아 친화적인 문화도 빨리 도입될 터다. 기업 입장에서도 휴직자가 느는 것보다는 기존 경력 직원이 계속 회사에 남아 일을 해주는 게 이득일 수 있다. ● 휴직해야만 육아 vs 일하면서도 육아…뭐가 더 낫나이미 우리나라 육아휴직 제도는 세계 주요 선진국과 비교해도 결코 모자라거나 열악하지 않은 수준이라고 한다. 올 초 취재차 유럽의 고용노동부 장관 격인 니콜라스 슈미트 EU 일자리·사회권 집행위원을 만났을 때 한국의 육아휴직 제도에 대해 설명했더니 그는 “한국도 유럽만큼 (모성보호제도가) 잘 되어 있는지 몰랐다”며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라떼파파’의 국가, 보육 선진국으로 알려진 스웨덴의 육아휴직이 16개월이다. 한국도 출산휴가에 유급 육아휴직 기간을 합치면 15개월이다. 육아휴직급여의 경우 스웨덴은 급여의 80%, 한국은 통상임금의 80%다. 물론 한국에서는 육아휴직급여의 소득대체율이 낮고, 여전히 육아휴직을 이용할 수 없는 사람들이 많다. 이는 계속 개선해 나가야 할 부분이다.그것과 별개로 육아휴직이 일·가정 양립의 가장 좋은 ‘만능 해법’인 것처럼 인식되는 분위기만큼은 재고했으면 한다. 스웨덴이 보육 선진국으로 불리는 건 모두가 육아휴직을 길게 쓰기 때문이 아니라 일하면서 육아하기 수월한 나라이기 때문이다. 육아휴직을 마냥 늘려서 오래 쉬도록 하는 게 과연 일·가정 양립을 위하는 길일까. 일과 육아를 함께 할 수 있도록 근무 환경을 정비하는 것이 더 좋지 않을까. 이미지 기자 image@donga.com}

    • 2023-1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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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종이컵·빨대 규제 철회, ‘컵 보증금 시즌2’?…소매업장 관리 소홀해선 안돼[이미지의 포에버 육아]

    ‘포(four)에버 육아’는 네 명의 자녀를 키우며 직장생활을 병행하고 있는 기자가 일상을 통해 접하는 한국의 보육 현실, 문제, 사회 이슈를 담습니다. 단순히 정보만 담는 것을 넘어 저출산 시대에 다자녀를 기르는 맞벌이 엄마로서 겪는 일화와 느끼는 생각도 공유하고자 합니다.어린아이들로부터 배울 때가 있다. 최근 일 중 기억에 남는 것 하나를 꼽으라면 ‘다회용 물통’에 관한 것이다. 기자의 아이들은 어린이집 다닐 때부터 개인 다회용 물통을 가지고 다녔다. 학교에서도 내내 썼으니 초등학교 고학년인 10대인 첫째는 10년 넘게 개인 물통을 쓰고 있는 셈이다. 요새 어린이집, 학교 같은 기관에서 아이들은 대부분 개인 물통을 사용한다. 물통 들고 다니는 게 익숙해졌는지 아이들은 학교 갈 때뿐 아니라 학원, 나들이, 심지어 친구 집 갈 때도 개인 물통을 가지고 간다. 엄마 눈엔 아직 아기 같은 셋째가 제 팔뚝만 한 물통을 들고 나가는 모습이 안쓰러워 “귀찮겠다. 엄마가 돈 줄게, 그냥 음료수 사 먹어”라고 했더니, 아이는 되레 시큰둥하게 “이게 뭐가 귀찮아?” 했다.별생각 없이 지나쳤던 이 에피소드가 다시 떠오른 건 일회용품 관련해 한 환경운동가를 취재하면서다. 인터뷰 며칠 전 강의 요청을 받아 한 초등학교에 갔다 왔다는 그는 이런 말을 했다. “어른들이 다회용기 쓰기 힘들다고 하잖아요. 그런데 학교 가니까 그 조그만 애들이 다 다회용 물통 들고 다니더라고요. 애들도 다 들고 다니는데 왜 어른이 못해요?”● 다회용기 유도한다더니…종이컵·빨대 규제 철회뒤통수를 맞은 듯 정신이 번쩍 들었다. 이후 기자도 텀블러를 들고 다닌다. 휴대하기 좋은 접이식 실리콘 텀블러다. 솔직히 처음 가방에 넣을 때는 ‘며칠이나 들고 다닐까’ 했다. 하지만 막상 가지고 다녀 보니 환경단체 인사의 말처럼 별로 불편하지 않았다. 물론 사용 후 씻어야 하는 번거로움이 있다. 그래도 다회용기 이용을 유도하라는 정부 방침에 따라 텀블러 할인을 해주는 곳이 많아서 10%가량 싸게 음료를 구입할 수 있었고, 더불어 쓰레기도 줄일 수 있으니 그 정도 노동은 별로 수고롭게 느껴지지 않았다. 