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약자석 두고 아이·노인 다툼까지…각박한 사회, 저출산 악순환[이미지의 포에버육아]

  • 동아일보
  • 입력 2024년 3월 29일 14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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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four)에버 육아’는 네 명의 자녀를 키우며 직장생활을 병행하고 있는 기자가 일상을 통해 접하는 한국의 보육 현실, 문제, 사회 이슈를 담습니다. 단순히 정보만 담는 것을 넘어 저출산 시대에 다자녀를 기르는 맞벌이 엄마로서 겪는 일화와 느끼는 생각도 공유하고자 합니다.
몸이 불편한 사람, 어린아이를 동반한 사람, 임신부 등 노약자를 위해 양보를 권고한 배려좌석에 일반 승객들이 앉아있다. 이미지 기자 image@donga.com
남편이 토요일에 일하는 직업을 가진 탓에 매주 토요일 네 명의 아이들을 혼자 돌보는데 귀찮더라도 웬만하면 네 아이들을 데리고 꼭 바깥나들이를 가는 편이다. 그냥 집에 있다가는 자칫 평온한 주말 층간소음 가해자(!)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지난 주말에는 가까운 산에 다녀왔다. 요즘에는 어린아이들도 걸을 수 있게 길을 잘 내어놓은 야트막한 산들이 많다.

보통 산을 오르면 올라가는 곳과 내려오는 곳의 위치가 달라서 대중교통을 이용한다. 그날도 오며 가며 지하철을 탔는데, 날씨가 좋아서였는지 노약자석은 물론 일반좌석까지 공석이 한 곳도 없었다. 그나마 첫째는 머리 위 손잡이에 손이 닿았지만, 둘째부터 넷째까지는 지하철이 출발, 정지할 때마다 휘청거리는 몸을 서로에 의지해 지탱할 수밖에 없었다.

이렇게 30여 분 힘들게 지하철을 타는데 어린아이들에게 “와서 앉으라”며 말을 거는 승객은 한 명도 없었다. 심지어 아이들 앞의 일반좌석엔 이런 문구가 붙어있었다. ‘이곳의 일곱 개 좌석은 몸이 불편하신 분, 어린아이를 안고 계신…을 위한 자리입니다. 양보해주세요.’ 양보가 강제는 아니고 자리에 앉아있던 젊은이들에게도 저마다 사정이 있을 것이라 생각하려 해도, 솔직히 씁쓸한 마음을 감출 수 없었다.

노키즈존을 없애달라는 문구를 든 아이. 뉴시스

● 배려 없는 배려 좌석, 노키즈존…

얼마 전 아이들을 키우는 지인을 만나 이 이야기를 했더니 오히려 그는 기자가 세상 물정을 모른다는 듯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 “자리 양보를 기대했어? 어린애 여럿 데리고 대중교통 탔다고 ‘민폐’ 소리나 안 들으면 다행이야.” 그러면서 본인이 얼마 전 어린아이 세 명을 데리고 나가 외식하려다가 입장을 거부당한 경험을 덧붙였다. ‘어린아이들은 데리고 올 수 없다’고 했다는 것이다.

지인 말을 듣고 생각해 보니 기자도 지난주 비슷한 경험을 했다. 취재원으로부터 산 옆에 자리한 말 그대로 ‘산 좋고 물 좋은’ 카페를 소개받았는데, 누가 봐도 아이들과 가면 좋을 곳이라 날이 따뜻해지면 방문할 생각으로 인터넷 후기를 검색해 보았다. 그런데 이럴 수가. 계곡 옆에 자리했다는, 누가 봐도 아이들이 놀기 좋아 보이는 그 카페는 놀랍게도 실내가 ‘노키즈존(No Kids Zone)’이었다.

2014년쯤부터 언론에 등장하기 시작한 노키즈존은 말 그대로 아이가 들어올 수 없는 구역, 아이 출입을 제한한 상업시설이다. 처음엔 ‘아이가 짐승도 아니고 아예 못 들어오게 하다니 말이 되느냐’고 했지만, 혐오니, 차별이니 하는 논란 속에서도 서서히 늘어 현재 공식적으로 전국 수백 곳에 이르렀다. 2023년 제주연구원 사회복지연구센터 발표에 따르면 전국에 노키즈존 매장은 542곳, 누리꾼들이 직접 구글 지도에 표시한 매장은 459곳이라고 한다. 애초 아이들이 들어갈 수 없는 영업장(술집 등)을 제외하고도 이 정도다. 대놓고 표방하진 않았지만 지인이 방문한 가게처럼 구두로 아이 동반을 자제시키는 곳도 있을 걸 감안하면 실제 노키즈존은 더 많을 것으로 추정된다. 제주도의회는 지난해 전국 최초로 노키즈존 제한을 골자로 하는 조례 통과를 시도했는데, 심의 과정에서 반대가 많아 결국 처벌 조항을 빼고 문구를 ‘확산 방지’로 수정해 가결했다.

