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오명철]아! 낙산사

  • 입력 2005년 4월 6일 18시 2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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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목일 산불로 천년 고찰 낙산사(洛山寺)가 잿더미로 변하는 모습을 지켜봤다. 내 육신이 타들어 가는 듯 고통스러웠다. 마음이 울적할 때면 훌쩍 이곳에 들러 경내를 둘러보며 큰 위로를 받곤 하던 이들에게는 마치 생가(生家)가 불타 버린 듯한 아픔일 터이다. 낙산사가 어떤 절인가. 신라 화엄종의 종조(宗祖)인 의상 대사가 당나라 유학을 마치고 돌아와 세운(671년) 우리나라 최초의 관음성지(觀音聖地) 아닌가.

▷낙산(洛山)은 범어 보타락가(Potalaka)의 음역(音譯)으로 관세음보살이 항상 머무는 곳이라는 의미. 세상 모든 고통의 목소리를 들어준다는 관세음보살처럼 낙산사는 한국 불교의 ‘어머니’나 다름없는 사찰이다. 태조 이성계의 조부모가 낙산사에서 치성을 드려 자식을 얻게 됐다고 하니 조선 건국과도 연관이 있다. 이런 인연으로 조선 왕실은 낙산사에 봄가을로 관리를 보냈고, 주위에 성을 쌓는 등 공을 들였다. 이번에 소실된 낙산사 동종(보물 479호)도 예종이 아버지인 세조를 기려 낙산사에 보시(布施)한 범종이다.

▷영험이 뛰어난 기도 도량으로 알려져 있는 홍련암(紅蓮庵)과 의상 대사가 선정(禪定)에 들곤 했다는 의상대(義湘臺)가 화를 면한 것은 불행 중 다행이다. 홍련암은 7일 밤낮으로 기도하던 의상 대사의 눈앞에 홀연히 홍련(紅蓮) 한 송이가 피어난 자리에 세워져 홍련암이라 명명됐다. 법당 바닥에 구멍이 뚫려 있어 마루를 열면 동해의 파도가 넘실대는 것이 한눈에 들어온다. 의상대에 육각정을 지은 것은 만해 한용운 스님이다.

▷낙산사는 유달리 화재와 연(緣)이 깊다. 몽골의 침입으로 완전 소실된 뒤 조선 세조 때 중창했으나 임진왜란과 병자호란 때 다시 잿더미가 됐다. 구한말 다시 절 모습을 되찾았으나 6·25전쟁 때 또 불타버렸다. 하지만 어찌 해볼 수 없는 난리로 불이 난 것과 화재로 불이 난 것은 엄연히 다르다. 시절이 하 수상한 것은 아닌지, 스님들의 공덕(功德)이 부족한 것은 아닌지 살펴보게 된다.

오명철 논설위원 oscar@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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