이제 일회용품 사용이 지금보다 조금만 더 불편해지면, 기자처럼 다회용기를 들고 다니는 사람이 제법 늘어날 수 있겠다 싶었다. 많은 사람이 다회용기보다 일회용기를 선호하는 이유는 단순하다. 편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일회용품을 쓰는 게 지금보다 불편해지고 비용까지 든다면? 최근 몇 년간 정부가 추진해 온 일회용품 대책의 핵심 방향이었다. 일회용품 사용을 불편하고 수고스럽게 하는 것. 일회용품을 사용하면 음료값을 더 비싸게 물리고(일회용 컵 보증금제), 식당 안에 있을 거면 플라스틱은 물론 종이컵과 플라스틱 빨대까지 일절 사용하지 못하게 하고, 편의점에서는 비닐봉지를 주지 않는 식이다.그런데 지난 7일 또 한 번 뒤통수를 때리는 소식이 들려왔다. 정부가 이달 내 본격 시행하기로 했던 플라스틱 빨대, 종이컵 매장 내 사용 제한, 비닐봉지 판매 금지 조치를 무기한 연기 혹은 철회한다고 밝힌 것이다. 1년 계도기간을 거쳐 고작 시행을 보름여 앞둔 시점이었다. ● ‘컵 보증금 유예 시즌2?’ 꼭 닮은 두 제도전국 시행을 유예하더니 갑자기 세종, 제주에서만 축소 시행하게 된 ‘반의 반쪽짜리’ 일회용 컵 보증금제가 떠오른 건 비단 기자만이 아니었을 거다. 2020년 정부는 2008년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진 일회용 컵 보증금제를 다시 부활시킨다고 밝혔다. 일회용 컵 보증금제란 일회용 컵 사용 시 일정 금액을 더 내고, 나중에 컵을 반환하면 그 돈을 돌려주는 제도다. 보증금을 부과함으로써 일회용품 사용을 줄이고 수거율도 높일 수 있다. 준비 기간을 거쳐 2022년 6월부터 시행하기로 했는데 정부가 바뀌고 얼마 안 된 2022년 5월 돌연 시행을 12월로 미뤘다. 그리고 그해 9월, 이번엔 세종과 제주에서만 ‘우선 시행’한다고 말을 바꿨다. 차차 전국으로 확산할 것이라더니 그 시점은 ‘최소 1년 이후’라는 먼 미래로 못 박았다. 1년여 지난 지금? 여전히 세종, 제주 외에 이 제도를 시행하는 곳은 없다.얼마 전 번복된 일회용품 사용 규제는 마치 ‘일회용 컵 보증금제 시즌2’를 보는 느낌이다. 식당 안에서 플라스틱 컵뿐 아니라 플라스틱 빨대와 종이컵을 사용할 수 없고, 마트·편의점에서 비닐봉지를 유·무상 모두 제공할 수 없게 하는 ‘자원의 절약과 재활용 촉진에 관한 법률(자원재활용법)’ 시행규칙 개정안은 2021년 공포됐다. 본래 지난해 11월부터 시행하려 했지만, 소상공인들의 부담과 준비 기간을 이유로 1년 유예했다. 돌아오는 11월 24일이 시행일자였다. 그런데 7일 종이컵을 사용 제한 품목에서 제외하고, 플라스틱 빨대와 비닐봉지는 계도기간을 연장해 시행을 유예한다고 발표한 것이다. 빨대와 비닐봉지의 경우 ‘유예’이지만 또 구체적인 시점을 박지 않은 무기한 유예였다. 사실상 정책 철회나 다름없었다. 컵 보증금 때나 지금이나 소상공인들의 부담이 이유다. 하지만 업계의 반대는 하루 이틀 일이 아니다. 왜 이렇게 닥쳐서 철회한 것일까. 별다른 이슈나 사건 없이 갑자기 방향을 선회한 데 대해 내년 초로 다가온 ‘총선용 선심성’이라는 의혹이 불거졌다. 불과 1년 전 대책을 유예할 때까지만 해도 환경부는 ‘(계도기간이라도) 금지 사항을 반드시 준수해야 한다’거나 ‘계도를 통해 제도를 안착시킬 계획’이라는 등 강한 시행 의지를 드러냈기 때문이다. 컵 보증금 축소 시행 때도 당시 낮은 대통령 지지율 때문이라는 해석이 돌았다. ● 소매업장 관리 중요한데…사실 식당과 같은 소매업종 일회용품 관리가 환경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는 것은 아니다. 음식점, 편의점 등 소매업종 일회용품 쓰레기는 전체 쓰레기에서 미미한 비중을 차지한다. 환경부에 따르면 지난해 전국 커피 전문점 15개 브랜드와 패스트푸드점 5개 브랜드에서 사용한 일회용 컵은 10억3590만 개. 플라스틱 빨대와 젓는 막대 사용량은 2019년 기준 9억8900만 개로 추산된다. 