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기업 가야 출산장려 1억원?’…중소기업은 웁니다[이미지의 포에버 육아]

  • 동아일보
  • 입력 2024년 2월 16일 14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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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four)에버 육아’는 네 명의 자녀를 키우며 직장생활을 병행하고 있는 기자가 일상을 통해 접하는 한국의 보육 현실, 문제, 사회 이슈를 담습니다. 단순히 정보만 담는 것을 넘어 저출산 시대에 다자녀를 기르는 맞벌이 엄마로서 겪는 일화와 느끼는 생각도 공유하고자 합니다.

사진 출처 게티이미지뱅크
사진 출처 게티이미지뱅크

요 며칠 한 기업의 출산 혜택 소식이 화제다. 재계 순위 20위권인 이 기업의 회장은 올해 시무식에서 ‘저출산 극복을 위해 앞으로 출산하는 모든 직원에게 출산장려금 1억 원을 지급하겠다’고 밝혔다. 초유의 저출산 위기에도 정부의 대책은 여전히 뜨뜻미지근하다는 비판을 받는 가운데 한 사기업 회장님의 ‘통 큰’ 출산 지원은 높은 관심을 불러일으켰고 곳곳에서 찬사가 쏟아졌다. 지급 과정에서 과도한 세금이 부과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오자 ‘세제 혜택을 줘야 한다’는 제언이 이어졌고, 급기야 대통령이 콕 집어 ‘지원방안을 적극 고려하라’고 주문하기에 이르렀다.

기업의 화끈한 출산 지원과 그에 대한 뜨거운 반응은 환영할 만한 일이다. 정부 정책의 맹점도 개선할 기회를 얻었으니 더욱 그렇다. 하지만 통 큰 지원이라고 마냥 반기기엔 어딘가 씁쓸함이 남는다. ‘부익부 빈익빈’ 때문이다.

● 대기업 ‘육아휴직 2년, 수천만 원 지원’…중소기업엔 그림의 떡
몇 달 전 직원 십여 명의 작은 회사를 운영하는 한 사업가와 함께 식사한 적이 있다. 당시 그의 가장 큰 고민은 “여성 직원들의 잦은 휴가와 퇴사”였다. 직원도 적은데 업종 특성상 여성이 절대다수라, 출산·육아로 인한 인력 공백의 타격이 다른 회사보다 배로 크다고 했다.

특히 그는 최근 아끼던 직원에게 “뒤통수를 맞”은 일을 거론했다. 일 잘하는 친구라 놓치지 않으려는 마음에 어렵게 대체인력을 구해 육아휴직까지 내주었는데, 복직하기 직전 ‘그만두고 싶다’며 연락해 왔다는 것. 휴가, 단축근로 같은 것이 쉽지 않은 작은 회사에서 일과 육아를 병행하긴 어려울 것이라고, 그 친구도 고심 끝에 결정을 내렸을 것임을 알면서도 솔직히 서운하고 배신감이 드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고 한다. “우리 같은 중소기업도 육아휴직, 단축 근로, 지원 혜택 다 주고 싶어요. 근데 그럴 여력이 없잖아요. 다른 회사들은 어떻게 하나 참고하고 싶어도 기사에 나오는 혜택 좋은 기업들은 죄다 대기업이고…. 우리로선 감히 따라 할 수 없는 얘기들뿐이에요.” 지인의 말이다.

이중근 부영그룹 회장(중앙)이 연년생 아이를 낳은 직원에게 출산장려금 2억 원을  수여한 뒤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뉴스1
이중근 부영그룹 회장(중앙)이 연년생 아이를 낳은 직원에게 출산장려금 2억 원을 수여한 뒤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뉴스1
그와 헤어지고 난 뒤 곧장 기사를 검색해 봤다. 저출산 해법을 모색한 기획 기사들을 보니, 여느 보육 선진국 부럽지 않은 우수 기업 사례들이 줄을 이었다. ‘직원 자녀 출산 시 500만 원 지급, 자녀가 초등학교에 들어가면 3년간 교육비 총 1800만 원 지원’, ‘출산 시 제휴 호텔, 리조트, 숙박, 식사 제공’, ‘여성 직원 자동육아휴직제, 휴직 기간 2년’, ‘일반 휴직과 별개의 자녀돌봄 휴직 6개월’ 등. 하지만 모두 회사명 들으면 아는 대기업의 사례였다. 지인 말처럼 아무리 봐도 작은 사업체에서 참고할 수 있는 사례는 아니었다. 괜히 보면 볼수록 배만 아프고 상대적 박탈감만 커지는 그림의 떡이었다. 아마 최근 ‘출산장려금 1억 원’ 소식도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 국내 사업체 99.9%가 중소기업, 직원 평균 10명 내외

문제는 이런 사업체가 비단 지인 업체뿐이 아니라 절대다수를 차지한다는 점이다. 중소벤처기업부가 지난해 8월 발표한 ‘2021년 기준 중소기업 및 소상공인 기본 통계’에 따르면 2021년 말 기준 중소기업 수는 771만4000개였다. 우리나라 전체 기업의 무려 ‘99.9%’다. 종사자 수는 1849만3000명으로 전체 기업 종사자의 80.9%에 달했다.