체육 수업을 받고 있는 아이들. 뉴스1

● “소아는 작은 어른이 아니다”

“어른들도 힘드니까 앉아있고 싶겠지.” “까짓거, 그 가게 안 가면 돼.” 이렇게 대범하게 넘기면 그만일지 모른다. 하지만 작은 무시와 배척일지언정 육아 가정 입장에서는 마음이 위축되는 게 사실이다. 특히 요즘처럼 ‘무개념’과 ‘몰상식’을 싫어하는 분위기에선 더욱 그렇다. 자칫 잘못해 ‘진상’ 혹은 ‘맘충(엄마와 벌레의 합성어로 경우 없는 엄마들을 비난하는 말)’이 될까 봐 노심초사 아이들을 더 단속하게 된다.

외출을 자제하는 사람도 있고, 혹여 외출하더라도 아이들에게 종일 ‘조용히 해’, ‘가만히 있어’를 연발하게 된다. 특히 기자 같이 아이가 많으면 더 신경이 쓰인다. 조용히 타일러도 될 일을 두고 사람들 앞에서 보란 듯이 아이를 혼낸 적도 있다.

그러나 가끔 ‘이렇게까지 아이를 옥죄는 게 맞나’ 하는 생각도 든다. 물론 무개념한 아이와 몰상식한 부모가 있는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아이들은 대부분 고의로 소란을 피우거나 누굴 괴롭힐 목적으로 사고를 치는 게 아니다. 아이들은 원래 자유분방하다. 소아청소년과 의사들의 교과서인 홍창의 서울대 명예교수의 ‘소아과학’은 매우 유명한 문구로 시작한다. ‘소아는 작은 어른이 아니다.’ 소아과학의 특징을 잘 담았다는 이 한 문장은 일반적으로 아이를 설명할 때도 적용할 수 있을 것 같다. 아이들은 그저 ‘몸만 작은 어른’이 아니다. 아직 잘 알지 못해 크게 얘기하고, 배우지 않았거나 신체 기관이 미성숙해서 실수를 저지른다. 한 지인은 “애한테 ‘쿵쿵 걷지 말라’고 소리 지르기 더는 미안해서 1층으로 이사 갔다”고 한다. 애는 멋모르고, 혹은 아직 다리가 온전치 않아 쿵쿵 걷는 건데 부모로서 너무 한단 생각이 들었다는 것.
그런데 이런 아이들에 대한 양해는 갈수록 줄어드는 듯 보인다. 아이들에게 양보해 주고 길을 비켜주는 사람보다, 아이가 왔다고 눈살을 찌푸리고 뭔가 실수하지 않나 신경을 곤두세우는 사람이 더 많아졌음을 느낀다. 눈에 띄는 증가세는 아니지만 서서히, 그렇지만 광범위하게 노키즈존과 진상 부모, 맘충과 같은 콘텐츠 유행은 그런 상황을 대변한다.

곳곳이 빈 병원 신생아실. 뉴시스
● ‘10년 새 반토막’ 사라진 아이들, 사라지는 이해와 배려

동네서 오며 가며 알게 된 아이 엄마는 이런 일련의 이야기를 듣더니 “아이가 너무 줄어서 아이에 대한 이해심도 줄어든 것 아니냐”고 했다. 실제 만날 떠드는 합계출산율만 준 게 아니라 출생아 수도 급감하고 있다. 1980년대 초 80만 명에 이르던 아이 수가 30년 만에 반토막이 났고, 다시 불과 10년 새 40만 명대에서 20만 명대로 반감했다. 최근 발표된 통계청 통계에 따르면 올 1월 출생아 수는 2만1442명으로 지난해 같은 달보다 1788명이 줄어 7.7%나 감소했다. 통상 1월은 아기가 가장 많이 태어나는 달이다. 더구나 2023년 코로나19 영향이 끝나면서 결혼이 늘고 따라서 올해 출산도 소폭 반등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됐다. 하지만 뚜껑을 열어보니 올 첫 달 출생아 수는 역대 1월 중 가장 적었고, 전년 대비 감소율도 2022년 –1.0%, 2023년 –5.7%로 과거보다 외려 더 컸다.

