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 있다는 것[정덕현의 그 영화 이 대사]〈89〉

  • 동아일보

“이거 너 가져.”

―김도영 ‘만약에 우리’

가난하지만 게임을 만들어 100억 원을 벌겠다는 은호(구교환 분)와 언젠가 건축사가 되어 자신이 살고픈 집을 짓고 싶다는 정원(문가영 분). 두 사람은 꿈만 먹어도 배고프지 않던 청춘의 시절에 운명적인 사랑을 시작한다. 가진 건 없어도 비빌 언덕이 되어주고 힘들 때 토닥이며 웃게 해주던 그들이지만, 손에 닿지 않는 꿈과 눈앞의 현실은 굳건한 사랑에도 균열을 낸다. 심지어 서로의 꿈을 지지하기 위해 자신을 희생하려는 두 사람의 사랑은 그렇게 서서히 현실에 잡아먹힌다.

류뤄잉(劉若英) 감독의 중국 원작 영화 ‘먼 훗날 우리’를 리메이크한 ‘만약에 우리’는 러브스토리에 청춘들의 쉽지 않은 현실을 담았다. 가난한 집에서 태어난 은호와 보육원에서 자란 정원의 현실은 녹록지 않다. “고시원에 가만히 앉아 있는데 조그마한 창문으로 해가 손바닥만 하게 들어오더라고. 그래서 슬펐어.” 어느 날 은호의 자취방을 찾은 정원이 그렇게 말하자 은호는 커튼을 쳐 햇볕을 방 안으로 부른다. 그러면서 말한다. “이거 너 가져.” 따뜻한 위로의 말 한마디. 그들이 서로에게 줄 수 있는 건 그런 것들이었다.

결국 헤어진 그들은 긴 시간을 돌아 우연히 다시 만난다. 그들은 각자의 꿈을 이뤘다. 그래서 이제 햇볕 잘 들어오는 집 한 칸 마련하는 건 그리 어려운 일도 아니지만, 더 이상 서로에게 무엇도 해줄 수 없는 삶이 됐다. 애써 ‘만약에 그때 우리가’라는 가정을 하며 아쉬운 마음을 토로할 수 있을 뿐이다. 누군가에게 무언가를 줄 수 있는 건, 그걸 해줄 수 있는 능력이 아니라 그걸 받을 수 있는 누군가가 있기 때문이 아닐까. 가난해도 햇볕 한 자락을 내줄 수 있었던 젊은 날의 은호처럼, 누군가 옆에 있다는 것만으로도 고맙게 생각할 수 있는 한 해가 되기를.

#가난#꿈#청춘#사랑#현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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