흔히 직장과 직장인 하면 이름이 잘 알려진 대기업과 공장들을 떠올리지만, 사실상 우리나라 기업과 근로자의 절대다수는 중소기업과 중소기업 근로자라는 의미다. 이들 기업의 규모는 어떨까. 일반적으로 중소기업의 기준이 되는 상시 근로자 수를 300인 미만이라 하는데, 2022년 중기부의 ‘중소기업실태조사’에 따르면 실제 이들 기업 평균 고용인원은 제조업 14.1명, 서비스업 9.0명으로 10명 내외에 불과했다. 지인의 사업체처럼 영세한 곳이 대부분이다. 사람 한 명 들고 나는 것의 체감도가 클 수밖에 없다. 고용노동부가 전국 5인 이상 사업체 5070개를 대상으로 조사한 ‘2021년 일·가정 양립 실태조사’에서 ‘육아휴직 제도를 전혀 사용할 수 없다’고 응답한 사업체에 이유를 물었더니 ‘동료 및 관리자의 업무 가중’(25.2%), ‘추가인력 고용으로 인한 인건비 부담’(23.3%), ‘대체인력을 구하기 어려워서’(19.7%)와 같이 매우 현실적인 답변들이 나왔다.

교육·휴양비 지원이나 출산장려금 1억 원 같은 것도 중소기업에선 당연히 언감생심이다. 한 중소기업체 대표는 “요새 가장 큰 고민이 인력 확보다. 우리도 사내 복지 혜택을 강화해 좋은 직원들을 끌어들이고 싶다”며 “하지만 실질적으로 대기업처럼 할 여력은 없는 걸 알지 않느냐”고 답답함을 털어놨다.

● 휴직 대신 단축근로, 전면재택…일·가정 양립 노력
그렇다고 ‘상황이 이러니 어쩔 수 없다’며 직원들에게 마냥 감내하라 할 수는 없는 일이다. 지난해 11월 한국여성정책연구원과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가 공동으로 기획한 정책포럼에 갔다가 흥미로운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기업 규모별 ‘육아기 근로시간 단축제도’ 활용률에 대한 발표였는데, 상시 근로자 10인 미만, 50인 미만 소규모 사업체에서 육아기 단축근로를 활용하는 비율이 각각 29.1%, 22.0%로 300인 이상 대기업 활용률(32.9%) 못지않게 높았다. 50~300인 중규모 사업체의 경우 10%도 안 된 것과 비교해 큰 차이였다. 육아기 근로시간 단축제도란 만 8세(초등학교 2학년, 올 하반기 만 12세로 확대 예정) 이하 자녀가 있는 근로자가 최대 1년간(육아휴직 합치면 2년) 주당 15~35시간으로 근로시간을 줄여 일할 수 있는 제도다.


어째서 중규모 기업보다 소규모 기업에서 제도 활용률이 더 높았을까. 발표자는 ‘소규모 사업체에서 단축근로를 육아휴직의 대체재로 이용하고 있기 때문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육아휴직의 타격이 큰 소규모 사업체의 경우 직원들에게 휴직 대신 단축근로를 적극 권장함으로써 직원 손실을 최소화하고 사내 복지도 강화하는 기제로 이용했다는 이야기였다.

이는 업체 규모가 작다고 해서 일·가정 양립 지원에 방법이 없는 건 아님을 시사한다. 전 세계 100여 개국에 제품을 판매하는 아기띠 제조업체 ‘코니바이에린’은 주로 워킹맘으로 구성된 직원 55명을 채용하고 있다. 이들을 계속 고용하기 위해 회사는 전 직원 재택근무를 실현했다. 현재 코니의 직원들은 4개국 24개 도시에서 흩어져 일한다. 매일 아침이면 일명 ‘홈오피스’라 부르는 자택에서 회사망에 접속해 각자의 업무를 하고, 화상회의를 통해 협업한다. 필요하다면 일과 중 육아 등으로 잠시 자리를 비울 수도 있다(배려시간제). 일반적으로 전면 재택근무라 하면 “말이 안 된다”거나 “일이 제대로 안 돌아갈 것”이라 하는데, 이 회사는 여러 시행착오를 통해 보완책을 만들었고 7년째 별문제 없이 재택 시스템을 운용해 오고 있다.

● “중소기업 롤 모델도 제시해줬으면”
중소벤처기업부 현판. 세종=뉴시스
중소벤처기업부 현판. 세종=뉴시스

그러나 이렇게 근무 형태에 맞는 일·가정 양립 방안을 도입한 중소기업은 극소수다. 여전히 절대다수 중소기업의 현실은 열악하다. 한 중소 규모 업체 대표는 “우리도 능력 있는 젊은 직원들을 붙잡기 위해 지원책을 운용하고 싶은데 좋은 사례라고 해서 찾아보면 대기업 사무직에 적용할 법한 것들뿐이고 중소기업의 롤모델이 없다”며 “정부나 언론에서 잘하고 있는 중소기업 사례도 발굴해 업종별로 레퍼런스를 제시해 주면 좋겠다”고 했다.

또 다른 업체 대표는 “중소기업 지원도 더 강화했으면 한다”고 말했다. 고용노동부는 육아휴직을 부여한 중소기업 사업주에게 최대 200만 원을 주고, 인건비 세액공제를 제공한다. ‘대체인력뱅크’를 통해 채용도 지원하고 있다. 하지만 “여전히 사람 하나 나는 것만 못 하다”는 게 그의 말이다.

열악한 중소기업의 현실 탓에 젊은 세대 다수가 대기업 취업 혹은 이직을 꿈꾸며 늦은 나이까지 경쟁에 매진한다. 소수의 대기업이 블랙홀처럼 인재를 빨아들이면서 중소 규모 기업의 인재, 인력난은 더 심해진다. 이로써 노동시장 이중구조가 강화되고 경쟁과 격차가 커지면서 저출산도 심화한다. 악순환이다.

출산지원금 1억 원을 주는 큰 회사들이 느는 것도 좋지만, 자칫 1억 원 주는 회사 들어가기 위해 대기업 입사 경쟁만 더 심각해지는 꼴이 날 수도 있음을 잊지 말아야 한다. 노동시장의 부익부 빈익빈이 육아의 부익부 빈익빈으로 이어져서는 안 된다.



이미지 기자 imag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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