뉴시스

앞서 이야기한 동네 아는 엄마는 아이 둘을 키우고 있다. 중학생, 초등학교 고학년이다. 최근 친척 모임에 갔는데 사촌 동생이 데리고 온 24개월 아기가 너무 예뻐 온 가족 모두 눈을 뗄 수 없었다고 한다. “가만히 생각해 보니 그만한 아기를 본 지 몇 달은 된 거야. 요새 내 주변에 그만한 아기가 없거든.” 그러더니 이렇게 덧붙였다. “젊은 친구들은 나보다 더 아이 볼 일이 없으니 아이들을 잘 몰라서 배려해야 하는 것도 모르는 게 아닐까?”

그럴지도 모르겠다. 최근 인터뷰한 두 청년은 “아이들이 싫진 않지만 어떻게 대하고 보살펴야 할지 잘 모르겠다”고 했다. 주변에 아이가 있냐고 물으니 “사촌 언니의 아이”, “회사 선배의 딸”과 같이 한 다리 건너 먼 관계를 댔다. 둘 다 자주 보기는 어려운 아이일 터다. 본인은 물론 본인의 형제나 친구 중엔 아이를 가진 사람이 없었다.

● 약자끼리도 싸우는 각박한 사회, ‘이런 세상서 못 키워’ 저출산 악순환

아이를 향한 배려뿐 아니라 사회 전반적으로 배려가 줄고 각박해졌다는 이야기도 나온다. 최근 인터뷰한 30대 여성 직장인은 “우리나라처럼 차별에 항의하는 장애인을 대놓고 욕하며 끌어 내려도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곳이 없을 것이다. 약자에 대한 태도가 이럴진대 아이라고 다르겠느냐”고 말했다. 서울 소재 직장에 다니는 50대 아이 아빠는 “집에서도 남매간에 ‘남자는 다 그렇다’, ‘여자는 이래서 문제다’며 젠더 갈등을 빚어지고, 직장에서는 자녀 복지에 대해 싱글 청년들이 ‘자기들이 좋아서 낳았는데 왜 혜택을 주느냐’며 서로 눈을 부라린다. ‘만인이 만인을 향해’ 날을 세우고 있는 것 같다”고 했다.

사람들이 유자녀 가족 그림이 그려진 벽화 앞을 지나고 있다. 뉴스1

급기야 약자끼리도 날을 세운다. 이 50대 남성은 “아내와 아이가 지하철을 탔다가 웬 어르신과 싸움이 붙었단다”며 이야기를 전했다. 일반좌석에 자리가 없어 아이를 노약자석에 앉혔는데 한 어르신이 ‘노인들 앉을 자리도 없는데 왜 애를 앉히냐’며 화를 냈다는 것. 여기에 아내 분이 대거리를 하면서 말싸움이 났다는데, 누구도 배려하지 않는 가운데 급기야 약자들끼리 배려석을 두고 다툼이 난 셈이었다.

이런 분위기에선 출산과 육아가 더욱 꺼려질 수밖에 없다. 기자가 만난 청년들은 아이를 낳기 싫은 이유 중 하나로 ‘아이가 살아갈 세상이 험해서’를 꼽았다. 해외 언론도 한국의 저출산 문제를 다루며 이런 문제를 지적했다. 합계출산율 1.8명대로 서구 선진국 가운데 가장 안정적인 출산율을 자랑하는 프랑스의 유명 일간지 르몽드는 2024년 2월 한국의 저출산을 기획 기사로 다뤘다. 해당 기사에서 ‘한국 사회가 저출산 문제로 고통을 겪는 것은 우연이 아니다. 아이가 있다는 것만으로도 피곤해지기 때문’이라며 대표적인 예로 노키즈존을 들었다. 르몽드는 제주연구원이 집계한 전국 노키즈존 수도 소개하면서 “인구가 감소하는 국가에서 이런 현상은 우려스럽다”고 했다.

이렇게 줄어든 아이는 다시 또 아이에 대한 몰이해를 부른다. 악순환이다. 이 악순환의 고리를 끊으려면 아이가 자연스레 배려받고 존중받도록 유인하는 제도, 장치를 만들어야 한다. 레이디 퍼스트처럼 ‘키즈 퍼스트’가 상식으로 자리 잡아야 출산의 심리적 문턱도 한층 낮출 수 있다.

이미지 기자 imag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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