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전상인]‘아마추어리즘’이 나라 망친다

  • 입력 2005년 5월 30일 03시 24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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숯불구이집에서 갈비를 시켰다. 주인은 돼지갈비밖에 없다고 했다. 비싼 소갈비를 찾는 사람이 없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달포 전 어느 지방 소도시에서의 경험이다. 서울 여의도에서 택시를 탔다. 목적지까지 만 원 정도의 요금이 나왔는데 운전사는 그날 첫 장거리 손님이라며 고마워했다. 며칠 전 아침이 아니라 한낮의 일이다.

헤어날 줄 모르는 경제난과 생활고는 그러나 언제부턴가 사회적 이슈조차 되지 않는다. 무엇보다 경제에 매진하겠다던 대통령의 새해 목표가 불과 몇 달 만에 경제의 ‘완전 회복’ 선언을 통해 조기 달성되었고, 따라서 잘살고 못사는 것은 정부 책임이 아니라 개인 사정일 따름이라는 투의 주장이 집권여당 일각에서 제기될 정도이기 때문이다.

얼마나 국민과 정부가 서로 따로 놀고 있으면 20%대 지지율에 이처럼 의연하고, 재·보선 영패(零敗)에 이다지 태연할까. 그러니 정부가 작심하고 벌이고 있는 수많은 일이 사실은 국민적 관심이나 호응과 별 상관없이 진행되고 있는 것이다. 그렇지 않고서야 고유 사업도 아닌 곳에 잘못 뛰어든 철도청이나 도로공사를 정권 실세가 지원하고, 청와대 고위관계자들이 업무상 전혀 관련 없는 국가 프로젝트에 동참하고 나선 사정을 누가 쉽게 이해하겠는가.

정부와 국민 사이의 간격이 이처럼 넓어진 것에는 두 가지 정도의 이유가 엿보인다. 우선 노무현 정부는 헌정 사상 유난히 자부심이 강한 권력이다. 쿠데타 세력은커녕 그 후예의 손조차 잡지 않았기에, 또한 적어도 스스로는 국민의 선택과 참여에 입각한 탈권위주의 정부라고 생각하기에 역대 정권들과는 달리 일종의 ‘원죄 의식’을 갖고 있지 않은 것이다. 문제는 역설적으로 바로 이러한 배경이 역사에 대한 겸손이 아니라 오만, 국민에 대한 존경이 아니라 경시를 유발한다는 점이다.

아마추어리즘 역시 노무현 정부의 중요한 특징이다. 386을 중심으로 하는 운동권 세력이 어렵사리 쟁취한 권력이기 때문만은 아니다. 어느 정권이나 집권 초기에는 아마추어 아니겠는가. 노무현 정부의 아마추어리즘은 오히려 대학교수 출신의 지식인 참여가 두드러진다는 사실에 기인한다. 물론 지식과 권력의 거래 자체는 동서고금에 걸친 보편적 현상이다. 하지만 노무현 정부는 학자를 중용(重用)하는 정도가 아니라 실세(實勢)로 활용하고 있다는 점에서 유별나다. 세미나, 포럼, 프로젝트, 워크숍, 로드맵 등의 학계 용어가 정책 결정 과정의 키워드로 등장하고 있는 형편인지라 이른바 ‘위원회 공화국’이라는 닉네임도 과연 일리가 있다.

아는 바 이론과 품은 바 포부를 현실에서 실천하고자 하는 태도를 나무랄 수는 없다. 깨끗한 도덕성이나 참신한 개혁성 또한 귀하고 비싼 자산이다. 그러나 의지와 열정이 곧 국가경영의 전문성을 보장해 주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세상 모든 것을 다 아는 체하는 학자적 경향과 본인의 주장을 진리인 양 믿고 남을 가르치려는 교수의 습성, 특히 자신의 가치를 알아주는 사람에게 쉽게 감동하는 지식인의 속성은 국가와 국민에게 약이 아니라 독이 될 수도 있다.

최근에 벌어진 일련의 정책 스캔들에 대해 관련자들이 반성이나 사과를 외면하고 있는 것도 따지고 보면 집권세력이 무결점과 무류성(無謬性)에 자아 도취된 결과이다. 그들은 한결같이 국가적으로 중요한 사업이었기에 마땅히 할 도리를 했다고 주장하고 있는 것이다. 이와 관련하여 청와대 또한 당사자들의 ‘적절치 못한 직무행위’를 지적하는 수준에 그쳤는데, 이는 오일 게이트나 S프로젝트와 유사한 사태가 앞으로도 얼마든지 발생할 수 있음을 미리 통지하고 있는 셈이다. 이로써 정부와 국민 사이의 거리는 더욱더 벌어졌다.

전상인 한림대 교수·사회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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