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이동관]‘인사파일’ 있어봐야 ‘코드’로 꿰면…

  • 입력 2005년 7월 18일 03시 14분


코멘트
노무현 정부 초기, 인사를 총괄했던 정찬용 전 대통령인사수석비서관은 광주 YMCA 근무시절 호형호제했던 C 씨의 일화를 종종 ‘코드인사’ 비판론에 대한 반박의 근거로 들곤 했다.

그는 “C 씨가 하루는 ‘고기나 잡으러 가자’고 해 따라갔더니 강물에 들어가 도구 없이 맨손으로 물고기를 잡더라”며 “이런 ‘압도적 차별성’이 바로 전문성(專門性)”이라고 말했다. 요지는 코드인사에 대한 비판의 근거로 언론이 제시하는 ‘전문성’이란 것도 ‘따지고 보면 별것 아니다’는 것이었다. 작년 말 그는 “220V에다 110V를 꼽으면 타버린다”며 인사에서 ‘코드’와 ‘철학’의 중요성을 다시 강조하기도 했다.

비슷한 시기 여권의 한 관계자는 필자에게 “실력이 있는 ×이 도덕성이 없으면 오히려 국가사회에 더 해악을 끼칠 수도 있다”고 말했다. 이 때문인지 몰라도 교사와 시민운동 경력밖에 없는 정 전 수석을 노무현 대통령이 기용한 이유는 ‘서울에 아는 사람이 적기 때문’이었다고 한다.

현 정부 출범 이후 정부 및 공기업 인사를 둘러싸고 줄곧 제기돼 온 ‘코드인사’ 비판에 현 정부가 마이동풍(馬耳東風)으로 일관하는 배경에는 이런 인재관이 작용하고 있다. 중국식으로 말하면 전(專·전문성)보다 홍(紅·사상성)이, 북한식으로 말하면 ‘능력’보다 ‘성분’이 중요한 것이다.

‘평등의 이념을 위해 작은 능력 차이는 무시할 수 있다’는 식의 인재관은 통합논술고사를 둘러싸고 벌어진 서울대와 노 대통령 간의 충돌에서도 그대로 드러났다. 노 대통령은 7일 언론사 편집·보도국장 간담회에서 서울대를 겨냥해 “100분의 1 수재로는 안 되고, 1000분의 1 수재는 꼭 데리고 가야 되겠다는 정도의 서열화가 교육정책에 걸림돌이 되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컵의 물을 넘쳐 흐르게 하는 것은 한 방울의 물이다. ‘100분의 1의 수재’와 ‘1000분의 1의 수재’를 동질화(同質化)하는 발상으로 선진화를 이룰 수 없다는 것은 분명하다.

그런 청와대가 이번에는 노 대통령의 지시에 따라 비위(非違) 전력이 있는 전현직 공직자에 대한 정보를 민간기업에도 제공하는 방안을 검토하기로 했다고 한다. 현재 청와대는 1200명의 정무직 인사파일을 데이터베이스(DB)화 해놓고 있으며 중앙인사위원회는 8만8000여 명의 국가인재 DB를 관리하고 있다. 이를 활용해 부패 비리 전력자의 기업 취업을 막겠다는 발상이다.

그러나 이미 기업들은 유능한 최고경영자(CEO)의 확보를 위해 전문적인 헤드헌터(Head Hunter)까지 두고 있다. 인재 확보를 위해 외국까지 찾아 나서는 ‘인재 찾아 3만 리’도 마다 않는다. 더욱이 세계 최대의 신용평가회사인 미국의 무디스는 삼성전자 포스코 등 한국기업들의 신용등급을 최근 한국정부의 신용등급보다 높게 평가했다. 민간과 정부의 등급 차이가 ‘실력중시’의 인재관과 ‘코드중시’의 인재관의 차이라면 인사정보를 기업에 제공하겠다는 정부의 발상은 코미디라고 말할 수밖에 없다.

승자독식(勝者獨食)의 글로벌 경쟁에서는 2등이 없다. 아무리 잘된 인사파일을 갖추고 있다 한들 ‘작은 차이’를 무시하는 ‘코드인사’로 선진화하겠다는 것은 연목구어(緣木求魚)다.

이동관 논설위원 dklee@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