언뜻 엄청난 양 같지만, 지난 4월 발표된 2021~2022년 전국폐기물통계조사에 따르면 생활폐기물 중 일회용품 쓰레기의 비중은 3.9%, 그중에서도 시장상가, 업무시설, 음식점 등 소규모 사업장에서 버리는 일회용품은 전체 일회용품의 62.4%였다. 음식업종과 마트·편의점 한두 업종에서 쓰는 일회용품으로 한정하면 그 비중은 더 줄어들 것이다. 이를 두고 정부가 저감 효과 대비 기회비용이 너무 크다고 판단했을 수 있다. 그렇지만 이런 소매업종 규제에는 남다른 의미가 있다. 실생활에 맞닿아있는 공간에 대한 규제인 만큼 그 규제의 체감도가 높고 시민들의 생활과 인식에 끼치는 영향도 크다는 점이다. 매장 내 플라스틱 컵 규제의 경우 근래 그 어떤 정책보다도 더 일회용 플라스틱 문제를 환기하는 데 기여했고, 전 국민에 일회용품 저감 필요성을 각인시켰다.실생활에서 일회용품 사용을 줄이려는 노력은 미래의 저감으로도 이어진다. 앞서 물통 사례가 그 예다. 어려서부터 일회용품이 없는 삶에 익숙해지면 커서도 자연스레 일회용품을 덜 찾을 수밖에 없다. ● 매장서 일회용품 안 보이니 사용량 10~40%↓지난해 기자는 서울 시내 한 카페를 섭외해 재미있는 실험을 했다. 하루 동안 매장 안에서 플라스틱 빨대와 종이 홀더를 모조리 치워버렸다. 키오스크로 일회용 컵 주문도 할 수 없게 했다. 일회용 컵, 플라스틱 빨대와 종이 홀더를 쓰고 싶으면 반드시 매장 직원에게 요청해야 한다고 안내문을 붙였다. 쉽게 말해 일회용품을 쓰기 어렵게 만들었다. 그러자 단 하루 새 이들 일회용품 사용량이 10~40% 뚝 떨어졌다. 요청하면 준다고 안내했음에도 많은 손님이 그냥 다회용 컵으로, 플라스틱 빨대와 종이 홀더 없이 음료를 마셨다. 몇몇 시민들에게 이유를 물었다. “없어도 크게 불편하지 않더라”, “딱히 필요 없는데 평소 습관적으로 집어 갔던 것 같다” 등의 답이 돌아왔다. 일회용품이 없으면 없는 대로, 사람들은 생각보다 잘 적응했다. 매장의 일회용품 사용 문화가 사람들의 사용 습관에 긴밀하게 영향을 미침을 볼 수 있는 실험이었다. ● 실생활 작은 변화가 큰 저감 이끌어낼 수도소매업종을 대상으로 한 일회용품 규제는 강제적이든 자율적이든 계속돼야 한다. 실효성 못지않게 캠페인성이 크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런 중요한 정책에서, 정부는 마치 한발 물러서는 듯한 인상을 남기고 말았다. ‘규제 합리화’라는 정부의 해명도 사실 미덥지 않다. 정부 설명대로 ‘감량 정책을 포기한 게 아니라 규제를 합리화’한 것이라면 종이컵 재활용률을 어떻게 높일 것인지, 플라스틱 빨대 규제는 언제까지 유예할지, 다회용기 활용 증진 방안은 무엇인지 구체적인 규제 대안을 함께 제시했어야 했다. 계도기간 1년, 시행규칙이 개정된 이후로 2년, 법안 준비 기간까지 합치면 수년의 시간이 있었다. 관련업종들과 이런 결론도 내지 못한 채 ‘추후 논의’, ‘시스템 마련’, ‘노력을 배가’와 같은 두루뭉술한 단어들로 점철된 보도자료를 냈다는 것은 정부가 안일했거나, 제도가 추진 동력을 잃었거나, 그도 아니면 세간의 의혹처럼 제도를 막판에 급선회한 것이라 해석할 수밖에 없다. 정부 방침에 따라 계도기간에도 이를 철저히 지킨 업장만 피해를 보게 된 점도 안타까운 부분이다. 이제 업계에는 ‘버티면 된다’, ‘규제 잘 지키는 사람만 손해’ 같은 인식이 확산할 것이다. 부디 정부가 구상하는 ‘자발적 참여 감량’, ‘재활용률 개선’이 실현되길 기원한다. 앞서 카페 실험에서 인터뷰한 한 손님은 “눈에 일회용품이 안 보이니 잘 안 쓰게 되더라”고 말했다. 일회용품을 줄이고 우리의 소비 습관을 바꾸는 것은 의외로 간단하고도 작은 변화로 시작할 수 있는 것인지 모른다. 그저 어린이집과 학교에서 쓰라니까, 개인 물통을 쓰는 게 당연해진 우리 아이들과, 그 아이들을 따라 텀블러를 들고 다니게 된 엄마처럼.이미지 기자 image@donga.com}

    • 2023-1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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